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선교사명을 가진 문학인 청석 김의식시인의 스토리
캄보디아 라이프대학교 교수로 파송 받은 문화선교사
ㅡ신앙에의 입문
중학교를 졸업하고 홀어머니가 혼자서 가족들을 위해 남성도 힘든 농사짓는다. 것이 어린 나였지만 몹시 마음이 아팠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진학하는 것은 포기해야만했다. 농사일에 전념한지 만 3년이 지나서야 늦-각기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만학의 대학생이 되었다. 그동안 교회라고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 따라 절(寺)에 다니면서 불공을 드렸다. 고등학교 때는 불교교리에 심취(心醉)하여 공부하기도 했다. 대학학창시절 친구 소개로 죠이(JOY)선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내구주로 영접했다. 도덕적으로 열심히 살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공허함이 있었고 장래의 삶에 대한 불안 등으로 노이로제(Neurose)에 빠지기도 했다. 성경말씀을 통해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절대자요, 만물의 통치자요. 주권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후 나와 세상은 간 곳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며 참 진리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의 참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ㅡ선교사로의 꿈
불교신자였던 내가 외국선교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감격(感激)으로 제자훈련을 받고 장래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대학졸업 후 은행에 취직을 하였고, 결혼 상대자를 두고 기도하던 중 지금의 아내 이순희 선교사를 만났다. 죠이 대학생 여름수양회시 선교사의 통역하는 모습이 내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선교사로 가려면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청혼을 하였다.
결혼 후 선교사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아내와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 때를 기도하면서 기다였다. 아내는 세계기독교선명회에서 번역부장으로, 퇴직 후에는 영어 학원을 경영하고, 교회에서는 설교통역 및 영어예배 교사, 번역일로 봉사를 했다.
나는 직장(은행) 신우회 회장으로 섬기며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석ㆍ박사를 마쳤다. 28년 동안 몸 담았던 은행 퇴직 후에도 선교사로 오기까지 인천대학교 초빙교수로부터 타 대학교 겸임교수에 이르기 까지 줄곧 17년 동안 대학(원)에 출강했다. 초등학교 때 교사의 꿈이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교교수가 되어 선교사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ㅡ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받기 까지
명성교회 선교위원회에 봉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선교훈련도 받게 되었고, 장로(長老)로서 선교부와 교육부를 섬기면서 선교의 다양한 사역(使役) 형태를 배우게 되었다. 또한, 한국외항선교회의 상임감사 선임, 시니어선교한국의 선교사훈련도 받았다.
선교-지를 물색하던 중 아내와 나는 각각 라오스, 필리핀등지를 탐방했다. 그러던 중 캄보디아 4년제 기독종합대학교인 라이프대학교에서 교수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캄보디아는 1975~1979년 킬링필드 대학살로 지식인 양성이 시급하고 학생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가졌다. 2006년도에 설립된 라이프대학교는 이외에도 유치원, 초ㆍ중ㆍ고 ㆍ국제학교에 이르기까지
3,000 여명의 학생들이 예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2023년에는 라이프대학교. 축구팀이 결성되어 캄보디아 국가축구팀 리그2부로 뛰고 있다. (현재는 축구 창단 1년만에 캄보디아에서 우승을 하여 리그 1부로 진출)
간절한 기도로 경기를 시작하고 마치는 이러한 스포츠선교는 머지않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ㅡ심도있는 선교사 훈련
선교사로 파송된 지 만 1년이 지나고 코로나 때문에 한국으로 귀국하여 라이프대학교 학생들에게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한국전문인선교 GPTI 훈련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도 훈련받을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오후 5시에 포도원에 일하러 나온 품꾼에게 아침에 일을 시작한 품꾼들과 동일한 품삯을 준 포도원 주인처럼 주님께서는 사랑과 은혜, 자비와 긍휼을 넘치게 베푸셨다.
