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 차량 부품을 받아야하는 일정 때문에 하당에르피오르드는 포기하고 노르웨이 3대 피오르드 중 게르랑에르와 송네피오르드만 다녀오기로 여행 계획을 조정했다.
올레순에서 육로와 페리를 번갈아 이용하면서 게르랑에르로 가는 산을 넘으니, 바로 외르네스빙엔 전망대가 나왔다. 흐리고 바람이 불어 귀찮은 마음에 망설였는데 전망대에 선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경을 만났다. 풍경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잃었다. 게르랑에르 마을과 피오르드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바람과 추위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참동안 피오르드를 내려다보고 갈지자 열두 구비를 돌아내려가 피오르드 끝마을 아름다운 게르랑에르에 도착했다. 까마득히 높은 마을 뒷산에서 구비구비 마을을 둘로 가르며 쏟아져내리는 폭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피오르드로 흘러들었다. 예전에 폭포의 힘으로 전기를 얻은 흔적이 있다. 게르랑에르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지리적 특징 때문에 유네스코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게르랑에르에서 피오르드 트래킹 계획이 있었지만 비가 와서 아쉬움을 달래며 마을을 둘러보고 마을을 지나 산을 넘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이란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게르랑에르 주변 산들은 워낙 높아서 구비구비 지그재그로 고개를 내리고 올라야한다. 구불구불 오르고 오르면서 보이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마다 머리에 빙하를 이고 있었고 빙하가 녹아내린 물이 곳곳에 옥빛 호수를 만들고 있었다. 게르랑에르 트래킹을 했으면 날이 저물 때 고개를 넘게되어 이 풍광을 잘 볼 수 없었을거란 생각에 전화위복을 떠울렸다.
해발 1500m 달스니바 전망대에 돌아들아 가까스로 올랐다. 전망대에 내리니 비가 뿌리고 바람이 몹시 불어 날아갈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맞은 편 산에는 엄청난 빙하가 손에 닿을듯 가까이 보였고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모여 빙하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빙하와 옥빛 빙하호가 정말 장관이었다. 전망대에서는 우리가 올랐던 지그재그 길이 다 내려다보였고 머얼리 게르랑에르 피오르드까지 보였다. 우리는 계속 "와!"", "우와!" 하는 감탄사만 연방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전망대를 지나면 브레헤이멘 국립공원과 레인헤이멘 국립공원 사이를 지나는데 이 길도 너무 멋지다. 현실감이 없다. 인간 세계 같지 않고 신의 세계를 엿보고 있는 것 같은 두근거림이 계속되었다. 요툰헤이멘 국립공원 갈회피겐 산을 지날 때는 빙하가 아주 가까이 곳곳에 보였고, 도로 근처에 있는 빙하는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 빈 물병에 빙하수를 받고 빙하를 조금 떼어왔다. 빙하수는 식수로 마셨고 빙하조각은 남편이 좋아하는 보드카를 마실 때 넣어서 먹었고, 다음날 추석에 간소한 차례를 지낼 때 술에 빙하를 넣어 올렸다.
날이 많이 저물어 도착한 호숫가에서 차박을 했는데 자기 전까지 신의 세계를 엿보고 온 듯한 떨림과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안개에 쌓여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고 있는 차박했던 스콜덴 호수를 떠나 송네 피오르드를 만나기 위해 플름으로 갔다. 플름은 여기저기서 폭포가 흘러내리는 높다란 산으로 둘러쌓인 예쁜 송네 피오르드 끝마을(시작마을)이다. 아침에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정기적으로 피오르드를 오가는 페리를 놓쳤지만 사설로 페리를 운영하는 업체들이 있었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구드방엔으로 이동해서 구드방엔에서 플름으로 한 시간 반 정도 피오르드를 운행하는 페리를 이용했다. 11년 전에 같은 코스로 좋은 사람들과 송네피오르드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 했지만 안개와 구름이 만들어내는 경관과 무지개도 신비우면서 장엄하고 멋졌다. 피오르드 양쪽 산 여기 저기서 흘러내리는 폭포들, 피오르드를 끝없이 가로막는 높은 산들, 벼랑들, 피오르드 주변 작고 예쁜 마을들...
지금 글을 쓰면서 게르랑에르와 송네 피오르드를 다시 떠울리니 그때의 가슴 떨림과 감동도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런 장면들을 만날 때마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 와, 이게 진짜야? 내가 이런 행복한 순간을 만날 수 있다니...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날마다 새로운 날들을 만나고 새로운 순간들을 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