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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시집
내 마음속의 오동나무
■ 책 소개
이현정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 마음속의 오동나무』(신국판 96쪽 10,000원)이 <도서출판 두엄>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총 4부로 나뉘어 49편의 시와 최명표 문학평론가의 해설(장소애와 소리의 변주)을 싣고 있다.
■ 시인의 말
마른풀 덤불 속에서 할미꽃 보다
이쁘게 피고 싶어서
엷은 눈꺼풀 속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던
엄마의 얼굴과 배밀이 하던 날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을 열고
하늘 위 땅에 비단강 흐르고
추워 보인다고 마음에 이불을 덮었을 때의
그 축축한 날에도 봄은 힘들게 왔지만
얼어붙은 흙의 무게를 누르고
코끝이 빨개지도록 또 쓰고
또 쓰고 싶은 날이 잦아지면
지금처럼 뛰어가고 싶은 날이 오리라
별똥별이 서쪽으로 떨어지는 밤에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날들은
나를 한 뼘씩 키우리라.
■ 표제시
내 마음속의 오동나무
광주시 학동 ×××번지
앞마당, 마루에 앉으면 바로 보이던
늠름하게 장군처럼 서 있던 오동나무
아버지는 네 살 큰딸 무릎에 앉히고
오동나무의 나이 세는 법 가르치셨다
소녀는 아홉 마디까지 센 뒤 옛집을 떠나
더 그의 나이를 셀 수 없어 슬펐다
저놈을 키워서 너 시집갈 때 농을 해 줄 거여
옛집에는 아름드리 늙은 오동나무가
마루 끝 우두커니 앉아
손가락질로 마디 세던 어린 소녀를
수많은 마디 수를 늘리며 기다리고 있을까
나이 먹은 소녀 가슴속에는
영원히 낡지 않는 오동나무 농이 산다
아버지가 손수 먹줄 튕기고 톱질하여 만드셨을.
■ 표4글
이번 시집에서 이현정은 각별한 장소애를 드러내었다. 앞서 상재한 시집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남대천의 상류 눈내”(「눈내」)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다. 장소는 공간의 한 곳을 특정한 범주이다. 공간이 장소로 좁혀지면 애정의 강도가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장소는 언제나 특정하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이 수시로 애향심을 표출하거나 애국심으로 단결하는 배경이다. 장소애는 그곳에서 생장한 이들에게 끈끈한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고,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꾸려 나가고 수호할 의지를 다진다. 장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도시처럼 무시로 개발 광풍에 휩싸이는 곳에서는 장소애가 발아하지 못한다. 그 장소는 자본에 의하여 점령되고 거세되고 무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결속력이 약하고 장소에 대한 사랑이 얕다. 외려 그들은 장소를 자주 이동하는 것이 돈벌이에 효과적인 줄 알기에, 자신의 삶터가 어서 개발되어 새로운 장소로 바뀌기를 갈망한다.
- 최명표(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 해설
장소애와 소리의 변주
―이현정 시집 해설
최명표 문학평론가
1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소리를 낸다. 즉, 생명체가 소리하지 않거나 소리내지 못한다면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따라서 소리는 속에 꾹꾹 쌓아둘 게 아니다. 소리는 반드시 밖으로 나와야 제 기능을 수행한다. 이 점에서 소리는 내면화된 담화로서, 생각의 양태를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어린 애들에게 네 속에 있는 말을 해 봐라고 채근하고, 말 못하는 짐승의 몸짓을 보고 병후를 판단하는 것도 죄다 소리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경륜에서 우러난다. 그들은 소리가 내포하고 있는 생각의 모습이 궁금했던 것이다.
소리는 날마다 밤마다 충만하여 우주를 제 빛깔로 채운다. 그러므로 소리를 주의깊에 들을 양이면, “입 속에 남은 커피향”(「도들새김」)을 음미하듯이 고요해질 일이다. 그러고 나면 소리가 “늦겨울 햇살 닮은 미소”(「노랑구름, 봄」)를 머금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소리가 ‘커피향’과 ‘미소’로 변주를 거듭하는 사이에 한 편의 시가 놓인다. 시의 자리는 그와 같이 맛있고 볼만하다. 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집으로 이현정의 두 번째 시집을 들 수 있다. 가을비망록에 이어 출간한 이 시집에는 그녀가 “아름다운 소리”(「빛의 노래」)를 채집한 흔적이 역력하다.
