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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꾸러기 / 교정 중
55년생 내 나이 기준으로 해서 5세 전후 정도 연세 드신 분들이 여유로운 일상으로 국내외 여행 다님을 카카오 톡이나 카스, 밴드에서 자주 보게 된다. 오늘도 초등 동창 한 친구가 제주도 1박 2일 다녀온 후의 여행후기 글을 보았다. 멋난다. 호연지기까지 느껴지는 멋있는 글이었다. 헌데 한 켜에서 순간적 성질머리가 욱 하는 건 욕일까?
시기 질투다. 나는 할 수 없어서 나온 머저리 같은 성깔이다. 밥상머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열이 뻗친 것이다. 금세 야릿한 미소는 못남을 인정하는 비소다. 부러움의 시선으로 먼 산을 본다. 부끄러움으로 얼굴 분칠이네. 한심하다. 원이 무엇이며 지금 뭐 하는가? 답답하고 어지럽다. 능력이 안 되면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아직도 잘 안 된다.
먹거리가 당면과제인 생활 수준의 사람은 여행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그 그룹에 들에 있다. 좀 더 열심해 호주머니 두툭히 해 두었다면. 논마지기 상속받아 졸부 부자였다면. 성질 부릴 일이 아닌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문화생활 혜택에 멀뚱해야 하니. 자신 탓보다 욕머리질이 먼저 나는 게 본성일까? 모르겠다. 지금 나는 분명 울화가 올랐다. 사람들 간 재산 격차는 분명 있다. 자본 자유 민주주의에서는 그런 층으로 분류가 된다. 그 수준에 맞는 생활 활동은 당연사이다. 그른 생활 누리는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화풀이다. 어쩌면 체면이 앞선 건지 모른다. 상대적 비교를 해서 그 감당을 면피하려는 순간적 행위로. 나이 들고 세월이 지나도 감정은 은연중 나타난다.
평소 나름 성질 죽이며 생활을 한다. 체념반 안 보기 반 시간 따먹기다. 조용하게 시간 소일거리 하고 있다. 모임 집회도 참석 하기도 한다.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개인 간 부의 수준 대화가 당연히 나온다. 특히 자식 자랑이던 해외여행이던. 재산의 종류나 유희거리들이 안주거리로 등장 한다. 그런 대화들이 부담이 되고 억눌려지면서 말 수도 줄어간다. 큰아이는 마흔 가까이 나이에 아직 짝 찾기는 감감 소식. 여행한다는 여유조차 없으니. 인간은 분명 인간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촐싹이는 마음 눌러본다. 욱하는 성질 머리는 진짜 단점이다. 감정 느낌과 동시에 불쑥 토해 버린다. 세월이 가면서 못한 것들에 대한 반발심이 숙취 되었나 보다. 환 술년 넘어도 값을 못하고 있다. 아직도 안면치래하려고 세월을 탓해야 하니.
호작질로 합리화하며 미화시키려 한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호미 들기 등. 형편에 맞는 여백 찾기를 한다라고 나름 우긴다. 그림은 미술대전 출품해 입상도 한다. 글은 문학지에 가끔 올린다. 무기농 농사랍시고 상추 고추 배추 등등 직접 심어 수확해 먹는다. 나름의 시간을 즐기며 놀이하고 있다. 근작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수행이라면 더 좋고 놀이라도 좋다. 다른 이들의 입에서 삶의 멋으로 오르내리기도 가끔 한다. 우쭐해지는 기분 들곤 했다. 하지만 직접 눈귀로 보고 들으면 성질이 나니. 그런 일에 대해서 승화가 좀 되어야 하는데 아직 먼 길이다. 공부를 더해야 한다. 인내력 내공을 키워야 한다. 내공 쌓는 인간이 되는 공부를 찾자. 선사의 가르침이나 독서 그리고 비내골의 땅 파기의 나랑 싸움. 일잔주로 바람 놀이도 괜찮겠다. 오늘 같은 일을 흘려버릴 수 있도록. 산속에서 여행하며 시간 다듬기 더 해보자.
채우려는 심보가 많았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 경쟁과 싸움, 비겁과 양심에 낀 싸움이 싫었다. 그런 일에서 뒤로 물러 났다. 욕설과 싸움 또는 편 기르기 승진 경쟁이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 일을 잘해야지 그런데 신경 써야 왜 하는지 몰랐다. 그런 일들 접고 오직 맡은 업무만 열심리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왜?라고 던지기도 한다. 남는 것은 말년이란 단어였다. 말년 과장. 마지막 직장에서 처음 입사할 때 과장으로 직장 폐쇄 당시에도 과장이다. 18년간 근무하면서 호칭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순한 사람. 멍청한 사람, 고집 불통이라는 수식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등신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모른 체 했을 뿐이다. 한 번씩은 옆 동료가 눈꼴 셔 승진의 욕심을 내 윗분과 된통 싸우기도 했다. 한 번 뿐으로 순간적인 화풀이 수준이었다. 월급만 준다면 일만 할 수 있다면 그게 전부였고 천직으로 생각했다.
