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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실용국악예술원(구 한국대금성가단) 원문보기 글쓴이: 항상희망(조연호)
2011년 7월 8일 (금요일)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중국 연변에 있는 조선족교회에 대금찬양봉사하러가는 첫날이 밝았습니다. 열심히 연습하였으나 실수하지나 않을까하는 염려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한 회원님들께 괜히 죄송하기도 하고....같이하지 못함으로 인해 더 잘하여야겠다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전날 들뜬 마음으로 잠을 청했으나 쉬 잠이 오질않아 새벽01시경에 잠들었다.
아침6시에 일어나 반신욕과 사워하고 간단히 스프로 아침식사하고 최종으로 여행용가방에 가져갈 짐을 확인하고 8시에 아내에게 잘다녀 오겠노라 하고 나와 145번 시내버스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나왔다.
그런데 날씨가 우중충하였다. 부디 서울에서나 중국에서도 좋은 날씨를 주소서~~~~
- 사전에 남궁장로님과 김권사님과 공항버스6002번을 신답역에서 8시30분에 같이 타기로 약속하였슴.-
허나 김권사님께서 전화가 와서 145번이 너무 복잡하여 720번 타고 청량리에서 공항버스 탄다고하신다하여 그리하시라하고 난 택시로 신답역에 갔다.
도착하니 8시15분이었다. 기다리다 8시25분에 6002공항버스가 와 타고 인천국제공항으로 슈~우우웅~~~ 도착하니 10시 쪼끔 못되었다.
모임약속 장소인 C 로 가니 송장로님 내외분과 교수님,김정준집사님, 이교철장로님이 와 계셨다.
오시고 오시고하여 각자 환전하고 로밍하며 하다. 짐 부치고 등등... 출국수속 마치고 들어가서 또 자유행동하여 107번 게이트로 각자 이동하였다. - 중국남방항공 CZ688 비행기-
나는 최차환사진작가님부부와 같이 가장 빨리 107번 게이트로 갔다.
교수님도 중간에서 만나 같이 갔다.
게이트에 도착하니 11시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다른 분들은 오지 않으셨다.
하기사 비행기 출발시간은 13시20분이였다. 무려 2시간이나 여유가 있었으니 .... 기다리기 지루해 신문도 보고 T.V. 도 보고 잡담도 하고하다 하니 한 두분 들씩 오기 시작하였다.
12시가 넘으니 다들 오시었는데 갑자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출발이 지연된다고 ...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져 기다렸다.
-함께 대금찬양봉사하실분들(함께중국가신분들)-
남궁장로님 김윤자권사님부부, 송홍기장로님 전**집사님 부부, 김청극장로님 백미자집사님부부, 최차환사진작가님 김**님 부부, 김승칠장로님, 전명수장로님, 이교철장로님, 김재임교수님, 김정준집사님, 조연호집사.-
게이트로 들어와 비행기타고서도 안에서도 한참을 있다가 우리시각 오후2시15분에 이룩하여 출발하였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무려 1시간이나 연착하여 출발하였는데 또 기착지인 장춘공항의 기상악화로 착륙이 어려워 연길공항에 임시 착륙한다는 방송멘트..... I GO(내 비명소리) ...
연길공항에 임시착륙하니 중국 시간으로 4시10분 쯤었습니당.
-- 죽을 지경 임다.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그렇지만 어떻합니까.참아야지. 시간도 정확한지 모르겠슴다. 헷갈림니다. --
연길비행장은 비가 오지않았습니다.
연길에서 5시10분쯤 출발하여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만 장춘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입국수속 다 마치고 가방을 찿으니 비에 다 졎어있었습니다.
거기에 이광수집사님, 윤인호집사님이 소개한 아가씨(장로님따님)신혜인과 연변과기대 교환학생과 우리를 이동시켜줄 운전기사가 마중나와 계셨습니다.
박수로 서로 환영하고 비오는데도 관광버스타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때가 여기 중국시간으로 오후 6시쯤이였습니다.
원래 인천에서 13시20분에 출발 장춘비행장 14시10분(우리나라시각15시20분) 도착으로 2시간 걸리는데요. 무려 5시간이나 비행기를 탓네요.
도착 목적지인 이도백화까지 갈려면 서둘려야하므로 바로 출발하였습니다.
장춘비행장에서 바로 장춘-홍춘(?)고속도로를 타고 백두산이 가까운 목적지로 향하였습니다.
24인승 관광버스였는데 뒤좌석에 가방들을 실고 그 다음좌석들은 전장로님께서 수술 후이라 아직 몸이 불편하신 관계로 눟어가실 수 있게 해 주고 하니 자리가 꽉차고 한좌석이 부족하여 과기대교환학생(포항출신 대학4학년생)이 앞에 편하게 앉아갔습니다.
고속도로가 왕복 4차선이고 중앙 분리대는 나무와 꽃들로 분리시켜놓구요 우리의 고속도로와 별반 차이가 없이 좋았습니다.
차가 별로 없고 주변이 확 뚫려있어 참좋았구요. 공기도 좋았답니다.
-한가지 불편한거는 원래는 2시30분쯤 출발하여 느긋하게 풍경을 구경하며 고속도로를 탈수 있는데 넘 늦게 도착한 관계로 서둘려야 했던거구요, 또 하나는 날씨가 비가와서 구질구질한 거 빼고는 다 좋았답니다. 아 ~ 또 한가지 차 타는데 약간 불편한 것도 있었어용.^**^-
암튼 그리하야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모처럼 중국의 공기와 어슴프레한 비오는 풍경들을 보며 가다 배고픈 관계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려 밥먹고 가기로하고 휴게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오후8시 다 되었을 겁니다.
일단은 넓고 새건물로 깨끗하였고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밥과 반찬이 나왔는데 반찬은 두 가지인데 다 채소류인데 먹을만 했습니다.
향이 진한것도 있었는데 맛있었습니다.
탕수욕도 나왔는데 엄청부드럽고 맛있었다는 느낌이 납니다.
-모르겠어요 배가 고파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네 다섯시간이면 도착한다던 목적지는 나타나지않고 하염없이 가고 있었습니다. 어둠속에서 버스는...
처음의 그 설램과 기분좋음은 차츰 피곤과 지루함으로 변하여 잠을 청하고 조용해져 갔습니다.
나도 피곤하고 지루해 졌지만 잠이 오지않아 깜깜한 밖을 내다보며 언제나 도착할려나 도대체 지금은 중국 어데쯤 달려가고 있으며 어느곳일까 하고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습니다.
