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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지키기'
집사람에게 퇴직하면 제주도에서 4계절을 보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차근차근 준비한 결과 드디어 오늘 출발한다.
승용차를 가져가기로 하고 차에다 여러 종류의 찬과 전기밥솥, 그동안에 입을 옷과 등산화를 배낭과 가방에 나누어 담고 다른 사람
이 덥던 이불을 싫다는 반쪽을 위해 이불 한 채를 보자기로 싸서 트렁크와 뒤 의자에 빼곡하게 넣고 기대와 설렘을 안고 9시 장흥 노력 항을 향해 출발했다.
9시 30분 현풍휴게소 뒷동산에 500년을 꿋꿋하게 버티고 선 당산나무를 찾았다.
언제나 늠름하게,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으며 기세등등 하던 당산나무가 몰골이 말이 아니다.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가지 사이로 부드럽게 흘려보내면서 하늘에 순응해 수백 년을 잘 살아오다가 한순간 객기를 참지 못하고 자연과 맞서다 몸의 반쪽을 내어주는 아픔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많이도 닮았다.
불어오는 태풍과 내려치는 벼락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몸의 한쪽을 내주는 바람에 장애를 입은 채 힘겹게 섰는데, 인간의 치료와 도움으로 당당한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 가고 있다는 당산나무를 보면서 숱한 풍파와 주변의 훼방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꿋꿋하고 고고한 삶의 지혜를 배워간다.
1시 10분 울 부부가 이곳을 지날 때면 30년 넘게 드나들고 있는 재첩 회로 이름난 섬진강 휴게소 뒤편에 있는 식당에 들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이 이른 시각이라 손님은 우리 둘밖에 없다. 재첩회 비빔밥을 주문하고 재첩국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오돌오돌하면서 쫄깃 쫄깃쫄깃 씹히는 재첩 맛이 달짝지근한 배즙과 어울려 일품이었는데, 올해는 작년 배 농사가 흉년이라 배 대신 무로 회를 무쳐 맛이 예전같지 못하다.
13시 전라남도 장흥 노력 항에 도착했다.
새롭게 단장한 여객터미널로 돌아 들어가는 길이 옥빛 바다와 올망졸망 늘어선 녹색의 내륙과 끝없이 이어지는 파란 하늘이 한데 어어우러지면서 독특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
터미널에서 안내하고 있는 제주 관광 지도와 할인권들을 차곡차곡받아 챙긴 후 구내매점에서 먼 길 오느라 지친 몸을 아이스크림으로 달랜다. 안내방송에 따라 예매 내용을 확인하고 승선표를 발급받아 차를 먼저 싣고 탑승수속을 마치고 대기하다가 2시 30분 오랜지 호를 타고 출항한다.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하다. 멀미를 걱정했는데 비행기를 탄것처럼 고요 하다. 내항을 벗어나자 드문드문 보이던 섬들도 사라지고 배 앞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많은사람이 들뜬 모습으로 갑판 위에 나와 섰다. 우리는 뱃머리에 서서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들여 마시는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은또 다른 맛이다.
오후 5시 50분 제주 성산포항에 안착하고 일주도로를 달려 1시간 20분 뒤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2012.10.5. 금
한림수목원과 절물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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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30분에 일어나 모든 준비를 끝내고 9시에 한림수목원에 도착하여 왼쪽으로 들어갔더니 무료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산책코스가 나온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열대 나무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상기된다.
바다에서 떨어진 중 산간에 있으며, 오래된 나무들이 즐비하다. 친환경 숲길은 그동안 삶에 찌든 도시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뻥 뚫어준다.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꼬불꼬불 이어지는 수목원 숲길을 심호흡하고 삼림욕을 즐기면서 오랜만에 반쪽과 함께 천천히 흐르는 세월을 음미하며 걷는다. 나를 만나 고생하는 동안 시간이 가져다준 세월의 흔적들이 반쪽의 머리 밑과 얼굴 구석구석에 훈장처럼 달려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걸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이 또한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주고 가정을 지켜준 반쪽의 희생과 정년이 가져다준 삶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여러 갈래 산책코스가 있고, 보도를 자연 친화적인 야자 껍질로 만든 마대를 깔아 걷는 느낌이 한결 포근하다. 안내에 따라 오름을 찾아 오른다.
