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아디라 교회
https://youtu.be/XKCqzRkk_Cw
두아디라 교회: 종교적 혼합주의에서 벗어나라
'두아디라 교회, 종교적 혼합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우리 재림교회는 역사주의적 예언 해석의 관점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단순히 그 시대의 일곱 교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일곱 교회를 선택하신 데에는 대단히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곧 일곱 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시작하여 재림 직전까지 이어지는 교회 역사를 보여 준다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교회 역사 속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을 끊임없이 공격해 왔습니다. 그리고 시대를 거듭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은밀해졌습니다. 첫 번째 에베소 교회, 곧 초기 교회 시대에는 첫사랑이 식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서머나 교회 시대는 서기 100년부터 313년까지 이어진 핍박의 시대로, 잔혹한 핍박의 칼날로 신앙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통해 성도들이 흩어지면서 도리어 복음이 확산되자 사탄은 방법을 바꿉니다.
그것이 바로 세 번째 버가모 교회 시대입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부터 538년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세상과 이교의 교리, 세상의 권세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 급속한 타협과 타락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속화가 진행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네 번째로 살펴볼 교회가 두아디라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예언적 관점에서 538년 로마 교황권이 확립된 때부터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전까지의 중세 암흑시대를 상징합니다. 이 시대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고 조직적인 오류로 가득 찼던 때이며, 그렇기에 '중세 암흑시대'라고 불립니다. 순결해야 할 교회의 생명 안에 이교의 풍습, 인간의 제도, 세속적인 사상이 물밀듯이 들어와 종교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그것이 곧 로마 교황권의 실체입니다. 완전한 종교적 혼합이자 배도의 시대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기별에서는 이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로 상징하여 표현합니다. 이때 잃어버린 대표적인 진리들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막았고, 성인 숭배와 마리아 숭배를 조장했습니다. 본래 우상숭배는 철저히 금지되어 있으나, 여성 신과 성인들을 만들어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 죄가 사해짐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고 죄를 면해 준다는 면죄부를 판매하였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인간 사제(신부)가 대신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칠흑 같은 영적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 기록된 두아디라 교회의 기별을 통해, 주님께서 이 종교적 혼합과 배도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시고, 성도들을 깨워 구원으로 이끄시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세 가지로 묘사됩니다. 첫째는 눈이 불꽃 같고, 둘째는 발이 빛난 주석 같으며,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입니다. 일곱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언제나 그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답입니다.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첫째, 주님의 눈은 불꽃 같습니다. 사람의 눈은 외적인 활동만을 봅니다. 건물이 얼마나 웅장한지, 겉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와 같은 겉모습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불꽃 같은 주님의 눈은 겉모습을 태워 없애고, 행동의 내면과 그 동기를 꿰뚫어 보십니다. 그래서 23절에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행위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아니면 종교화된 옛사람의 자아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분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도 겉으로는 대단히 성실하게 신앙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구제와 십일조를 철저히 행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내면과 동기는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외식적인 종교 활동에 불과했습니다.
둘째, 주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발은 악을 밟아 심판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용광로에 제련되어 단단하고 빛나는 주석(황동)은 공의로운 심판과 정결을 상징합니다. 곧 모든 거짓과 불의를 짓밟아 정결하게 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 능력을 나타냅니다.
셋째, 주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로 계시하십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에베소에 비하면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 주민들은 로마 황제를 신의 아들로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도시의 수호신은 태양신이자 제우스의 아들로 여겨지던 아폴로였습니다. 즉 두아디라는 로마 황제와 아폴로를 신의 아들로 극진히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우주의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역사주의적 예언 해석의 관점에서 보면, 로마 황제뿐만 아니라 교황 역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Filii Dei)로 칭하며 하나님의 아들 자리를 대신하고자 했습니다. 교황이 쓰는 삼중관에는 라틴어로 '비카리우스 필리이 데이(Vicarius Filii Dei,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 라틴어 철자의 숫자 값을 계산하면 666이 도출됩니다. 교회가 타락할 때 일어나는 가장 끔찍한 비극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자 생명의 근원은 인간 사제나 교황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19절을 보면,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 안의 신실한 자들을 칭찬하십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위선과 타락으로 물든 암흑 속에서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를 진실히 사랑하고 섬기며 인내의 열매를 맺어 가는 남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수고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로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해 알프스 깊은 골짜기에 숨어 복음을 지키고 전파했던 왈덴스인들이 있었습니다. 상인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성경을 소지하기만 해도 이단으로 몰리던 시대에 성경을 손으로 일일이 필사하여 옷섶 사이에 숨겨 다녔습니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 성경 사본을 한 장씩 은밀히 건네주었습니다. 