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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쓸 때 그 글이 어린이에 관한 것인지, 어린이를 위한 글인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작품을 쓰는 사람이 자기 글에 대한 초점을 보다 분명하게 살릴 수 있다. 박기범의 [독후감 숙제], 황선미의 ]초대받은 아이들]이 말 그대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강정님의 [이삐 언니], 이준연의 [감나무골 로보트], 이현주의 [알게 뭐야]는 어른들의 생활이 담긴 글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글을 쓰든지 간에 아동문학 작품 표현방식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전개되어야 한다. 아동이 이해 가능한 내용과 구성 즉, 어린이들을 위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배려한 것이어야 한다.
어린이에 관한 이야기를 어린이 눈높이에서 잘 형상화한 것으로 채인선의 [내 짝궁 최영대]와 이금이의 [내 친구 재덕이]를 예로 들어보자. [내 짝궁 최영대]는 시골에서 전학 온 엄마 없는 영대가 도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짝웅의 시각에서 썼다. 주인공 영대는 자기를 업신여기고 따돌리는 친구들에게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다. 그런 영대와 친구들 간의 갈등과 화해 과정을 시종 짝궁의 눈높이에서 전개하고 있다.
영대는 계속 울었어요. 울음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서 아이들이랑 선생님들이 쫓아왔어요. 문을 열어보고는 모두 놀라할 말을 잃은 모양이에요. 주임 선생님도 오시고 교감 선생님도 곧 달려오셨어요. 그러고는 잠자코 서 계시다가그냥 돌아가셨어요.[중략..] 우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졌어요. 결국 모두 다 주저앉아 울어 버렸어요.
선생님도 울어 버렸어요. 구경온 다른 반 아이들도 울먹울먹하다가 선생님들께 붙들려 가 버리고, 우리는 울음바다가 되어 버린 방에서 마음껏 울었어요. 모두 영대한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거예요. 나처럼 사과를 하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저 울기만 했어요. 모두 영대 마음이 되어 영대처럼 울기만 했어요. - 채인선 [내 짝궁 최영대]
친구들이 괴롭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영대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아이들 역시 따라 우는 장면이다. 분명 뭔가 잘못되었는데 차마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울음으로 대신한 아이들. 친구를 괴롭히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아이들의 속마음이 영대를따라 우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에게 울음보다 더 큰 무기가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아무데서나 실컷 울 수 있는 것이 아이들의 특권이다. 친구들에게 억눌리고 가슴에 맺힌 분노를 한꺼번에 울음으로 풀어내는 영대와 영대를 따라 죄책감을 풀어내는 아이들이 하나가 되는 장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