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에 대한 오해와 진실.....
들어가는 말 :
십계명은 정말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법인가, 아니면 구약시대의 상징적인 법령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십계명을 정말 그 뿌리와 정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십계명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지는 않은가? 각 교회마다 십계명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아서 정말 십계명의 본래 정신에서 어긋남이 있지는 않은가? 예를 들어, 십계명이 율법이라고 그것을 ‘율법적’으로 받아들이려는 태도 같은 것들이 오늘날 교회에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가? 아니 십계명에 나타나는 표면적인 내용조차 우리가 잘 알고 있긴 한 것인가? 예로, 십계명이 정말 명령형인가? 또는, 사람이 안식하는 것과 거룩하게 되는 것이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이런 모든 문제들의 답을 얻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할 배경들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1-2절, 십계명의 근거
- 십계명에 앞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의 시초가 되는 사건, 곧 출애굽 사건을 특별히 상기시킨다. 여기에는 다음의 중요한 의미와 전제가 담겨져 있다.
0. 십계명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격과 자유에 호소하는 법이다. 문법적으로, 십계명은 직접 명령법을 사용하지 않고, 미완료 형태의 Jussive / Cohortative라는 용법을 사용하고 있다.이는 모두 권유형 또는 청유형이다. 유일한 직접명령법을 사용한 경우는, 제 5계명이고, 뒤에 나오지만 이유가 있다.
그래서,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명령형이 아니라 선언문으로 번역하였다('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등).
좀 더 이 문장의 의미를 확장해 들려준다면,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도까지도 가능하다.
➜ 직접명령형이 아니라 청유형을 쓰는 것은 사람의 판단과 자유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했으므로 그들을 움직이는 행인은 모두 명령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자유민으로 대우하고, 그 자유를 통하여 권고하려 하신다.
➜ 동시에 이런 미완료 형태의 명령문에 강한 부정사(לֹא)가 쓰인 것은 이것이 행동 자체를 규정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곧 이것은 언약의 문제이다. 참고로, 아담에게 내려진 선악과 금지 명령 또한 이러한 형태이다.
① 십계명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유로운 삶’을 빼앗는 것들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 십계명은 사람의 자유를 마구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삶’이란 값진 보물을 지키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에 장애가 되려는 것들을 제한함으로써, 하나님의 주신 은혜롭고 자유로운 삶을 마음껏 누리도록 함에 있다.
② 계명 준수는 감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의 자리를 감사함으로 여겨, 거기서 인정하고, 또 남에게 알리는 길이다.
③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인격과 양심에 호소하는 법이다. 십계명에는 그것이 '법'이라면 마땅히 제시되어야 할 처벌 조항이 나타나질 않는다.
➜ 이것은 사람이 자유로운 양심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것을 확장하여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마음 속의 동기 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마 5:21-30).
④ 십계명이 형태상 법의 형태가 아니라 하여 권고 명령을 더 가벼이 여기는 것은 일종의 인식의 오류이다. 왜냐하면 관계에 호소하는 권고는 법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3절, 제 1계명 - 우상숭배 금지
- ‘나 외에는’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내 앞에서’(עַל־פָּנָיַ)라는 말이다. 곧, 우상숭배는 하나님 앞, 그 면전에서 저지르는 잘못이다. 따라서, 이 계명은 하나님을 앞에 세워두고,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를 문제삼는 것이다. 실제로 예언자들이 바로 잡으려 했던 이스라엘의 역사의 잘못이 바로 이런 우상숭배였다.
➜ 따라서,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을 놓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그 무엇도 우상 숭배가 된다.
4-6절, 제 2계명 - 형상 숭배 금지
- 제 2계명은 제 1계명과는 달리 형상 숭배를 금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우상숭배와는 또 다른 금지 명령으로 여기에는 이런 까닭이 있다.
① 형상을 만들면, 너무 쉽게 오용되고, 언제든지 형상 자체를 숭배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나, 성경 등도 이러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② 형상을 가지고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③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참된 형상이기에 지금은 더욱 형상 숭배가 불가능하다(골 1:15).