삶에서 인간관계는 기본이고 본능이다. 부를 향한 활동은 젊음이라 해야 할까? 결과로 나타나는 시간 속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창나이 때 아이들 교육비로 세상 억울타 한 적 있었다. 어느 유능한 분이 자식 학원비만 수백만 원 들여 공부시킨다고 한다. 나의 급여는 그 보다 적다. 아이들 학원 엄두도 못 낸다. 그런 시기도 있었는데. 환순 돈 나이에 아직도 먹거리에서 아웅다웅 한발 한 걸음질 하고 있다. 내 잘난 성질로 나만큼의 삶을 산다. 남들의 부와 생활이 정말 부럽다. 먼산의 꽃 그림의 떡. 호사의 맛을 올려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서 물러난 경쟁과 싸움질.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약점이 있다. 먹거리 인생의 행보 수준은 변하지 않았다. 그만큼의 수입과 그만큼의 씀씀이 생활지속이다. 나이 들수록 문화 혜택 받기 부담이 되어간다. 모임 참여율이 줄고 낮아진다. 사람 대면이 두렵고 피하게 된다. 발폭 짧음은 아닌데. 비교는 하기 싫다. 그냥 내 탓이다로 귀결한다. 그 정도 수준이 나다 라며 평심을 확보해 보려 한다. 좋은 일상의 호작질능력을 키워 보면서다.
순간의 성질머리. 내 안에 있는 허영, 허상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은 되지 않는다. 묵언이라는 칼이 먼저 작동한다. 말이 묵언이지 말수를 줄인다. 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도피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얼마만큼 먹힐지는 미지수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비내골 밭에서 맑은 공기로 숨쉬기 더해 보려 한다. 한갓 이름 없는 잡풀을 보며 생사를 넘나드는 이유를 찾아본다 하면서. 어렵고도 어렵다. 욕망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더 힘들다. 잡풀도 인생이 가벼운 생활임을 보여 주는데…. 아프게 심한 갈증이 난다. 이제는 시간이 갈수록 산수의 물건들이 보인다. 자람과 성장, 이파리의 단장. 꽃과 씨앗 바람으로 여행. 시간이라는 계절에서 변화를 본다.
비운다. 내린다. 입으로만 하고 있음을 내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부질없는 중생아” 해봐도 속물임을 부정 못한다. 옥봉 만장 한 낙엽이 만 목 다해 챙기는 겁劫. 가실을 채워 생을 다하는 별리 맞이를 한다. 나는 이런 겁怯이 겁이 난다. 자연의 사물들과 이런 게 다르다. 허영이 허약과 공존하여 심지로 깊게 꽂혀 있어 뽑아내려니 어렵다. 두려움이다. 생의 겁劫인 낙樂을 못 찾고 있다. 놓으면 다 한 줌인데도 어떻게의 길을 모른다. 시간에 맡겨 보기로 한다. 그냥 그대로 두고 보자이다. 어제오늘이 지금이라는 이유를 알 때까지. 결과도 욕이 있음이니 천천히 해보자로 다독여 본다. 어느 한 날에 목탁소리 바람소리가 맑게 들릴 수 있을 거야.
24. 03. 05.
욕심꾸러기 / 초고
55년생 내 나이 기준으로 해서 5세 전후 정도 연세 드신 분들이 여유로운 일상으로 국내외 여행 다님을 카카오 톡이나 카스, 밴드에서 자주 보게 된다. 오늘도 초등 동창 한 친구가 제주도 1박 2일 다녀 온 후의 여행후기 글을 보았다. 멋난다. 호연지기까지 느껴지는 멋있는 글이었다. 헌데 한 켜에서 순간적 성질머리가 욱 하는 건 욕일까?
시기 질투다. 나는 할 수 없어서 나온 머저리 같은 성깔이다. 밥상머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열이 뻗친 것이다. 금새 야릿한 미소는 못남을 인정하는 비소다. 부러움의 시선으로 먼 산을 본다. 부끄러움으로 얼굴 분칠이네. 한심하다. 원이 무엇이며 지금 뭐 하는가? 답답하고 어지럽다. 능력이 안 되면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순간적으로 아지도 잘 않된다.