해발 266m 광이 오름이다. 오르는 길은 나무 데크로 안전하게 만들어 두어서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소나무 숲을 지나는 오솔길이 많고 공기가 맑아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길이고, 제주공항에서 가까운곳에 있으며 입장료도 없어 제주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고한다. 산책을 즐기는 제주시민들이 많이 있었으며, 특히 시끄럽게게 떠들어대는 젊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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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마트에 잠시 들려 쇼핑하고 아들이 준 식권으로 제주 아웃백에 들어섰는데 식당의 분위기가 생뚱맞기 그지없다. 앞사람이 겨우보일 것 같은 어두운 조명에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젊은 종업원들과 이름 모를 음식 등 분위기가 낯설다.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막 식사를 끝낸 젊은 커플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같은 나이 또래의 남, 여종업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는 불꽃놀이 도구에 불을 붙여 폭죽을 터트리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축하해 주는데 생일을 맞은 젊은 커플은 케이크를 자르더니 둘이 다정하게 안은 체 그들과 마주하고 앉아 있다. 손님은 갑이고 종업원은 을인 셈이다. 이런 젊은이들의 문화가 내눈에는 아직 어색하게 비친다. 비위에 맞지 않는다. 이 젊은 커플은 내가 돈을 내고 음식을 먹고 있는 이 시간은 종업원들도 음식과 함
께 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들을 저렇게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이런 젊은이는 화성에서온 사람인가? 아니면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화성인 인가? 아무튼 아들 덕에 요즘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기회가 되었다.
3시 40분 제주시에서 5.16도로 를 타고 20분쯤 달린 거리, 화산 분화구 아래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편백 나무를 닮은 40년생 삼나무가 빼곡하게 늘어서서 태양을향해 우람하게 치솟아 올라 만들어 내는 숲 터널을 걸으면서 한 대의 화살처럼 울창한 숲을 비집고 날아 든 한 줄기 밝은 햇살과 함께 이곳에서도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신다. 가슴이 탁 트인다. 가슴속이 환히 밝아온다.
삼 숲길, 숲속의 집, 건강한 산책로, 약수터, 목공예 체험, 삼림 문화휴양관, 잔디광장, 장생의 숲길 등으로 각각 특색 있는 테마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었다, 특히 숲속의 집은 자연휴양림처럼 일반인들에게 대여되고 있었으며, 목공예 체험실 앞은 태풍에 쓰러진 삼나무를 활용하여 각종 곤충의 모습을 목각으로 표현하여 체험실 앞에전시하고 있다. 경사가 완만한 길에 자연을 보호하고 오르기 쉽게나무 데크로 곡선의 아름다움을 살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친환경적으로 설치해 놓아서 미끄러질 염려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한 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할 것 같다.
절물오름 정상에는 말발굽형 분화구를 관찰할 수 있도록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전망대 위에 올라서면 주변의 경관과 함께 분화구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고 고개를 들면 멀리 한라산과 제주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큰 오름으로 큰 오름을 큰 대나 오름, 작은 오름을 작은 대나 오름이라 부르며, 오름길에 약수암 못미처 솟아나는 절 물이라불리는 약수가 있어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2013. 10. 7. 일
주일
이곳에 머무는 동안 다닐 예수교 장로교 교회를 찾으려고 사장님께도 물어보고 길을 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기도 하였으나 허탕쳤다.
올레 시장 쪽을 둘러보다가 1호 광장 쪽으로 나가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교회를 발견하고 2층으로 올라가 보았으나 두 곳의 교회는 모두 오래전에 문을 닫은 교회였다.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아침을 먹고 예배 시간 보다 일찍 나섰다. 1호 광장을 지나가는데 남 제주교회라는 간판이 보여서 찾아갔더니 자그마한 키에 인자한 모습의 목사님과 교인들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입구를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자그마한 단층짜리 예배당이 있고 정면엔 목사관이 있다. 40명 남짓한 교인과 시설에서 데리고 오는 듯 봉고차를 타고 오는 장애인들이 다수 포함된 교세가 약한 자그마한 교회였다. 예배 시작 전에 열과 성을 다해 복음 찬송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신도 수가 적다가 보니 일인 다역의 체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운을 입고 성가대에 섰다가 가운을 벗고 진행자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운을 벗고 기도하러 나오고 이렇게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성경책을 펴는 순간 하나님의 세상이 펼쳐진다.’라는 목사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 성경책을 펴는 순간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는 말씀일 터, 부지런히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라 생각했다.