- 자손들이 선조들의 죄값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중에는 에스겔 18장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때는 비길데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에 완전히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 오늘날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에 이러한 책임에서 벗어났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위 ‘선조대의 죄책’이나 ‘가계에 흐르는 저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천주교에서는 이 계명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아니하다. 천주교의 십계명(천주십계)에는 제 2 계명 “우상을 섬기지 마라”라는 구절이 없고 대신 제 10 계명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는 구절을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로 나누어, 빠진 제 2 계명의 자리를 메꾸었다. 이는 표면적으로 신명기의 정신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천주교가 형상숭배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반면에, 유대교에서는 “나는 ...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라”는 서문을 첫째 계명으로 삼고, 제 1, 2 계명이 한 계명으로 묶여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십계명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증서로 이해했기 때문이며, 또한 시편에서 보듯이 서문을 제 1절이나 제 1조로 두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7절, 제 3계명 - 성호 악용 금지
- 여기 ‘망령되게’라는 말은 히브리말(שָׁוְא)로, ‘무익함(무가치함)’, 또는 ‘헛됨’이다.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기도드릴 때나, 법정 진술을 확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게 될 때, 남을 속일 뜻을 가지고 그리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 된다.
-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을 무의미하게 사용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 서양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욕설에 사용되는데,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8-11절, 제 4계명 - 안식일 준수 명령
1) 8절, 거룩하게 지키려면, 기억이 필수 조건이다.
➜ 안식일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준비도, 거룩하게 지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 9절, 일단, 엿새 동안은 힘써 자기 일을 해야한다.
➜ 이 점에더 다음의 두 가지 문제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① “힘써” - 엿새 동안 힘써 일한 자가 안식을 제대로 누린다.
② “네 모든 일” - 세상의 모든 일을 엿새 동안 해 두어야 한다. 그러지 못해서 주일날까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엿새 동안 우리가 할 일이다.
3) 10절, 안식을 자기 경내에 끼쳐야 한다.
① 거룩하게 함은 안식을 끼치는 일을 말한다. 먼저 자기 자신이 안식할 수 있는 참된 길로 나아가야 한다. 안식이 없는 안식일은 결코 거룩하지 않은 법이다.
② 다음으로 자신의 주변에 안식을 끼치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거룩하게 지키는 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기 편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선한 일을 집중적으로 도모하여 주변이 모두 함께 안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 11절,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이 거룩함이다.
① 사람이 안식일에 일을 쉼으로써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이 창조자이시자 주님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쉴 수 있음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며, 쉬지 못함은 안식일을 만드시고, 그 날에 쉬신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② 그렇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여 거룩함을 돌려드림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창조질서의 은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12절, 제 5계명 - 부모 공경
- 부모 공경과 장수의 축복은 단순한 의미의 장수이거나, 아니면, 부모 공경=장수라는 식의 연결이 아니다.
① 장수의 제한 사항이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장수의 복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 거할 수 있는 민족적인 복, 곧 존속의 복을 말하는 것이다.
② 존속은 부모 공경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결과물이다. 두 가지 차원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부모 공경은 앞선 세대의 생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어서, 후 세대가 그 존속에 큰 영향을 입기 때문이다.
③ 두 번째로는, 이 계명의 본디 정신이 더욱 중요한 바,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부모가 자녀에게 전수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부모 공경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에만 이 믿음의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공경하다’는 히브리낱말은 ‘무겁게 여기다’라는 의미이며,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라 할 때에도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공경’은 그 말을 ‘무겁게 듣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무겁게 들을 수 있을 대에 비로소 신앙적인 교훈도 전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계명은 우리식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내용이 아니라, 신앙준수 계명인 것이다. 그러니, 이 5계명은 인간관련 계명이자, 동시에 하나님 관련 계명이라서 이 두 분야의 계명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따라서 유대교 랍비들 일부는 이 5계명이 신 관련 계명이 있는 돌판에 함께 새겨졌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정말 믿음을 자녀들에게 잘 전수하기 위해서, 부모 공경의 길을 잘 만들어 놓아야 한다.
④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그 뜻은, 다른 것이 아니라, 뒤에 생명 장수의 복이 조건으로 언급된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유일하게 직접 명령법이 쓰였다.
☞ 교인들의 십계명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것을 바라보는 바른 시각의 설교자들을 통해서 세워질 것이다.
"십계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준비할 수 있는 설교 말씀은..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