장춘을 벗어나니 비는 오지 앉고 흐리기만 하였습니다.
기냥 하염없이 산속을 달리는 기분이었습니다. 5시간이 지났는데도 차는 하염없이 달려갑니다. 나도 이제 정신이 멍해집니다. 한번 더 휴게소에 들렸는지 기억이 않납니다.
암튼 이광수 집사님이 이도백하는 백두산천지에 무슨축제기간이라 숙소를 구할수도 없고 주변숙박처도 만원이어서 다른데에 숙박소를 잡아났다고 그 쪽으로 간다하였습니다.
그런거야 우리가 어떻할 수도 없는거라 하자는 대로 하였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또 산속으로 하염없이 달려 갑니다. 버스는....
다들 피곤들하여 잠자고 잠을 청하고 하였습니다.
-중국사람들 금방 다 왔습니다는 보통 1시간이나 2시간이더라구요. 나중에 보니깐...-
새벽 1시30분쯤 되니깐 차가 멈춰서는데 이제 다 왔나보다 하고 내리는데 누굴 기다리더라구요 이광수집사님과 기사는 ... 주위가 깜깜하기는 한데 건물들이 좌우에 있고 7층정도 되려나 아직 상점 두 개가 문을 열어 놓고 장사하고 있더라구요.
조금있으니 자가용 한 대가 와 그차를 따라가니 한문으로 "상시여관"이라 간판불이 보이는 곳으로 가더니 여기가 묵을 숙소라합니다. - 띵~~휘잉~(머리가 멍해졌습니다.) -
그 때가 새벽1시50분쯤 되었습니다.
무려 깜깜한 밤을 8시간 정도 달려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냄새도 나고.... 4인실과 3인실과 2인실로 잤습니다.
나는 4인실에서 이교철장로님 김승칠장로님 김정준집사님과 같이 잤습니다.
우리나라 군대 병사들 숙소 생각하면 될걸니다. 우리가 잔 곳을... ^**^
07월 09일 (토요일)
참 이상하게도 새벽 4시(한국시간5시)도 아니되었는데도 훤한니다. 여기는...
그런 관계로 이교철장로님은 일어나셔서 세수하고 뭐하고 뭐하고.... 하는소리에 나도 5시가 못되어 일어나 오늘 백두산(장백산)천지에 갈때 입을 옷으로 바꿔입고 세수도하고 정리도 하고 등등하다 방밖으로 나왔습니다.
공기 하나는 참 신선했습니다. 우리나라 면 정도 되는 마을 같엤습니다.
여관은 단층인데 그냥 단독집이었습니다.
여관 밖으로 나오니 주위가 아파트도 있고 제법 큰 것 같엤지만 시골같은 냄새가 났습니다.
이교철장로님이 밖으로 나오셔서 자연스레 주위를 구경하려 함께 걸었는데 저쪽에 많은 사람들이 있어 그리로 가보니 새벽장이 서는 곳이었습니다.
잘 됐다 싶어 같이 구경갔습니다, 이장로님이 마침 카메라를 들고와서 새벽시장의 모습들을 찍으면서 구경하였습니다.
우리 5일장을 연상하면 됩니다. 더 시골스럽지만.....
여관으로 오니 다들 일어나고 하여 남궁장로님께서 아침밥 먹기 전에 예배 보시자며 마당에서 대금으로 찬양하고 기도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여관에서 아침식사를 하였는데 아침식사라야 새벽시장에서 사온 것들 - 빵과 꽈배기처럼 생긴 뛰김과 콩물과 닭고기 생선....그 다음 생각이 않남... - 이였답니다.
나는 다른 것을 먹을 수가 없어서 꽤배기처럼 튀긴 것을 콩물에 찍어 먹었습니다.
후에 알아 본 결과 우리가 잔 곳은 안도현? 이라고 우리나라의 군이나 읍 정도되는 곳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엔 면소재지 정도인거 같엤습니다.
천지를 일찍 가기 위해 서둘러 떠났는데 7시인지 8시인지 기억이 아리송합니다.
중국에서의 첫날밤은 이렇게 보냈는데 다들 3시간이나 4시간 정도 잤을거라 생각됩니다.
전날 집에서 아침8시에 출발하여 새벽2시까지 무려 19시간 정도를 강행군 했는데 다들 피곤이 풀리셨는지 모르겠어요.
다들 짐을 정리하여 차에 실고 오매불망 그리던 백두산 천지를 보러 차를 타고 가기 시작합니다.
온통 주위는 나무 뿐이고 숲속입니다. 간혹 가다가 집들인지 숙소인지가 보이긴 하였습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타고 가니 백두산 천지 들어가는 곳이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를 실고 온 버스는 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거기서 대금과 우클렐라만 들고 내려서 장백산이라 써 있는 천지 들어가는 문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거기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개별로도 찍고 부부끼리도 찍고 하다가 매표소에서 이광수집사가 단체로 표를 사고 점심밥도 각 개인당 하나씩 사고 만두도 샀습니다.
혼자 들면 무거우니깐 각자 하나씩 받아서 개인별로 가져갔습니다.
거기 올라가면 마땅히 먹을 만 한 곳도 없고 ....
천지에 매점이 있긴 한데 비싸기도하고 시간도 없다고 하여.....
입장료가 꽤 비싸다고 하는데 송장로님이 총무로 개인당 비행기 타는 값 외에 30만원씩 거출하여 공동자금으로 하여 거기서 경비를 쓴 관계로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버스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20분에서 30분정도?
한참을 올라가서 거기서 내리고 또 다시 천지로 가는 표를 사야했습니다.
이것도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데이... 기냥 무조건 따라만 갔어용.^**^
이때가 오전 8시에서 8시30분쯤되었을 겁니다.
표를 개인별로 들고 천지가는 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는데 토요일이라 그러는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게 질서있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몇 줄인줄도 모르겠고 VIP통로도 있고
단체로도 가는 이상한 통로도 있는거 같고 우리처럼 일반으로 가는 것과 함께 3군데로 나가서 차를 타는 거 같엤습니다.
가장 복잡한거는 우리가 서 있는 줄 이었는데 줄을 선다는 것 보다는 떠밀려 가는 겁니다.
그러다 쇠파이프로 통로를 만들어 논 곳에서야 일렬로 들어가게 됩니다.
누구하나 관계자들이 뭐란 사람도 없이 그렇게 진행됩니다.
