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델발트를 떠나는 날
정든 곳과의 이별이 아쉽다.
살짝 꺼진 듯한 침대, 옛한옥처럼 새벽이면 찬바람이 새어들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아이거 북벽의 풍경 하나로 용서될 수 있었다.
오늘은 브리엔츠 로트호른으로 떠나는 날
인터라켄ost에서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브리엔츠 호수의 물빛은 가히 범접하기 힘든 천상계의 빛깔이다.
옥빛 물결에 윤슬이 넘쳐난다.
감기에 걸린 강덕분에 유람선 실내에 자리잡고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데 타이완에서 온 듯한 젊은 여인 둘이 한 시간 내내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나름 살짝 소품을 바꿔가면서~
그 모습이 귀엽고 우습다.
요즘 젊은이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은 과감히 패스한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선 과감하게 전진할 줄 안다
그네들의 그런 용기와 결단이 남은 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필수요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100년 넘은 증기기관차를 탄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숨가쁘게 달린다.
마치 콧김 잔뜩 뿜어내는 황소같다.
여전히 우람한 암벽들과 너른 초원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예전처럼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를 찾아보긴 힘들다.
계절이 그런 건가
하룻밤 자는 호사를 누리기로 하였으니 널널하게 시간을 두고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다.
무척 현명한 선택
고맙게도 날씨가 도와준다.
정상엔 딱 적당한 수의 사람들이 노을을 구경하고 있다.
해가 가라앉고 차츰 진하디 진한 주홍빛르로 붉어진다.
오늘따라 유난히 진한 노을빛이 선물처럼 다가온다.
새벽 일출을 보러 겹겹이 껴입고 정상에 올랐다.
비박하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어제 어둠이 깃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여인을 봤는데
세상에나 밤을 새웠나보다
어떻게 이 추위를 견뎠을까
정말 대단하다.
희뿌연 안개처럼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들이 멋진 일출은 포기하게 만든다.
이번에 만난 스위스의 공기는 상당히 탁해져 있다.
말끔한 시야를 만나는 건 드문 일
왜?
환경오염? 지구 온난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지구를 아껴야 할 명분이 또 하나 추가된다.
하지만 브리엔츠 로트호른의 하루는 환타스틱하다.
첫댓글 일출보러 꼴두새벽에 일어나 나서는 부지런함까지요. 대단하세요.
풍경보는 즐거움으로 다니는 여행이라 어지간하면 놓지지 않으려 노력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