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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 이해력
통찰력과 식별력이 필요되는 일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신중을 요하는, 가장 중대한 일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명확한 통찰력과 훌륭한 식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음의 참된 독립성은 무분별과는 전혀 다른 요소이다. 신중하고, 경건한, 생각이 깊은 견해를 갖도록 이끄는 저 독립의 특질은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기 전에는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독립은 성행하고 있는 허다한 오류들 가운데서 마음을 침착하고 안정되게 지켜줄 것이며, 중책을 맡은 자들이 온갖 면에서 그 증거를 세심하게 살펴보고 다른 사람들의 영향이나 환경에 좌우되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지성적인, 철저한 지식 없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도록 해줄 것이다.
힘든 과제
인간은 하늘이 비용, 즉 하나님의 귀중한 아들이란 갋을 치르고 산 존재이기 때문에 목회자들, 교사들 그리고 부모들은 그들의 영향권 아래 들어오는 자들의 영혼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취급해야 할 것인가? 사람들은 마음을 다루는 일은 신중을 요하는 일이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 일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청년들을 교육하는 사람들은 완전한 자제를 유지해야 한다. 성마름을 통하여 혹은 위엄과 최상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사람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파멸시키는 것은 두려운 실수이다. 이는 그것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영혼을 잃어버리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마음은 현명치 못한 취급을 받아 대단히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진 상처는 결코 전적으로 극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젊은이들의 교육과 훈련에 지배적인 감화력을 끼쳐야 한다.
구주의 자아 부정, 보편적인 자애로움 그리고 오래 참으시는 사랑의 모본은 참을성 없는 목회자들과 교사들에게 일종의 견책이다. 그분은 이들 충동적인 교사들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이것이 그들을 위해 내가 목숨을 버려 얻은 자들의 영혼을 취급하는 방법인가? 그대는 내가 그들의 구속을 위하여 치른 무한한 값을 좀 더 크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의사는 온갖 부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남
의사는 날마다 그의 지식을 쌓아 나가고 예모와 세련된 태도를 계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는 자신이 온갖 부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교제한다는 것과 그가 주는 인상들이 다른 주(州)들에까지 확산되며 그 기관 [배틀크릭 요양원]에 반사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교회증언 3권, 183, 184 (1872).
인내와 지혜가 필요함
목회자들은 여전히 오류의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신비스러운 깨우치는 능력을 부어 주실 것을 믿고, 그들의 임무를 잘 수행해야 하며, 이러한 역사가 없으면 그들의 수고에 아무 결과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목회자들은 각 사람들이 계발시킨 갖가지 특성의 이면(이면)에는 여러 가지의 다른 환경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때에 인내하고 또한 많은 지혜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도외시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이 없도록 자기를 엄격히 경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길을 열어줌
오직 마음을 아시는 분만이 사람들을 어떻게 회개하도록 인도할지를 아신다. 오직 하나님의 지혜만이 우리로 하여금 잃어버린 사람들을 접촉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하게 하실 수 있다. 그대는 뻣뻣하게 “나는 너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의 이론이 아무리 정확하고 그대의 말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그런 자세는 사람들의 마음을 결코 감동시킬 수 없다. 교훈과 논쟁을 되풀이해도 아무런 일을 성취할 수 없는 때에, 말과 행동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혼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동정과 사랑으로
모든 사람이 그릇 행하는 자들을 교정하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그들은 자비를 사랑하면서 공의롭게 다룰 지혜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랑과 자애로운 동정을 신실한 견책들과 섞는 일의 필요성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불필요하게 가혹하면, 사도의 다음과 같은 당부에 유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성미가 급한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어서는 안 됨
확고한 믿음과 신성한 사물에 대한 인식 부족은 어떤 인물을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을 맺는 일에서 제외시키는 충분한 이유로 여겨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급한 성질, 거칠고 지배적인 정신에 탐닉하는 것도 그 소유자를 하나님의 유업에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문제를 결정짓는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일에 전혀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무한한 대가를 지불하여 사신 사람들과 관련된 일들을 꼴짓는 일에 책임을 질 수 없다. 만일 그가 사람들을 다루는 일을 한다면, 그는 그들의 영혼을 다치고 상하게 할 것이다. 이는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여되는 섬세한 접촉, 민감한 감수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부드러워지고 정복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돌 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지 않았다.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여러 자질들이 필요함(한 문서전도자에게 보내는 권면)
어떤 다른 분야의 사업들보다 이 분야의 사업은 좀 더 어렵다. 81 그러나 교훈들을 배우고, 기지와 훈련을 습득하면 그대를 다른 유용성의 분야들을 행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이며, 그곳에서 그대는 영혼들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다. 그들의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접근할 때 부주의하고 퉁명스러운 자들은 목회 사역에 들어갈 경우 사람들의 마음을 다룰 때에 동일한 기지와 기술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다.