먹거리가 당면과제인 생활 수준의 사람은 여행이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나 또한 집단에 들에 있다. 좀더 열심해 호주머니 두툭히 해 두었다면. 논마지기 상속 받아 졸부 부자였다면. 홧거리 부릴 성질은 아닌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문화 생활 혜택에 멀뚱해야 하니. 먼저 자신 탓보다 욕머리질이 나는 게 본성일까? 모르겠다. 지금 나는 분명 울화가 올랐다. 사람들간 재산 격차는 분명 있다. 자본 자유 민주주의에서는 그런 층으로 분류가 된다. 그 수준에 맞는 생활 활동은 당연사이다. 그른 생활 누리는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화풀이다. 어쩌면 체면이 앞선 건지 모른다. 상대적 비교를 해서 그 감당을 면피하려는 순간적 행위. 나이 들고 세월이 지나도 감정은 언연중 있네.
평소 나름 성질 죽이며 생활을 한다. 체념반 안보기 반 시간 따먹기다.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개인간의 부의 수준 대화가 당연히 나온다. 특히 자식 자랑이던 해외 여행이던. 재산의 종류나 유희거리들이 안주거리로 등잔한다. 그런 대화들이 부담이 되고 억눌려지면서 말 수도 줄어간다. 큰아이는 마흔 가까이 나이 아직 짝 찾기는 감감 소식. 여행한다는 여유조차 없으니. 인간은 분명 인간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촐삭이는 마음 눌러본다. 욱하는 성질 머리는 진짜 단점이다. 감정 느낌과 동시에 불쑥 토해 버린다. 세월이 가면서 못한 것들에 대한 반발심이 숙취 되었나 보다. 환 술년 넘어도 값을 못하고 있다. 아직도 세월을 탓해야 하니.
호작질로 합리화하며 미화 시키고 있다. 글쓰기, 그림그리기 호미들기 등. 형편에 맞는 여백 찾기를 한다라고 한다. 하지만 직접 눈귀로 보고 들으면 성질이 나니. 그런 일에 대해서 승화가 좀 되어야 하는데 아직 먼 길같다. 공부를 더해야 한다. 인내력 내공을 키워야 한다. 내공 쌓는 공부? 인간이 되는 공부를 찾자. 선사의 가르침이나 독서로 오늘 같은 일을 흘려 버릴 수 있도록. 산수 여행 하면서 마음 다스림도 좋다.
채우려는 심보가 많았다. 사회생활 직장생활에서 경쟁과 싸움, 비겁과 양심 그 싸움에서 뒤로 물러 났다. 욕설과 싸움 또는 편 기르기 승진 경쟁이다. 왜?라고 던지기도 한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 일을 해야지 그런데 신경쓰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 일들접고 오직 맡은 업무만 열심리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남는 것은 말년이란 단어였다. 말년 과장. 마지막 직장에서 처음 입사할 때 과장으로 직장 폐쇄 당시에도 과장이다. 18년간 근무 하면서 호칭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순한 사람. 고집 불통이라는 수식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등신이라는 소리도 듣었다. 모른체 했을 뿐이다. 한 번씩은 옆 동료가 눈꼴 시려워 승진의 욕심을 내 윗분과 된통 싸우기도 했다. 한번뿐으로 순간적인 화풀이 수준이었다. 월급만 준다면 일만 할 수 있다면 그게 전부였고 천직으로 생각했다.
삶에서 인간 관계는 기본이고 본능이다. 한창 나이 때 아이들 교육비로 세상 억울타 한 적있는데. 어느 유능한 분이 자식 학원비만 수백만원 들여 공부 시킨다고 한다. 나의 급여는 그 보다 적다. 아이들 학원 엄두도 못낸다. 그런 시기도 있었는데. 환순 돈 나이에 아직도 먹거리에서 아웅다웅 한발 한 걸음질 하고있다.
먹거리 인생의 행보 수준은 변하지 않았다. 그 만큼의 수입과 그만큼의 씀씀이 생활이다. 나이들수록 문화 혜텍받기 부담이 되어간다. 모임 참여율이 줄고 낮아 진다. 사람 대면이 두렵고 피하게 된다. 발폭 짧음은 아닌데. 비교는 하기 싫다. 그냥 내 탓이다로 귀결한다. 그 수준이 나다 라며 평심을 확보해 보려 한다.
