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 - 시의 발상이 아주 좋습니다 대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 이발소 / 가지치기
바리깡이 울면
따라 울먹이던 시절 있었지요
우리 아버지 코털 잔디 깎아주고
귀밑머리 돋아난 잡풀 매주고
반백 머리카락 가지 치는데
낭떠러지 아래턱 오르내리던 칼날,
위험수당은 그냥 서비스였지요
오늘 아침 거리에서
대형 바리깡이 돌아가고
가로수가 웅웅 우는 소리 들었지요
우리 동네 이발소는
전기톱에 밀려
일찍 문을 닫았습니다
전기 톱날이
지난겨울 포개 입은
함박눈 패딩을 부러뜨리고
솜털 구름 잠바를 비틀어 꺾고
솟아오른 코트 깃을 잘라냅니다
가로수가 삭발을 합니다
유진상가에서 무악재역까지
빡빡머리 가로수 스님들이
줄지어 서서 염불을 외우고 있습니다
마을버스가 마을을 끌고 달린다
언덕을 오르고 이따금 뒷걸음도 치면서
웅덩이 앞에서는 절로 발을 멈추며
구르는 마을
이 마을에 들어가면
나를 붙들어 줄 주소도 문패도 없던
단칸방 시절이 아득히 돌아오고
아무리 달려도 벼랑 앞이던 꿈을 꾸며
나 혼자 기둥을 세우고 지붕도 올려보면서
어디론가를 달리던 마을
오늘 아침 화장터 언덕 정류장에서
민들레를 간질이던 햇살이
마을버스에 비집고 들어와서
아줌마 몇을 꾸벅꾸벅 흔들리게 하고
봇물로 차오른 여고생들을 출렁이게 하다가
부스스 졸음을 깨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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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
지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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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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