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에 대한 나의 생각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경륜, 그리고 심판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불의와 불법이 커지는 것을 보면 종말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리라는 믿음이며 기대이며 확신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다른 신학적인 논쟁과 마찬가지로 종말론도 하나님에 대한 건강한 믿음으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매우 다양한 이론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천년왕국론이 바로 그것이다. 종말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성경해석의 과정에서 도출되는 이유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창조와 새 창조라는 매우 간단한 도식으로 요약된다는 점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그것을 주관하신다. 그리고 그 주관과 통치에 인간을 참여하게 하셨다. 그리고 인간의 범죄로 피조세계가 어지러워졌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이 피조세계를 회복하시려고 인간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처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마침내 이 모든 일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환상을 소망으로 보여주신다. 부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게 임한다. 그것이 성경 이야기의 핵심이다.
종말론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회복하시고 바로잡으시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은 부활과 재림,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 모든 이야기는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 있게 하려는 하나님의 격려이며 약속이다. 무게중심은 언제나 현재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무게중심이 미래로 치우치게 되면 언제나 문제가 생긴다. 그것이 현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는 순간 바다에서 배가 전복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재림의 약속인데 그것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소임을 다하라는 격려의 말씀이다. 부활에 대한 약속은 사망과 썩어짐이라는 절대절망 앞에서도 절망하지 말라는 격려의 약속이다. 천년왕국은 고난의 시간을 충분히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 기간동안 왕노릇할 것이라는 격려의 말씀이다. 물론 새 하늘과 새 땅도 이 왜곡된 세상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그림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그림이나 판타지는 현실을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하는 그림이며 비유이며 상징이다. 그리고 그 판타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소망을 잃지 말고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는 권면으로 준 편지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나오는 바울의 편지는 휴거(들림받음)로 오해될 때 현실에서 도피하여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양산한다. 바울이 권면하고자 한 바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새 하늘과 새 땅, 부활과 재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그것을 변혁하기 위하여 노력하라는 희망과 격려를 목적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현실을 잊어버리고 장차 다가올 일에만 매몰된다면 우리는 메시지와 정반대의 길을 따르는 셈이 된다. 이것이 종말론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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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영상:
성경은 왜 지금이 말세라고 하는가?
- 2023년 11월 27일 주일 설교
https://youtu.be/LdE_52BdYHQ?si=9r_kuLXI9FiMio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