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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풍경
밤사이에 눈이 내렸다. 온 천지가 하얗게 눈으로 덮인 가운데 삼한사온 날씨 탓인지 며칠 동안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밖에 나서면 귀가 떨어져 나갈 것같이 매서운 바람이 불더니 오늘 아침엔 바람도 사그라들고 날씨가 제법 포근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가집 지붕 위에 쌓인 눈도 정겹게 보여 마음마저 넉넉하고 기분이 좋았다. 방학 숙제를 미리 다 끝낼 요량으로 오늘도 남은 과제를 해 나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부르더니 아버지가 출근 때 옷을 갈아입느라 놓고 간 서류를 전해드리고 오라고 했다.
아버지가 다니는 부대는 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두어 마장 더 가야 하는 곳으로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되는 거리였다. 뽀드득 소리를 내며 눈길을 걸어서 신천에 이르니 냇물이 꽁꽁 얼어붙어서 다리가 있는 곳까지 가지 않아도 내를 건널 수가 있었다. 나는 미끄럼질을 하면서 내를 건너 면사무소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면사무소 주위에는 미군 부대가 여러 곳에 주둔해 있었다. 남쪽으로는 지난번 총성이 울리던 부대와 그 부대에서 동쪽과 남쪽으로 또 다른 부대가 있고 북쪽으로는 아버지가 다니는 부대와 그 전방에 규모가 비슷한 다른 부대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일선에 있는 부대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면사무소 근처에 이르자 주위에 미군 PX에서 나온 물건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사람의 왕래도 빈번해 거리가 제법 번화했다. 짙게 화장한 젊은 여자들이 외출 나온 미군과 팔짱을 끼며 가게를 기웃거리거나 가게 안에서 난롯가에 마주 앉아 킬킬대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도 건물이 타버린 중학교 터에 미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철조망 가까이에서 아이들이
“기브 미 어 초콜릿.”
하고 외치거나 외출 나온 병사들에게 달라붙어
“기브 미 어 껌.”
하며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고 몸을 파는 젊은 여성들이
“캄온, 엔조이 위드 미.”
하고 눈웃음치며 병사들을 유혹하는 일도 있어 토박이 어른들이 간혹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으나 이곳에서는 그런 일이 너무 흔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었고 부모 없는 아이들이 미군 병사들의 눈에 들어 영내 막사에 드나들거나 기거하면서 ‘슈샨 보이’나 ‘하우스 보이’로 일하면서 돈을 벌기도 해 면사무소 주변이 모두 미군 부대에 의존해서 먹고사는 형편이었다. 처음 운암마을로 이사 와서 이주 신고할 때만 해도 면사무소 주변은 지금보다는 덜 붐볐는데 이제는 PX에서 나오는 물품을 구하기 위해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도 하고 아예 눌러앉아 거래하는 사람들도 늘어나 이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면서 낯선 도회지처럼 변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운암마을은 아직도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지닌 채 인심도 넉넉한 편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부대에는 전에도 다녀간 적이 있기에 나는 곧바로 정문 옆에 있는 위병소로 가서 아버지 이름이 영어로 적힌 종이를 미군 병사에게 내밀었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에 종이를 받아 든 병사가 이내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면서 나에게 앉아서 기다리라는 눈짓으로 의자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잠시 기다리자, 아버지가 나와서 점심때가 되었으니, 무얼 좀 먹고 가라고 하면서 부대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아버지가 일하는 사무실로 들어서자, 군인 하나가 나를 보며 아버지와 뭐라고 말을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내가 머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자 아버지가 다시 그 군인에게 뭐라고 했는데 그 군인 아저씨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에 그 아저씨가 보루 박스(레이션 박스) 한 통과 식빵, 오렌지, 초콜릿, 캐러멜, 비스킷, 껌에 아이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던 잠자리 연필(Tombow Pencil) 두 다스와 귀한 도화지 묶음(Sketch Book)에 영어로 된 미키마우스 만화책까지 한 보따리를 들고 들어와 나에게 주었다. 아마도 PX에서 타 온 것이겠지만 뜻밖의 선물에 어리둥절한 나에게
“너 공부 잘한다고 했더니 싸진(Sergeant-중사) 아저씨가 주시는 거야. 고맙다고 인사하거라.”
