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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위를 찾다
단극정렬
메커니즘
심장은 안에서 뛰고 손발은 밖에서 움직인다. 활은 안에서 겨냥하고 화살은 밖에서 명중한다. 안에서 결정한 것을 밖으로 전달하는 메커니즘이 존재의 기본단위가 된다.
우리는 원자를 기본단위로 삼지만 틀렸다. 원자는 쏘아보낸 화살이지 쏘는 활이 아니다. 원자가 스크린에 펼쳐진 영상이라면 메커니즘은 영사기에 돌아가는 필름이다.
우리는 대칭을 기본단위로 삼아 생각하지만 틀렸다. 대칭은 내부를 구성할 뿐 외부로 뻗어가지 못한다. 외부로 화살을 날려보내는 메커니즘의 비대칭성이 기본단위다.
대칭은 제 자리를 맴돌며 순환의 오류에 갇힌다. 비대칭은 대칭의 교착을 타개한다. 물레는 방아를 돌리지만 방아는 물레를 돌리지 않는다. 바늘은 태엽을 돌리지 않는다.
메커니즘이 존재의 기본단위다. 각별한 점은 원소이면서 동시에 집합이라는 점이다. 원소가 모여서 집합이 되는게 아니라 자기복제에 의해 원소가 동시에 집합이 된다.
동양이 서양에 뒤진 이유 중의 하나는 대칭을 중시하는 한자어의 특징에 따라 대칭적 사고에 잡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창세기에서 종말까지 일직선인 것과 다르다.
서양 역시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 기독교와 이교도의 대립, 진보와 보수의 대립, 히어로와 빌런의 대립, 테제와 안티테제의 대립을 강조하며 대칭적 사유에 잡혀 있다.
비대칭성
인간의 생각은 대칭성의 짝짓기로 출발한다. 뭐든 둘씩 짝을 짓기만 하면 아이디어가 풍성해진다. 생각을 이어가는 고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늘과 땅, 낮과 밤, 산과 바다로 짝을 짓는다. 둘을 대칭시켜 의사결정의 일 단위를 얻는 것이다. 대칭을 찾다가 대칭에 갇히므로 실패다.
대칭이 안으로 닫는 집이면 비대칭은 밖으로 여는 길이다. 집을 찾다가 집에 갇혀서 길을 잃으므로 실패한다. 길이 집에 앞선다. 길이 집을 이긴다.
안으로 닫을 줄은 아는데 밖으로 열 줄을 모르니 인류는 도처에서 닫혀 있다. 이분법, 흑백논리, 이항대립적 사고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실패다.
먼저 닫고 나중에 열려고 하나 수압이 걸려서 열리지 않는다. 도처에 압력이 걸려 있다. 사회는 진보압이 걸려 있고 생태계는 진화압이 걸려 있다.
닫기만 배우고 열기는 배우지 않는다. 어린이가 닫으면 어른이 열어주고 개인이 닫으면 집단이 열어준다. 밖에서 열어주는 사람이 없을 때 죽는다.
메커니즘은 먼저 열고 나중 닫는다. 전체를 열고 부분을 닫는다. 길을 먼저 열고 나중 집을 짓는다. 닫아도 일부는 열어둔다. 완전히 닫히면 죽는다.
언어문제
언어는 의미 전달 메커니즘이다. 자연은 힘의 전달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같다. 인간의 사유를 자연의 에너지 전달 메커니즘에 태워 말을 똑바로 하면 답은 명확하다.
사고실험은 용어를 엄격하게 정의하고 말을 똑바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가 흐릿하므로 사고실험을 하지 못한다. 메커니즘을 기본단위로 삼아 말하면 명확해진다.
메커니즘은 변화를 반영한다. 하나의 변화가 또다른 변화를 유발한다. 대칭된 둘을 관통하여 연결하는 비대칭 하나가 있다. 모든 교착된 둘을 하나로 되돌려 소통시킨다.
메커니즘은 관통자가 있다. 언어를 관통하는 것은 의미다. 물질을 관통하는 것은 에너지다. 자연의 기세, 시장의 이윤, 사회의 권력, 개인의 사랑, 동료의 의리는 관통자다.
답은 언어에 있다. 주변과 엮여 있는 사실을 비틀지 못하므로 따로 떨어져 있는 언어를 비튼다. 관성이 걸려 있는 집단의 행동을 비틀지 못하므로 개인의 생각을 비튼다.
힘의 권력
활은 화살을 제한한다. 원인은 결과를 제한한다. 머리는 꼬리를 제한한다. 힘은 두 변화를 관통한다. 변화 1이 뒤에 딸려오는 변화 2를 제한한다. 앞서는 것이 연동되는 것을 제한한다.