그져 복잡함 속에서 이상한 질서가 있는거 같기도 하고 무질서 한거 같기도 하고 ....... 무질서 겠죠?
네번 꼬불꼬블하여야 비로소 차를 타게 되는데 무려 기다리는 시간이 2시간정도 되는거 같엤습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최차환사진작가님, 나, 신혜인자매, 교환학생,이교철장로? ? 여섯명 탄거 같은데 ? 잘 기억이 나질 않내요.
찝차였는데 길은 완전꼬브라진S자 코스인데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었습니다.
20~30분정도 꼬브라진 길을 한참을 가다 도착하니 이게 왼걸 안개가 자욱하고 추웠습니다.
혹시 비올 줄 몰라 비닐우비를 준비한 것을 입었고 나는 준비해 간 잠바를 입었습니다.
매점 옆에서 다 올라오기를 기다려 같이 천지로 올라 갑니다.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허나 너무나 안타갑게도 안개가 넘 많이 끼어 천지물은 물론이거니와 주위의 바위도 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반대 쪽 북한 땅은 아예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도 너무나 아쉬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 갑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차 타고 온 모든 관광객들은 안개 낀 천지를 보러 올라갑니다.
허나 천지는 우리들에게 멋진 자태를 보여 주질않았습니다.
꼭꼭 여민 옷자락으로 허리를 꽉 동여 멘 체 절대로 치마를 벗지 못하겠노라는 절개 굳은 여인내의 마음 같습니다.
너무나 아쉬워 최사진작가님은 그래도 여기저기 사진을 찍습니다. 멋진 천지 사진을 찍겠노라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못내 아쉬운지 안개만 자욱한 곳들을 그냥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댑니다. 내가 봐도 작품사진이 나올거 같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오늘 온 관광객 모두가 일말의 희망으로 혹시나 안개가 걷히지나 않을까 하고 기다리지만 역시나하고 하산을 하고 마내요
.
우리들도 넘 허전한 맘으로 대금으로 찬양이나 하자며 완장 찬 공안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금으로 찬양했습니다.
천지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안개 땜에 구경할 수 없기에 우리가 대금으로 찬양하는게 신기했는지 많이 관심 가져 주고 사진도 찍고 그러더라구요.
원래는 천지에서는 그런 거 할 수 없답니다. 그런데 공안이 양해해 준거는 안개 땜시 천지를 보지 못하기 땜에 허가 해 준거 같엤구요. 같이 서서 구경하더라구요.
암튼 그렇게 천지는 우리에게 굳게 절개를 지켜 우리를 실망시켰답니다.
우리에게도 뭔가를 암시하는거 같앴습니다.
그 깊은 뜻이야 하나님께서 아시겠지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가기로 결정하고 12쯤에 차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롤러 코스터 ...
내려와서 차에서 내려 다시 장백폭포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한 10분 정도 탓으려나?.....
장백폭포가 있는 곳에서 내려서 폭포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1시30분정도 되었습니다.
도시락이라야 밥하고 밥찬 두 가지인데 하나는 채소류이고 하나는 두부껍데기라고 하는데 정확히 무엇인줄 모르겠습니다.
배고픈 관계로 열심히 먹었습니다.
맛 있어서 먹는게 아니라 배가 고파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나서 함께 장백폭포를 보려갔습니다.
- 다 관광 후 연길까지 가야하는 시간이 빡빡한 관계로 오후 3시나 늦어도 4시에는 떠나야 연길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기에 1시간 정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므로 장백폭포에 최대한 가까이가서 볼수 있게 그 쪽으로 단체로 움직였습니다.-
나는 최작가님 사진 가방을 갖고가야 하기땜에 같이 행동을 해야 했는데...
최작가님은 마누라가 화장실 갔다고 잃어버림 어떻하나구.... 걱정이 ...
나는 단체로 먼저 폭포 올라간 사람들과 떨어져 최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장백폭포 않보고 마누라 기다린다고 합니다. 최사진작가님은......
여기서 기다린다고 합니다. 최프로 사진작가님께서... 열여 났습니다. ㅎㅎㅎㅎ ^**^
아마 단체로 올라가는데 같이 합류해서 갔을 거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 그러려니 하고 따랐습니다. ^**^
-ㅎㅎㅎ 난 예전에 한 번 와 본적이 있어 아니 가 봐도 괜찮아서 고집부리지 않았답니다. ^**^-
그래도 한 군데 있기가 심심하여 슬슬 올라가니 옆에는 온천탕이 있구요.
쪼끔 올라가니 온천물로 계란을 쪄 파는 데가 나오구요
- 온천물로 찐계란은 속 노른자 부터 익는다나 뭐라나-
내 사진도 찍어달라하구요.
-사진사와 함께하니 사진 많이찍어 좋았답니다. ㅎㅎㅎㅎㅎ-
그리하여 한 발 한 발 장백폭포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사진찍을 곳이 많은지 계속 사진찍으며 올라가더라구요 작가님께서 ㅎㅎㅎㅎ..... 난 그냥 따라만 갔어요.
그러다가 드뎌 큰일 냈습니당.
폭포에서 내려온 물살들이 하이얀 거품을 내며 흐르는데 그 풍경이 맘에 들었는지
거기가서 막 사진을 찍더라구요.
물론 일반 다른 관광객들도 사진을 찍고 있었지요.
괜찮은 작품사진이 나오는지 갑자기 엔돌핀이 상승하는지 폭포 있는 위에까지 올라가자면서 돌아서는 순간 아차 약간 발을 헛디드면서 넘어지는데 ...
- 내 눈에 그게 슬로우 비디오처럼 보였습니다. 한바퀴 돌면서 카메라 안다칠려고 앞으로 안고 ..-
난 한발 앞에 올라서 있었고요. 또 한바퀴 돌려고 하는데 그때 옆에 있던 중국?(조선족인지 중국사람인지 모름)아가씨가 재빨리 부축하여 큰 화는 면하였답니다.
챙~~~ 하는 파열음소리가 났었는데 카메라 확인해보니 렌즈 앞뚜껑에 약간 기스가 났더라구요.
난 그 찰라의 순간들을 그져 구경만 했지 뭐애요. ^**^
그 아가씨하고 같이 부축해서 안정을 되찿고 몸은 어떤지 카메라는 어떤지 살펴본 결과 다행히 카메라 기스난거 와 팔에 약간의 찰과상 외에는 다 괜찮았답니다.
그 아가씨에게 고맙다고 많이많이 말했는데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슴다.