하고 일렀다. 그제야 혼자서는 다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많은 선물을 받게 된 나는 너무나 고맙고 황송해서
“땡큐, 베리 마치. 싸진!”
하고 큰 소리로 힘차게 말하면서 꾸벅꾸벅 두 번씩이나 머리를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내가 너무나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군인 아저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주머니에서 10달러짜리 지폐를 꺼내서 주면서 엄지를 척 세우고 아버지에게 또 뭐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놀란 눈으로 대답하면서 ‘땡큐’, ‘땡큐’를 연발했다. 10달러는 쌀 한 가마를 사고도 남는 큰돈이었다. 나보다도 아버지가 놀라는 게 당연했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공부 잘하는 아들 덕에 굶어 죽지는 않겠다고 하면서 그 군인 아저씨가 10달러나 준 것은 그에게도 내 또래의 딸이 있는데 공부를 잘해서 늘 자랑하기도 했고 평소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던 그 아저씨가 내가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모처럼 호의를 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가 그 군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냥 공부를 잘한다고만 한 게 아니라는 걸 눈치로 이미 알고 있었다. 군인 아저씨가 10달러라는 큰돈을 주면서 엄지를 척 세운 것은 통역이 없어도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지 열흘째 되는 날 학년말 평가 시험을 치르고 나니 설날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3일 뒤인 토요일이 설날이다. 그리고 다음 주 금요일에는 봄방학이 시작되고 3월 2일부터는 4학년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벽에 붙어있는 한 장짜리 일 년 열두 달이 인쇄된 달력의 날짜를 짚어가면서 학교에 가는 날과 쉬는 날의 수를 세어보며 이번 설날에 혜경이와 지낼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설날과 정월 대보름날이 후딱 지나갔다. 이곳에서 지낸 설 명절은 재작년 공주에서 지낸 풍습과는 조금 달랐다. 새벽에 제사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거나 동네 어른들을 찾아뵙고 세배하는 일은 같았으나 공주에서는 보름 전날 아이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김치 동냥하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서는 그런 것을 보지 못했다. 동구 밖에서 하늘과 땅 신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를 올릴 때 소원을 적어 태우는 소지(燒紙) 풍습도 이곳에서는 볼 수 없었는데 어쩌면 전쟁에 휘말려 일을 담당하던 어른들이 돌아가셨거나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대보름날 부럼을 먹거나 더위를 파는 풍습, 밖에서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제기차기나 연날리기하는 일이나 집안에서 식구들끼리, 또는 동네 어른들이 편을 갈라 마당에서 윷놀이하는 풍습은 똑같았다. 서울에서는 이처럼 이웃과 서로 어울리는 일이 거의 없어 명절에도 식구들끼리만 지내, 서울깍쟁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시골에서는 작은 일에도 서로 돕고 어울리며 음식을 나누거나 베푸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제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이 되었어도 3학년 때의 낯익은 얼굴들이 대부분 그대로였다. 시골의 작은 학교였기에 학급을 둘로 나눌 필요가 없어 전학이나 사고가 없다면 자연히 작년에 보던 얼굴을 다시 보게 마련이었다. 그래도 3학년 때보다는 학생 수가 여덟 명이나 늘어 70명에서 한 명 모자라는 69명이 되었다. 혜경이는 여전히 예뻤다. 아니 작년보다 더 성숙해지고 더 기품이 있고 더 화사했다.
비록 반장 자리를 용남에게 내어주기는 했어도 부반장으로서 여전히 위엄이 있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인기도 여전했다. 은경이와는 아직도 여러 면에서 경쟁 관계였지만 학급행사가 있을 땐 잘 협력하면서 서로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혜림이도 더 예뻐졌다. 나도 모르고 있었던 일이지만 지난해 늦가을에 도내 무슨 미술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일이 개학 후에 뒤늦게 알려져 학교 이름을 빛냈다고 꽤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이제는 언니를 따라 우리 집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심심하면 수시로 놀러 오곤 했다. 어떤 때는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낮잠이 들 정도로 반쯤은 아예 제집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이 가끔 들려오기는 했어도 3년 가까이 계속되는 전쟁은 더욱 치열해져 죽고 다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가운데 나라에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든지 이번 기회에 기필코 북진통일을 이루자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미국에서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는 이런 전쟁을 더 이상 계속하기를 원치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도와준 유엔에서도 대한민국이 불리하지 않은 지금의 상태에서 전쟁을 끝내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했다.