내 안에 있는 허영, 허상을 내려야 하는데 아직은 되지 않는다. 묵언이라는 칼이 먼저 작동이다. 말이 묵언이지 말하지 대화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도피같은 것이기도 하다. 얼마만큼 먹힐지는 미지수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비내골 밭에서 맑은 공기로 숨쉬기도 더해 보려 한다. 한갓 이름없는 잡풀을 보며 생사를 넘나드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하면서. 어렵고도 어렵다. 욕망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더 힘들다. 잡풀도 인생이 가벼운 생활임을 보여 주는데…. 아프게 심한 갈증이 난다.
비운다. 내린다. 입으로만 하고 있음을 내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부질없는 중생아” 해봐도 속물임을 부정 못한다. 낙엽이 옥봉 만장하면서 만목 다하는 겁劫을 챙긴다. 가실 채우는 것으로 생을 다하는 별리 맞이를 한다. 나는 이런 겁怯이 겁이 난다. 사물들과 이게 다르다. 허영이 허약과 공존하여 심지로 깊게 꽂혀 있어 뽑아내려니 어렵다. 두려움이다. 생의 겁劫인 낙樂을 못 찾고 있다. 놓으면 다 한줌인데도 모른다. 시간에 맡겨 보기로 한다. 그냥 그대로 두고서 보자 다. 어제 오늘이 다 지금이라는 이유를 알 때까지. 결과도 욕이 있음이니 천천히 해보자. 목탁소리 바람소리가 맑게 들릴 수 있게.
23. 12.00.
욕심꾸러기 / 초안
55년생 내 나이 기준으로 해서 5세 전후 정도 연세 드신 분들이 여유로운 일상으로 국내외 여행 다님을 카카오 톡이나 카스, 밴드에서 자주 보게 된다. 오늘도 초등 동창 한 친구가 제주도 1박 2일 다녀 온 후의 여행후기 글을 보았다. 멋난다. 호연지기까지 느껴지는 멋있는 글이었다. 헌데 한 켜에서 순간적 성질머리가 욱 하는 건 욕일까?
시기 질투 다. 나는 할 수 없어서 나온 머저리 같은 성질머리다. 밥상머리에서 허우적거리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열이 뻗친 것이다. 금새 야릿한 미소가 이는 건 못난 나에 대한 비소다. 부러움의 시선으로 게름한 눈초리로 먼 산을 본다. 부끄러움이 얼굴에 떡칠이 되어 있다. 한심이다. 내 원은 무엇이며 뭐 하고 있는가? 답답하고 어지럽다. 지금의 나다. 능력이 안 되면 하지 않으면 되는데. 그게 화로 나타 난다.
촐삭이는 마음을 눌러본다. 욱하는 성질 머리 진짜 나의 단점이다. 감정이 나면 느낌과 동시에 불쑥 토해 버린다. 마음 다스리는 내공이 약하기 때문이다. 환 술년 넘어도 값을 못하고 있다. 공부해야 한다. 인내력을 키우기 위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 내공 쌓는 공부? 인간이 되는 공부를 찾자. 선사의 가르침이나 독서로 오늘 같은 체험을. 산수 여랭을 하면서 마음 다스림 어루만져 보자.
채우려는 심보가 많다. 욕심인거다. 내 안에 있는 허영, 허상을 내려야 하는데 되지 않는다. 묵언이라는 수양의 칼이 있다. 얼마만큼 먹힐지가 미지수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비내골 밭에서 맑은 공기로 숨쉬기도 더해 보자. 한갓 무명 잡풀을 보며 생사를 넘나드는 이유를 알아본다면. 어렵고도 어렵다. 욕망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힘들다. 잡풀도 가벼운 인생이 됨을 보여 주는데…. 아프게 심한 갈증만 난다.
비운다. 내린다. 입으로만 하고 있음을 내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부질없는 중생아” 해봐도 속물임을. 낙엽이 옥 봉 물고 만장하면서 만목 다하는 겁劫을 챙긴다. 가실에 채우는 것을 알고 있어 생을 다하는 별리 맞이를 한다. 나는 이런 겁怯이 겁난다. 사물과 이게 다르다.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 내야 한다. 허영이 허약과 공존하여 심지로 꽂혀 있어 뽑아내려니 고통이다. 두려움이다. 생의 겁劫인 낙樂을 못 찾고 있다. 놓으면 다 한줌인데도 모른다. 시간에 맡겨 보기로 한다. 그냥 그대로 두고서 보자 다. 어제 오늘이 다 지금이라는 이유를 알 때까지. 결과의 바람도 욕이 있음이니 천천히 해보자. 목탁소리 바람소리가 맑게 들릴 수 있게.
2018.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