에너지는 물질을 제한한다. 이긴 것은 진 것을 제한한다. 자발적 변화가 연동된 변화를 제한한다. 변화 1은 변화 2보다 크다. 머리는 꼬리보다 크다. 큰 전체가 작은 부분을 제한한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원인이 결과보다 단위가 크다. 단위가 큰 것에 권력이 있다. 점보다 선이 크고, 선보다 면이 크고, 면보다 입체가 크다. 단위가 높은 것이 권력이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크고, 주는 자가 받는 자에 앞서고, 주는 자가 받는 자를 이기고, 주는 자가 받는 자의 행동을 제한한다. 주는 자에게 결정권이 있다. 주는 자의 주도권이 권력이다.
유가 강을 이긴다. 동動이 정靜을 이긴다. 변화는 유체를 강체로 바꾼다.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변화는 유로 입력되고 강으로 출력된다. 동이 동력이고 동력이 권력이다.
단극정렬
자석 여러 개를 통에 넣고 흔들면 모두 붙는다. 극이 같으면 밀고 극이 다르면 당기는데 왜 반반이 아니라 모두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정렬한 것이다. 자석은 통 안에서 유체 상태로 운동하다가 가장 효율적인 배치에 도달하면 멈추고 정렬한다.
자석의 인력과 척력 두 방향은 관찰자인 인간 관점이고 객체 자체의 내부 밸런스로 보면 자연은 언제나 한 방향이다. 우주 안에 두 방향은 없다. 자기력선은 S극에서 N극으로 갈 뿐 역 방향은 없다. 우주는 단극이다. 변화는 언제나 계 내부에서 정렬한다.
인력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척력 뿐이다. 척력은 계의 정렬이다. 척력은 언밸런스에서 밸런스를 찾아 움직이며 공간을 확보하는 원인 측 작용이고 인력은 효율적인 형태로 정렬한 결과 측 현상이다. 우주는 비효율에서 효율로, 불안정에서 안정으로 간다.
밀면 거리가 멀어진다는 생각은 강체의 관점이다. 유체는 밀면서 계속 밀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므로 멀어지지 못하게 각도를 틀어서 민다. 밀면 가둬진다. 결국은 정렬된다. 미는 힘은 나란해지는 힘이다. 미는 힘이 틀어져서 당기는 힘으로 보인다.
이원론적 사고는 인간 중심적 사고의 폐해다. 관측의 상대성이 작용한 것이다. 자연 중심으로 보면 우주는 일원론이다. 활이 화살을 쏘면 인간이 활을 보느냐 과녁을 보느냐로 헷갈린다. 우주의 기본 방향은 활의 척력이다. 인력은 화살의 과녁 정렬이다.
인간은 언어를 잘못 사용한다. 사물의 대칭성 중심으로 말하므로 혼선이 있다. 사건의 비대칭성을 따라야 한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능동과 수동을 헷갈린다. 메커니즘은 머리와 꼬리가 한 세트를 이루고 명사와 동사가 한 조가 되므로 헷갈릴 수 없다.
언어의 힘
유체
상자에 진흙 두 덩이를 넣고 흔들어 보자. 확인해 보면 진흙 두 덩이는 붙어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상자에 돌 두 개를 넣고 흔들어 보자. 확인해 보면 돌 두 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유체를 밀면 가까워지고 강체를 밀면 멀어진다. 멀어지느냐 가까워지느냐는 의사결정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로 결정된다. 강체는 무게중심이 코어다. 유체는 새로 닫힌계를 만들어 코어를 만든다.
자연의 변화는 유체의 질을 강체의 입자로 바꾸어 정렬하는 것이다. 에너지는 유체다. 존재는 유체다. 메커니즘은 유체다. 유체와 강체의 진행방향을 헷갈리는 것이 인간이 오류를 저지르는 원인이다.
언어
오류는 언어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언어를 잘못 사용한다. 언어는 변화의 메커니즘을 반영해야 한다. 명사와 동사는 의미를 전달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통일되어야 한다. 이를 분리하여 별개의 두 존재로 착각하므로 실패한다.
빛은 광자가 있다. 빛은 명사다. 어둠은 빛의 밝기 변화를 나타내는 동사를 명사화 한 것이다. 이는 자연의 사실과 무관한 언어적 편의다. 명사는 있고 동사는 없다. 동사는 명사를 수식한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어둠은 인간의 관념이다.
유는 있고 무는 없다. 유는 있으므로 있고 무는 없으므로 없다. 우리는 무가 있다고 착각한다. 삶은 있고 죽음은 없다. 무가 유에 딸린 부속품이면 죽음은 삶에 딸린 껍질이다. 무는 유의 변화를 설명하고 죽음은 삶의 테두리를 구분짓는다.
힘은 척력이다. 인력은 없다. 부력이 없는 것과 같다. 부력은 물이 중력의 작용에 의해 가벼운 물체 밑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중력과 부력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중력과 중력의 반대방향 전달이 있다. 중력의 당기는 힘도 실제로는 없다.