봄이 지나고 신록이 무성한 성하(盛夏)의 6월이 되자 망종(芒種)을 앞두고 학교 가는 길에 마을 어른들이 물을 댄 논에 모판을 가져와 모내기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고 더러는 일찍 모내기를 끝내서 물이 찰랑거리는 논에 어린 벼의 파릇한 잎새가 가지런히 바람에 간들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식이와 용남이가 내 팔을 잡고 점심시간 때 5학년 형들과 하던 축구의 결판을 내자고 했다.
나는 다른 애들에 비해 체력이 약했다. 키는 반에서 중간 정도였고 달리기는 남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편이지만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는 체력도 달리거니와 종종 호흡장애를 일으켜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100m 단거리는 늘 3등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고 열 번에 4번은 일등을 하는 편이라 친구들이 축구 같은 운동을 할 땐 꼭 나를 끼워넣기도 했다. 오늘도 점심시간에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려 5학년 형들과 축구 시합을 했는데 전반전에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내가 체력이 달려 헉헉대자, 후반전에선 골문을 지키게 했다. 그런데 제대로 막아내지를 못하고 1:1로 끝난 것이다. 나는 다시 뛸 자신이 없어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친구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실수로 우리 편이 지기라도 한다면 이것은 참아내기 어려운 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골키퍼가 아니라면 뛸 수도 있으나 이미 자신감이 꺾인 상태라 이번만큼은 극구 사양한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혜림이가 와 있었다. 혜림이는 지난 5월에도 서울에 있는 어느 신문사에서 연 어린이 미술대회에서 은상을 받아 미술에 재능이 있음을 또 한 번 드러냈다. 심사위원들이 최고 상인 금상을 놓고 격론을 벌인 끝에 아쉽지만, 은상을 주게 되었다고 쓴 기사가 나기도 해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금상이나 마찬가지라고 자랑스럽게 여기며 혜림이를 칭찬했다.
“혜림이 왔구나. 언제 왔니?”
“학교 끝나고 집에서 밥 먹고 바로 왔어.”
혜림이가 대답하면서 책가방을 뒤적이더니
“이거.”
하면서 그림 한 장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원두막에서 엎드려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에 젬병인, 내가 보기에는 색이 연하게 칠해져 있어 물감이 넉넉지 않아 대충 칠한 것처럼 보였다.
“오빠 공부하는 거 생각하면서 그렸어.”
“응? 이게 나라고?”
“응.”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원두막에서 엎드려 두 다리를 뻗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린 채 오른손에 연필을 쥐고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얼굴 윤곽이 나를 닮았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귀에 달고 다니는 나도 대책 없이, 못하고 있는 과목이 체육과 미술이었다. 체육은 그래도 어느 정도 버텨내는 편이었으나 미술은 시험문제로 나오면 모를까 실기는 아예 구제 불능이었다. 내 반응이 기대 이하여서인지 혜림이가
“수채화는 이렇게 그리는 거야.”
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과수원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그림 전체가 포근하게 정감이 느껴졌다. 그림이야 어찌 되었든지 나를 생각해 주는 혜림이의 마음씨가 고마워 나는 장롱에서 잠자리 연필 두 자루를 꺼내어 혜림이에게 주었다. 미군 아저씨로부터 받은 잠자리 연필은 이제 필통에 있는 걸 빼면 두 자루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 한 다스를 풀어 네 자루를 필통에 넣고 여섯 자루는 혜경이에게 주었는데 이 일로 어머니로부터 귀한 물건을 헤프게 쓴다고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그 후 나머지는 어머니가 따로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영식이 생일날 나는 어머니께 통사정해서 영식이 몫으로 두 자루를 얻어낸 후 이런저런 핑계로 다른 친구들에게도 여덟 자루를 나눠주고 네 자루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 허락도 없이 두 자루를 꺼내 혜림이에게 준 것이다. 이 일로 또 야단맞아도 기꺼이 감수하리란 생각이 드는 것은 혜경이도 그렇지만 혜림이에게만큼은 어떤 귀한 걸 주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았기 때문이다.
10. 이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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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