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역, 역사 플렛폼은 아직 어둑했지만 사람들이 붐볐다 대부분이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장똘뱅이 아낙들 이었다. 커다란 고무다라이를 이고내리는 풍경의 거친 질감을 낮설어 하며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도 잠시 든 생각,
기차는 떠난다.
부산진역에서 시작된 철길은 부전역을 거치고 구포역에 이르러 낙동강변 철길에 들어선다. 원동, 물금, 삼랑진 으로 이어지는 철길의 새벽 물안개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고 그 몽환 속에서도 다문 다문 군락을 이룬, 선명한 진홍 코스모스의 떨림은 섬뜩히 예뻣다.
아름다움도 도를 넘으면 공포에 가까운 기운을 느낀다 치명적인 미감...
삼랑진 역전앞에 새집을 짓는 방앗간집 터가 수주간 지속될 나의 일터였다.
군 입대를 앞둔, 눈이 여리던날...방황하는 나를 다잡아 보겠다 나서신 숙모님은 믿음을 가져보라며 감림산 기도원에 일주일간 감금씩이나 해주셨지만, 믿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새벽녘에 방언터져 울부짓는 영혼들이 낮설고 두려웠을뿐... 그러하신 숙모님 소개로 잠깐 알게된, 이마에 주름깊은 집사님은 '대목'이셨다 그분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잡심부름을 하던 나를 부른건 방아간 주인집 큰아들 이었다.
삼랑진 읍내에서는 손꼽히는 부자 소리 듣는 집안의 장남이고, 소유하고 있던 읍내 주거지를 몽땅 헐고 신식주택을 지어 터줏대감의 위용을 떨칠 요량 이었지싶었다
삼십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짐승스런 야성의 느낌을 주는 거친남자 상이다 목이 긴 고무장화를 신고있었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있었다.
나를 태워 어디론가 갈참이었다.
방아간집 본가인가 보다.
너른 마당에 빨간 고추가 한가득 펼쳐져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다.
좁은 틈길로 뒷마당에 들어서니 알곡을 저장하는 커다란 사일로 옆 창고 앞에서 미장쟁이 팽씨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래와 시멘트를 섞어 물을 부어 게고 있는데 또래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언제 다가왔는지 커다란 감홍시 두개를 불쑥 건네고 잰 걸음으로 사라졌다. 얼떨결에 손에묻은 모래를 옷에비벼 떨어내고 받았지만, 이걸 어떻게 먹지? 하는 고민을 살짝 했던거 같다.
저 아이는 언제 날 봤을까 난 본적이 없는데...
지켜보던 미장아저씨가 웃으시며, "그거 귀한 동이감 홍씬데 너 주는거보니 니가 좋은갑다" 하셨다.
그땐 그저 그랬다 좀 못생겼다 싶은 여자아이...
"봐라 총각, 인자 안봐준데이 내허리 볼끈 잡그라"
하며 웃던 짐승은 정말 거칠게 오토바이를 몰았다.
해질녁 논길, 밭길 너머로 가가 호호 굴뚝에서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나무타는 냄새가 은근히 매웠다
기분 좋은 냄새...
때때로 열차를 타고싶어 하지만 맘뿐이다
지금 그런다해서 그때의 때묻지 않은 서정이 재현될리 만무 하단걸 알아버린 닳아빠진 중늙이이라 그렇다
나무타는 냄새가 아련하다
노스텔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