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농사
우리동네는 집집마다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전국의 많은 농민들이 고추농사는 기본으로 다들 조금씩 짓고 있다.
고추농사는 정말 일이 많다.
한겨울 1월말부터 시작이다. 고추씨를 싹을 틔운 후 집집마다 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운다. 처음에는 이양기판에 씨앗을 뿌려 한 달 정도 키우다가 손가락크기 정도 크면 포트로 옮겨 심어 비닐과 보온덮개로 덮어서 따뜻하게 관리해준다. 60일 정도를 매일같이 열었다 덮었다 하면서 물을 주며 얼거나 데어죽지 않도록 온도, 습도 관리에 철저를 기하여 정성들여 키운다. 모종이 약 20~30센티미터 키로 크면 밭으로 나간다. 이때가 4월 중순경이다.
밭으로 나가기위해서는 밭에 거름과 비료를 넣고 로터리를 치고 바닥비닐을 치고 터널용 철사를 둥글게 휘어서 꽂고 철사에 고추 끈을 친다. 이렇게 이사 갈 밭을 다 준비한 다음에 여러 사람이 품앗이를 하며 고추를 옮겨 심는다. 이때는 심는 사람, 물주는 사람, 북주는 사람, 삽으로 흙을 퍼서 비닐 덮는 사람, 관리기 운전하는 사람등 많은 인력이 달라붙어서 해야 하고 동네고추가 다 끝나려면 약 2주정도 걸린다. 그렇게 해서 고추모가 잘 활착되어 터널비닐에 닿을 정도로 자라면 비닐을 조금씩 뚫어주고 가지치기하고 쓰러지지 않게 말뚝을 박아 줄을 쳐주고 농약을 시작한다. 병충해에 취약한 고추나무는 조금만 방제를 게을리 하면 금세 병과 벌레로 수확을 포기해야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틈틈이 풀을 메주며 고추가 잘 자라도록 해주는 일도 빠지지 않는 큰일이다. 비가 안 오면 밤잠 못자며 경운기 돌려가며 물을 준다. 그렇게 애지중지 잘 키워 장마철을 무사히 넘기면 남들은 피서를 즐기는 뜨거운 한여름 삼복더위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수확한다. 땀으로 목욕을 하고 흘리는 땀만큼 연신 물을 먹어주면서 고추를 딴다. 남자들은 무거운 고추 푸대 나르려면 힘 좀 꽤 써야한다. 엄청 힘들지만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보면 수확의 기쁨에 기운이 절로 난다. 이렇게 따온 고추를 하우스에 널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잘 저어주면서 말린다. 날씨가 좋으면 일주일정도면 마르지만 중간에 비라도 오면 다 마르는데 까지 이주일도 훌쩍 넘게 걸리기도 하고. 좋은 고추들이 다 곯아서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일같이 쪼그리고 하우스에 앉아서 희아리와 쭈그리를 골라내고 예쁜 것만 골라서 팔게 되는 것이다. 조금 더 부지런한 농민은 고춧가루 주문을 받아 고추 꼬투리를 하나하나 따고 깨끗이 닦아서 방앗간에 가져가 가루로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이일도 정말 손이 많이 간다. 여성농민 없이는 할 수없는 농사다. 이렇게 많은 손길을 거쳐서 완성된 태양초 한 근이 작년까지만 해도 만원 넘기기가 힘들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네다섯번 수확해 다 갈무리하고서야 고추밭 설거지를 한다. 고춧대를 뽑고 끈 잘라내고 말뚝 뽑아 정리하고 비닐까지 깨끗이 걷어내야 긴 고추농사일이 끝이 난다. 이처럼 거의 1년 동안 쉬지 않고 하는 일이 고추농사다
그래서 고추농사는 내가 지어본 농사 중 정말 힘들고 지치는 농사였던 것 같다.농약을 너무 많이 해야 하는 것도 고충이다.
그럼에도 많은 농민들이 고추농사에 매달리는 것은 마땅한 소득 작물도 없고 고생은 되도 많이만 따면 단위면적당 소득이 다른 작물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추값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해마다 오르는 종자대, 비료대, 인건비등 생산비에 비해 터무니 없이 싸서 고생만 하고 재미를 보았다는 농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그동안의 고생을 보답이라도 받는지 값이 예년의 두세배로 높아 농사가 잘된 농민들은 기분이 좋다. 그러나 이런 기분 좋은 농민 옆에는 일찍이 병으로 수확을 포기한 농가가 더 많기에 가능한 일이다. 올해 고추를 많이 따는 집은 안 좋던 부부사이가 날마다 고추 따면서 좋아졌다고도 한다. 조금만 따도 돈이 되는데 얼마나 즐겁지 않겠는가! 고생은 해도 보람이 있다. 딱 여기까지면 좋겠다.
예년이면 이맘때쯤 일찌감치 고추농사를 정리하고 밭마다 고춧대를 뽑을 때이다.
풋고추가 많이 달려있어도 다 붉어져서 수확하기에는 시간이 적고 풋고추를 따서 팔아봐야 인건비도 안 나오기에 부지런한 농민들은 일찌감치 밭을 정리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일찍이 수확을 포기한 밭은 풀이 가득하여 방치되어있고 아직도 풋고추가 남아 있는 밭은 나무마다 하얀 농약을 덮고 있다.
고추 한 근에 2만원도 넘게 가더니 지금은 조금 떨어졌다고는 하나 끝물 고추도 만원가까이 거래되니 그냥 버릴 수가 없다. 남아있는 늦 고추를 하나라도 더 따려고 농약을 하고 고추가 빨리 붉어지는 약까지 치며 한 푼이라도 더 건지려 욕심을 내고 있다. 더더욱 정성들여 농약을 친다. 전엔 2주나 열흘마다 예방차원으로 하던 것이 1주일이 기본이 되더니 유난히 비가 많던 지난여름 어떤 이는 3일에 한 번씩 쳤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많은 농민들이 착색제나 빨리 붉어지는 성장 촉진제를 쓰면서도 별 문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몰라서 그런 건지 나만 안 먹으면 그만이다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유통된 농산물이 돌고 돌아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먹고 저가의 식당과 가공식품에서 알게 모르게 먹으며 건강을 위협받고 있음을 알아야 할 텐데...
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안하면 바보라는 생각, 아깝게 왜 버리냐는 생각등을 접하며 이런 불편한 사실을 글로 쓰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혹시나 그렇지 않은 많은 농가들까지 괜한 오해를 사거나 피해를 입지는 않을까해서다.
얼마 전 친환경 학교급식 식재료에서 기준치의 백배나 되는 농약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또 한 농민이 유혹 속에 고민하다 농약을 쳤겠구나싶다. 아님 별 생각없이 돈욕심에 그랬을 수도 있다.
우리 농민들이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건강한 의식으로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정부는 안전한 농사를 짓도록 농민을 지원해야한다. 정직하게 농사지어도 충분한 소득이 보장되도록 직접지불제 확대등 안정적인 소득보장 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
첫댓글 작은책에서 읽었어요. 좋은농사,착한농사, 바른먹을거리를 생산하려는 그 마음이 느껴지더이다..이런 분들과 인연을 맺게된 것도 참 감사하게 느껴지구요..
댓글을 보는 제마음도 찡~하네요. 마음이 통하는 분들이 함께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사진은 제가 고추농사지을때 찍은 것... 빨간고추가 정말 이쁩니다.
작은책에도 사진이 같이 실렸으면 더 좋았겠어요.
그러게요. 이제야 글올리며 옛날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