이렇게 글로는 많이 썼지만 찰라지간이었답니다.
찍을 곳이 많은지 난 약간 앞에 가는데 최사진사님은 계속 사진찍으며 올라가는데 벌써 다 보고 단체로 간 앞 팀들은 내려오더라구요.
단체사진 찍자며 내려오다 거기에 서 계셨어요. 다들 기다리며...
이렇게 본의 아니게 민폐를 기쳤습니다.
그래서 걸음을 재촉하여 빨리 올라가서 단체사진도 찍고 장백폭포 까지 와서 개인사진도 찍고 장엄한 폭포사진도 찍었답니다.
그리하여 멋진 장백폭포 사진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답니다.
물론 최작가님 마눌님은 단체에 같이 합류해 유유히 구경하고 계셨구요.
요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습니다요.^**^
같이 내려오는데 먼저 도착한 팀들이 대금불고 있어서 같이 합류하여 대금부는데 오시던 관광객분들이 많이 보시고 관심가져주시며 사진도 찍고 하며 즐거워 했습니다.
아쉽지만 시간이 없는관계로 몇 곡 못하고 차타러 내려와야 했습니다.
- 한국분(여자분)이 나보고 어느교회에서 오신분들인지 물어보더라구요. 자기들도 선교하러왔다하시면서... 우리는 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국대금성가단으로 왔다고 하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장로님명함을 그 분께 주었답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번 오시라고 말했답니다.-
차를 타고 출입문이 있는 곳까지 와서 여기서 내리고 다 함께 우리차가 서 있는 주차장 까지 걸어 왔습니다.
이렇게 하야 장백산의 천지와 장백폭포 관광을 다 마치고 연길시로 향하기 위해 차를 타고 출발을 하니 오후3시 30분인가? - 잘 기억이 나질 않내용.-
가다가 중간 휴게소인가? 아님 상점(가게)인가?
장뇌삼 가게에 잠시 내려 휴식을 취하면서 화장실도 가고하며 하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주로 장뇌삼들이 많았고 기타 다른 것도 많았습니다.
난 중국의동북삼성 교통지도를 샀습니다. 우리나라 돈 1,000원이애요. 우리돈도 받더라구요.
3명정도 같이 삿습니당...
그외 분들은 별로 물건들을 사질 않은 것 같애요.
다시 차를 타고 가기 시작하엿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어스름하여지고 연길시가 가까워지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윽고 연길시내로 들어오니 이제사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밝고 환한 거 같았습니다.
한참을 시내로 들어가다 우리의 숙소인 한문으로 "금성대광(?)"이란 간판이 있는호텔에 들어갔습니다. 명함에는 별 두개가 그려져 있내요. 그때가 오후7시 쯤 이었습니다.
짐풀고 관광차는 보내고 방배정 받고 하면서 있는데
연길에 사는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냐고 ...
아빠와 같이 오신분들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그럼 상의 해 보고 연락 준다고 하고 일단은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녁식사는 어디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이광수집사에게 물어보니
아직 예약은 않했지만 내가 아는 여기 가까운 곳에서 먹을거라고 해서...
다름이 아니라 우리 딸과 사위가 저녁을 대접하고 싶어 한다며 하니
그렇게 하시라고 해서 송장로에게 말하니 그렇다면야 감사하지만 너무 폐를 끼친게 아니냐 하시길내 애들이 대접하고 싶어하니 상관치 마시고 대접 받으시라고 하고
최종으로 남궁장로님께 말씀드리고 딸에게 다시 전화하여 그렇게하기로 했다하자
연길에서 괜찮은 우리 한국분이 운영하시는 흥콩반점으로 오라고 하여 택시타고 식당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멘 먼저 나와 3명이 택시를 타니 이광수집사가 택시기사에게 중국말로 이야기해 흥콩반점에서 내렸다. 이렇게 아마택시가 4대는 움직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거기까지 중국돈으로 5원이니 우리돈으론 한 800원정도 되나? 모르겠슴다. ^**^
거기에 딸과사위가 마중나와 있었고 음식은 미리 준비하여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 택시로 오셨는데 이광수집사만 일이 있어 참석 못하고 먼저 가셨단다.
딸과 사위를 소개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답니다. 주인인 사장님도 소개 했답니다. 한국분으로 사위와 같은 한인교회의 안수집사님이며 연길에서 성공하신분이시라고 방송도 탓다는 이야길 들었답니다. ^**^
남궁장로님의 감사기도와 식사기도와 딸과사위와 나까지 기도를 해주시어 감사했답니다.
맛있고 배블리먹었다고 고맙다고 덕담도 해주시어 딸과 사위가 기뻐했답니다. 나는 호텔에서 가방을 가져왔으므로 사위에게 주었습니다. -딸이 가져오라는 몇가지 물건을 가져 왔으므로 -
너무 피곤들하고 하니 발 맛사지 받고 자면 어떠냐는 송장로님 말씀에 다들 좋다고 하여 사위가 좋은 곳으로 안내해 준다고 하여 또 택시를 타고 움직였답니다.
가까운 거리라 5원들었습니다. 이 때가 9시30분쯤 되었답니다.
우리말로 해도 다들 알아듣고 해서 큰 무리는 없었지만 사위가 그래도 중간에서 많이 애써 주어서 좋았답니다. 16명인데 다 함께 들어갈 방이 없어 14명은 한방에 들어가고 2명(촤차한사진작가님부부)이 한방에서 맛사지 받았답니다.
한 40여분 해 주는데 피로가 풀리고 온 몸이 혈핵순환이 되는 것 같고 아주 좋았답니다.
분위기도 좋았구요. 난 참 기분좋게 맛사지를 받았답니다. 덕택에 피로가 확 풀리는 거 같앴습니다.
전신 맛사지하신분들이 몇 있으셔서 그 외 발맛사지 하신분들이 먼저 끝나 먼저 갈때 나도 나와서 택시타고 딸집으로 자러 갔습니다.
아마 다들 기분좋게 맛사지 받고 그날 저녁은 자~알 주무셨으리라 믿습니다.
딸집에 와서 잠깐 이야기하다 샤워하고 잠을 청하니 거의 12시가 다 되었답니다.
아침에 6시30분에 일어나서 호텔로 가야합니다.
07월 10일(일요일)
아침에 훤하여 눈을 뜨니 4시도 아니되었습니다.
화장실가고 조금 더 눈을 붙일려고 다시 눟었지만 비몽사몽하다 다시 일어나니 5시 쯤이었습니다.