2
이번 시집에서 이현정은 각별한 장소애를 드러내었다. 앞서 상재한 시집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남대천의 상류 눈내”(「눈내」)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다. 장소는 공간의 한 곳을 특정한 범주이다. 공간이 장소로 좁혀지면 애정의 강도가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장소는 언제나 특정하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이 수시로 애향심을 표출하거나 애국심으로 단결하는 배경이다. 장소애는 그곳에서 생장한 이들에게 끈끈한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고,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꾸려 나가고 수호할 의지를 다진다. 장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도시처럼 무시로 개발 광풍에 휩싸이는 곳에서는 장소애가 발아하지 못한다. 그 장소는 자본에 의하여 점령되고 거세되고 무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도시인들은 시골 사람들보다 결속력이 약하고 장소에 대한 사랑이 얕다. 외려 그들은 장소를 자주 이동하는 것이 돈벌이에 효과적인 줄 알기에, 자신의 삶터가 어서 개발되어 새로운 장소로 바뀌기를 갈망한다.
그와 달리 “개약골 앞 징검다리”(「친구」)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촌사람이나, “라제통문에서 벌한마을까지 동생 손잡고”(「아름다운 길」) 걷던 소녀는 장소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장소의 변화가 친구와의 만남을 가로막고, 동생과의 추억을 삭제할 줄 알기에 산천이 의구하기를 소망한다. 그들에게는 도회지 사람들이 추구하는 물질주의적 사고방식보다, 구성원들끼리 더불어 사는 공동체성이 귀하다. 그렇기 때문에 “손가락질로 마디 세던 어린 소녀”(「내 마음속의 오동나무」)는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더 먹은 나이”(「아름다운 길」)가 되어도 고향이 예전의 모습으로 상존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밀짚모자 눌러 써 표정을 알 수 없는 농부”(「잡초원」)가 “땅속 깊은 작은 숨소리”(「귀여운 봄」)를 들으며 “그리움의 씨앗”(「그리움」)을 파종한다. ‘농부’가 뿌린 ‘씨앗’은 그곳을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의 ‘씨앗’이고, 그들이 행했던 “핀 따먹기 땅 뺏기”(「보호수」)의 놀잇소리가 굳어진 ‘시의 씨앗’이다.
겨우내 동무들과 지치던 얼음장 쩡 쩡
번개 치듯 장군 호령 소리를 내며
눈 녹은 냇물에 둥실둥실
몸을 싣고 흘러가고
냇가 버드나무 힘차게 물을 빨아올리면
나물 캐던 무딘 칼로 잘라서 비틀어도
까르르까르르, 버들피리가 된다
들이 길어서 진들,
봄 합창 닮아가는 아름다운 산골동네
봄노래를 불러내는 내 詩의 씨앗이여.
―「진들의 봄」 전문
‘진들’은 소리만 들어도 정겹다. 그 뜻이야 부연할 것도 없이 들이 길다는 뜻이다. 그런 곳에 위치한 마을이름 중에는 아예 그것을 동네명으로 삼은 경우가 많다. 아니면 긴 들을 열망한 나머지, 협곡에 자리했으면서도 진들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산도 없는 마을에서 등 뒤의 둔덕을 큰 산이라고 보고 마을 이름을 대산으로 삼은 경우도 있다. 두 경우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승하여 지형적 특징을 무시하고 작명한 사례이다. 한편 들도 산지와 평지에 따라 길이나 크기가 달라지니, 들도 들 나름이다. 평야에서 들판이 길다면 앞뒤로 휑한 곳이지만, 산악지대의 무주에서 들이 길다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은 곳이다. 앞뒤로 산이 막힌 사이로 난 긴 들판에서 사는 사람들이니 서로 돕고 어울렁 더울렁 얽혀 살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마을에 사는 이라면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 찬 마음”(「기도」)을 지녔을 법하고, 시를 쓰는 이라면 시작품에 쓰인 시어끼리도 화목할 것 같다.
