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18
이번 지방선거는 구도면에서 제2회 지방선거(1998년), 정책면에서 제1회 지방선거(1995년), 인물면에서는 제4회(2006년)와 제5회(2010년) 지방선거와 많이 닮아
2006년 지방선거일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한 ‘정권 심판’ 성격이 강한 선거였다. 박근혜(朴槿惠)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지원 유세를 위해 신촌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괴한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이 한순간이 선거의 흐름을 야당인 한나라당 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했던 것이다. 병상에서 깨어난 박 대표는 건강상태를 묻는 당료의 질문에 ‘대전은요?’라는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이 모든 이유가 될 수는 없지만 대전시장 선거 판세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 두 번째)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과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의 선거 승리는 ‘정권 심판’ 구도라는 유리한 상황에만 힘입은 것이 아니었다. 오세훈, 안상수, 김문수, 김진선, 정우택, 박성효, 이완구 등 수도권과 충청·강원권에 사실상 올스타를 내보냈다. 구도와 인물에서 앞섰고 정책은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2010년 지방선거는 어떠했는가. 부분적으로는 이명박(李明博) 정부에 대한 ‘정권 심판’ 성격이 있었다. 하지만 선거판 전체를 좌우했던 것은 ‘무상(無償)급식’이었다. 진보정당은 한술 더 떠 ‘친(親)환경 무상급식’으로 선거판을 끌고 갔다.
선거에 있어 정책의 선점(先占)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가공할 만하다. 한나라당은 소득과 재산 정도에 상관없이 급식을 하는 방식을 비판했지만, 이미 유권자 마음은 떠난 뒤였다. 2010년 선거는 분명 정책이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구도상으로는 새누리 유리
얼마 남지 않은 제6대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 것인가. 선거는 구도, 정책, 인물에 의해 판가름난다. 과거 지방선거와의 비교를 통해 이번 지방선거의 운명을 가늠해 보도록 하자.
이번 지방선거는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대통령에 대한 ‘정권 심판’ 구도가 전면에 부상하기는 어렵다. 2002년, 2006년, 2010년 지방선거는 대통령 임기 후반이거나 임기 중간에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에 ‘정권 심판’ 성격이 역력했다.
하지만 리서치앤리서치의 3월 9일 조사(전국 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9.2%였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대통령 지지율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가까이 높다. 지방선거일까지 대통령의 지지율을 송두리째 뒤엎을 변수(變數)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권 심판’ 구도는 성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선거 구도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새누리당이 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1998년의 제2회 동시지방선거와 흡사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이전에는 정책 영향 적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요소는 정책이다. 여기서 잠시 역대 지방선거에서 정책의 영향력을 살펴보자.
1995년 제1회 동시선거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정책이 실종된 선거였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해에 치른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1998년)의 경우 IMF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높았기 때문에 다른 정책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2002년 지방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와 비교하더라도 관심도가 낮았다. 한일월드컵이 열렸고, 우여곡절 끝에 선거일도 2주일이나 연기되었다(6월 13일).
2006년 지방선거는 여러 가지 정책이 뒤섞여 한 가지 정책으로 규정할 수 없는 선거였다. 행정수도 이전, 한미FTA 체결, 사학법 개정, 비(非)정규직 법안 통과 및 미군기지 이전문제 등이 함께 다루어졌다. 정책만으로는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 더 절대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하다고 하기 힘들겠지만, 대체적으로 집권당에 부담스러운 이슈들이었다.
정책이 가장 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2010년 선거였다. 무상급식 이슈가 전국을 휩쓸었고 이에 비판적이었던 한나라당의 대응은 사실상 무위(無爲)에 그쳤다. 무상급식 이슈는 광역단체장 선거뿐만 아니라 교육감과 기초단체장 선거에까지 영향을 끼쳤고 전국적인 파급력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2014년 제6회 동시지방선거는 어떤 정책 이슈가 지배를 할까. 지난 1월 24~25일 리서치앤리서치의 조사(전국 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를 보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경제 이슈가 24.1%로 가장 높았다. 대통령의 공약 이슈, 야권(안철수 신당) 이슈, 종북(從北) 및 안보 이슈, 대선(大選) 국가기관 개입의혹 이슈 순으로 나타났다.
뚜렷한 정책 이슈 안 보여
▲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걸었다.