그때 딸이 일어나서 잠시 이야기하다 딸은 자러가고 다시 이거 저거 하다 6시30분쯥 사위가 일나서 아침기도하고 딸집에서 나와 택시를 탔습니다. 사위랑 같이 말입니다.
호탤에 도착하니 6시50분 호텔 휴게실에 이교철장로님과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좀 있다 7시가 되자 호텔 식당으로 아침식사하러 들어갔습니다.
회전테이블로 되어있군요. 식탁이 ...
가운데는 쌀 죽이라 해야하나 끓인밥이라해야하나.... 그런밥이구요.
가쪽으로 만두와 빵과 반찬이 ... 또 뭐가 있었나? 기억이 아리송합니다.
아~ 계란도 있었나? 아님 송장로님이 어제 사온건가??
저~ 쪽에 있는 거 먹고 싶으면 식탁을 돌리면 됩니당. 빙그르 ~~ ^**^
아~ 또 새벽시장에 몇 분이 갔다 오셨다는데 혹여 다음번에 오실 기회가 된다면 새벽시장은 꼭 한번 가보라고 적극 권하시네요. 송장로님이....
거기서 산 두리안이라고 한 과일을 가져 오셔서 나누어 먹었는데 보통크기의 수박만 하구요 겉은 거북선처럼 보쪽뽀쪽 나와있고 속은 박속에 강난콩처럼 생긴건데 냄새는 동~냄새가 나서 역겨워 못 먹는분도 있다는데 모두들 다 잘드셨구요. 나도 맛있었답니다.
이렇게 다들 식사를하고 있는데
하남교회에 같이 갈려고 과기대학생이 어제 기숙사로 가서 자고 아침에 이리로 왔습니다.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한답니다.
8시쯤에 시내버스를 탓는데 1원인가? 2원인가 그것도 모름니데이.... ^**^
암튼 중국에 와서 시내버스를 타본다는 것 또한 기억속에 남을 거 같습니다.
한 20분정도 타고 내려서 교환 학생 인솔하에 하남교회에 드디어 들어갔습니다. 큰 교회이네요. 성도 수가 한 이천명정도 된다하네요. 그 정도는 않될거 같은데....
약간 오래된 건물 같앴지만 넓었답나다.
본 예배당이 아닌 옆에 조그마한 예배당에서 연습을 하다 본 예배당으로 옮겨 정식으로 예배- 대 예배시간이 9시임.- 보고 대금찬양 시간이 되어 평소에 연습하였던 '살아계신 주' 약할때 강함되시네' 나 같은죄인 살리신' 이 기쁜날' 축복 송' 국약찬양메들리' '장로님의 풀피리' 이였습니다.
- 담임 목사님은 미국 가시고 사위라고하신 전도사님이 예배 인도하셨다 하네요. (후에 남궁장로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정확히는 모름)-
딸과 사위가 와서 예배도 보고 대금찬양도 보았는데 참 좋고 은혜로왔다고 하네요. ^**^
끝나고 사진도 같이 찍고 하다가 한인교회(자기들이 다닌교회)간다고 갔답니다.
예배도 끝나고 사진도 찍고 하다 점심을 여기서 먹었는데 밥과 오이냉채와 상추와 쌈장이 나왔는데 넘 맛있어서 밥을 다 먹었답니다.
특히나 상추가 넘 부드러워서 좋았구요.
쌈짱도 옛날 어머님들의 맛이였답니다. 당연히 12시가 넘었겠지요.
다 먹고나자 이광수집사님이 아시는분들의 자가용들을 대절해 놓으시고 영길교회로 가자고 하시어서 그 차들을 타고 연길교회로 향하였답니다.
연길교회에 도착하는 순간 와 교회가 참 크고 좋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총 성도가 만명정도 된다고 하니 엄청 큰 교회입니다.
깨끗하고 믿음들이 참좋은 교회같앴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지하1층 휴게실에서 한 30여분 쉬었습니다.
대금연습도 못하게 해서 연습도 못하고 담화만 하면서 휴식을 취했답니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2시30분 청년부 예배에 맨 앞줄에 착석하여 빡세게 설교를 듣고 예배 보왔습니다.
너무나 잠이와 나도 모르게 졸았답니다.
원칙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예배를 보더군요. 그러나 청년들이 열성적이였습니다.
여기서는 '살아계신주'와 '이 기쁜날' 두 곡만 불렀지만 호흥은 좋았답니다.
다 끝나고 담임목사님과 사진도 찍었답니다.
끝나고 밖으로 나와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 몇 방 찍고 '서시장' 가자고 해서 걸었는데 넘 무더워서 스트레스가 다들 많이 올랐답니다.
최사진작가님은 넘 무덥고 사진가방이 넘 무거워 약간 짜증이 나 나에게 가방을 주었는데 정말 무거웠구요.
교회에서 별로 멀진 안않지만 더위에 걸어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아니 했답니다.
이광수집사님은 우리들을 생각하여 사고 싶은 물건들을 거기서 사시라고 그리 가셨지만 별로 사고 싶은 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기냥 호텔로 가서 잠시 쉬다가 양로원에 가는 것을 원했지만 커무니케이션이 지대로 않된 상태로 그리된걸로 생각합니다.
암튼 가다가 다들 4시까지 연길백화점앞에서 만나자며 몇 그룹으로 나누어 갔는데
나는 최차환사진작가님부부와 이교철장로님과 교환학생과 이렇게 가게 되었는데
넘 더워서 일단은 시원헌 아이스크림이나 먹는데 들어가자고 하여 KFC(맞는말인가?) 에 들어 갔습니다.
근데 왠일입니까? 거반 다 거기에 계시네요. 다들 더워서 시원한 델 찿다보니깐 어쩌다가 다 거기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시원한 아이스크림과 시원한 쥬스를 먹었는데 누구가 산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물어 볼 수도 없어서 기냥 먹기 만 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자리를 빌려서 그때 자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한 30분 넘게 앉아 있다가 시간이 다 되어 나가고 하면서 우리가 조금 늦게 나갔는데 다들 호텔로 갔다고 하여 다시 호텔까지 걸어 갔답니다.
호텔에 가니 다들 거기 계셨고 우리가 가장 늦게 도착했구먼요.
바로 이광수집사님이 마련해둔 자가용들을 타고- (자가용4대?)- 양로원으로 출발 했습니다.