20113.10.8.월
6코스 14Km(쇄소깍∼외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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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중앙로터리 동쪽 주차장에서 10분마다 출발하는 효돈행버스를 타고 09시 40분 ‘효 돈’에서 하차 후 출발한다. 쇠소깍에서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뜻으로 ‘효돈천’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깊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어 이름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용암이 흘러 넘쳐흐르다가 굳어진 ‘소’에는 ‘태우’라는 줄을 잡아당겨 움직이면서 쇠소깍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뗏목 배가 있어주변 경관과 어울려 운치를 더해준다. 또한 기암괴석과 소나무 숲 그리고 산책길에 만난 난대 수림들이 서로 어우러져 제주만의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조명시설이 잘되어 있어 야경을 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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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소깍에서 소금 막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정경은 지상의 하늘나라다. 하늘과 바다가 이어져 하나가 되고 맑고 높고 밝은 하늘과 어우러진 곁으로 야자수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국을 떠올리게 한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인지 구분키가 힘이 든다.
굳이 구별할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보고 생각한 대로 느끼면 된다.
“여보, 천국이 이런 곳이 아닐까요?” 반쪽이 주변 경관에 취한 것
같다.
“너무 예쁘다, 그리고 아름답다.” 동문서답을 한다.
11시 50분쯤 제지기오름 오르기 전 중간 휴게소에서 감물을 정성스럽게 들인 제주 전통 복장을 하고 휴게소를 지키고 앉은 할머니로부터 제주도 특산 쉰다리 음료와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고 그보다 더귀하다는 약밥은 얻어먹었다. 순박한 시골 인심이다. 손님은 달랑우리 두 사람뿐인데도 할머니의 표정은 밝다. 삶을 달관한 모습이다. 이곳의 자연을 닮았다.
구두미 포구 전망대에서는 섶섬이 코앞에 누웠다. 가까이에서 조망해 볼 수 있다.
주변 식물들은 오랜 세월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살아남기 위해 키는 작고, 잎은 두껍게 적응했다. 바닷바람을 받아 싱싱하다 못해 검푸르게 반짝이는 잎으로 난대림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바다 옆 숲길을 지나자, 집 둘레를 돌로 붙인 년 식이 오래된낡은 제주올레 사무국이 나타난다.
점심은 고등어구이 전복탕으로 해결하고 다시 걷는다. 다른 올레꾼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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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방폭포와 서귀포항을 지나고 수많은 중국 여행객이 오르내리는조도를 지나 힘든 고갯길을 오르니 사무친 그리움이 돌이 되어 바다 위에 홀로 외로이 서 있어 이름 지었다는 외돌개에 이르고 나서야 일정이 마무리된다. 총 14 Km 보통 4∼5시간이면 간다는 길을 6시간 50분 동안 걸었다. ‘그만큼 자연과 하나 되어 자연을 즐겼다는 말이겠지?’
2012.10.10.수
보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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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보석과 외손자와 외손녀가 왔다.
오전 8시 20분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6 일만의 재회인데 나는 주차 관계로 마중 가지 못하고 차에서 대기하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에서 외손자를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저 멀리에 반쪽과 아이들이 보인다. 뒤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딸 보배 가족을 차에 태우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와 맥도날드에 들러아이들이 좋아하는 간단한 식사 거리를 사 들고 한라공원으로 갔다. 먼저 공원 벤치에 앉아 맥도날드에서 사 온 빵으로 간식을 먹은후 공원 탐방에 나섰다. 한라공원은 난대성 식물에서부터 한라산의 고산식물까지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제주 유일의생태공원으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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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이는 아픈 어미 대신 내가 아기 포대를 하고 배에다가 캥거루새끼처럼 메 달았는데, 포대 속에 ‘쏙’ 들어가는 바람에 머리끝도 보이지 않는다. 민기는 신이 났다. 앞장서서 뛰어가다간 뒤돌아보고 서서 빨리 오라 손짓하고, 소리쳐 부르다가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돌아서 뛰어온다. 그러다간 놀이기구를 타면서 얼굴 가득 웃음을머금은 채 공원을 산책하고 있다.
이곳에 와서 둘만 다니다가 가족이 늘어나니 신경을 써야 할 일은 많아졌으나 외손주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삶에 활기가 넘쳐난다.
민길 위해서 민기가 좋아할 만한 유리의 성으로 자리를 옮긴다.
