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길을 잃고 헤매어도 소리없이 야생화는 핀다
기억과 추억 사이/발길 닿는 데로 여행
2009-11-29 16:03:23
밖을 나갔더니 불볕더위가 맹렬하게 휘몰아친다. 여름을 그토록 많이 넘겼지만 이렇게 기세 좋게 타오르는 불볕더위는 처음이다. 아침부터 아지랑이에 어른대는 산천초목들이 금세라도 불이 붙을 것만 같다, 갈수록 더 무더워지는 기상이변 앞에 괜히 두려워지는 것은 웬일일까. 이렇게 무더운 날에도 야생화답사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는지 몇 명의 회원들이 모였다. 한번 기행을 떠났다 하면 차 두세대에 나눠 타고 가는 일이 많았지만 차 한대에 몸을 싣고 가는 오늘의 편안함을 무엇에 비기랴, 그 분위기가 가족처럼 단출하여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기분이 상쾌하다. 그러나 날이 무더워 행선지를 멀리 잡지는 않았다. 도로를 녹일 듯한 불볕더위에 멀리 가는 것도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이라 일단 금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금산군 천비산 미륵사의 전경
왕고들빼기 잎을 따고 있는 백당님
왕원추리
대전 안영교 다리에서 금산 간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천비산 미륵사” 라고 쓰인 이정표 앞에서 왼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도로를 따라 어깨동무하며 흘러내리는 금강 물줄기를 차는 바퀴에 샤워를 하듯 덜컹대며 가로질렀다. 바퀴에 차르르르 부서지는 물소리에 휘감겨 무더위로 차오르던 몸속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지락리를 뒤로하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길을 따라 계속 올랐더니 날렵하게 날아오를 듯한 지붕선이 시선을 압도한다. 저 절이 바로 금산군 복수면 천비산에 있는 미륵사다. 높이 쌓아올린 돌 언덕에 가려 지붕선만 살짝 보이는 미륵사는 선홍빛으로 물든 배롱나무꽃과 대비되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륵사를 바라보며 그 아래 평지에 차를 세웠다.
미륵사 주변에 지천인 야생화들, 보는 사람이 주인이다
아침나절인데도 무성한 녹음으로 뒤덮인 산이 내뿜는 풀 향기가 후끈 콧속을 찌른다. 주변엔 야생화들도 지천이다. 무성한 넝쿨을 허공에 감아올리며 자줏빛 꽃술을 매단 칡꽃이며 하늘을 향해 앙증맞게 가슴을 열어젖힌 원추리꽃,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들이 지천에 흩어져 매력을 풍기고 있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야생화들이 갓 시집온 새댁의 얼굴처럼 예쁘기 그지없다. 정신없이 꽃들을 찍느라 풀밭 속을 헤집고 다녔더니 금세 등산화가 이슬에 젖어 축축하다.
범부채
층층이꽃
꽃범의꼬리
백당님과 백선님은 벌써 울창한 잡목들이 들어찬 길을 따라 산자락을 오른다. 오전 11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산속으로 몸을 숨기는 그들의 모습이 비장하기까지 하다. 날은 무더운데 제대로 된 약초 한 뿌리라도 아무 탈 없이 캘 수 있을까.
그들이 산자락을 오른 후 난 솔나무님과 함께 미륵사 길을 따라 오르며 야생화를 찾았다. 등짝을 찔러대듯 쏟아지는 불볕 햇살에 미륵사길 주변의 잡목들이 더위에 지쳐 잔뜩 늘어져있다. 풀숲에서 가녀린 꽃대를 빼고 올망졸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야생화들이 제 키대로, 모양대로 서서 길손을 맞느라 여념이 없다. 왠지 이곳의 야생화는 인공의 냄새가 난다. 누군가 꽃씨를 뿌리거나 꽃모종을 한 것만 같다. 아니나 다를까, 미륵사 앞에 걸린 플랑카드에는 야생화를 뽑아가지 말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씌어있다. 아마 미륵사의 스님들이 소일삼아 야생화를 가꾸는 듯하다.