충동, 성급함, 교만 그리고 자존심을 다룸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일은 인간에게 맡겨진 모든 일들 가운데서 가장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사업이며, 교사드은 저희의 일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계속 필요하다. 학교에는 품성과 교욱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다. 교사는 충동 성급함, 교만, 이기심, 지나친 자존심 등을 가진 청소년들을 지도해야 한다. 어떤 청소년들은 독단적인 제재와 가혹한 환경 속에서 살았으며, 그것으로 말미암아 저희에게는 완고한 정신과 반항적인 태도가 생기게 되었다. 또 다른 청소년들은 마치 애완 동물처럼 취급을 받고, 지나치게 사랑하는 부모들에 의해 그들 자신의 취향을 따르도록 허용되었다. 결점들을 봐주다가 마침내 품성이 그릇 형성되어 버린다.
인내와 기지와 지혜가 필요함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마음을 가진 학생들을 성공적으로 다루려면 교사는 많은 기지와 운영의 신중성 및 관리의 견실성을 기질 필요가 있다. 학교의 정당한 규칙들을 싫어하고 경멸히 여기는 태도들이 종종 나타날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벌칙들을 교묘하게 피하기 위해 재간을 부릴 것이며, 또 다른 학생들은 규칙 위반의 결과에 대하여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은 청소년의 교육을 위탁받은 교사들의 인내와 관용과 지혜를 요구한다.
제거할 수 없는 상처와 흠을 남길 수도 있는 행동
교사가 학문을 가르치기에 충분한 교육과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나 그가 과연 인간의 정신을 다룰 만한 기지와 지혜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였는가? 만약 교사들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청소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지워진 중대한 책임을 지기에 적합하지 못하다. 그들 자신이 고상한 교육이 결여되어 있기에 그들은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법을 모른다. 그들 자신의 반항적인 심령은 지배권을 얻기 위하여 애쓰고 있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드의 정신과 품성을 그런 식의 훈련에 복종시키려는 것은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상처와 흠을 마음에 남길 것이다.
가장 예민한 분별력이 요구됨
주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신중히 젊은이들을 다뤄야 할지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차례 나에게 제시해 주셨다. 곧,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일은 가장 예민한 분별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젊은이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위치에 서 있는 자들은 모두 위대하신 교사와 가깝게 살아가면서, 그분의 정신과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들의 성품과 평생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교훈들이 주어져야 한다.
개인 지도가 긴요함
모든 가르침에 있어서 개인 지도는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지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훈련하실 때에도 개인적인 접촉과 교제를 통해서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한 사람의 청중을 앞에 두고도 당신의 가장 귀한 교훈을 개인적으로 베푸시는 일이 아주 많았다. 감람산에서 있었던 존경받던 랍비와의 심야 토론과 수가의 우물가에서 만난 천한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감동을 받을만하고, 그들의 생각이 열려 있으며, 진리의 보화를 받아들일 만한 정신이 있음을 보시고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값진 진리를 말씀하셨다. 여러 번 그리스도를 따라 몰려온 군중들조차도 그리스도에게는 무분별한 대중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 직접 대화하듯이 말씀하시고 각 사람의 심령에 호소하셨다. 예수님은 청중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진리가 그들의 심령에 감응을 일으켰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들, 즉 용모가 환해지고 신속하게 반응을 보이는 시선들을 보셨다. 그러면 그분의 마음속에서는 그에 화답하는 공감어린 기쁨의 심금을 울렸다.
과로는 다른 사람들을 다루기 부적합하게 만듦
교사들은 자신의 체력을 가능한 한 최상의 상태로 보존하고, 훈계뿐 아니라 모본으로써 학생들에게 바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건강 법칙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질병이나 과로로 신체적 능력이 연약해진 교사는 생명의 법칙들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는 휴양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 그는 학교의 일 외에는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너무 혹사시켜서 그의 신경계를 불안정하게 만들 책임을 맡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할 경우 그는 학생들의 마음을 다루기에 적합지 못한 사람이 되며, 자기뿐 아니라 학생들도 바르게 대할 수 없다.