영국의 위클리프나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자들도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빛으로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거대한 핍박과 타락 속에서도 눈물로 진리를 품고 묵묵히 헌신했던 이들의 섬김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20절에서 책망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4절에서는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아니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얹을 것은 없노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당시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당시 상업 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동업조합인 '길드(Guild)'에 가입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길드에 참여하려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음행을 저지르는 우상숭배 의식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성도들은 극심한 신앙적 갈등에 직면했습니다. 굶주림을 감수하며 순결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타협할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이때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여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니다. 우리는 영적 자유를 얻었으니 길드에 참여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더라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다. 진정으로 깊은 영성은 죄의 깊이를 경험해 보아야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들은 죄를 짓는 행위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미화했습니다. 자기희생과 십자가가 배제된 거짓된 평안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깊은 것', 곧 고도화된 혼합주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회개에는 때가 있습니다. 회개를 거절할수록 마음은 점점 완고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깊은 술책과 혼합주의로 인해 두아디라 교회는 타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구약의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과 정략결혼을 맺은 뒤, 시돈의 바알과 아세라 숭배를 이스라엘 영내로 공식적으로 들여와 국가적인 종교 제도로 만든 여인입니다. 그녀는 참된 선지자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신약 교회사 속에서도 순결한 양의 옷을 입고 들어와 우상숭배를 제도화하고 절대 권력을 휘두른 로마 교황권이 바로 이 영적 이세벨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도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도 이세벨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계시된 참된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편의에 맞추어 상상해 낸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 없는 평안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현대판 종교적 혼합주의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본래의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참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주실 철장 권세와 새벽별을 바라보라고 권면하십니다.
26절부터 28절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종교적 혼합과 거짓 가르침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진리와 순결을 지켜낸 이들에게 주님은 두 가지 상급을 약속하십니다.
첫째는 '철장 권세'입니다. 시편 2편에 예언된 바와 같이, 메시아가 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타락한 세상과 왜곡된 종교 시스템을 쇠막대기로 질그릇을 부수듯 철저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믿음의 절개를 지킨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온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둘째는 '새벽별'입니다. 새벽별은 하루 중 가장 짙은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가장 밝은 빛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성도들에게 주실 최고의 상급은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아무리 깊은 흑암의 밤이라 할지라도 새벽별이 떠올랐다는 것은 곧 어둠이 물러가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를 아침이 가까웠음을 보증합니다. 그러므로 심령 속에 새벽별 되신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은 세상의 어둠에 삼켜지지 않고 다시 오실 재림의 영광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 내면에 깃든 혼합주의를 분별하고 과감히 끊어내야 합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결여된 형식적 종교성, 내 편의에 맞춘 자기중심적 신앙을 말씀의 예리한 검으로 잘라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협을 요구할지라도 우리는 좁은 길을 택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둘째, 새벽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힘과 노력, 옛사람의 방식으로는 세상의 어둠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오직 광명한 새벽별이신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만 이 어둠을 뚫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찬란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신실한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핵심 요약 정리
역사주의적 예언과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교회는 중세 교황권의 확립(538년)부터 루터의 종교개혁(1517년) 전까지의 중세 암흑시대를 상징합니다.
성경 열람 금지, 마리아 및 성인 숭배, 면죄부 판매, 인간 사제의 중보 등 성경적 진리가 왜곡되고 제도화된 종교적 혼합·배도의 시대였습니다.
나타나신 예수님의 세 가지 형상 (문제에 대한 해답)
불꽃 같은 눈: 사람의 외적인 행위뿐 아니라 내면의 동기와 중심을 감찰하심.
빛난 주석 같은 발: 거짓과 불의를 짓밟고 공의로 정결케 하시는 심판의 권세.
하나님의 아들: 로마 황제나 교황(인간 대리자)이 아닌,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만이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자 참된 구원자이심을 선포.
칭찬과 책망 (남은 자들과 이세벨의 교훈)
남은 무리의 신실함: 핍박 속에서도 성경을 필사하며 진리를 전파한 왈덴스인, 위클리프, 얀 후스 등의 사랑, 섬김, 인내를 주께서 기억하심.
이세벨의 타협주의 책망: 당시 '상업 길드'의 우상숭배 타협을 정당화하고 십자가 없는 안일을 가르친 거짓 교훈('사탄의 깊은 것')에 빠진 배도를 경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과 교훈
철장 권세와 새벽별: 불의한 세상을 깨뜨리는 메시아의 통치 권세에 동참하게 하시며, 가장 어두울 때 떠오르는 광명한 새벽별(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재림의 영광)을 상급으로 주심.
적용: 내면의 자기중심적 신앙과 혼합주의를 말씀의 칼로 끊어내고, 오직 새벽별 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재림의 소망으로 승리할 것을 권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