2012.10.11.목
딸 보석과 함께
참돔 매운탕으로 아침을 먹고 제주 드라이브 코스로 추천된 5.16도로 숲 터널로 차를 몰았다. 이 도로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개통된 국도로서 한라산 남·북을 이어주는 제주 횡단 도로다. 이 도로의 1 Km정도 구간이 가로수가 하늘을 덮어 숲 터널을 이루고 있어 맑은 날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 그 속에 들어서면 빛이 차단되어 어두컴컴 하면서 한여름에도 시원하여 아름다운 길로 이름이 난 곳이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사련의 숲길이다. 지난해에 제주도에 큰 상처를 남긴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많은 나무가 쓰러지거나 부러져 있다. 쓰러진 나무들을 보면 제주의 척박한 환경을 알 수 있다. 용암 위에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 붙어 쌓인 화산재 토양 위에서 겨우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다가 보니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하고 옆으로만 넓게 펴고 숲을 이루어 서로 도움을 주면서 의지하며 삶을 지탱하였으나, 불어오는 강풍에 더는 버틸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르자 어쩌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
짧은 소매를 입은 민기가 추울 것 같아서 반쪽의 바람막이를 입혔더니 코트처럼 어울린다. 잘 다듬어진 아름다운 숲길을 가족이 함
께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다. 그런데 민기는 아닌가 보다. 조금 걷더니 꾀를 부리면서 그만 걸으려고 한다. 달래다가 어르다가 하면서 2시간 30분을 사련의 숲에서 보낸 후 쇠소깍으로 이동했다. 채연이는 게딱지처럼 배에 붙었다가 등에 붙었다가 늘 내 차지다.
‘민기야 저 바다가 세계에서 제일 넓은 바다 태평양이란다.’ 외할머니의 손끝을 따라 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는 민긴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 민기가 저 태평양처럼 가슴이 넓고 깊이와 울림이 있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하고 기도한다.
힘든 수술 이겨내고 이렇게 건강한 엄마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는 울 딸도 고맙다. 은아, 먼 훗날 네가 세상 살아가다가 삶이 힘들고 지칠 때 꺼내 놓고 함께했던 이 시간을 생각하며 한번 활짝 웃어보렴.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
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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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2.금
딸 보석과 함께 숙소에서 가까운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을 만나
러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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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가는 길은 이중섭 문화거리로 꾸며 놓아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피난 당시 중섭이 거주했던 집에 들렀더니 그가머물던작은 방에 걸린 초상화가 그때를 말하고 있다.
배를 타지도 고기도 잡지 못하는 화가가 기껏 자구리 해변에서 돈도 되지 않는 게를 잡으며 타향인 이곳에서 혼자 살아가려면 얼마
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래서 중섭은 삶을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고 노래했나 보다. 농촌에 살면서 농사 일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이곳 제주에서 힘겹게 살았을화가의 모습이 가슴에 진솔하게 와닿는다.
피난 당시 그가 거주했던 거주지를 중심으로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이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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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사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사진을 찍으러 제주도에 왔다가 오름의 아름다움과 자연에 반해 평생을 낯설고 물선 제주에서삶을 이어와 제주토박이보다 더 제주를 뼛속 깊이 사랑한 분이라고한다. 바닷가와 중 산간, 제주도의 섬들과 오름, 한라산 등 제주의
자연과 이곳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만 골라 꾸밈없이 카메라에 담았다고 하는데 말년에는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버려진 폐교를 활용하여 미술관을 만드는 일에 열정을 쏟았고, 그 결정판이 두모악 갤러리라고 한다. 사람은 하늘에 별이 되었으나, 그가 남긴 예술은 영원할 것이다.
2012.10.13.토
4코스 표선 남원 2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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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 가족은 사위와 함께 따로 돌고 우린 올레길 4코스를 걷는다. 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제주 일주 버스를 타고 표선네거리에서 내린 후 올레 표식을 찾아가며, 표선 해비치 해변 쪽으로 10분 남짓 걸어 4코스 시작점엔 11시 20분에 도착했다.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할망의 전설이 깃든 당케 포구를지나 거문머치에 이르러 길가 휴게소에서 들렀다. 이 길에선 마지
막 휴게소다.
휴게소 주변의 경치가 좋아 휴게소 안과 목 좋은 야외 자리는 미리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우린 휴게소 밖 입구 쪽에 자리 잡고 앉아 와플과 커피 한 잔을 시켜 두고 준비해 온 떡으로 간식을 먹는다. 토산 포구를 지나면서부터는 중 산간 지대로 들어선다. 중 산간지대로 들어서면서, 많은 돌을 쌓아 밭과 밭의 경계를 만든 밭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돌과 돌 사이에 바람의 길을 내어 막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면서 제주의 거센 바람을 견디고 이겨내게 한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배운다. 이처럼 돌담으로 밭의 구획을 나누고 소와 말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였으며, 강한 바람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이곳 제주만이 가진 독특한 정경이다. 그래서 제주 밭 담이 세계 농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나 보다.