절 마당은 조용하고 산의 소리는 저리 시끄러운데
아스팔트길을 따라 끝까지 올랐더니 미륵사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차에서 내릴 때 높은 돌 언덕에 가려 날렵한 지붕선만 보이던 미륵사는 마당에서 보니 그다지 크지 않는 법당 형태를 하고 있다. 넓은 황토 마당을 품에 않고 졸고 있는 법당은 최근에 지은 것처럼 현대식이다.
미륵사 아래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칠꽃, 억센 칡넝쿨도 꽃만은 예쁘게 피운다
돌콩
알고보니 미륵사는 1948년 한차례의 화재로 소실된 아픔을 않고 있다. 신라 문성왕 14년 성주산파의 개조인 무염이 창건하였는데 그가 자신의 선법을 펴기위해 충남 보령에 성주사를 창건하고 그 말사로 지은 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웅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등은 화재로 불타없어지고 허전하게 법당만 자리잡고 있다. 말쑥한 저 모습에서 고답적인 절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웬일일까. 지붕에 이끼 숲 덕지덕지 뒤덮은 고찰이거나 솔숲이나 대숲소리에 섞여 흘러나오는 목탁소리 은은한 절이 진짜 절처럼 여겨지는 현실적인 면도 없지 않으리라. 절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어도 마당에는 스님의 그림자조차 얼씬 되지 않는다. 활짝 열린 법당 문을 통해 마당을 내다보는 부처님만이 가마솥처럼 들끓는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솔나무님이 미륵사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
닭의장풀
등골나물
절에서 내려와 우람한 미루나무가 내린 그늘에 털썩 주저앉는다. 미루나무 잎들이 성긴 올처럼 촘촘하여 강렬한 불볕 햇살조차 뚫지 못해 절에서 내려오는 바람 한줄기 너무나 시원하다. 그늘에 앉아 쉬고 있으니 비로소 산의 소리들이 내 마음속에서 시끄럽게 살아난다. 목이 아프도록 울부짖는 매미 떼와 구성지게 흐느끼는 산비둘기 울음소리들, 미루나무 잎들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교향악이 되어 무더위에 지쳐 늘어진 산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길가에 흩어진 야생화들도 그 소리에 뒤섞여 더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사진촬영에 정신이 없는 솔나무님
지락리 물가 동구나무집에서 오리백숙으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오리백숙
그러나 꽃들의 이름을 모르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졸고 있는 꽃 이름을 불러 깨우려고 해도 이름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명색이 야생화 회원이란 사람이 비슷한 꽃만 만나도 이름을 헷갈리는 것이 다반사이니 우리 야생화에 대해 갖는 애정이 얼마나 부족한지 반성할 일이다. 닭의장풀이 달개비꽃이고 나팔꽃과 메꽃,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써먹지 못할 지식을 머릿속에 잔뜩 숨겨놓는 것보다 길만 가면 눈에 띄는 이런 풀 한 포기부터 이름을 배워나가는 것이 참된 교육이 아닐까 싶었다.
산길을 잃어 본 사람만이 술맛의 상쾌함을 안다
솔나무님과 이런 저런 대화에 파묻혀 있을 무렵, 백당님이 산에서 내려왔다. 11시, 약속된 시간 때문이리라. 그런데 심상치 않는 일에 생겼다. 시간이 흘러가도 백선님의 종적이 묘연한 것이다. 산길을 잃었을까, 아니면 산야초가 엄청나게 많아 정신없이 캐느라 약속시간을 잊어버린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는 데 그의 종적을 찾기 위해 꺼내들었던 휴대폰조차 불통이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좀깨잎나무
일행이 타고 온 차
백선님이 딴 영지버섯
이리저리 휴대폰 방향을 바꿨더니 가까스로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길을 잃었단다. 나무를 기막히게 타는 원숭이도 실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산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산길을 잃고 헤맬지는 미처 몰랐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싸온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하염없이 그를 기다리는데, 땀으로 뒤범벅된 백선님이 들고양이처럼 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 때가 아마 세시쯤은 된 것 같다. 산속을 벗어나 지락리 물가 둥구나무 집에서 오리백숙과 막걸리 몇 잔으로 타들어가던 속을 씻어내고 나서야 모두들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일행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물은 소리 없이 흘러가고 그 물줄기를 바라보며 기울이는 술잔 속으로 미역을 감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시끌벅적 떠돌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