중력은 미는 힘이다. 당기는 힘은 없다. 물체를 낙하시켜 보자. 물체를 떨어뜨리는 엔진은? 두 사람이 서로 밀다가 한 사람이 힘을 빼면 맞은편 사람은 자빠진다. 사과와 지구가 서로 미는데 지구가 팔을 빼자 사과가 지구로 자빠진 것이다.
동력
메커니즘으로 보자. 존재는 동력원이 있다. 엔진이 있다. 활은 힘이 있고 화살은 힘이 없다. 기관차는 엔진이 있고 객차는 엔진이 없다. 동력 위주의 사고를 얻어야 한다. 동력의 격발과 전달 메커니즘으로 보면 대칭은 비대칭으로 환원된다.
대칭은 움직임을 설명한다. 움직이는 방향이 둘이라도 에너지는 하나다. 동력부와 전달부가 있다. 동력부에 조절장치가 있다. 활은 조절하지만 화살은 조절할 수 없다. 선은 조절되지만 악은 조절되지 않는다. 조절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과녁이 잡아당겨서 화살을 뺏어오는 것일까? 표적이 총구에서 총알을 빼먹는 것일까? 아니다. 화살의 힘은 미는 힘이다. 총알의 힘도 미는 힘이다. 힘은 총에서 나오고 힘은 활에서 나오고 힘은 떨어지는 사과에서 나온다. 지구는 상관없다.
틀린 판단 - 지구가 사과를 잡아당겼다.
바른 판단 - 지구와 사과가 서로 밀다가 지구가 힘을 빼자 사과가 지구 쪽으로 자빠졌다.
겉보기로는 바퀴가 굴러서 차가 가지만 실제로는 엔진이 움직여 차가 가는 것이다. 바퀴는 동력을 전달한다. 개가 집을 지키지만 그 집은 개의 소유가 아니다. 개는 주인의 의사를 전달한다. 동력원 중심의 메커니즘적 사유로 갈아타야 한다.
존재
공간은 비어서 없다. 없으면 0이다. 0에 얼마를 곱하든 0이다. 공간이 굽는다는 말은 0이 휘어진다는 말이다. 0이 얼마나 휘어지든 0이다. 공간이 휘어진다는 말은 아인슈타인이 편의상 도입한 개념이다. 실제로 휘는 것은 장場이다.
척력에 의해 미는데 당기는 효과가 나는 것은 장場의 성질이고 유체의 성질이다. 강체를 밀면 미는 만큼 밀려가는데 유체를 밀면 밥풀처럼 달라붙는다. 밥풀을 떼어내려고 애쓸수록 손가락에 달라붙는다. 유체는 힘의 방향이 꺾인다.
범선은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든 상관없이 키를 이용하여 전진한다. 메커니즘이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부력과 인력과 운동에너지는 에너지가 아니라 에너지의 진행방향이 바뀐 것이다. 엄밀하게는 중력도 마찬가지다.
힘 = 미는 힘이다. 미는데 당기는 효과가 나는 것은 공간의 장을 흔들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도중의 물체는 아무런 힘도 받지 않는 평형 상태로 존재한다. 자연의 어떤 물체는 지구로부터 힘을 전달받지 않는다. 장場에 따라 정렬한다.
냉기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다. 냉장고 밖에서 들어가는 열기에 떠밀려 나온다. 인력은 척력이 반작용에 의해 떠밀리는 반대운동이다. 엄밀하게는 힘이 아니다. 자력으로 가는 것과 타력으로 밀려가는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물체가 1초에 9.8미터 일정한 속도로 떨어지는 이유다. 지구가 당긴다면 가속되어 점점 빨라져야 한다. 지구는 최초 한 번만 당기고 더 당기지 않는다. 왜 당기지 않지? 당기지 않는데 중력이라고 할 수 있나?
사과와 지구의 평형이 깨지고 정렬하는 것이며 사과가 지구쪽으로 자빠지는 최초 속도가 유지된다. 광속은 빛의 탈출속도다. 광자는 전자에 잡혀 있을 때 전자 내부에서도 여전히 광속을 유지하고 있다. 발사된 총알은 빨라지지 않는다.
문어 두 마리가 서로 밀면 붙는다. 거머리 두 마리가 서로 밀면 붙는다. 스모 선수 두 사람이 도효 안에서 서로 밀면 붙는다. 당기는 것은 실제로는 발로 땅을 미는 것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당기는 것은 우주 안에 없다. 밀어서 정렬한다.
자연
유는 자연에 있고 무는 언어에 있다. 자연은 동력을 격발하고 언어는 의미를 전달한다. 언어는 전달에 맞추어져 있다. 전달은 두 방향이다. 언어는 두 방향이다. 우리는 자연이 두 방향이라고 착각한다. 자연과 언어의 불일치로 모든 문제가 생겨났다.
