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apter 5 - [ 건축을 위한 전주곡 ]
[ 전자제품 할인점 TV매장에서 일입니다. 한 남자와 판매원이 TV에 대해 대화하고 있더군요. 그 중 손님으로 보이는 분이 '화질명암비가 얼마고, 응답속도가 얼마고 기능은 화면캡쳐 기능이 있는지, 동영상 저장기능이 있는지, USB기기가 연결되는지, 스피커는 JBL....어쩌고 저쩌고......' 누가 설명을 하고, 누가 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남자는 대단한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더군요. "저런 분들 아주 많습니다. 요즘은 소비자들이 더 많이 아셔서 저희들이 설명할게 별로...." 멋쩍은 판매원의 다소 짜증 섞인 중얼거림에서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건축의 시작
건물을 지으시려면 제일 먼저 가보는 곳으로 통상 구청을 떠올리시는데 그건 괜한 헛걸음입니다. 차비가 아깝지요. 건축설계사무소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우리나라 법에 설계사무소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건물을 감히 설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물론 극히 일부는 아닌 경우도 있지만...) '삼풍백화점붕괴'사건 아시자나요. 의사는 실수하면 한명정도 죽거나 부상당하지만 건물은 무너졌다하면 수백 수천명이 죽거나 부상당하거든요. 그러니 아무나 설계 못하게 법으로 만든 겁니다. 집을 짓는 고통과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어디로 가야하지?' 건축설계사무소를 평소에 아는 사람이야 그냥 찾아 가겠지만 일반적으로 건축설계사무소는 생소하지요. '어디에 있더라? 어디선가 간판을 본 것 같은데....' 시작부터 찾아다녀야 하는게 짜증스럽지요.
그러다보니 Chpater2에 써놓은 것처럼 주변의 아는 사람소개 받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바로 선무당전문가의 소개를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설계사무소에 찾아가서 건물 짓겠다고 하면, 서류는 가져왔느냐, 위치가 어디냐, 땅은 얼마주고 샀는냐, 뭘 할려고 짓느냐, 돈은 있느냐는 등을 묻기도 하고 법규가 어쩌고 저쩌고.... 이것저것 나열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 우씨! 내가 무슨 경찰서 취조 받으러 왔남? ) 도통 전문용어와 법률 용어까지 섞여 있어서 솔직히 알아듣는 척은 하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면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 아띵! 머가 이리 어려워. 이래서 집지으면 10년 늙는다고 하는구나. 혹시? 이것들이 일부러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해서 설계비 비싸게 받을라고 그러는 것 아녀?) 설계사무소에 가서 돈주고 부탁하면 다 알아서 해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면적은 얼마며, 층은 몇층이며, 마감은 뭘로 할거며, 주차장이 어떻고, 정화조가 어떻고, 조경이 어떻고, 건폐율이 어떻고, 용적률이 어떻고.......... ( 에이! 그런거 다알면 내가하지 왜 돈주고 시키냐고...... 거참 말 많네! )
여기서 잠깐!. 위에 글에 공감이 가는 분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건물을 지었거나 짓게 될 경우, 틀림없이 시공자와 철천지 원수가 되었거나 되실 자격이 충분히 있으신 분입니다. 시작을 저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위의 글을 잊으시고 다음 글을 읽어보시지요.
건축의 시작
건물을 지으려고 할 때 건축주는 설계사무소 가시기 전에 다음 세가지를 먼저 준비하셔야 합니다.
첫 번째가 건물규모와 운영목표설정입니다.
대부분 건축주들은 주변의 건물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보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상업건물일 경우엔 임대의 불확실성 때문에 목표를 세우기가 조금 어렵긴 하지요....) 하지만 나중에 바뀔 망정 일단 시작할 땐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예산은 얼마로 해서 몇평짜리를 몇층으로 지을 것이며 어떤식으로 운영을 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세워야합니다. 건물주의 목표를 설계사무소에서 세워주진 않습니다.
백만원 짜리 TV하나 사는데도 'LCD로? PDP로? 아니면 조금 비싸도 LED로?'라고 수 없이 고민하는데 하물며 몇 억원씩 하는 건물을 짓는데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건, 돈가방을 길바닥에 던져 놓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인 돈가방 말입니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그 돈가방을 보고 달려들고 어떻게든 그 가방을 열고 싹싹 훑어 가져가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공자들이 원래 사기꾼이 아니라 건축주들이 사기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가방이 빈 후에 마치 가엾은 피해자인 것처럼 하소연하고 다니지만, 그것은 한낟 어리석은 자의 또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20년도 넘게 건축분야에서 일을 해왔지만 건축주와 시공자들 사이에 민사소송으로 건축주가 이긴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는 건 결코 법이 잘못돼서가 아닙니다. [ 법은 잠자는 자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는다 ]
두 번째는 건물에 대한 상상입니다.
