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순례 - 9, 영축산
◆ 라즈기르Rajgir
바위산이 둘러싸인 견고한 요새 같은 분지입니다.
마가다 왕국의 수도 왕사성王舍城이 있었던 곳입니다.
당시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으나,
불경에도 나오는 수행의 현장 판다바산(백선산白善山),
법화경을 설하신 그리디크타산[기사굴산]등을 볼 수 있습니다.
◆ 빔비사라왕 감옥터
감옥의 외벽만 남은 이 유적은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자따삿뚜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갇혀있던 곳입니다.
여러 번의 발굴을 거쳤지만,
족쇄를 비롯한 몇 가지 유물만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영축산
라즈기르 동쪽 찻타 언덕 남단에 있으며,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봉우리가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인도에서는 그리드라쿠타라고 합니다.
승이 올린 사진을 보시면 독수리 모양을 한 것이 보일 겁니다.
이 꼭대기에 정사가 지어져 있어
이곳에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고 하나
지금은 여래향실과 시자실의 기단 부분만
벽돌로 얕게 쌓아 복원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은 성도 후 이 산에 머무르시면서
법화경, 보적경 등 많은 대승경전을 설하셨습니다.
경전 첫머리에 나오는
‘한때 부처님께서 기사굴 산중에 계실 때
비구 1250인과 함께 하셨는데’하는 기사굴산이
바로 이곳이며 염화미소의 일화를 남기신 곳이기도 합니다.
영축산을 등반하다 보면 경사는 완만합니다.
그러나 계속 오르게 되어 있으며 1칸의 계단을 올라서면
5~6 발자국 걷게 되고,
또 다시 한 칸을 오르면 또 다섯 발자국을 걷는 코스입니다.
승은 체력이 떨어져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승은 영축산 오르기 전에 1600 계단을 오르고
해거름에 영축산을 오르는데
그야말로 이게 수행이고 고행이구나 싶었습니다.
경치는 말할 것도 없이 멋진 곳입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다음 날 죽림정사를 갔습니다.
◆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는 마가다 왕국의 빔비사라왕이
석가모니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께 바친 땅입니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부처님은 명상에 잠기고 설법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곳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목욕하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온천수가 솟은 곳도 있습니다.
지금은 사원터임을 추정할 수 있는 대나무 숲과
카라다 연못만 남아 있습니다.
◆ 바이살리Vaisali
바이살리는 인도 최초의 공화국인 왓지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릿차비족이 주류를 이룬 나라였습니다.
히말라야가 가깝고 갠지스강이 가까운 입지 조건으로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하여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조장 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마지막 안거를 나신 곳이고,
기녀 암라빨리가 부처님께 망고 동산을 공양 올린 곳이며,
최초로 여자의 출가를 인정한 곳이고,
원숭이가 꿀 공양을 올린 원후봉밀의 장소입니다.
부처님께서 반열반을 하시고 100년이 지난 뒤에
10사비법으로 인하여 제2차 결집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아쇼카왕이 이곳을 순례하여 석주를 세웠습니다.
이 석주는 현재 발굴된 석주 가운데 가장 완전한 상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1958년 일테카르에 의해 릿차비족이 분배 받은
부처님 사라탑이 발견 되었습니다.
◆ 쿠시나가르Kushinagar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서 릿차비족 사람들과 헤어 진 후
빠와Pava 마을에서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을 받으시고 생긴 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끼시면서
히란아바디강을 건너 쿠시나가르에 도착하십니다.
살라나무 숲으로 가신 후
두 그루의 살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고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서쪽으로 얼굴을 향하신 채,
반열반을 준비하신 부처님의 생애 마지막 장소입니다.
◆ 열반당
부처님께서 누워 열반에 드신 자리입니다.
벽돌로 만든 큰 종사 안에 여래의 열반상이 있던 유적은 없어지고
지금의 열반상에 새겨진 명문에 5세기 초에
하리바라 스님의 기부금으로 다시 조성되었다 합니다.
열반상 기단부에는 부처님 머리 쪽에 슬픔에 젖어 있는
아난다 존자의 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우리 일행은 열반당에서 경전을 독송하고
열반당에 들어서자마자 승의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제 걸어 온 시간을, 그리고 이곳에서 부처님 열반당에서
주체할 수 없는 환희, 혹은 우리 곁에 계시지 못하심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나뿐이 아니고
다른 참배객들 역시 눈물 바다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천 원 짜리 신권
한 뭉치를 부처님 얼굴에 앞에 조심스레 올리고 왔습니다.
열반상에 우리 일행이 준비 해 본 금란 가사를 펼쳐 드리고
부처님 열반상을 덮어 드리고,
계속 정근도 하면서 여러 바퀴를 돌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는 대반열반탑을 갔습니다.
◆ 대반열반탑[라마브라하 스투파]
열반당으로부터 동쪽 1.6Km 지점에 있습니다.
원래는 말라족의 왕들이 대관식을 거행했던
‘마꾸따 반다나 차이트야’라고 불리는 말라족의 성지였습니다.
부처님 열반 후 7일이 지나자
말라족들이 부처님의 시신을 옮겨와 이곳으로 옮겨와
전륜성왕과 같이 장례식을 치뤘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화장이 되고 남은 부처님의 사리는
8군데로 나누어지고 재와 사리를 담은 병까지 탑으로 모져지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기원정사 이야기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