빛은 자연에 있고 어둠은 언어에 있다. 유는 자연에 있고 무는 언어에 있다. 절대성은 자연에 있고 상대성은 언어에 있다. 우리는 세상을 대칭으로 이해하지만 대칭은 인간의 언어에 있다. 자연과 인간이 일치하지 않으면 인간이 자연에 맞추어야 한다.
화살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촉과 깃이 있다. 머리와 꼬리는 마주보는 대칭이 아니라 에너지에 의해 한 방향으로 통일되는 연속이다. 인간이 화살 가운데를 쥐고 머리와 꼬리를 각각 바라보므로 대칭이다. 대칭은 인간이 자연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메커니즘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메커니즘은 대칭된 둘을 에너지로 관통한다. 원인과 결과를 관통한다. 입력에서 출력까지 관통하여 연결한다. 생명은 삶과 죽음을 관통한다. 힘은 작용과 반작용을 관통한다. 권력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관통한다.
메커니즘은 대칭 둘을 연결하여 하나로 되돌린다. 산과 바다는 하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하늘과 땅은 하나의 우주로 돌아간다. 자연은 에너지로 하나가 되고, 부부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고, 동료는 의리로 하나가 되고, 집단은 권력으로 하나가 된다.
기본단위
힘과 짐
대칭은 둘씩 짝을 짓는다. 생각은 둘을 관통한다. 2를 1로 바꾼다. 자연은 힘이 관통한다. 힘이 둘을 연결한다. 인간은 사랑이 둘을 관통한다. 동료는 의리가 짝을 짓는다. 사회는 권력이 둘을 연결한다.
산 힘과 죽은 힘이 있다. 쓸 수 있는 힘과 쓸 수 없는 힘이 있다. 산 힘이 이기는 힘이면 죽은 힘은 지는 힘이다. 죽은 힘은 힘이 아니라 짐이다. 산 힘은 내부를 통하여 낳고 죽은 힘은 외부에서 전달한다.
대칭된 둘을 관통하여 연결하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머리와 꼬리를 연결하고, 기관차와 객차를 연결하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한다. 대칭은 좌우 양 방향이지만 메커니즘은 둘을 관통하므로 일방향이다.
힘은 내부를 관통하므로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므로 깨달아야 한다. 모든 마주보는 둘이 에너지로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항대립적 사고를 극복하는 메커니즘적 사고로 올라서야 한다.
자연을 관통하며 연결하는 것은 에너지다. 언어를 관통하는 것은 의미다. 생각을 관통하는 것은 지혜다. 사회를 관통하는 것은 진보다. 반드시 그것이 있다. 생명성이 있다. 파워트레인이 없으면 가짜다.
생과 사
우리는 빛과 어둠이 있다고 믿는다. 틀렸다. 빛은 광자가 있지만 어둠은 암자가 없다. 어둠은 빛의 조절이다. 어둠은 빛의 가장자리다. 어둠은 빛에 종속된다. 어둠이 빛의 반대로 보인다면 인간이 둘 사이에 위치한 것이다.
중력은 아래로 붙고 부력은 위로 뜬다. 부력은 중력 반대다. 틀렸다. 배가 뜨는게 아니라 물이 배 밑으로 침투한다. 부력은 중력을 반대편에서 본 것이다. 부력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착각이자 언어적 편의에 따른 왜곡이다.
줄다리기는 줄을 잡아당기는 게임이다. 틀렸다. 사실은 줄로 버티고 발로 땅을 민다. 발로 땅밀기 게임이다. 줄다리기라는 표현이 점잖아 보이기는 한다. 인간은 적당히 편한대로 말하는 것이다. 자연의 사실에는 관심 없다.
우리는 왼발과 오른발을 교대로 내밀어 걷는다고 믿는다. 틀렸다. 사실은 발로 뒷땅을 밀어 전진한다. 정확히는 상체를 앞으로 숙여서 무게중심을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걷는다. 정확한 운동 메커니즘을 알지 못하면 망한다.
우리는 산 것과 죽은 것이 별도로 있다고 믿지만 틀렸다. 산 것은 생명이 있고 죽은 것은 그 무엇이 없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경계다. 집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와 같다. 울타리는 집의 반대가 아니다. 집의 일부다.
유와 무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인간은 둘씩 짝지어 대칭시키는 방법으로 더 잘 전달한다. 미추, 선악, 귀천, 우열, 진위로 둘씩 짝을 지으면 전달하기 편하지만 자연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의 대칭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언어의 대칭은 의미를 전달한다. 나뭇잎이 둘씩 짝지어 나는 것은 더 많은 햇볕을 받으려는 것이다. 인간이 단어를 둘씩 짝짓는 것은 말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다. 말은 편한데 사실이 다친다.