내가 탄 자가용주인은 이광수집사님과 친구분인지 아는 분인지 모르지만 의사라고 하시면서 예전에 한국 부산에서 일도하고 삼사년 지냈다 하네요. -50살- 누나들은 한국에 살구요.
자기는 여기에서 돈도 많이 벌고 살기도 좋고하여 한국에 갈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하네요 .
양로원있는 곳이 변두리인지 시내에서 외각으로 빠지기시작하네요.
주위가 촌처럼 정리가 아니되고 길도 1차선이구요 아파트는 많이 지어졌는데 빈집같고 똥 냄새가 한참 났어요.
그래서인지 그 아파트에는 입주를 안한다하네요.그래서 빈 아파트로 그대로 있대요.
주위가 청결하지 못하구요. 변두리인데 여기도 연길시라하네요.
한 삼사십분 달리니 목적지인 양로원 마을에 도착했어요. 오후5시가 조금지났을 거애요.
우리가 맨 먼저 도착 했는데 거기까지 시내버스가 다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주차장처럼 넓구요.
거기에 주차하였답니다. 마을인데 우리나라 유원지 같앴습니다.
의외로 깨끗했어요. 크지 않고 조용한 마을인데 놀러온 사람도 몇 팀있었어요.
여기가요. 연길시인데요 변두리에요.
옆에 산이 있는데 그 위에 천년된 소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보호관리하더라구요.
옆에는 그네도 만들어 놓아 그네도 타봤어요. 이 나무 보러 외지에서 오나봐요 .
천년생 나무보러 가는데 돈을 받던데... 얼마인줄 모르겠네요. 1원정도 받으면 많이받겠조 뭐.
참 마을이 한적하고 장소도 좋아 평온하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참 좋았어요.^**^
조금 시간이 있는관계로 주위도 둘러보고 했어요.
6시정도 되어 다 같이 조금 걸어서 양로원으로 갔습니다.
2층집이고 두 채가 양로원인데 일반 집들보다 깨끗하고 넓었답니다.
어떻게 운영하는지는 모르겠구요. 유로 양로원인지 국가에서 운영하는지...
그러나 내가 보기엔 개인이 운영하며 국가보조금 받고 운영하는 거 같앴습니다.
이거는 순전히 나의 추측입니당 ^**^.
-연길시 불로송양로원. 최 * * 원장 -
실내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 잠시 쉬면서 연습 조금하다가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 들어오시고 관계자 분들도 오시고 하여 인사하고 멘 먼저 혜인자매의 프릇으로 '나의 살던 고향은...' 멋지게 불렸답니다. 그 다음은 장로님께서 풀피리 불구요.
다음은 우리가 준비해간 찬송가들 불고, 아리랑, 도라지 불렀는데 모두 다 흥에 겨워 김권사님, 백 집사님, 촤차환사진작가부인등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춤추고 하며 한 마음이 되어
연속으로 아리랑불고 도라지 불고 하며 맘껏 즐겁게 흥겹게 잔치 한마당을 하였답니다.
그 와중에 최작가님은 단소로 청성곡, 칠갑산을 불러 많은 박수도 받구요.
이렇게 흥겁게 잔치 한 마당을 삼사십분 하였답니다. 모두들 즐거워하시고 만족해 하셔서 우리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답니다.
저녁밥을 여기서 먹었는데 국과 야채반찬과 밥인데 또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않납니다.
밥이 참 좋았던 것과 대체로 중국음식이 짠데 국이 삼삼하여 먹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밥 한그릇 다 비웠답니다. 평소에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먹는 밥상 그대로라 합니다.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와서 시원한 바람을 맛으며 휴식을 취하면서 어제 안개로 인해 천지를 보지 못한 관계로 다시한번 가면 어떻겠냐고 의견이 나와서 갑론을박하다 결론이 나질않고 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차를 타고 연길시내 호텔로 왔습니다.
호텔입구 휴게소에 모여서 최종적으로 남궁장로님께서 정리를 하셔서 기존 계획대로 하기로 결론지였습니다.
오늘 다시 한 번 발맛사지하러 가자고 해서 전부 좋다고 해 어제 갔던 맛사지하는 곳에 걸어서 갔답니다. 이광수집사님도 오늘은 같이 했구요. 최차환사진작가님부부만 그냥 쉬시겠다고 하여 나머지 분들은 함께 갔습니다. 나와 몇 분은 전신 맛자지 받았어요. 물론 좋았답니다. 피곤이 풀리구요. 한시간 정도 맛사지 받았던거 같앴어요.
난 다시 택시타고 오늘도 딸내집으로 잠자러 갔습니다. 택시기사에게 '쿵위엔'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려 탓답니다. 다 와서 U 턴을 해야 하는데 말은 우리말로 하고 손짓으로 하니 알아듣고 유턴하더라구요. 쿵위엔은 공원이란 뜻이랍니다. 오후 11시정도 되었을 겁니다.
07월11일(월)
잠자고 일어나 아침6시30분경에 가방들고 택시타고 호텔로 갔습니다. 택시 탈때 사위가 따라나와 호텔간다고 이야기해주었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텔식당에서 밥 먹구 모두 다 짐을 챙겨 관광버스를 탓답니다. 아침8시경에....
-그런데 새벽시장을 오늘 아침에 가셨는지 어젠지 도통 헷갈립니다. 대충 읽어주이소 ^**^-
연길이여!!! 안녕!!! 이제 가면 언제 한번 오려나?
도문으로 가는 길에 연길과기대 들러서 구경 - 김재임교수님 그림이 학생들 식당 벽에 다른 화가분들 그림과 함께 붙여 있어서 그림 감상하며 사진도 찍고 하였답니다. 모닝커피도 사 먹고 우리나라 골통품들이 복도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대충 봤습니다.- 하고
차를 타고 도문으로 향하였습니다.
11쯤에나 도문에 도착하였을 겁니다. 무슨 축제 기간이 아닌데 중국 여성분들이 전통중국복장을하고 단체로 춤을 추는 광경을 잠깐 목격했구요. 사진도 찍었답니다.
북한과 연결된 다리가 있었는데- 무슨 다리인지 이름은 모름 - 다리 중앙을 경계선으로 하여 북한은 파란색 중국은 빨강색을 다리에 칠해놨어요. 중국쪽에서 중국 경계선까지 가는데 돈을 받더라구요. 물론 군인인지 경찰인지 지키고 있구요. 거기까지 가기로 했는데 돈을 너무 비싸게 받아 그냥 포기했답니다. 거기까지 간다는게 큰 의미도 없구요.
