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가슴 하얀 새가 허공 한 끝 끌고 가다 문득 멈춘 자리 매듭 스릇 풀린 고요 콕 콕 콕 잔가지마다 제 입김 불어넣는
그 눈빛 낯이 익어 한참 바라봤지만 난시가 깊어졌나, 이름도 잘 모르겠다 시간의 녹슨 파편이 낮달로 걸린 오후
은밀하게 징거맸던 앞섶 이냥 풀어놓고 곱하고 나누다가 소수점만 남은 봄 날 화르르! 깃 터는 목련, 빈손이 사뿐하다
심사평 : 이근배 시조시인
돋보이는 감성의 붓놀림 모국어의 가락을 가장 높은 음계로 끌어올리는 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신춘문예에서 읽는다. 올해는 더욱 많은 작품들이 각기 글감찾기와 말맛내기에서 기량을 돋보이고 있어 오직 한 편을 고르기에 어려움을 겪는 즐거움이 있었다. ‘에세닌의 시를 읽는 겨울밤’(이윤훈) ‘새로움에 대한 사색’ (송필국) ‘널결눈빛’(장은수) ‘빛의 걸음걸이’(고은희) ‘도비도 시편’(김대룡) ‘새, 혹은 목련’ (박해성)은 어느 작품을 올려도 당선의 눈금을 채우는 무게를 지니었다. ‘에세닌의 시를 읽는 겨울밤’은 서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음 러시아의 시인의 이름을 빌어 자작나무 숲이 있는 겨울 풍경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데 시어의 새 맛이 덜 나고 ‘새로움에 대한 사색’은 고려의 충신 길재의 사당 ‘채미정’을 소재로 생각의 깊이를 파고들었으나 한문투어가 거슬렸으며 ‘널결눈빛’은 해인사 장경판전의 장엄을 들고 나왔으나 글이 설었으며 ‘빛의 걸음걸이’는 말의 꾸밈이 매우 세련되었으나 이미지를 받치는 주제가 미흡했고 ‘도비도 시편’은 지금은 뭍이 된 내포의 한 섬을 배경으로 역사성을 갈무리해서 완성도를 보였으나 내용과 형식의 새로운 해석을 얻지 못했다. 당선작 ‘새 혹은 목련’(박해성)은 ‘왜 시조인가?’ 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는 작품이다. 역사적 사물이나 자연의 묘사가 아니더라도 현대시조로서의 기능을 오히려 깍듯이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활짝 열고 있다. 감서으이 붓놀림과 말의 꺾음과 이음새가 시조가 아니고는 감당 못할 모국어의 날렵한 비상이 맑은 음색을 끌고 온다. 더불어 시인의 힘찬 날개짓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