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0
암실에서 실험을 하던 빌헬름 뢴트겐은 1895년 검은 종이로 둘러싼 음극선관에서 빛이 나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당시에는 이 새로운 광선이 어떤 것인지 몰라 X선이라고 했다.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은 1901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지금 X선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건강검진 때 X선 촬영은 필수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X선은 의료 분야뿐만 아니라 건물이 구조적으로 안전한지 확인하는 비파괴검사에도 쓰이고, 공항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테러에 대비한 수하물 검사에도, 예술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명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우리 눈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체 내부, 건물 내벽, 여행가방 속까지 투시할 수 있는 X선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과학 발견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많다. 뜻하지 않은 발견이란 뜻의 영어 단어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있다. 이 단어는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스리랑카의 옛 이름 세렌딥(Serendip)에서 유래됐다.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쓴 ‘세렌딥의 세 왕자’라는 우화에서 세렌딥 왕자들이 섬 왕국을 떠나 세상 풍파를 겪으며 뜻밖의 발견을 했다는 내용에서 만들어진 말이라 한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심해유인잠수정과 피부암이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심해유인잠수정 개발 과제를 하던 연구팀은 심해유인잠수정으로 심해저 광물자원 탐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보다 더 넓은 심해저 광구를 확보하고 있다. 이곳에서 광물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려면 수천m 바닷속에 있는 광물자원의 금속 품위를 현장에서 빠르게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한국기계연구원 변성현 박사는 레이저 유도 플라스마를 이용해 심해저 현장에서 광물을 분석할 장비를 개발 중이었다. 레이저 유도 플라스마 분광분석법은 대기압 또는 진공 상태에서 개발됐다. 이 기술은 화성탐사 로봇에 활용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수중, 특히 압력이 높은 심해에 적용하는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지금은 수심 수백m 범위에서 사용 가능한 정도다. 개발 목표는 심해유인잠수정이 잠항할 수 있는 수심 6500m에서도 사용 가능한 것이다.
레이저 유도 플라스마 분광분석법은 분석하고자 하는 물체에 레이저 빔을 쏘아서 만들어지는 플라스마를 이용해 시료에 포함된 원소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시료에 상관없이 거의 모든 원소의 정성, 정량 분석이 가능하며, 전처리가 필요 없고 분석 시간이 짧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장치를 탑재한 심해유인잠수정은 심해저 광구로 내려가 광물자원에 어떠한 금속이 들어있는지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하던 연구팀은 시제품을 만들어 병원 의료진과 함께 임상자료를 수집한 결과 의료 목적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피부암 조기 진단기술을 개발한 연구팀은 벤처기업을 설립해 지난 6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벤처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기술은 레이저 유도 플라스마 분광기술을 활용해 피부조직을 훼손하지 않고 피부암을 조기 진단하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눈으로 보아 피부암이 의심되면 조직을 잘라 조직검사를 통해 판단했으나, 피부미용 레이저를 사용해서도 간편하게 피부암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술은 아토피나 건선처럼 잘 알려진 피부 질환부터 다른 암 진단까지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X선의 활용 범위가 넓어진 것처럼.
요즘 융합과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서로 연관 없어 보이는 심해유인잠수정과 피부암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 공학, 의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만나 의견 교환을 하면 뜻밖의 발견과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김웅서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 한국해양학회장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