유는 결정하고 무는 전달한다. 유가 머리면 무는 꼬리다. 무는 유의 반대가 아니다. 유는 일어남이고 무는 유의 다함이다. 유와 무는 한 몸이다. 무는 유를 조절한다. 무는 유의 울타리다. 무는 유를 보호한다. 무는 유를 완성한다.
기관차는 엔진이 있고 객차는 엔진이 없다. 기관차는 유고 객차는 무다. 활은 화살을 품었으나 화살은 품은 것이 없다. 활이 유면 화살은 무다. 활은 격발하고 화살은 전달한다. 자연은 존재하고 인간의 언어는 그것을 전달한다.
우리는 무엇과 무엇이 반대라고 믿지만 그것은 존재의 반대가 아니라 전달의 반대다. 인간의 전달 편의가 자연의 사실을 침범한다. 의미를 전달하며 둘 사이에 끼어들면 반대로 보이지만 반대가 아니다.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열과 냉
왼팔과 오른팔은 대칭이다. 왼팔이 서쪽을 가리키면 오른팔은 동쪽을 가리킨다. 방향이 반대다. 그런데 유가 왼쪽을 보면 무도 왼쪽을 본다. 무는 유를 따라갈 뿐 거스르지 않는다. 유와 무는 대칭이지만 대칭이 아니다.
선은 사회성이 있고 악은 방향성이 없다. 악은 선의 반대가 아니라 선의 멈춤이다. 악은 선의 위태로움이다. 선은 타인의 삶에 개입한다. 부당한 개입은 위태롭다. 안전한 선의 개입과 위태로운 악의 개입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가 있다고 믿지만 틀렸다. 진보는 문명성이 있고 그것은 본래 위태로우며 보수는 진보의 리스크를 조절한다. 빌런은 히어로를 조절한다. 진보는 보수의 조절로 완성된다. 진보가 열고 보수가 닫는다.
절대성은 절대로 존재하고 상대성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성은 절대성 반대가 아니다. 화살은 활의 반대가 아니고, 민중은 엘리트 반대가 아니고, 뿌리는 잎의 반대가 아니다. 인간이 중간에 서면 반대로 보인다.
열기는 이동하지만 냉기는 이동하지 않는다. 냉장고 문을 열면 냉기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기가 냉장고 속으로 들어가며 냉기를 밖으로 밀어낸다. 냉기는 열기에 떠밀려질 뿐 자발적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을 대칭으로 이해한다. 대칭은 둘이다. 틀렸다. 진실은 하나다. 하나는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은 힘을 전달한다. 메커니즘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힘이다. 둘 사이를 관통하는 하나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일반의 상식은 틀렸다. 보통사람의 보통 생각은 보통 틀린다. 세상을 대칭으로 보는 흑백논리와 이항대립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프레임 걸고 양자택일 요구하며 압박하는 소인배의 갈라치기 이분법 정치술이 고약하다.
자발성
바람이 부는게 아니라 부는게 바람이다. 나쁜 사람이 나쁜 짓을 하는게 아니라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존재가 일하는게 아니라 일이 존재다. 명사가 동작하는게 아니라 동사를 가둔게 명사다.
진짜는 자체 엔진이 있다. 자발성이 있다. 유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에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에너지가 자원을 결속하고 있다. 관통하고 있다. 연결하고 있다. 가짜는 자발성이 없고 인간이 대신 결속한다.
선은 사회성이 결속하고 진보는 문명성이 결속한다. 엔진 역할을 한다. 파워트레인이 있다. 악은 엔진이 없다. 파워트레인이 없다. 악의 실체가 없다. 대신 사람 탓을 한다. 놀부 혼자 스무가지 악을 결속한다.
진짜는 내부에 자원을 연결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환경이 변하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가짜는 시스템의 관리 책임을 맡은 사람을 깐다. 수리할 엔진이 없으므로 대신 사람을 불러모으는 것이다.
메커니즘은 사건을 연결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있다. 능동과 수동이 있다. 결정과 실행이 있다. 입력과 출력이 있다. 둘인데 하나다.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는 메커니즘적 사고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메커니즘은 대칭이지만 대칭이 아니다. 인간이 둘 사이에 끼면 겉보기 형태는 대칭이지만 인간과 상관없는 내부 에너지 전달은 비대칭이다. 자연의 절대성이 인간의 개입에 의해 상대성으로 바뀌며 왜곡된다.
화살의 머리와 꼬리가 대칭인 이유는 화살의 가운데를 쥐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사정이다. 인간이 관측하지 않으면 상대성은 없다. 자연의 힘이 관통하며 메커니즘에 의해 하나가 된다. 절대성을 이룬다.