여기서 보듯 이번 지방선거는 다른 어떤 이슈보다도 경제 이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 이슈 중에서 무엇이 가장 결정적인 정책이 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지만 지방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 미지수다. 대통령 공약인 기초노령연금 문제는 여야(與野)의 시각 차이가 있는 것이지 실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선거에 결정적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특정 정책이 이슈로 부각되기는 힘들 듯하다. 정책적으로 많은 중요한 사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부각되지 못했던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와 닮았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정책이 끊임없이 추진되고 제시되었지만 정작 국민들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 정책에 승부수를 던져 지방선거에서 선전(善戰)하기를 기대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구상은 무너져버렸다. 대신 자신들의 텃밭을 나누는 지역주의 선거가 되어버렸다. 이번 지방선거도 수많은 중요 현안이 야권 통합과 정쟁적 이슈 때문에 묻혀버리는 19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의 평행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인물론은 대체로 잘 먹혀 들어가
선거에서 마지막으로 따져볼 부분이 인물이다. 구도가 유리하고 정책이 좋아도 인물 경쟁력이 떨어지면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1995년 선거 이후 사생결단의 지방선거에서 인물 전쟁은 불가피했다.
민주자유당이 참패한 1995년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는 서울시장 선거였다. 보수 진영이 분열된 수도권에서 인물론이 힘을 얻었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된 이후 첫 광역단체장 선거라 인물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았다.
서울에서는 조순, 박찬종, 정원식 3자 대결에서 보수 진영의 분열에 기댄 조순 후보의 인물론이 유권자 표심(票心)을 파고들었다. ‘서울 포청천’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조순 후보는 당선됐다. 강원의 최각규 후보와 대구의 문희갑 후보 역시 인물면에서 다른 후보를 압도했다.
2002년 선거와 2006년 선거는 정권 심판 성격이 뚜렷했지만 야당인 한나라당의 인물 구성 또한 절묘했다. 사실상 2002년 이후 지방정부 8년 권력은 오롯이 한나라당의 손아귀에 있었다. 2002년 선거에서는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인천의 안상수 시장과 경기도의 손학규 지사 등이 출마했다. 초호화 멤버였다. 이명박, 손학규 등 대선주자급 후보들이 한나라당에 포진하고 있었다. 인물 파괴력이 절정에 달한 모습이었다.
2006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표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스타군단’ 그 자체였다. 오세훈, 안상수, 김문수, 김진선, 박성효, 정우택, 이완구, 허남식, 김태호 등 보수정당 한나라당의 역대 최강 진용이었다. 대선주자급 후보가 3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여권의 重鎭 차출론 통하나
▲ 2006년 5월 제주도 서귀포에서 지방선거 유세를 하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선거의 여왕 박근혜’ 없이 선거를 치러야 한다.
2010년은 전세가 역전되어 민주당이 올스타 진용을 구성한다. 송영길, 이광재(2011년 대법원 확정 판결로 지사직 상실), 안희정, 이시종, 박준영, 강운태, 김완주 등이 나섰고 당선을 이끌어냈다.
올해 들어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현역단체장들의 강한 ‘현직 프리미엄 효과(strong incumbent effect)’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 맞대응하고 나온 것이 여당인 새누리당의 ‘중진(重鎭)차출론’이다. 기존에 거론되던 인물로는 2010년 민주당의 스타군단과 싸워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리서치앤리서치의 지난 2월 24일 서울시민 700명 조사(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 95%)에서 정몽준 의원은 박원순 시장과의 양자대결에서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여주었다(정몽준 40.7% 대 박원순 41.9%).
남경필 의원의 약진은 더욱 눈부시다. 원내대표 출마 쪽으로 기울었던 남 의원은 출마의사를 나타내자마자 경기지사 후보 1위에 올라섰다. 새누리당의 인물 전략이 먹히는 대목이다.
레전드 멤버 vs. 역전의 명수
하지만 야권의 경쟁력도 탄탄하다. 무엇보다도 통합신당 효과로 야권끼리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탈출했다. 여기에 수도권 20~40대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안철수 의원 효과가 아직 본격적으로 발현되지 않고 있다.
여당은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까지 투입하는 등 2006년 지방선거의 결과를 재현해 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도 2010년의 탄탄한 전력(戰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통합신당 효과는 덤이다.
인물 경쟁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향방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2006년의 ‘레전드 멤버’ 스타일, 통합신당은 2010년의 ‘역전의 명수’ 스타일이다.
‘선거의 여왕’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개입이 어려운 것은 새누리당의 고민이다. 야권도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가 자리를 잡지 못해 전국적인 구심점이 아쉬운 마당이다. 이번 선거의 인물 대결은 2006년과 2010년 선거의 복합적인 평행여론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제6회 동시지방선거는 구도면에서 제2회 지방선거(1998년), 정책면에서 제1회 지방선거(1995년), 인물면에서는 제4회(2006년)와 제5회(2010년) 지방선거와 많이 닮아 있다.
그렇지만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선거의 모습은 이전 선거에서 찾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임기 2년 차에 있는 선거, 통합신당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조합, 실종된 정책, 김상곤 전 교육감과 같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 등은 예측을 더욱 갈팡질팡하게 한다.
투표를 하는 유권자 역시 여론에 지배받는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전국적 변수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일 것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선거의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평행여론이 빗나간 지방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배종찬 / 리서치앤리서치 이사
월간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