매주토요일 온종일 6개월 동안의 심도 있는 선교사훈련은 BAM(Business As Mission:비지니스 선교) 강좌를 통해 여태까지의 직장생활과 은퇴 후 교수생활이 전문인 선교 사역의 준비기간 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록 짧은 훈련이었지만 성경적 세계관,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 자아성찰(自我省察)의 큰 계기(契機)가 되었다.
ㅡ 라이프대학교에서의 선교와 향후 비젼(vision)
첫 수업시간을 마친 후 학생들의 질문에 놀랐다.
“교수님은 언제 캄보디아를 떠나실 겁니까?” 라는 공통된 질문이었다. rm Eo 나는 당당하게 말을 했다.
“여러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여, 결혼도 하고 잘 사는 것을 보고야 떠나겠다.” 이곳에 와서 6개월 내지 1년만 강의하고 떠나는 교수들도 있어서 그와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복음의 빚-진자로서 선교지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그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뿐이다.
3년 동안은 대면수업, 1년 코로나 기간 동안은 비대면 수업을 했다. 아내는 영문과에서 나는 경영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수업을 담당해 왔다.
나의 수업의 튜터(tutor)역할을 해 준 아내 이순희 선교사의 역할이 더 컸다. 영어발음지도, 학습 부진학생 개인지도 및 특히 대학원수업의 경우 토론학습에 항상 참여하여 활력을 불어 넣었다.
2022년 8월에는 유네스코와 한동글로벌대학교가 함께하는 UNITWIN Start Up 프로그램(캄보디아 대학생을 위한 창업)에 1주일 동안 12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여 포상금과 함께 우수상을 받았다. 이는 학생들이 입학 후 글로벌-마인드를 가지게 된 가장 값진 경험으로 여기고 있다. 3학년 학생들은 영어로 수업을 진행해도 이해하는 수준이 되지만 저학년 학생들 중에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크메르어로 통역하게 하고 영어가 부족한 학생에게는 잘하는 학생과 짝을 이루어 부족한 부분을 채우게 했다.
구글(google) 번역기와 구글 보이스 매스터(master)를 이용하여 영어 듣기와 독해(讀解)를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게하여 학습효과를 제고시켰다.
ㅡ 마을목회와 상호협력 선교
GPTI 훈련에서 뼈저리게 체험한 훈련의 결과로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주 작은 일에도 부부(夫婦)가 상호 협력하여 시너지효과를 가져오도록 노력했다. 그것은 사랑의 실천이다.
이웃 영세 과일가게 주인의 겨드랑이 종양수술을 위해 병원진료, 입원 등을 적극주선하고 그 자녀에게 영어를 가르쳐 부모와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했다.
월(月) 1회 간식과 선물을 준비하여 지역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말씀도 선포하고, 동료 선교사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도록 순회선교도 시도하고 있다.
태국의 치앙마이,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의 선교사와도 교류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캄보디아 선교사들과 연합하여 2023년 8월에 시하누크빌에서 있은 힐링캠프(healing-camp)에서의 감격은 나의 선교여정에서 랜드마크(landmark)가 될 것이다.
맺음말
선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오직 위에서 부르신 이의 뜻을 쫓아 “내가 너희를 위해 싸우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라는 말씀을 의지 한다. 다양한 은사를 가진 동료선교사들과 연합하여 그들이 가진 각양 좋은 은사가 유감없이 발휘되어 열방을 향한 복음전파에 주님께서 마음껏 일하시도록 해야겠다.
문화와 풍토가 다른 선교지에서 소망과 기쁨과 평화를 선사하는 주님의 대사로서 오늘도 주님의 부르심에 순응하여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화답한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충만할 때까지 늘 청년 같은 열정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아직 신-중년의 나이에 불과하다. 사무엘 울만이 78세에 쓴 청춘(靑春)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 하지ᆢ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미래학자이며 예루살렘히브리대학교 교수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지식의 반감기를 생각하여 오늘도 지식이 녹슬지 않도록 겸손히 무릎 꿇고 배움의 길을 계속한다.
2023년 말 한국방문시 청안문학에서의 문학과 선교라는 제하의 특강의 기회와 함께 라이프대학교에 파송선교사로 영입해 주심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