힘과 권력
힘의 구조
힘은 방향전환이다. 구조는 방향전환 구조다. 혼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혼자서는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우주유영을 하는 우주인은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방향전환은 둘 사이 내부에서 일어난다. 둘이 마주보고 대칭을 이루어야 힘을 쓸 수 있다. 모든 변화하는 것은 둘 사이의 내부에 방향전환을 가능케 하는 대칭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둘이 마주보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방향을 바꾸면 다시 하나가 되므로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방향을 바꿀 수 있지만 방향을 바꾸면 방향을 바꿀 수 없다.
활은 내부가 대칭이므로 방향전환이 가능하지만 날아가는 화살은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대칭을 잃어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다. 의사결정은 방향을 소비한다. 권력행사는 권력을 소비한다.
방향전환은 2에서 일어나고 1로 종결된다. 자연의 모든 변화, 인간의 모든 의사결정은 2로 격발되고 1로 진행된다. 2는 1이 될 수 있으나 1은 2로 돌아갈 수 없는 에너지의 비가역성이다.
힘의 의미
세상은 에너지로 되어 있다. 힘은 에너지의 방향전환이다. 계 내부에 축과 대칭의 밸런스 구조를 갖추면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에너지는 구조가 있다.
힘은 집단의 의사결정이다. 움직이는 둘이 연결된 유체는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강체는 혼자 방향전환이 불가능하다. 자발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존재는 둘의 연결이다. 방향전환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연결이다. 활과 화살, 머리와 꼬리, 유체와 강체, 기관차와 객차가 연결되어 하나가 된다.
머리와 꼬리는 하나다. 유체와 강체는 하나다. 기관차와 객차는 하나다. 활과 화살은 하나다. 거기에 순서가 있다. 언제나 활이 앞서가고 화살이 따른다.
머리와 꼬리는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면 의사결정 못해서 망하고 평등하지 않으면 비효율로 망한다. 그러므로 밸런스는 조절되어야 한다.
이기는 힘
진정한 힘은 이기는 힘이다. 이기는 힘은 의사결정의 힘이다. 이기는 힘은 방향전환의 힘이다. 이기는 힘은 2다. 지는 힘은 1이다. 이기는 힘은 하나가 더 있다. 하나가 더 있으므로 이긴다.
전략은 전술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머리는 꼬리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기관차는 객차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전체는 부분에 없는 하나가 더 있다. 내부를 연결하고 있으므로 이긴다.
이기는 힘은 격발하고 지는 힘은 진행한다. 활은 쏘고 화살은 날아간다. 연결이 결정하고 단절이 실행한다. 전체가 결정하고 부분이 따른다. 이기는 힘이 방향을 정하고 지는 힘은 따른다.
이기는 힘이 시간적으로 앞선다. 유가 강에 앞선다. 연결이 단절에 앞선다. 전체가 부분에 앞선다. 전략이 전술에 앞선다. 보편이 특수에 앞선다. 파종이 먼저 연결하면 수확이 나중 끊는다.
전체와 부분의 합은 같으나 같지 않다. 공간의 거리를 시간의 속도로 바꾸면 밸런스 조절이 가능하다. 각운동량보존은 같으나 같지 않다. 속도를 늘리면 공간이 남으므로 조절이 가능하다.
낳음의 힘
이기는 힘은 내부에서 낳는 자발적 권력이다. 인기와 카리스마는 강요되지 않고, 사랑과 존경과 의리는 강요되지 않는다. 진정한 힘은 기성의 힘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지 않는다. 기득권 힘에 의해 동원된 힘은 일회용 가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걷지 못하는 사람이 협력한다면 윈윈게임이다. 그것은 자발적 힘이다. 지정학의 힘과 같다. 서로 다른 것들이 주변에 위치하면서 필요한 때 돕는 구조다. 장기의 기물처럼 협력하고 상생하여 승리한다.
칼 든 사람은 맨손인 사람보다 유리하다. 총 든 사람은 칼 든 사람보다 유리하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지식을 가진 사람도 유리하다. 동료가 있는 사람도 유리하다. 자발적 낳음의 힘을 가진 사람은 유리하다.
자발적 힘은 상황에 맞는 방향전환을 한다. 필요한 때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내부에 축과 대칭과 밸런스가 갖추어지면 가능하다. 강제로 동원한 기득권의 힘은 일회용에 불과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복제되지 않는다.
민족주의는 동질성의 잇점을 살리는 사회적 지정학이다. 이념은 자발적 동원력을 만드는 기술이다. 민족과 이념의 동질성에 따른 자발적 동원력은 내부에 숨어 보이지 않으므로 상대가 쉽게 대응하지 못하는 이기는 힘이다.
권력의 힘
우주를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권력이다. 앞서가는 것이 뒤에 따라오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권력이다. 머리가 꼬리에 앞선다. 머리에 권력이 있다. 어미가 새끼에 앞선다. 어미에게 권력이 있다.
