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나서 아무것도 없는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경북자동차학원에 2주 다니다가 형님께서 운전하는 것을 못 하게 하셔서 그만두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형님 따라서 농촌에 일을 배우면서 농사일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라서 모든 일이 제 몸에 맞지 않는데 그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지게를 지지 않으면 모든 일을 할 수가 없어서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나무를 하려고 가서 나무를 조금 해서 지게를 지니 이리저리 가며 넘어서서 올바르게 되지 않아서 어깨가 아파서 지게 질을 잘 할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니 모든 일을 형님과 같이 일을 하니까 어느듯 몸이 단련되어서 지게도 지고 산에 나무도 하고 농사일을 할 수 있었다.. 집안에서 너는 막내니까 일찍 결혼해서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살림을 차리고 하라고 당숙 어른께서 자주 말씀하셨다. 그때 이웃집에 어르신 회갑 잔치를 하는데 중혐께서 잔치에 오서셔 큰형님과 의논을 하면서 중형집 이웃 동네에 적당한 처녀가 있으니 내일 같이 가면 좋겠다고 하신다. 서로 선이나 헌번 보면 하시고 그렇게 하자고 하시고 나서 저녁이되니 큰형님이 불려가니 내일 중형집에 다녀 오라고 하셨다.
이튿날이 어머님께서 형님말씀 잘들으라고 하셨다. 형님과 같이 중형님짚에 도착을하니까 약속이나 한것처럼 모든 준비가 되어서 형집에서 조금 떨어진 처녀집으로 가니 그집에서는 모든준비가 되어있어서 어른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한 사람씩 나가고 우리만 남았서 할말이 없어서 몇마디 말만 나누고 오늘은 가겠다고 하고 나왔다..
같이 갔든 남호댁이 오면서 하시는 말씀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고하시고 형수님도 잘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그길로 집에 와서 생각을하니 벌서 내가 어른이 되나싶고 인생이 허무한 마음이 들면서 앞으로가 걱정되여서 주막에가서 막걸리를 사서 아버님 산소가서 큰소리내면서 한참을 울었다. 한참후 동네친구를 찾았다. 무슨말을 해야될지 걱정이 많이되었으나 그간의 사정을 예기했다.동네친구들 하는말이 왜이야기도 안하고 그렇게 할 수있나 원망을 한다..나도 마음이 안좋아 혼자서 걱정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데 중형집에서 편지가 왔는데 한번집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남호댁이 한번 더 가보자고해서 그때는 간이 커저서 가보자고 하니 골목길에 사람들이 모두 처다보고 웃고하드니 집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내가 들어가니 모두들 와서 인사을 하고 나드니 서먹서먹 한게 없이 술도 권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자고 하면서 농담도 하고 나서 집으로 오려고하니 남호댁이 허락하고 가라고 했으나 집에가서 알려주겠다하고 얼마후 장모 될 어른께서 편지를 우리 집으로 보내왔는데 내용이 우리 딸이 한 번 보았으면 해서 만나자는 연락이왔다 나는 생각 없이 답장했다 그때만 해도 촌이라서 적당한 장소가 없어 달성공원 앞에 오전 11에 만나자고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왔다 약속하고 그날 가니 기다리고 있어서 공원 구경을 하고 나서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나서 헤어지고 집에 와서 있는데 동네 여자 친구가 보자고해서 만났더니 이제 우리는 잊고지내자고 하니 나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그 길로부터는 보아도 모르는척했다. 그리고 나는 선본 아가씨와 자주 만나고 지내다가 가을이 되자 결혼 날짜를 정하고 사성이 오가고 하더니 결혼 날이 닥쳐서 결혼하고 나니 한해를 묵힌다고 이 년을 지나고 나서 신혼했다. 조금 살지도 안았는데 큰형님은 농지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해 형님 살든 집에 내가 사니 집은 넓고 둘이 살기에 집이 너무커 힘들었다.
고생하면서 일 년 농사를 짓고나서 식구 폐물을 팔고 보리농사 지은 것도 내고 해서 동명장에서 조그만 황소 새끼를 사서 죽도 일찍 끓여주고 질 보살펴 주었다.. 모두가 잘 키우고 있다고 칭찬하고 했는데 어느 날 소 다리에 혹이 나서 소가 죽도 잘 먹지 않아서 동명장에서 파는 데 혹을 약점 삼아서 제값을 받지 못하고 고생만 했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군에 입대하라고 영장 나왔다. 식구와 아이 셋을 두고 제이 훈련소 서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서 부산 병기학교를 졸업을 하고 나서 대구공고 옆에 제122지원대에서 근무하는데 우리 부대는 육군 직할부대라서 진급도 빨리하고 근무가 편안했다.
한번은 집에 갔다가 부대로 오려고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옆에 차가 가로막는데 보니까 우리 부대 중대장님 차가 고향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하고 군생할하는데 애로가 없으나 고 하시길 내 없다고 대답했다. 중대장님 숙소까지 같이타고 와서 나와 운전사는 부대로 오고 나서 얼마를 지나니 월남 지원병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을 했더니 중대장님께서 불려서 가니 너는 식구가 있는 가장이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대로 충실히 군 복무를 만기 제대했다.
나는 군생함을 하면서 잘 보냈으나 식구는 어린아이들과 고생이 침으로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