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러한 말과 같은 일이 우리 광산이씨 가문에도 있었어요. 식자로 인해 큰 재앙이 뒤 따랐어요 학문 대가요 부가 넘치고 효가 가득찬 필문(이선재) 할아버지 전후로 명석하고 총명한 조상 후손 들이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여립 반란사건으로 송강 정철을 중심으로 한 서인세력들이 동인의 영수인 동암 선조를 역모로 몰아 참옥한 옥사를 벌였지요. 그것이 기축옥사라 해요.그렇게 우리 공산이씨는 3족을 멸하는 역적으로 몰려 숨어 살던 시대가 오래 흘러가면서 자식들 교육을 멀리 했었지요. 물론 가난해서 못 가르친 집안도 많지만 주로 너나 나나 하는 말이 식자우환이야 아는 놈이 먼저죽어. 나 어려서 거르목 삼거리에는 용산대부(준근이 아저씨 아버님) 시대에 어르신들이 모이는 쉼터에서 들은 말인데 많이 배우고 많이 알면 집안이 망한다고 식자우환 말씀들을 많이 했던 생각이 나요 우리 동네에 생활이 어려운 가정도 많지만 중.고.대학도 보낼만한 그 때에는 광주 유학시절이지요. 의식주 해결을 충분이 하고도 머슴 하나ㅡ 둘까지도 두고 생활을 했는데 자녀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생각 해보면 여러분들도 아실만 합니다만 기축옥사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세대(병구) 윗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선배 어르신들은 아이큐는 좋은데 지식이 없어 천인 생활들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지요. 지금에 우리 총생들은 선조님들에 피를 물러 받아 책과 싸우면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아내어 수재들이 많이 많이 나오지요. 농담 하나 할께요. 나 현직때 6박자 사교춤을 배우는데 물론 모르게 배웠지요. 세상에 1년을 배워도 통달을 못했어요. 그런데 당시 인천에 살고계신 춘자 식자 아제는 악기나 춤에 신통하여 많은 후생들을 양성했어요. 말하기 쉽게 농담삼아 춤으로 비교한것입니다 이해들 하세요. 두뇌 좋은 이대립 후손들이시어 죽을 때까지 쓰고 읽고 책을 보면 좋아요. 불면증도 없고 산천초목 천지우주 내 생명체들과도 소통할 수가 있어요. 식자우환 이해가 가십니까? 나는 우리 큰 아버지 한자 먹 글씨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인쇄 한 것처럼 쓰셔가지고 안방 작은방 벽지로 새까맣게 써놓으셨지요. 가문 자랑 하는것이 아니고 여러분들도 실행해 보시면 좋은 느낌을 얻을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첫댓글당숙 님 글 속에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방 벽에 벽지 대신 고서를 풀어서 도배를 했지요. 그때는 그것이 유행이었던 같습니다. 아니 유행이라기 보다는 벽지 살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겠지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5 년 전에도 그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화순군에서 각 마을에 있는 고서를 전산화 한다고 수소문할 때 우리 마을에서는 한 권도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에야 제각에 서고가 있고 그곳에 고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현 청암 도유사(승진)님께서 애써 관리해 오셨다는 데 그때는 없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명심보감에 보면 사마온공이 다음과 같이 말했나 봅니다. “재물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요, 책을 쌓아 자손에게 물려주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 모르게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느니만 못하다.”
첫댓글 당숙 님 글 속에서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방 벽에 벽지 대신 고서를 풀어서 도배를 했지요. 그때는 그것이 유행이었던 같습니다. 아니 유행이라기 보다는 벽지 살 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겠지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5 년 전에도 그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화순군에서 각 마을에 있는 고서를 전산화 한다고 수소문할 때 우리 마을에서는 한 권도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에야 제각에 서고가 있고 그곳에 고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현 청암 도유사(승진)님께서 애써 관리해 오셨다는 데 그때는 없다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쉽습니다.
그래서 명심보감에 보면 사마온공이 다음과 같이 말했나 봅니다.
“재물을 모아 자손에게 물려주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니요, 책을 쌓아 자손에게 물려주더라도 반드시 자손이 다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 모르게 음덕을 쌓아 자손을 위한 계책으로 삼느니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