객차는 기관차를 앞지를 수 없다. 뒷바퀴는 앞바퀴를 추월할 수 없다. 눈은 앞을 내다본다. 언제나 눈이 앞에 있다. 언제나 머리가 앞에 있다. 권력은 머리에 있다. 먼저 보고 먼저 대비해야 권력이다.
권력은 자연에서 저절로 탄생한다. 그것은 사랑, 존경, 의리, 카리스마, 팀워크의 형태로 존재하며 무리를 결속한다. 결속된 집단이 결속되지 않은 집단을 이긴다. 의사결정을 잘하는 집단이 이긴다.
자발적 권력과 강제적 권력이 있다. 자발적 권력은 힘을 조직하고 강제적 권력은 힘을 소비한다. 자발적 권력은 진짜고 강제적 권력은 가짜다. 자발적 권력이 이기는 힘이면 강제적 권력은 짐이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세상은 권력에 의해 돌아간다. 권력은 사람을 제압하는 정치적 기술에 의해 오염되었다. 머리가 앞서가고 꼬리가 뒤따르는 것은 인간의 정치와 상관없는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
힘의 과학
매력과 완력
힘이 전부다. 인류는 힘으로 시작하고 힘으로 끝난다. 인간은 언제라도 힘을 원한다. 정신적 매력의 힘도 있고, 물리적 완력의 힘도 있고, 사회적 권력의 힘도 있다. 호르몬을 끌어내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은 매력이고, 상대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것은 완력, 집단을 결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매력과 완력은 상당부분 타고 나는 것이지만 권력은 무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당황시킨다. 그것이 힘의 자발성이다. 세상의 많은 거짓들은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사설권력을 조직하려는 것이다. 변방에서 소집단을 이루고 무리가 굳게 결속하지만 전체의 흐름과 어긋나므로 한계가 있다.
힘은 집단의 흐름에서 얻는 효율성이다. 전체가 아니어도 안 되고 전체가 움직이지 않아도 안 된다. 전체는 움직이고 연결되어 유체를 이루어야 한다. 힘의 원천은 유체 내부의 밸런스다. 밸런스는 내부에서 스스로 낳는 자발성이 있다. 보이는 것 말고 하나가 더 있다. 하나가 더 있으면 이긴다.
인류는 힘을 모른다. 이기는 힘을 모른다. 의사결정 힘을 모른다. 힘은 낳고, 낳으면 이기고, 이겨서 의사결정한다. 힘은 궁극적으로 밸런스의 복원력이다. 밸런스는 방향전환 구조다. 우주에 방향전환이 있을 뿐이다. 방향전환이 존재다. 의사결정이 존재다. 존재가 일하는게 아니라 일이 존재다.
힘은 낳음이다. 아기가 나오는 방향은 어미로부터 멀어지는 확산방향이다. 마이너스다. 근원에는 마이너스 뿐이므로 세상은 법칙대로 간다. 세상이 복잡한 것은 어미에게서 갈라져 나온 뒤에 섞인 노이즈 때문이다. 노이즈를 제거하면 진실이 드러난다. 아닌 것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자발성의 힘
인류가 모르는 것은 쓸 수 있는 힘과 못 쓰는 힘의 차이다. 자발성의 힘과 전달하는 힘의 차이다. 힘의 의미는 자발성에 있다.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것은 힘이 아니라 짐이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알 수 있다.
힘은 방향전환이다. 이기는 힘은 자발적 방향전환이다. 유체 내부에서 작용과 반작용이 교착될 때 하나가 이겨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의사결정이다. 닫힌계 내부에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를 갖춘 것이 힘이다.
직진만 하는 기차와 방향전환이 자유로운 자동차가 대결하면 자동차가 이긴다. 고지식한 집단과 창의적인 집단이 대결하면 창의적인 집단이 이긴다. 의사결정을 더 잘하는 집단이 이긴다. 그들은 자발성이 있다.
이기는 힘은 전략의 힘이다. 전략은 중간에 방향을 바꾸어 이긴다.
이기는 힘은 지정학의 힘이다. 주변환경을 이용하여 방향을 바꾼다.
이기는 힘은 포메이션 힘이다. 상황에 맞게 포지션을 바꾸면 이긴다.
이기는 힘은 의리의 힘이다. 집단의 방향전환은 약속되어야 가능하다.
이기는 힘은 권력의 힘이다. 내부가 결속된 집단은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이기는 힘은 이념의 힘이다. 민족과 이념은 사회적, 심리적 지정학이다.
이기는 구조의 힘이다. 축과 대칭의 밸런스로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이기는 힘은 효율성 힘이다. 최소액션, 최단경로, 최대효율이 이긴다.