이외에도 올레 담, 게 담, 축담, 산 담, 통시 담처럼 돌담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은데 그 쓰임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여 불린다고 한다.
4코스는 반은 바닷길이고 반은 산길이다. 바닷가를 걸을 땐 넙치와 광어 양식장을 1시간 가까이 지나고 인적 드문 중 산간 지역에 들어서면 이어지는 귤 농장이 2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있어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조용하다.
토산봉 망오름을 지나 영천사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옆에서 걷던반쪽이 ‘여보, 하늘 함 봐요. 십자가가 보여요.’ 하는 바람에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쳐다보다가 ‘캑캑캑’ 기도가 막혀 혼이 났다. 홍삼캔디 한 알을 먹으라고 주길래 그것을 입 안에 넣고 굴리고 있다가반쪽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젖히는 바람에 사탕이 식도로들어가면서 순간적으로 식도를 막아버린 거다. 침을 삼키고 노력한끝에 사탕은 식도로 내려갔으나 눈물이 나고 한동안 목구멍이 따가웠다.
오늘 길은 난이도가 상에 속하는 길이다.태흥2리 포구에 이를 때까지 중 산간 지역을 걸었다.
제주도는 중산간 지역 사람들의 농사에 꼭 필요한 수리 시설을 갖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 산간 지역까지 물탱크를 설치해 두고 물탱크의 물이 각 밭으로 공급될 수 있게 단단한 플라스틱 관으로 연결하고 밭에서 그물로 스프링클러를 돌려 농작물의 갈증을 해소하고 있었다.
출발한지 7시간이 만에 오늘의 목적지 남원 포구에 도착했다.
2012.10.15.월
애코랜드
사위가 대구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7시에 일주도로를 달려 제주 비행장에 데려주고 오는 길에 제주시에 있는 맛집 앞뱅디식당을 찾았다, 늦은 아침인데도 사람들이제법 있다.
우린 각재기국과 멜국, 각재기 조림을 시켜서 아침을 먹었는데 음식값이 싸긴 하나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에코랜드에 들렀다.에코랜드는 영국에서 만들어 왔다는 앙증맞은 1800년대의 모형 기차를 타고 제주의 원시림 30만 평에다가 곶자왈을 탐험하도록 만든곳이다. 개발하면서도 최소한의 개발로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메인 역에서 미니 기차를 타고 4.5 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 나오는데 우린 첫 번째 에코브리지 역에서 내려 두 번째 레크사이드 역까지는 걷는다.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그림 같은 다리를 건너고 수상 카페와 모형 풍차, 그리고 모형 배를 지난다.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면서 천천히 또 천천히 걷는데 채연이는 유모차에 태워 밀고 간다.
두 번째 레크사이드 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새우란 군락지와 야생화 단지 그리고 협곡을 지나 세 번째 피크닉 가든 역에서 내린다. 그곳에 조성된 미니(소인국)도시를 관람한 후 호수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장거리 걷기 코스에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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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Km 코스를 선택해서 걸으면서 각종 체험을 즐긴다. 송이 맨발 체험, 펌프 놀이, 해먹 타기, Eco art school 관람과 체험을 하는데 민기는 송이 맨발 체험에선 양말을 벗은 채로 조심조심 걷는다. 마중물을 부어 넣으면서 물을 끌어 올리는 펌프 놀이를 하는 곳에선 신기한지 자릴 뜨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끌어올려오는 물을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해먹 위에 누워보고 그네도 타면서 숲을 벗어나니 피크닉 가든 역이 우릴 맞는다. 피크닉 가든역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곰취 군락지와 분화구를 지나 처음 출발
한 메인 역으로 돌아 나오면서 오늘 관람 일정이 모두 끝났다.
깊고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호수 가득 담아내는 아름다운 호수, 바람에 한들거리는 갈대, 천혜의 원시림, 붉은 화산흙을 밟고 가는 숲길 등. 환상적인 체험 코스로 오랫동안 민기의 기억 속에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2012.10.16.화
체험학습(10시∼12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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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남원리 최남단 감귤 체험농장에 갔다.