이현정의 시가 바로 그렇다. 그녀의 위 시만 해도 어려운 어휘나 첨단의 비유가 없어서 쉽게 읽을 수 있다. 이현정의 시가 지닌 강점이야말로 그처럼 시적 기교가 난삽하거나, 난해한 언어로 해석을 훼방하지 않는 점이다. 그것은 그녀의 시어들이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채취된 것이자, 온몸에 아로새겨진 질료인 줄 알려준다. 그래서 그녀의 시편에는 관념어나 추상적 표현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예를 얼른 들자면, 그녀는 “동작이 틀려서 즐거운 저녁 운동”(「저녁 운동」), “청년도 노인도 아닌 어중띠기 인생”(「참 좋은 시절」), “목마르지 않을 샘물”(「첼로」), “가을빛 상념에 젖은 여인”(「코사지」)처럼 별도의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비유를 애용한다. 거기다가 “첫 모금에 쓰다고 인상 쓰고/두 모금에 달달함을 느끼고/세 모금에 입꼬리가 올라간다”(「참이슬」)는 시까지 더해 보면, 이현정의 시가 철저히 실제적 생활과 괴리되지 않은 줄 목도하게 된다.
위 시의 전편을 흐르는 정조는 마을예찬이다. 시인의 유년기 추억이 소환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현재의 조건을 찬양하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러는 중에도 변함없이 시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것은 소리이다. 예를 들자면, ‘쩡 쩡’, ‘호령 소리’, ‘까르르까르르’ 등은 시가 명랑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깨동무하며 정성껏 돕는다. 세 소리는 힘을 합쳐 진들의 들판을 진군하며 “질투쟁이 바람”(「연」)의 기세마저 꺾어버린다. ‘들이 길어서 진들’이므로 소리가 바람을 물리친 여운도 길 터이다. 그와 같이 소리는 공간을 가로지르며 거칠 것 없이 음역을 확장한다. 그에 힘입어 시인이 뜻하였던 ‘진들’은 ‘아름다운 산골동네’가 된다. 이현정이 그곳에서 ‘시의 씨앗’을 채취하는 것은 가외의 소득이다. 이 점은 그녀의 시가 고답적이지 않고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녀가 끝부분에 ‘봄 합창’과 ‘봄노래’를 장치한 것은 둘이야말로 ‘진들’이 생산한 소출, 곧 자신이 자연에서 얻은 시편이라고 못박아 놓은 것이나 진배없다.
3
월터 옹은 구술문화가 소리로 매개된다고 설파하였다. 다 알다시피, 소리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세상의 온갖 소리는 순식간에 존재를 증명하고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소리는 청자가 기대하건 아니건 간에, 필연적으로 화자의 개입을 불러온다. 다시 말하면, 소리하는 자와 듣는 자가 없으면 소리는 우주 중을 떠도는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는 화자와 청자를 맞대 놓고 동시성을 구현한다. 그것은 지금-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화자와 청자를 음향공간의 중심에 두고 오감을 동원하여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라고 요구한다. 물론 청자가 소리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런다면 소리는 허공으로 산화되고, 청자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둘이 소리를 매개로 상황을 공유하여야 비로소 소리의 진가가 빛을 발한다. 청자가 개입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발화상황에 소리가 개입하는 셈이다.
소리는 방향성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속성을 갖고 있다. 오감 중에서 청각이 무시당하지 않는 소이가 거기에서 비롯된다. 어느 감각도 소리처럼 무한대로 세력을 확장하지 못한다. 물론 소리 역시 분명히 한계영역을 안고 있다. 그렇지만 빗방울이 “콕콕콕 코코코코코코콕……”(「그 여자의 손가락」) 사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는 “표정 없이 졸고 있는 작은 에드벌룬”(「까치밥」)마저 제 할 일을 잊고 소리에 정신을 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촉각은 친밀성을 증명하기에 적합하고, 시각은 정확성을 드높이기에 알맞다. 그에 비해서 소리는 주변 환경과의 삐걱거림보다는 어울림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이웃을 불러 모은다.