짓고자 하는 건물의 형상에 대해서 머릿속에 상상을 해보고 외부마감 및 내부마감재료에 대해서도 어렴풋이나마 구상을 하셔야 합니다. 그 떠오른 이미지를 스케치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거든요. 그럴 땐 마음에 드는 건물을 찾아 사진 한 컷이라도 필히 찍으셔야 하지요. 그것도 안돼면 잡지라도 오려서 가져가셔야 합니다. 그냥 알아서 해달라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중국집에 가서 주문할 때 '아무거나'라고 하는 것과 같지요. 건물 짓는 것이 간단하게 점심 떼우는 메뉴판이 아닙니다. 제가 설계할 때 늘 건축주에게 해왔던 말입니다. "사장님 돈으로 제가 짓고 싶은 건물을 제맘대로 짓는 겁니다. 저는 좋지요... .근데요 나중에 저한테 원망은 마세요......" 그깟 짜장면이야 맛없다는 불평한마디로 끝낼 수도 있지만 건물은 그저 불평한마디로 넘기기엔 금액의 규모가 너무 크지요. 필히 건축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도 하고 재료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건축주가 원하는 모습을 알고 설계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결과는 굳이 비유를 들자면, 건축주는 오렌지를 사러 갔는데, 건축주 말을 들은 설계사무소는 귤을 그려주고 시공자는 탱자를 내준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는 관리에 대한 계획입니다.
건물을 짓는 것에 대해선 지나칠 정도로 신경과 관심을 기울이는 반면, 관리에 대한 계획은 아예 개념조차 없는 건축주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상업용 건물에서는 그 정도가 정말 심하지요. 그저 건물사용은 세입자들의 몫이고 자신은 임대료만 받으면 그만이라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부터 버리셔야 합니다. 지붕에서 물이 새도 건물주 책임이고 화장실 물이 안 빠져도 건물주 책임입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건물주가 고쳐야 하지요. 어떻게 관리할 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하고 설계할 때 그 계획이 설계에 반영이 되어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중에 관리비용이 엄청나게 차이납니다.
통상 건물은 한번 지으면 끝이라고 생각 할지 모르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 중에 하자 없는 구조물은 없다!'고 단언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공계약시 하자보수에 대한부분이 필히 명시되어 있는 겁니다.
굳이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밀가루 반죽위에 그릇을 하나 올려놓았다고 상상해보시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건물을 짓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특히 포항 땅속은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거의 밀가루 반죽상태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건물이 일부 가라앉거나 기울게 되지요. (그렇다고 무너진다는 말은 아닙니다...걱정하진 마세요..) 바로 이때 건물이 빨래 짜듯이 뒤틀리게 되면서 금이 가는 겁니다. 그걸 하자라 합니다. 시공자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일부러 하자내게 건물짓는 사람은 없읍니다. 그러다가 비틀림이 어느 순간 멈추는데 건물이 지상에 완전하게 정착되는 거지요. 건물 짓고 나서 대략 2-3년정도 시간입니다. 통상 하자보증기간을 2-3년으로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기간 즈음에 건물을 보수해야 합니다. 새 건물인데 비가 새고 금이 갔다고 불평을 하실게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시고 보수하시면 됩니다. 4-5년정도가 지났는데도 크랙의 진행이 계속될 경우엔 반드시 구조안전진단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런 정도의 상식과 이해 없이 건물을 짓겠다고 하니 결국 돈 잃고 속상하고 마음고생만 죽도록 한다고 하는 겁니다.
앞으로 건물 지으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필히 위 세가지에 대해서 먼저 숙고하시고 시작하셔야 합니다. 설계사무소나 시공자를 만나시기 전에 말입니다.
속칭 '노가다'하는 사람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구리치고 나면 다 끝이지......." 맞는 말입니다. 치기 전엔 바꿀 수 있지만 콘크리트를 붓고 나면 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습니다. 미리 검토하는데는 돈이 안들지요.
다시 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기억하세요 '법은 게으른 자의 권리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