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오해받을 때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할 때
그런데 바울의 사역 철학은 놀랍습니다.
“내가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계속한다”가 아닙니다.“하나님의 긍휼로 이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계속한다”입니다.
2. 2절 —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리라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복음 사역의 기본 원칙을 제시합니다.
①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린다
사람 앞에서만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② 속임으로 행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을 조종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③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
말씀을 자기 목적에 맞게 비틀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참된 사역은 사람의 양심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진리를 정직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3. 3–4절 — 왜 어떤 사람은 복음을 보지 못하는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전쟁이 등장합니다.
고후 4:3–4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바울은 복음을 단순한 지식 전달로 보지 않습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사탄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
복음의 중심은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탄은 사람에게 종교를 갖는 것은 허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읽는 것도 허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은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연구의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4. 5절 —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이것은 목회와 설교의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설교자가 전해야 할 것은
내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
내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내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
내 교단의 자랑이 아니라 그리스도
내가 아니라 예수님
입니다.
물론 경험과 교리와 성경 지식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결국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5. 6절 — 창조의 빛과 복음의 빛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말씀은 창세기 1장과 연결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어둠 속에 빛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영적인 창조에 적용합니다.
첫 번째 창조
어둠 → 빛
두 번째 창조
죄의 어둠 → 그리스도의 빛
따라서 구원은 일종의 새로운 창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도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그 빛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6. 7절 — 질그릇에 담긴 보배
고린도후서 4장의 가장 유명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두 단어를 기억하면 좋습니다.
보배
그리스도
질그릇
우리
당시의 질그릇은 값비싼 용기가 아니었습니다.
쉽게 깨집니다.
평범합니다.
보잘것없습니다.
바울이 자신과 복음의 사역자를 그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닙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7. 하나님께서 일부러 질그릇을 사용하시는 이유
바울은 그 이유를 말합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일부러 약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왜입니까?
사람이 결과를 보고
“저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셨구나.”
라고 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사역자의 약함이 반드시 실패의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8. 8–9절 —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네 가지 대조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 네 문장을 설교에서 그대로 살려도 좋습니다.
사방으로 욱여쌈
그러나 싸이지 않는다.
답답함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박해
그러나 버림받지 않는다.
넘어짐
그러나 망하지 않는다.
왜 가능합니까?
질그릇 안에 보배가 있기 때문입니다.
9. 10–11절 —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는 아주 깊은 신앙의 원리가 있습니다.
죽음 → 생명
자아가 죽어야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납니다.
내 뜻이 내려놓아질 때 하나님의 뜻이 나타납니다.
내 자존심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리스도의 온유함이 나타납니다.
내가 복수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그리스도의 용서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고난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나는 통로였습니다.
10. 12절 —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참된 목회에는 이런 면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자신의 시간과 힘과 눈물과 기도를 드릴 때,
그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전달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 우리의 생명사도의 희생 → 교회의 생명부모의 희생 → 자녀의 생명목회자의 눈물 → 성도의 회복
물론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과 동일한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희생을 통해 생명을 전달하는 원리는 닮아 있습니다.
11. 13절 —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
“기록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참된 증언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먼저 믿고,
그 다음 말합니다.
성경연구에서도 이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증언하는 사람”
이 되어야 합니다.
12. 14–15절 — 부활의 소망
바울이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우리가 앎이라.”
바울의 시선은 현재의 고난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부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15절: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사역자의 고난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13. 16절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4장 1절에서도 낙심하지 않았고,
16절에서도 다시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이것은 아주 아름다운 신앙의 역설입니다.
겉사람
점점 쇠약해집니다.
속사람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육체의 시계는 거꾸로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시계는 은혜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온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보다 내일 더 예수님을 닮을 수 있습니다.
14. 17절 — 현재의 고난은 “잠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바울은 고난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영원의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봅니다.
현재:
잠시 + 경한 것
미래:
영원 + 지극히 크고 중한 영광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난 자체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영광을 준비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15. 18절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마지막 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것이 4장의 결론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바울은 말합니다.
“아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
돈도 보입니다.
건물도 보입니다.
육체도 보입니다.
성공도 보입니다.
실패도 보입니다.
고난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면,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
부활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
는 지금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영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의 핵심 구조
이 장을 한눈에 정리하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① 복음의 빛
어둠 가운데 빛이 비친다.
↓
② 그리스도의 영광
예수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
③ 질그릇
연약한 인간에게 보배를 담으신다.
↓
④ 고난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한다.
↓
⑤ 그리스도의 생명
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
↓
⑥ 속사람의 새로움
날마다 새로워진다.
↓
⑦ 영원한 영광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고린도후서 3장과 4장을 연결하면
이것은 목사님께서 앞서 연구하신 고린도후서 3장과 연결할 때 더욱 선명해집니다.
3장
무엇으로 변화되는가?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
4장
그 변화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냄
↓
결론
그리스도를 바라본 사람은
그리스도를 닮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7가지 적용1. 낙심하지 말라
사역의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2. 숨은 죄를 버리라
사람에게 보이는 경건보다 하나님 앞의 정직이 먼저입니다.
3. 나를 전파하지 말라
사역의 중심을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 두십시오.
4. 내가 질그릇임을 인정하라
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5. 고난 속에서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라
고난이 나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게 하십시오.
6.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라
육체는 늙어가지만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7.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
오늘의 문제보다 영원한 나라를 크게 보십시오.
한 문장으로 정리
고린도후서 4장은 “연약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보배를 담으셔서, 고난 가운데서도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3장과 4장을 함께 읽으면 아주 아름다운 복음의 흐름이 만들어집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말씀을 기록하신다.
↓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본다.
↓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보배가 담긴다.
↓
고난 가운데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난다.
↓
세상은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본다.
↓
마침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간다.
고린도후서 3장이 “변화의 비밀”이라면, 4장은 “변화된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의 중심에는 한 분이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