사계절 감귤 따기 체험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계절별로 따는 감귤의 품종이 다르다. 곤충 체험장과 동물체험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
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 곤충 표본을 돌아보고 동물 먹이를 사서 한 움큼 들고 동물들이 있는곳으로 들어서자, 토끼가 도망간다.
“토끼야, 이리 와.”
“사슴아, 이리 와,”
하며 먹이를 손에 들고 민기가 어쩔 줄 모른다. 민기 얼굴에 안타까
움이 묻어난다.
내가 나서서 먹이를 들고 손바닥을 펴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조용
히 다가와 먹는다.
“외할아버지, 이제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손바닥을 벌리고 가만히 있으면 될 것 같아요”
“무서워하지 않고 할 자신 있어?”
“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그럼 다시 해 봐”
다시 토끼에게 다가간 민기는 토끼가 다가와도 가만히 앉아 손을내밀고 움직이지 않는다. 토끼가 먹이를 먹는다. 그 모습을 바라보
는 민기 얼굴에 해냈다는 마음에 함박웃음이 번지면서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진다. 재미에 푹 빠져 일어설 생각이 없다.
“민기야, 그만 감귤 따러 가야지.”
“......”
“민기야, 그만 가자”
몇 차례나 재촉한 뒤에야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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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밭 입구에 이르자 감귤 딸 밭을 지정해 주고 감귤을 따서 넣을 바구니 1개와 가위를 한 사람당 한 개씩 나누어 주면서 안에서 따먹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가지고 나올 수 있는 귤은 나누어준 그릇에 하나 가득 담아 나오는 것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주인이 안내하는 밭으로 들어가 민기에게 묻는다.
“민기야, 너 딸 수 있겠어? 감귤 나무를 부러뜨리면 안 되거든.”
“할 수 있어요.”
“잘 봐, 이게 감귤 따는 가위인데 이렇게 사용하는 거야.”
하며 시범을 보이고 난 후 민기 키 높이에 있는 감귤을 따보라고 했
더니 손아귀에 힘이 없어 잘되지 않는다.
“다시 한번 해 보자.”
민기의 손을 잡고 해 본다.
“이렇게” “외할아버지 손이 아파요.” “그래, 한 번 다시 해 봐. 천천
히”
겨우 하나를 땄다.
“네가 먹을 것은 네가 따서 먹도록 하렴.”
잠시 후 돌아보니 신이 났다. 따서 바구니에 담기도 하며 이곳저곳으로 마구 돌아다닌다. 다칠까 걱정되어 다시 한번 주의를 준다.
“나무에 가시가 있으니까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러나, 그때뿐이다.
태초에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센 설문대 할망이 있었는데 할망은 바다 한 가운데 제주도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치마폭에 흙을 싸서 나
르다가 무수히 떨어진 흙 부스러기들은 제주의 오름이 되었고 모아온 흙으로는 한라산을 만들었고, 할망이 빨래하다가 빨래 방망일 잘못 놀려 한라산을 내려치는 바람에 한라산봉우리가 떨어져 나가산방산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설문대 할망 태마 공원을 찾았는데 모두 돌로 조성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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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7.수
떠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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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나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유치원 가야지.”
“그래도 여기 있고 싶은데.”
제주의 가을을 알려고 두 달 일정으로 제주살일 한다.보석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와, 함께 한라공원을 걷고, 숲이 터널
을 이룬 5.16도로도 달렸다. 오순도순 사련의 숲길도 걷고, 에코랜드에선 19세기형 모형 기차에 몸을 싣는다.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그림 같은 다리도 건너고, 해먹도 탔다. 발바닥을 콕콕 찌르는 송이맨발 체험장에선 양말을 신은 체 살금살금 걸어도 본다. 마중물 따라 솟는 물이 신기한지 코끝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는데도 펌프질을 멈출 줄 모른다. 감귤 따기 체험 끝에 잠시 걷는 올레길 6코스에선 ‘콩닥콩닥’ 가슴으로 전해져오는 외손주의 심장박동을 느끼며태평양을 마주하고 앉았다.
“저 바다가 세상에서 제일 넓은 바다, 태평양이란다.”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먼바다 끝에 외손주의 눈길이 머문다. 앞으로 살아갈 팍팍한 세상에서 태평양처럼 넓은 가슴으로 무엇이던 담아 낼 수 있는 넉넉한 사람으로 자라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할아비의 소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기의 눈길은 멀리 바다 끝 수평선에머물러있다.
