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예와’는 ‘하야(be)’로서 상태 혹은 존재를 이야기하는 ‘있다’와 ‘있을 것이다’의 뜻이다.
2) 성경책은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기 위한 방편이지, 신적인 대상을 믿는 것이 아니다.
3) 부활한 그리스도 예수는 깨달음을 얻은 자들 모습 그대로 오시는(에르코마이) 것이다.
4) 몸과 마음을 입고 온 육체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모두 거기서 거기다.
나. 본론
1) ‘예와’는 ‘하야(be)’로서 상태 혹은 존재를 이야기하는 ‘있다’와 ‘있을 것이다’의 뜻이다.
구약에 예와 하나님(예와 엘로힘)이 등장한다. ‘예와’는 ‘하야(be)’로서 상태 혹은 존재를 나타내는 동사로 ‘있다(과거 시상)’와 ‘있을 것이다(미래 시상)의’ 뜻이다. 즉 ‘나는 나’인데 과거시상과 미래시상 두 가지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 언약에서는 ‘나는 나(현재 시상)’로 온전하게 등장하는 것이다. 곧 내 안에 나타나신(임재하신) 그리스도 예수다. 내 안에서 구약에 나타나신 예와 하나님이 사라지자마자 그리스도 예수가 그 즉시 드러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구약에 등장하는 예와 하나님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이것을 새 언약에서는 반드시 예와 하나님을 쫓아내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2) 성경책은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기 위한 방편이지, 신적인 대상을 믿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구약과 신약이 있는데 이는 역사적인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알리고자 종이에 문자로 기록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오해하여 성경말씀을 우상처럼 여기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래서 종교인들에게는 하나님 말씀이 어려운 것이다. 이들이 해석한 온갖 이상하고 엉뚱한 각종 이론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모두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내용들로서 경계해야 한다. ‘오시리라’로 번역한 ‘엘류세타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의 모습으로 지금 현재 계속 오시고(나타나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3) 부활한 그리스도 예수는 깨달음을 얻은 자들 모습 그대로 오시는(에르코마이)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는 멋지고, 젊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자들 모습 그대로 오시는데(에르코마이) 얼굴에 주름이 많고 늙었으면 늙은 모습 그대로 오시고, 장애인이면 장애인 모습 그대로 오신다. 이빨이 빠졌으면 빠진 모습 그대로 오시고, 육체적 질병이 있으면 그 모습 그대로 오시는 것이다. 흑인이면 흑인의 모습으로 오신다.
깨달음은 육체의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모양도 바꾸고 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통달에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육신통을 얻어 오신 분으로 신통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오래도록 신통을 부리며, 산다는 것은 허상인 것이다. 실체가 아닌 몸과 마음을 끝내고 하나님과 하나인 몸 된 성전으로서 안식의 길을 제시하신 것이다
4) 몸과 마음을 입고 온 육체는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모두 거기서 거기다.
몸과 마음을 입고 나와서 권세를 부려봐야 모두 고통만 남게 되는 허상으로서 모두 허무한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잘 먹고 잘 살아 봐야 잠시 잠간이며 늙고 병들면 죽어야 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다. 남는 것은 모두 허무뿐이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