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저희 복지관의 직원을 통해 상담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한 남성 어르신을 의뢰받았고, 이야기를 나눕고자 먼저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전에 어르신께서 복지관과 주민센터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번동2단지종합사회복지관입니다. 어르신 얘기좀 나누고 싶어서 시간 괜찮으실까요?"
"집으로 와도 상관은 없는데, 오면 뭐가 좀 달라지긴 해요?"
"달라지기 보다는 정말 이야기만 나누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어요. 혹시 오늘도 시간이 괜찮으실까요?"
"에휴... 네 오세요."
다행히 어르신께서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집은 굉장히 깔끔해보였고, 바닥에 먼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청소를 자주 하시는 듯 보였습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 어르신에게서 다소 이상한 점을 눈치 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시는 듯 했습니다.
"어르신~ 집이 너무 깔끔해서 놀랐어요. 청소에 정말 진심이신가봐요!"
"제가 눈이 안보여서 바닥만 짚고 다니는데, 먼지가 만져지는 게 싫어서 테이프로 하루 종일 바닥 청소만 해요.
근데 동사무소에서 왔다가고, 어디 무슨 센터에서도 왔다가고 하는데, 왜 온거에요? 제가 힘들게 살고 있다는게 소문이 났나요?"
이미 오늘 오전에 주민센터와 어떤 센터에서도 어르신 댁으로 방문을 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물어봤습니다.
"어르신 저는 반찬 배달 잘 받고 계신가 확인할 겸, 안부도 여쭤볼 겸 나왔어요. 혹시 동사무소에서 오신 분하고는 어떤 얘기 나누셨어요?"
"또 얘기해야 돼요? 에휴... 그냥 가세요. 뭐 변하는게 있어야지 맨날 얘기만 듣고 가면 나만 입 아파요."
"정말 죄송해요 어르신. 그러면 어떻게 지내시는지만 확인하고 갈게요."
내용을 들어보니 여러 기관에서 방문을 했지만, 어르신은 했던 얘기만 계속 반복할 뿐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본인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데 자꾸 '도와주겠다' 라는 말을 해서 본인이 불쌍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선은 일상적인 이야기들부터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계속되는 방문에 이미 마음을 돌린듯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가세요.'라는 말만 계속 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돌아가야 하나?' 라는 마음과, '그래도 이야기를 이끌어볼까?' 하는 마음이 공존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리에 있는 라디오를 발견하고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라디오를 많이 들으시나봐요?"
"눈이 안보이니깐."
"라디오가 옛날 것 같은데, 사용에 지장은 없으세요?"
"... 아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요. 핸드폰으로 6시 내고향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드디어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6시 내고향이 키워드였습니다. 저는 열성적으로 '스마트폰으로 6시 내고향 보는 방법'에 대해 아버님에게 설명해드렸습니다. 희미한 시야로 아버님께서는 유튜브를 통해 6시 내고향을 보는 방법에 대해 배우셨습니다. 처음 하시는 것이다 보니 시간이 다소 걸렸습니다. 약 30분 정도 설명을 해드리고 아버님에게 직접 틀어보시기를 요청드렸습니다.
"이야. 이제 좀 할게 생겼네요. 이런 걸 누구한테 알려달라고 하겠어요 제가."
"잘 하셨어요 어르신! 그러면 한 번 더 틀어볼까요? 계속 해봐야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30~40분 이상을 6시 내고향 틀기를 주제로 어르신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르신이 저에게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해주셔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후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혼을 하게 되셨고, 이후 자녀들과는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는 없었지만 자녀들이 어르신의 연락처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합니다. 가장 서러웠을 때는 병원에 갔을 때 '보호자를 데리고 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어르신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르신은 이사 온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이웃들과 친해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성이시다 보니 이웃의 여성 어르신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조심스럽고, 또 '내가 말을 걸면 싫어하겠지?'라는 생각에 다가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라는 생각을 많이 받아 외로울 때가 가끔 있다고 합니다.
어르신에게 정말 필요한 부분은 돈도, 요양보호사도 아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마디도 나눌 사람이 없는 어르신에게 '제가 가끔 연락드려서 얘기좀 나눠도 괜찮을까요?'라고 요청드렸고, 어르신은 흔쾌히 허락해주셨습니다. 상담 시간이 다소 길어져 어르신의 배웅을 받으며 집 밖으로 나섰습니다. 집 밖에서는 이웃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 번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복지관에서 나왔는데요. 혹시 000호 어르신과 잘 알고 계실까요?"
"말을 잘 안하셔서 오가면서 인사 정도만 해요."
"그러셨구나. 어르신이 아무래도 남자 분이시다 보니깐 이웃 분들한테 말 거는 게 좀 조심스러우신 가봐요."
"아유 무슨 다 같은 노인네들인데... 제가 가끔 반찬 나눠드리고 그러거든요. 말 나온 김에 오늘 한 번 가서 얘기좀 해야겠네."
"좋아요. 먼저 다가가서 인사 좀 나눠 주세요~"
"그래요. 가족보다 이웃이 가까우니깐."
어르신의 주변에는 좋은 이웃들이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느끼지는 못했지만, 어르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서로 편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가족보다 나은 이웃 사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