이렇게 자연을 벗하며. 맘껏 즐겁게 뛰놀다 떠나려니 미련이 남나보다. 외 손주의 간절한 소망에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해. 하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애써 눌러 삼키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공항에서 가까우면서, 희고 깨끗한 모래밭이 넓어 아름답다고 소문난 협제 해수욕장을 찾아간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맑은 물과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 그리고 모래와 시간이 함께 만들어 낸 깨알 같은 조가비가 이곳의 내력을 꿈을 속삭이듯 조곤조곤 풀어내는 아름다운 해변이라고소개해서 심란한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찾아왔으나, 곱고 부드러운하얀 모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밭에서 나란히 따라오는 발자국을 남기면서 아내와 둘이 맨발로 걷던 평화롭던 기억 속의 해변이아니다.
심란한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하늘은 시커먼 먹구름 뒤로 몸을 숨기고, 파란 하늘 대신 성난 파도를 보내 방파제를 두들기며 넘나들다 솟구쳐 오르고 곤두박질치는 소용돌이를 통해 드넓던모래밭을 모두 바닷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씨웅 솨솨’ 휘몰아치는 바람이 귓전을 때리며 멀리 날려버릴 것처 사정없이 달려들며 한껏 겁을 준다.성난 바다와 행패 부리는 바람과 맞서 보지만 촌각을 버티지 못하고 서둘러 차 속으로 들어가 바다를 마주하고 앉는다.
지척에서 누군가 성난 하늘을 달래려 안간힘을 쓰며 애를 쓰고 있다. 두 발로 바다를 달래며 서서 두 손은 하늘을 어루만지며 달래다가 하늘 위로 솟구쳐 올라 하늘을 쓰다듬으며 어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려와선 다시 두 발로 미끄러지듯 바다 위를 달린다. 간질이고 어르고 달래며, 갖은 재롱을 떨어 보지만 잔뜩 골이난 하늘은 이내 집채같은 성난 파도를 보내 한 길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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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쉬 마음을 열 것 같지 않아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간다. 게이트 앞에서 외손주가 말한다.
“외할머니, 나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외할아버지 말 잘 들을게요.”
“유치원 가야지. 다음에 또 와.”
“난 여기서 외할머니랑 같이 있고 싶은데......”
끝내 눈물을 훔치면서 엄마 손에 이끌려 게이트 너머로 사라진다. 사라지는 뒷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샘이 반응한다.
길든 짧든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의 헤어짐은 가슴 아린 슬픔이다. 서귀포로 돌아오는 내내 옆에 앉은 반쪽도 말이 없다.
텅 빈 방 안으로 들어서자, 이 구석 저 구석을 휘젓고 다니던 민기가
‘외할아버지, 짠! 하면서 나타날 것만 같다.
2012.10.18.목
11코스 모슬포∼무릉(21.5Km)
1호 광장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에서 서귀포행 버스를 타고 월드컵 경기장 옆 서귀포 제2 버스 터미널에 내려 갈아타고 모슬포에 하차했다.
홍마트에 들러 간식을 준비하고, 11코스 출발점 모슬포항으로 들어서자, 바람이 날 바다로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로 무섭게 불어온다. 모슬포항 바람이 유명하다더니 모슬포의 바람 맛을 제대로 보여 주려는가 보다.
모슬포항은 마라도와 가파도를 연결해 주는 연안여객선이 있고, 매년 한 차례 방어 축제가 열린다고도 한다. 모슬포항을 출발하여 중산간을 돌아 무릉리 생태학교에서 마치게 되는데 우린 다시 모슬포바닷가로 내려올 계획이다.
모슬포항을 출발하여 청소년회관을 지나고 대정여고를 지나 밭가장자리로 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 밭에서 일하던 할머니가
손을 휘저으며 뭐라고 말씀하시는 데, 거센 바람이 말꼬리를 날려버려 알아들을 수가 없다. 손을 휘저으시는 모습이 이상해서 가까
이 갔더니 그 길이 아니라면서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이 길 위에서만나는 친절이다. 고개 숙여 진심에 우러난 감사를 드리고 한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밭 가장자리 좁은 돌길로 들어선다.