북한과 중국과는 걸어서 왕래가 가능하구요. 차로도 왕래하더라구요. 허가를 받겠지만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현실이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기념품가게들이 있어 구경하고 물건도 사고 그려셨나봐요.
선착장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탓는데(잠깐 이동함) 남궁장로님이 무슨 기념품을 샀는데 우리돈으로 이만원을 주었다나 뭐라나? 권사님은 장로님께 비싸게 주고 삿다며 뭐라 하시며 반품해야 된다며 나 보고 같이 상점에 가자하여 차에서 내려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물건과 바꿀려고 고르고 있었는데 마땅히 맘에 드는 물건이 없는 관계로 망설이고 있을 때, 전명수 장로님께서 샀던 물건을 몽땅 반품한다고 가지고 들어왔답니다.
알고 봤더니 물건 산 후 화장실(사용료1원)갔다 나오다 그 가게에 들어가 같은 물건 가격 물어보니 저쪽 가계에서 50원하던걸 20원 한다나뭐라나. 그래서 거기서 물건을 사고 와서 여기서 샀던 물건 전량 반품 해 달라고 왔답니다.
그런데 여기 상점 주인이 순순히 반품해 주겠습니까? 그러한 관계로 반품 해 주라. 반품 못 받는다 옥신 각신하며 우리도 같이 거들면서 우리 것(남궁장로님이 산물건)도 반품해주라 너무 비싸다하고 주인과 옥신각신하고 있던 차에 이광수집사님이 오셨답니다.
차 타고 가야하는데 오지않고 있으니 오신거지요.
이광수집사님이 반품 받아 주라고 주인에게 강하게 말하니 주인은 그렇게 못하겠다 산 물건을 왜 반품하느냐하고 하며 결국은 중국돈 300원주고 산물건들을 반품은 못하고 100원을 받아 냈답니다. 남궁장로님이 산, 거울 두 개도 실강이 한 결과 결국은 반품하고 이만원 거슬러 받았답니다.
내가 전장로님한테 그랬었거든요. 차타고 오면서....
기념품을 사거든 가계주인들은 가이드 없이 온 우리한국사람만 보면 가격을 두 배 이상 부르니 무조건 반값으로 깍으라고 하였는데... ^**^
선착장으로 이동하여 사진 찍다가 나룻배 타기로 하고 선착장에 내려가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두망강 나룻배를 탓습니다. 나룻배라고 노로 젖는게 아니구요. 모타로 간답니다.
-배가 적어서 한 배에 우리 인원이 다 탈수가 없어 부부팀과 싱글팀으로 나누어서 탓답니다.-
이삼십분 탄거 같엤어요. 다리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건데요.
강물이어서 최대한 북한쪽으로 붙여서 배를 몰아 주십사 선장님께 부탁했더니 북한땅 가깝게(삼사미터정도) 까지 갔었답니다.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같은 동족, 같은 나란데 지척에 두고 가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선착장을 뒤로하고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갔답니다.- 종가집- 12시정도 되었겠죠. 점심시간이라.
원탁에 앉아 냉면과 콩국수 먹었답니다. 남궁장로님께서 사신다하여 감사하게 먹었답니다.
무척 맛있었습니다. 콩국수도 참 맛있었습니다. 나만 맛있다고 그런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중국 돈 15원이라고 들었구요. 우리돈으로 하면 2,500원.....
이렇게 배도 채우고하여 윤 동주시인 생가쪽으로 차타고 가기 시작합니다. 두만강을 옆에 끼고 계속 밑으로 내려갑니다.
당연히 옆으로 두만강이 보이고 북한 땅도 보이겠죠? 북한 마을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어느정도 가는데 북한쪽에 역 인가? 무슨 건물에 사진이 걸려 있어 카메라로 찍어 확대해 카메라로 보니 김일성 사진 같엤어요. 또 얼마 가니 북한쪽 산에 글씨가 크게 써 있어 육안으로 볼수도 있었는데 전체 문구가 생각이 나질 않내요.
계속 내려가다 용정으로 차가 들어가 윤동주시인이 다닌 중학교에 들어 갔답니다.
개별로 사진찍고 교실에도 들어가고 안내원 설명도 듣고 -우리팀 외에 한국에서 온 한 팀 더 있었음- 구경구경하다가 -삼사십분 구경하였읍니다.-
다시 차를 타고 윤동주시인 생가로 향하였답니다. 삼십여분 차 타고 가니 이윽고 윤동주시인의 생가 팻말이 조그마하게 길가에 꼿혀 있었습니다.
그리로 들어갔답니다. 주위에 시골 집이 뛰엄뛰멈 두서네 채 밖에 안보여요.
본체와 옆에 조그마한 사랑채 이렇게 있구요.
조금 앞에 나와서 교회건물이 있는데 102년 됐답니다.
교회내부에서 안내요원 설명을 듣고 사진도 찍고 안과 밖을 요모조모 구경하였답니다.
조금은 숙연해 지더라구요. 이 때쯤이 3시 정도인가 되었답니다. -시간개념이 자꾸 히미해져 갑니당^**^-
차를 타고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계획대로라면 일송정에 가야합니다만, 시간이 촉박하여 아니가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장춘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답니다.
이광수집사께서는 장춘까지는 따라 갈 수가 없고 연길쪽에서 내리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차는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데인지는 전혀 모릅니다.
옆에는 주로 옥수수가 넓게 많이 심어졌구요. 논도 많구요.
한참을 가니 이광수 집사님 왈 여기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하는 겁니다.
농촌 마을이더라구요. 19살까지 고향에서 살았답니다.
조끔 더 가니 이광수 집사님이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라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더라구요.
요런저런 이야기하다. '저녁은 내가 대접하겠습니다'. -이광수집사님말씀- 하고 한참을 달려 갑니다.
우리나라의 시골길처럼 일차선 도로입니다. 주위는 논들이 많았구요. 옥수수밭도 있었답니다. 한참을 달리니 우리나라 읍정도 되는곳에 들어와서 거기에 멈추었습니다.
암튼 어디인줄 모르겠습니다. 한 오후4시30분 정도 되었으려나? 저녁먹기는 이른 시간이지만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양꼬지 먹는다 했습니다. -중국에 오면 꼭 한번 먹어보라는 음식이라나 뭐라나. -
한참 있으니 쇠코챙이에 양고기를 끼워서 가져오더라구요.
