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구마루무지개 낭송회 / 윤동주 탄생 100주년 추모시 낭송회
구마루무지개 낭송회는 2017년 4월 8일 오후 3시에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 내 소공연실에서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추모, 윤동주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진행 : 민문자 시인
1. 이복연 시인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별헤는 밤
2. 최진자 낭송가/ 자화상 / 흰 그림자
3. 김동섭 시인 / 또 다른 고향 / 눈오는 지도
4. 최미숙 낭송가 / 병원 / 길
5. 정원순 낭송가 / 쉽게 쓰여진 시
6. 최대승 시인 / 참회록 /사랑스런 추억
그 여자 / 윤동주
함께 핀 꽃에 처음 익은 능금은
먼저 떨어졌습니다.
오늘도 가을바람은 그냥 붑니다.
길가에 떨어진 붉은 능금은
지나가는 손님이 집어 갔습니다. (1937.7.26)
그 남자 / 민문자
멋들어진 사각모에 꽉 다문 입술에선
금방이라도 시가 술술 흘러나올 듯
십여 년 전 연변 용정 대성중학교 역사관에서
그의 혼불이 녹아 있는 시집과 처음 만났네
시가 너무 쉽게 쓰인다고 걱정하던 사람
아련한 슬픔의 시로 내게 다가왔네
그 남자의 시정(詩情)에 이끌려 지금
엄동설한 바다 건너 일본 땅을 밟았네
만인에게 시심을 심어준 그 남자
오늘은 아까운 청춘을 잃어버린 날
그의 발자취 따라 릿쿄대와 하숙집 터도 가 보고
그가 처음 묵었던 호텔에선 서시를 함께 읊어보네
내일은 교토 도시샤대학과 숙소와 자주 거닐던 거리
우지시 우지강 아마가세 구름다리도 손잡고 건너보리
시공을 초월하여 한마음으로 걷고 또 걸어가리
시의 별이 된 슬픈 그 남자 발자취를 따라서
(2017년 2월 16일 도쿄 한국YMCA 호텔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2. 이복연 시인 낭송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별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별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아이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 석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1941.11. 5)
3. 최진자 낭송가/ 자화상 / 흰 그림자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산모통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1939.9.)
흰 그림자 /윤동주 시인
황혼(黃昏)이 짙어지는 길목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1942.4.14)
4. 김동섭 시인 낭송 / 또 다른 고향 / 눈오는 지도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1941.9)
눈 오는 지도(地圖) / 윤동주 시인
순이(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地圖)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장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歷史)처럼 훌훌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를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국을
눈이 자꾸 내려 덮어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국을 찾아 나서면
일 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1941.3.12)
5. 최미숙 낭송가 / 병원 / 길
병원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ㅡ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 12.)
길 /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을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을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과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1941.9.30)
6. 정원순 낭송가 / 쉽게 쓰여진 시
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1942.6.3)
7. 최대승 시인 낭송 / 참회록 /사랑스런 추억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1942.1.24)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東京)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1942.5.13)
낭송 출연자 약력
1. 민문자 • 《한국수필》수필(2003), 《서울문학》詩(2004) 등단
• 한국문인협회 낭송문화진흥위원,
• 한국현대시인협회 홍보위원
• 우리시회 감사
• 시사랑 노래사랑 부회장
• 부부시집 『반려자』 『꽃바람』
• 칼럼집 / 『인생에 리허설은 없다』 『아름다운 서정가곡 태극기』
• 서재 / 민문자.시인.com
2. 이복연 시인 낭송가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별헤는 밤
2010년 국보문학 등단
3. 최진자 낭송가/ 자화상 / 흰 그림자
실버넷뉴스·TV 중견기자 10년 근속상 수상 앵커, 한국국학진흥원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4. 김동섭 시인 낭송 / 또 다른 고향 / 눈오는 지도
2006년 현대시선 등단 시, 영등포 사진작가회 회원
5. 최미숙 낭송가 / 병원 / 길
문경 새재 여름시인학교 시조 100편 암송대회 대상
연세대 시 암송대회 우수상
박경리 시낭송대회 최우수상
6. 정원순 낭송가 / 쉽게 쓰여진 시
어린이집 원장
7. 최대승 시인 낭송 / 참회록 /사랑스런 추억
문예사조 시부문 최우수상 수상
한국문협 구로지부 감사
첫댓글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윤동주시인 100년 생애전시회에 '구마루무지개'회원들의 시낭송은 멋스러웠습니다.
언제 다시 이런 좋은 무대에 서보겠습니까?
민문자 선생님과 구마루무지개 회원들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 회원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기만의 개성을 나타낼 줄 아는 멋쟁이들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긴 시간을 깨고 일어나
정말 오랫만에 시낭송을 하였습니다.
조금은 어색하고 떨림도 있었지만
세종미술관에서의 행사는 보람이었습니다.
늘 문단을 위해 수고하시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어요 .
계속은 힘입니다.
즐거운 시간을 만들며 앞으로 끊이지 않고
함께 공부하는 삶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