이기는 힘은 역설의 힘이다. 인간의 의도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
짐은 보이고 힘은 보이지 않는다. 내부를 관통하는 힘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정지한 물체와 움직이는 물체는 다르고, 죽은 것과 산 것은 다르고, 신병과 베테랑은 다르다. 힘은 짐에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강제로 동원하여 억지 효율성을 추구하면 잠시 되는듯 하지만 뒤에 리스크 폭탄을 맞는다. 자발적인 힘이 아니면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많은 실패는 강제적 동원과 자발적 힘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힘
우리는 에너지라는 말을 남용한다. 힘과 짐은 다르다.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는 다르다. 열역학의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쓸 수 없는 에너지라는 말은 사람을 헷갈리게 한다. 이기는 힘이 진짜다.
에너지는 일로 변환된다. 문제는 스스로 변하는가, 외부에서 힘이 작용해야 변하는가다. 당구공은 외부에서 사람이 쳐야 굴러가지만 많은 자연의 변화는 스스로 일어난다. 스스로 변해야 진짜다.
안에서 격발하는 활의 힘과 밖에서 전달하는 화살의 힘은 다르다. 활은 방향을 바꿀 수 있고 화살은 방향을 바꿀 수 없다. 무한동력 아저씨는 에너지의 방향을 헷갈린 것이다. 방향전환이 진짜다.
힘이 짐을 이긴다. 유가 강을 이긴다.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를 이긴다. 활이 화살을 이기기고 전략이 전술을 이긴다. 이기는 것이 앞선다. 언제나 전체가 부분에 앞서고, 원인이 결과에 앞선다.
어려운 열역학 필요 없고 힘과 짐의 차이를 직관하면 된다. 안에서 나오면 힘이고 밖에서 겉돌면 짐이다. 마이너스는 힘이고 플러스는 짐이다. 우주는 언제나 힘에서 짐으로만 가므로 명백하다.
방향전환 힘
힘은 방향전환이다. 외부작용 없이 스스로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혼자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둘이 맞물려 계를 이루고 내부에 축과 대칭의 밸런스를 갖추면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서로 맞물리는 단위에 따른 방향전환 형태다.
우리는 방향을 헷갈린다. 무한동력 아저씨는 중력과 부력을 연결하여 무슨 수를 내보려고 한다. 그런데 부력은 없다. 물체가 물에 뜨는 것이 아니라 물이 중력에 의해 물체 밑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부력은 인간이 중력을 반대편에서 바라본 것이다.
척력은 있어도 인력은 없다. 인력은 척력이 꼬인 것이다. 인간의 허다한 오류는 방향착오다. 자연의 사실은 하나인데 인간의 관측방법이 안과 밖 둘이다. 자연은 절대성인데 인간의 인식은 상대성이다. 인간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 거짓의 단초다.
우주의 방향은 하나다. 그 방향은 확산방향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줄어드는 마이너스다. 자연의 자발적 변화는 흩어지는 것이다. 중심에서 멀어지는 방향이다. 먼저 가깝고 나중 멀어진다. 먼저 결정하고 나중 전달한다. 먼저 격발하고 나중에 진행한다.
방향은 순서가 있다. 이기는 힘과 지는 힘이 있다. 민주주의가 독재를 이기고 유가 강을 이긴다.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자유로운 구조가 방향을 바꾸지 못하는 경직된 구조를 이긴다. 신속한 방향전환으로 의사결정을 부단히 업그레이드하는 편이 이긴다.
지정학의 힘
지정학으로 전부 설명할 수 있다. 유리한 지형과 불리한 지형이 있다. 그리스군이 좁은 길목에서 페르시아군을 상대한 것과 같다. 시장의 목 좋은 자리와 같다. 격투기 선수는 테이크 다운을 해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파운딩을 퍼붓는다. 손흥민도 손흥민존까지 가야 골을 넣는다.
외부와 연결할 항구가 있고 적을 방어할 수 있는 산맥이 있으면 좋다. 주변에 상대하기 만만한 나라가 있어야 한다. 중국사는 언제나 북쪽에 자리잡은 나라가 이겼다. 태행산맥이 있고 함곡관이 있어서 방어하기에 유리하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것은 지리의 잇점을 살린 것이다.
집단 내부가 방향전환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다면 그 집단은 강하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억지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독재다. 환경이 변하면 유리한 위치가 불리한 위치로 바뀌므로 독재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다시 유리한 위치로 옮겨가야 하는데 방향전환에 실패한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집단의 방향전환이 가능하고, 다수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에 머물러야 환경변화가 일어났을 때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인간의 허다한 실패는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가 환경이 변해 불리해졌는데도 계속 위치를 고수하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사회에도 있고, 마음에도 있고, 집단에도 있고, 시장에도 있고, 자연에도 있다. 생물의 진화는 걸맞는 생태적 지위를 찾아간다. 인류의 문명도 지정학적 핵을 찾아 이동한다. 언제나 의사결정하기 쉬운 곳이 흥한다. 민족타령, 이념타령도 사회적 지정학, 심리적 지정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