올해 시제 시간을 12시로 늦춘 것은
서울 광주 부산 등지에서 당일 오게 될
일가들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와서 보니
미리 와서 묘역을 둘러보며
인사를 나누는데
先後가 분명하여
다들 형님으로 불리는 一家들 뿐이다.
그러면 여기에 한 자리 차고 누울 날이
가까워진다는 소리가 아닌가
옥종 시제때 안내를 한 바 있다.
"아헌관 종헌관은 따로 두지 않습니다
모두 위전에 술을 올리는 순서로
진행합니다.
헌관의 焚香降神
재위자 일동 재배
초헌례에 이어 집례위원의 告由
재위자 모두 헌주
첨작을 하게 되는 侑食禮
음복
고유문을 사루고 사신
재위자 일동 재배."
이렇게.
이제 이곳에서
干支를 좇아
維~歲次라고 늘이고 빼는 소리는
하지도 않으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고유문이다
올해 일어난 문중 일을 압축하고
일가들의 길흉사를 여기에 담는다
僉使公 할아버지 死後 212년에 이르는 2024년 11월 21일
8세손 英淳이
7대조 載翼할아버지와 貞夫人을 봉작 받으신 全州李氏 할머니
6대조 喆會할아버지와 貞夫人 光山金氏 할머니
5대조 永宗할아버지와 文化柳氏 할머니
永勳할아버지와 純興安氏할머니, 竹山安氏 할머니, 淑夫人
晉陽鄭氏할머니
永祖할아버지와 密陽朴氏 할머니
永善할아버지와 金海 許氏 할머니께
삼가 술과 안주를 올리오니 흠향하여 주소서.
이 자리에 함께한
永宗할아버지 6세손 炯淳 貞淳
永勳할아버지 6세손 淳吉 永淳 學淳 熙淳
永祖할아버지 6세손 炅九의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를 향한 정성 지극한 추모의 정도
함께 잔에 담아 올립니다.
버려진 듯 방치된 僉使公 善政碑는
끝내 정화 작업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올가을 이곳 묘역 진입로 포장 작업만 이뤄냈습니다.
할아버지의 8세손들이 69명에 이르렀으나
올해도 널리 참석하지 못하고
이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욱이 9세손들이 이미 60을 목전에 두고 있으나
대를 이어받아 참석하지도 않고 있으니
이로써 술잔을 올리는 일도 끊길까 걱정입니다.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일가가
앞으로도 화합하고 상부상조하며 나아갈 것이니
후손들에게 가정마다 우환 없이 넘치는 재복과 건강으로
축복해 주실 것을 간구하면서
이 모두를 잔에 담아
삼가 英淳 고하였습니다.
30분이면 음복까지 끝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일 년이 걸렸다.
다음 해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가정에 우환없고 건강하기만을
소망했다.
사진 좌로부터
永淳(44년생) 永勳孫 망덕
學淳(57년생) 永勳孫 망덕
英淳(48년생) 永宗孫 구례
炅求(48년생) 永祚孫 망덕
炯淳(50년생) 永宗孫 서울
熙淳(58년생) 永勳孫 부산
淳吉(63년생) 永勳孫 광주
기록사진촬영 貞淳(50년생) 永宗孫 구례
헌성금 헌성자는 다음과 같다(年長者 順)
永淳(父 鎬先) 10만원
英淳(父 鎬彦) 10만원
炅求(父 鎬演) 10만원
貞淳(父 鎬洙) 10만원
學淳(父 鎬辰) 10만원
熙淳(父 鎬炫) 10만원
淳吉(父 泳鎬) 10만원
敏淳(父 鎬炫) 10만원
이에 參祀者에게 50,000원씩 여비 지급을 하였다
첫댓글
시제 제물 공급처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광주광역시 북구 평교로 42-1
대주1차아파트 상가동에서 맞춰왔습니다.
광주은행 093-122-240163 이다남
제물대 7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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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3시 30분에 경로당에 음식상자를 전달 할 때만해도
오해수부인 수광댁, 죽은 오동수부인 예성댁, 평촌댁, 안골목에 사는 김길호부인등
4명이 있으면서 그제도 먹었는데 또 가져왔느냐며 반깁디다.
그런데 아침에 아랫집 형수한테서 집사람한테 휴대전화가 오길
경로당에 들어와 싸서 먹을 사람이 없다며 도로 가져가라고 해서
내가 회관에 가서 상자를 들고 나왔지요.
7,8명 여성 경로당 누구도 아무 소리를 안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속에서
작은 형수가 저거라고 가르켜준 곳에서 어제 그 상자를 들고 나오는 데
속이 좀 뒤틀립디다.
먹을 사람 없다는 소리가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도라지나물 시금치나물 고사리나물은 그렇다치고
수박은 칼로 썰어 나눠 먹어도 될 일이고
닭은 누구라도 집에 가져 갈 수 있는 일.
생선에 떡도 들고 갈수 있는 것을
배가 부른갑다, 라고 집사람은 그러던데 그보다는 무슨 감정적 처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다 들던데
형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