각기 다른 필요들을 이해함
우리 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믿음과 영성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게 보여진 바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의뢰자로 삼아야 한다.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들 가운데는 그들 자신의 죄악적 방종으로 말미암아 거의 온갖 형태의 질병을 자초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빈번히 요구하는 동정을 받을 가치가 없다. 의사들이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도덕적으로 저하된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무지하여 자연 법칙을 범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관습인고로 그들은 부절제하게 일해 왔고 부절제한 식생황릉 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의사들로부터 많은 괴로움을 받아왔지만, 차도가 없었고 도리어 악화되어 왔다. 드디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직장과 사회와 그들의 가족들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혹 나음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갖고 건강 요양원(Health Institute)에 온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동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최대한의 부드러움을 갖고 다루어져야 하며, 그들이 신체의 법칙을 범하는 일을 그침으로써 그리고 자신들을 제어함으로써 고통과 질병-자연 법칙을 범함 형벌-을 피할 수 있도록 그들의 존재의 법칙들을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진리라 할지라도 아무 때나 이야기해서는 안 됨
그러나 세상 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세상적 견지에서 사물들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 그들에 관한 사실들을 진술해 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진리라 할지라도 아무 때나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말들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적합한 때와 적합한 기회가 있다. 의사들은 과로하여 그들의 신경계를 녹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신체의 이런 상태는 마음들을 진정시키고 신경을 안정시키고 쾌활하고 행복한 정신을 갖는 데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해하심
인성을 취하신 그분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동정하실지 아신다. 그리스도는 각 영혼들과, 그 영혼들의 특수한 필요와 시험을 아실 뿐만 아니라 심령을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동정어린 친절로써 고난당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손을 뻗고 계신다. 가장 크게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동정과 긍휼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며, 우리가 우리의 어려움과 난처한 문제들을 당신의 발 앞에 내려 놓고, 그곳에 버려두기를 바라신다.
이해심은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만듦
선한 행실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맺으라고 요구하시는 연매-선한 말, 자선 행위,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동정하는 것-이다. 실의와 슬픔에 눌린 마음을 동정하고, 궁핍한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고, 벗은 자를 입히며, 나그네를 집안에 들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천사들은 매우 가까이 다가올 것이며, 하늘에서는 그에 화답하는 선율이 울려 퍼질 것이다.
모든 공의와 자비와 자선 행위는 하늘에 노래가 울려 퍼지게 만든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보좌에서 자비를 행한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가장 귀한 보배로 헤아리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모을 때에 그들이 나의 것이 될 것이라.” 궁핍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를 위해 베푼 자비는 바로 예수께 베푼 것처럼 간주된다. 85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고통당하고 압제받는 자를 동정하고, 고아를 돌보아 줄 때 그대는 예수와 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간다.
그리스도는 부드러움과 동정을 요구하심
사람과 그의 동료 사이의 참된 동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과 그분의 율법에 괘념치 않는 사람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어 가는 세상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희생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나타내신 동정을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그분의 신앙은 진정한 의료 선교 사업을 하도록 그분을 이끌었다. 그분은 치료하는 능력이셨다. “나는 제사가 아니라 자비를 원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이것은 진리의 위대한 창시자께서 참된 종교와 거짓 종교를 구별하시는 데 사용하신 시금석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료 선교사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신다면 보이실 그런 자애로움과 동정심을 가지고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인생의 행복의 요체
계발된 지성은 큰 보물이다. 그러나 동정어린 그리고 성화된 사랑의 부드럽게 하는 영향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가치 있지는 않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애로운 동정의 말과 행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친절한 말과 유쾌한 표정으로 일천 가지의 작은 관심들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렇게 하면 그것은 다시 우리에게 반사되어 돌아올 것이다. 분별없는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등한히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불친절하고 그들의 권리를 망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은 친절한 동정을 극도로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것에 합병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의 개인적 특성들은,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분의 뜻이 우리의 것일진대, 훨씬 덜 두드러질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 구주의 생애처럼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여 바쳐질 것이다. 우리는 자아를 잊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호의들에 대하여 감사를 표현할 기회들을 항상 찾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들고 자애로운 친절과 작은 사랑의 행위들을 통해 그들의 슬픔과 짐들을 가볍게 만들고 해소해 줄 기회를 엿보아야 한다. 우리의 가정들에서 시작되어 가정 밖에까지 확대된 이런 사려 깊은 정중한 행위와 환대는 인생의 행복의 요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작은 것들에 대한 소홀이 바로 인생의 괴로움과 슬픔의 요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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