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도, 제 생각에 언니는 너무나 원만하게 잘 해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로서 이렇게까지 잘하는 사람은 아마 찾기가 아주 어려울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저의 언니와 저의 형부, 두 분께서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말씀 드리지요. 제가 방금 말했듯이, 저의 형부는 두 살 때 부친을 잃었습니다. 형부는 1955년에 군대에 들어가서 1960년에 전역하였습니다. 전역하고 우리 동네 동안가东安街로 왔는데, 그때 저의 언니와 한 작업장에서 지내게 되었답니다. 형부네 집은 더없이 유달리 가난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가난했냐고요? 형부가 독신자 숙소로 배정 되었는데, 그 독신자 숙소에는 미리 침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침대 위에는 풀로 엮은 돗자리만 있었답니다. 그건 기관에서 준비해 두는 거지요. 저의 형부는 거기에 가서 그냥 그 돗자리 위에서 잠을 잤답니다. 요도 없이 무슨 침대보 같은 것도 전혀 없이 그냥 얇디얇은 군용 이불만 덮고 말입니다. 그것이 저의 형부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거지요! 형부는 매일 그렇게 살았답니다. 물 끓이는 할머니가 형부를 보니 너무나 불쌍해서, 저의 언니에게 말했답니다. “그 사람 말이야, 얼마나 불쌍한지 좀 봐라. 어쩜 그렇게도 어려울까. 네가 한번 교제를 해보면 어떻겠니? 네가 만약 그 사람하고 결혼하면 그 사람에게 집이 생기는 거잖니! 누군가 돌봐줄 사람도 생기고.” 언니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아버지께 이 말을 했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럼 한번 볼 테니 데리고 오라고 하셨고요. 그래서 언니는 형부를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는 아직 그때 일을 기억합니다. 형부는 당시에 제대할 때 발급 받은 그 황색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중간에 있는 작은 구멍마다 모두 작은 비행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형부는 공군에서 지상근무를 했었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는 이랬습니다. 저의 형부가 인물이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형부는 아주 왜소했습니다. 말이 경솔하고 쓸데 없는 장황하게 말을 혀가 너무 길어서 말이 두서 딸리고 말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우리 집에 와서는 감히 입을 떼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몰골이 완전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저의 언니에게 말씀하셨고, 이렇게 해서 끝나고 지나갔습니다. 다시 한 동안 시간이 지난 후에 물 끓이는 할머니가 다시 와서 다리를 놓았답니다. 그래서 언니는 또 집에 가서 어머니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겠지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모두 다 아주 선량한 사람이라 이렇게까지 말을 들으니 더 이상 거절을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저의 언니와 형부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언니와 형부가 결혼한 것은 우리 집으로서는 딸을 시집보내는 것인 동시에 사위를 들이는 일이었지요. 형부가 우리 집으로 장가를 왔으니까요. 그래서 당시에 우리 집에는 어머니 아버지와 언니와 형부, 그리고 저까지 다섯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 집은 작은 방 하나에 온돌이 있었지요. 그때 우리가 살던 곳은 방이었고 온돌 하나였기 때문에 언니와 형부 두 사람에게는 부엌에 작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벽돌로 듬성듬성 쌓은 그곳이 바로 두 사람의 신방이었던 셈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의 언니와 형부가 결혼한 지 52년이 되었는데, 그 52년 동안, 저의 눈으로 볼 때, 한 해 한 해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해 언니는 어진 아내였습니다. 언니는 잘 해냈습니다! 남편에게 말입니다.
아이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여러분, 2년마다 아이를 하나씩 낳는 걸 생각해 보세요. 2년에 하나씩 낳아서 다섯 아이를 낳았으니, 한 아이 연이어 한 아이를 낳은 셈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도 없이 이 다섯 아이들을 얼마나 고생하면서 키웠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언니는 이 아이들의 어머니로써 좋은 엄마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집안 살림은 부유하지 않고 비교적 가난한 편이었지만 그러나 다섯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깨끗하고 깔끔했습니다. 언니는 아주 깨끗하고 깔끔했습니다. 언니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은 모두 다 질서정연하게 제 자리에 가지런히 있었습니다. 저는 언니와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저와 언니를 비교하면 저는 거의 지저분하거든요. 지금 여러 부처님 벗들께서는 다들 그러시겠지요. “아이고, 선생님은 정말 깨끗하세요! 정말 깔끔하세요!” 저는 속으로 말할 겁니다. “여러분이 정말 깨끗하고 깔끔한 걸 못보셨군요.” 이렇게 저의 언니는 이 다섯 아이들을 모두 고생 고생하면서 키워냈습니다! 여러분, 바로 이런 사람이 어질고 선량한 어머니가 아니겠습니까?
저의 언니는 저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언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주었습니다. 저를 대할 때 마치 어머니가 날 대하는 것처럼 관심을 갖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저는 언니와 같이 있으면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지곤 했습니다. 제가 응석을 부리고 싶으면 응석을 부렸다가, 화를 내고 싶으면 화를 냈지요. 언니는 나에게 따지는 일이 없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건 그냥 호호 웃으며 한 마디밖에 안 했습니다. “좋아!” “맞아!” “그렇게 하자!” “네 말대로 하렴!” 언니는 언제나 이런 말투로 저를 대했습니다. 그러니 저의 입장에서 보면 언니는 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어머니 역할까지 대신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무너무 훌륭하셨습니다! 제가 총결지으면 언니는 인륜을 돈독히 하고 본분을 다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제가 총결지으면, 언니는 맡은 바 일을 좋아하고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爱岗敬业)이었습니다. 이 말로 저의 언니를 표현하여도 전혀 지나치지 않고 과장도 아닙니다. 언니는 일 중독자였습니다. 일에 대해 특별히 성실했고 특히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황소처럼 묵묵히 착실히 일하는 사람으로 무슨 일을 시키건 그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하건 제대로 해냈습니다. 책임자는 무슨 일이건 언니에게 시키면 마음이 놓였지요! 언니는 마음 쓰이게 하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밖에, 억척꾸러기(일에 미쳐 사는 사람)이였습니다! 일을 시작하면 거리낌이 없었고 몸을 사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그 시절에 다섯 아이가 하나씩 연달아 나왔으니 아이에게 젖을 줘야하지 않았겠습니까? 언니가 젖을 먹이는 시간은 아예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오전 몇 시에 집에 가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겠다거나, 오후 몇 시에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집에 가겠다거나 그런 말이 없었습니다. 아예 그런 개념이 없었지요. 시간이 있으면 젖을 조금 물리고 시간이 없으면 그냥 말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 어머니가 그 좁쌀가루로 쑨 죽을 먹여서 키웠습니다. 하나 하나 우리 언니가 집에 돌아와 젖을 먹이지 않았으니까요. 우리 어머니가 그 좁쌀가루로 쑨 죽을 끓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건 저의 언니가 어렸을 때에도 먹었던 음식입니다. 언니가 먹었던 것을 언니의 자식들도 먹은 것이지요. 당시에 저는 이미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제 기억에 언니는 해마다 우수작업자였고 우수공산당원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항상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언니는 일에 대해서는 맡은 바 일을 좋아하고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생전 일에 대해서는 이 일 저 일 따지고 고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내 언니에게 무슨 일이든 안배하면 무슨 일이든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라도 책임자가 언니의 손에 그것을 넘겨주면 언니는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언니는 이렇게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