스테인레스로 만든 직사각형으로 된 것 안에 숯불이 있어 그 위에 꼬지들을 얹져 구워 먹는답니다.
나는 처음 먹어본 거라 어찌할줄 몰라서 그냥 혜인양과 김승칠장로님이 구워준 것을 낼름낼늠 먹기만 했답니다.
소스로는 고추씨 가루와 또 무슨가루 섞는거(내 생각임)와 반찬 하나가 전부구요.
밥도 없이 양고기꼬지만 먹었답니다. 무지하게 맛있었습니다.
나는 25개 먹었답니다. 콜라도 먹으면서..... 배부르게 먹었답니다.
이광수집사님과는 여기서 헤어지고 ? 기사와 우리만 이제 목적지인 장춘으로 가야합니다.
그래도 중국말을 할 수 있는 혜인양이 있어 다행이었답니다.
이광수 집사님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고생 많이했습니다.
악수하고 덕담하고 박수치고 등등.... 헤어지고.....
드디어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기 위해 장춘으로 차는 가기 시작합니다.
오후 5시가 쪼금 지났답니다. 그런데 여기 지명을 알아야 했는데 깜박하고 물어보질 못했어용.^**^
일반도로를 조금 더 가기 시작하다가 장춘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하였답니다.
밖은 이미 깜깜하여 지고 하염없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중간중간에 밖에는 비도 옵니다.
어디쯤인가 휴게소에 섰습니다.
화장실가고 잠깐 몸도 풀고 하다 다시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합니다.
5시간 정도 타고가면 도착이 11시쯤 되려나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쉬는 사람은 쉬고 자는 사람은 자고 하다하다 이윽고 장춘에 들어섰습니다.
정말로 11시쯤 되었내요.
기사도 우리가 묵을 숙소를 모른지 핸드폰네비를 찍고 보며 가는데 시내를 두바뀌 도는거 갔내요. 목적지 호텔에 도착하니 11시30분 정도 됐답니다.
'장춘객원병관' 중국한문을 내멋대로 읽은 겁니다. 호텔인데 별이 3개이내요.
2인실로 다들 잠자는데 나는 관광버스기사와 짝이 되어 한 방에서 잤답니당. ^**^
물도 사먹나봐요.
기사가 물? 해서 없다고 했더니 나갔다오더니 한병사오더라구요. 그렇게해서 샤워하고 잠을 청하니 12시가 넘었답니다.
07월12일(화)
아침에 눈을 뜨니 또 4시 정도 되었답니다.
잠이 않와서 가방 싸고 간단하게 세수하고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구경했답니다.
시청도 있고 기차역도 있는게 같고 암튼 밖은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남자 옷들은 노동자들인지 다 허름했답니다.
한 참을 기냥 그렇게 이리저리 구경하고 하다 호텔로 들어가 방으로 가는데 기사가 나오더라구요. 서로 말이 잘 안통하니 웃음으로 대신 인사했답니다. 그래도 하룻밤 동거인인데요.^**^
6시가 다 되어가자 가방들고 밑으로 내려 갔습니다.
오시고 오시고 하여 밖으로 나와 밥 먹을 때를 찿으니 마땅이 먹을 때가 없는데 길거리에서 할머0니가 파는 먹을 것을 몇사람은 사 먹었답니다.
않먹는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답니다. 6시 30분쯤 차를 타고 장춘 비행장으로 향하였답니다.
- 아~ 참 신혜인 자매는 여기서 상해까지 열차타고 가야한다며 친구를 ? 여기서 만나야 한다며 호텔에서 헤여 졌답니다.(우리나라 KTX 급-6시간 걸린다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재미있었구요.
인사하고 헤여졌답니다. 이젠 만나기가 힘들겠지만 한국에 온다면 광신에 들려주고 연락도 주고하세요. 우리 카페에도 들려주어 자주 소식도 전해주구요. ^**^ -
07시 쯤에 공항에 도착했는지 어떤지 모르겠구요. 여기서 버스기사와 헤여졌답니다. 수고했구요 감사했습니다. 안녕히가세요. ^**^
공항 안으로 들어가 출국 수속을 밟으려하니 짐부치는 곳이 아직 업무를 보지않구요.
08시되어야 한다고 그러내요. 한 20분정도 기다리다 가서 줄서서 수속 절차를 밝고 들어가서 해당 게이트로 가서 잠간 기다리다 비행기에 드디어 올랐습니다. -9시30분 남방항공-
중국이여!!!! 안녕 !!!! 다음에 또 만나요. ^**^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주어 맛있게 먹었답니다. 아침을 안먹어서 배고픈 관계로...ㅎㅎㅎ ...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11시30분 아니 12시 30분인가?
각자 입국 수속 마차고 짐 찿고 나와서 잠시 모여 기도하고 서로서로 악수하며 각자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나는 6002번 공항버스 탔는데 여기에 남궁장로님김권사님, 김재임교수님, 김승칠장로님, 나 이렇게 탓습니다.
장로님과 권사님과 교수님은 종로 3가에서 내리고 나와 김승칠장로님은 청량리에서 내려
나는 720번 시내버스타고 집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오후 3시30분쯤인가? ^**^
이렇게하여 한국대금성가단은 중국연길에 있는 교회에 대금찬양봉사를 4박5일간 하고 왔답니다.
국외에서 대금찬양봉사한다는게 쉽지않다는 걸 이번에 실감했습니다.
조금 더 봉사정신과 실력을 향상하여야 하며 막연히 그냥 국내처럼 봉사한다는 생각이나 여행한다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했다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비로 가야하기 때문에 물질도 무시못하구요.
시간적으로도 맞지 않을 수도 있구요. 각자가 건강해야만 하구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닌까요.
단체로 움직여야하니까 서로 조심해야 할 것들도 있구요.
무엇을 하던 조금씩 문제는 있는거니깐요.
그나져나 힘들었지만 많은 은혜 받고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혹여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다 참여할 수 있었슴하는 바램을 하여 봅니다.
무더운 여름이군요.
더운 날씨에 건강 챙기시고 즐거운 하루하루되시옵소서!
한국대금성가단원님들 화이팅입니다.
홧~~~~ 팅!!!!
PS ; 약4일에 걸쳐 쓰자니 쪼끔 힘이드네요. 문법적으로도 틀리는 곳이 많고 문장도 서툴고 어법도 틀리고.... 에고 이제 고칠 힘도 없어요. 그냥 즐겁게 봐주세요~~~용.
2011년 07월 18일 . 조 연 호 집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