단단한 껍질 속에 좁은 방 한 칸 비워
먼 바다를 불러와 시원하게 모두었네
밀어내려고,
물듦과 번짐으로 갈매기와 구름으로
그리움의 호흡으로 가득히 가두어
다시 바다로 밀어내며 기다리네
노래하고 싶어서 지저귀고 싶어서
수평선 닮은 미소로 밀려와 주시기를
정갈하게 손 모으고 기다리옵니다
―「오카리나」 전문
외래종 휴대용 악기가 자아내는 소리는 ‘그리움’이다. 소리는 ‘오카리나’의 ‘단단한 껍질 속’에서 ‘물듦과 번짐’으로 공기 중으로 휘발한다. 오카리나 소리는 하늘로 올라가 “고양이 발자국 소리 같던 빗방울 소리”(「빗방울 전주곡」)로 되돌아온다. 소리의 선회에 따라 ‘그리움의 호흡’은 길어지고, ‘빗방울 소리’는 ‘수평선 닮은 미소’가 되어 ‘먼 바다’까지 퍼져나간다. 이처럼 가냘픈 오카리나 소리가 사방으로 위족을 뻗으면서 시인의 기다림은 안팎으로 소문난다. 그녀가 기다리는 대상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기다림은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향하는 길”(「선」)이기에 종국에는 만날 터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소리의 매개로 성사되었다. 그런 이유로 모든 기다림에는 “소리를 길어 올리는 호흡”(「빛의 노래」)이 필요하다.
이처럼 이현정은 둘째 시집에 와서 “미세한 봄바람의 말씀”(「개화」)을 파지하고자 소리를 경청하고 수집하느라 분주하다. 그녀의 시도는 장차 시의 영지를 확대하고 세계를 확장하는 데 쏠쏠히 쓰일 터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녀가 앞으로 “흘러가는 남대천”(「강둑」)에 자주 나와서 물살이 빚어내는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동시에 들어보기를 권한다. 전자는 “겨우내 얼어붙어 단단하던 흙바닥”과 비슷하고, 후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흙바닥”과 유사하다. 전혀 다른 속성이 시 「겨울잠에서 깨다」에 삽입되어서 한 편을 구성하였다. 후자가 불협화음인 이유인즉, 그것이 ‘깨어난’ 때문이다. 땅이 해동하면, 그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만물이 일어나느라고 겨우내 굽혔던 몸을 펴면서 각기 다른 크기로 부딪친 나머지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땅 위로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그처럼 이현정은 동일한 대상에서 노출되는 ‘협화음/불협화음’을 채록하다가 “오늘도 시 속에서 길을 잃는다”(「길치」). 그녀는 이미 “머금은 향기 그대로 각양 빛깔 그대로”(「꽃차」) 찾아낸 전력이 있다. ‘꽃차’의 ‘각양’을 인지하고 ‘그대로’ 묘사할 수 있는 이현정이니 만치, “힘들수록 더 오묘한 향기”(「가나안」)를 수집하는 데 진력하리라 기대한다.
4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현정은 두 번째 시집에서 진경을 개척하고 있다. 그녀는 소리와 장소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드러내었다. 소리는 그녀의 시편들이 구술적 세계에서 창작되고 있는 줄 뒷받침해준다. 그녀는 소리로 구성된 세계에서 ‘그리움’까지 발견할 정도로 관찰력이 고도화되었다. 장소에 대해서는 그녀가 앞의 시집에서도 관심을 표했었다. 그것은 그녀의 곡진한 장소애를 세상에 재차 선보이는 것으로, 원시적 질서가 온전한 ‘눈내’에서 자라면서 이웃들과 공유했던 추억으로부터 비롯된 원초적 감정이다.
싯구 “나뭇잎에 매달린 구름의 땀방울”(「빗방울 전주곡」)에서 확인 가능하듯, 이현정은 시집의 출판 횟수가 늘어나면서 참신한 비유까지 구사하는 경지에 오르고 있다. 이런 보기는 그녀가 “대금처럼 길고 좁고 어두운 터널”(「내 나이 서른 즈음에」)을 빠져나가려는 진지하고 절박한 자세로 시작에 임하고 있는 줄 알려준다. 따라서 그녀의 시집에 산포되어 시세계를 구성한 소리와 장소애가 훗날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지 기다리는 일은 무료하지 않을 듯하다.
이현정 시인 약력
― 2005년 「한올문학」 시인상 당선 등단
― 시집 「가을 비망록」
― 2011년 제22회 열린시문학상 금탑상 수상
― 2017년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외
―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열린시문학회 회원. 김환태문학기념사업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무주지부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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