12시에 모슬봉을 앞에 두고 신평리 나들가게에 들렀더니 앞서가던 올레꾼들이 라면을 먹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 그 옆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커피를 마신다.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면서 올레꾼들이 벽에 남기고 간 글을 읽는다. 젊은 주인아주머니가 무지 친절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정약현의 딸이자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아내로 이곳에 귀양 와 노비가 되어 살면서도 꿋꿋하게 신앙생활을 이어간 정 난주마리아의 대정성지에 들러 잠시 머리를 숙이고 나오자, 추사의 유배지 길이 나타난다. 이처럼 11코스는 조선 시대 종교 박해 역사의현장이다.
두 시간에 걸쳐 모슬봉 둘레를 돌아 이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무릉리 곶자왈로 들어섰다. 와! 놀람 그 자체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밀림에 혼자서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한 토끼 길이 꼬불꼬불 펼쳐지고있다. 숲속은 대낮인데도 짙푸른 녹색으로 빛이 차단되고 어두컴컴해서 겁이 난다. 앞에서 갑자기 동물이 껑충껑충 뛰며 달아난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 깜작이야. 간 떨어질 뻔했잖아.”
“여보, 봤어? 고라니”
“뭘요?”
“고라니”
“못 봤는데요.”
“이 앞길에 서 있다가 저쪽으로 달아났는데”
넉넉한 모습으로 서서 가진 모든 걸 내놓은 키 큰 나무를 감고 올라간 덩굴식물들과 수많은 식물을 품어 안고 돌봐주는 맘이 넉넉한나무와 돌과 나무에 붙은 수많은 이끼류, 나무에 따개비처럼 닥지닥지 붙은 잎이 도탑고 자그마한 음지 식물, 칡덩굴처럼 잎이 넓은식물들은 나무 위에서 아래쪽을 향해 치렁치렁 늘어뜨려져 있어 늘어진 줄기를 잡고 타잔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게 매달려있는 것도 있다. 정글을 직접 보는 건 생전 처음이다. 우리나라에도이런 곳이 있었구나. 정글이 이런 곳이구나.
사유지인 이곳을 제주 올레길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길을 내고, 개방하고 있다는데 태고를 간직한 선 처음 보는 생태라 두 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렇게 오늘의 최종목적지 무릉리 생태학교에 도착한 우린 모슬포 맛집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모슬포항으로 간다.
신문에 소개되었던 산방산 식당을 찾아가니 깨끗하고 깔끔하다. 우리 뒤를 이어 고등학생 단체 손님이 들이닥치면서 복잡해진 탓인지 종업원의 친절 도는 기준 이하로 보인다. 이 집에서 맛이 있다고 소문난 냉면과 돼지고기 수육으로 저녁을 먹는다. 냉면은 상큼하고 깔끔하였으며, 수육도 육즙이 알맞게 배어 나와 씹는 맛과 감칠맛이 참 좋다.
2012.10.20.토
한라산 등반(성판악코스)19Km
제주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산, 우리나라 남쪽에서 제일 높은산으로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재된 산이며, 예전엔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불렸던 산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개인적으론 아들 보배 그리고 반쪽과 함께 수년 전 눈 덮인 겨울, 관음사 코스로힘들게 오르내려서 추억이 살아 숨 쉬는 한라산을 6시 20분부터 성판악 쪽 하늘길을 걸어 반쪽과 함께 오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보호를 한다는 명목으로 등산로는 정상을 오를 때까지 대부분 돌이나 합성수지 테크를 이용하여 계단이나 길을만들어 놓아 걷기에 매우 불편하다. 눈 덮인 겨울 등산에서는 알 수없었던 사실이다.
내려오는 길 사라 오름을 들리기 위해 시작부터 바지런히 발걸음을옮긴다. 가을 문턱에서 숲은 자신만의 가을 색깔을 개성 있게 펼치려 안간힘쓰고 서로의 특색있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단풍 속으로 스며들다 보니 내가 단풍이 되고 가을이 되고 산이 된다.
선체로 물을 마시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길을 나선다. 눈앞에펼쳐지는한라의 풍경은 절경 그 자체다.
해발 1,540m 진달래밭 대피소가 보인다. 이제 2.3km만 더 가면 정상이다. 대피소 안은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빈다. 요리조리 겨우겨우 비집고 들어가 커피 한 잔을 사서 나눠 마신 뒤 그동안 쌓인 몸속 노폐물을 시원스레 버리고 다시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선다. 군데군데 큰 나무들이 쓰러져있다. 태풍 볼라벤의 영향인가 보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오르내리기 편하게 설치해 두었던 구조 물들이 태풍에 모두 날아가거나 파손되어 공사판이 되었다. 수시로 헬리콥터가 굉음에 강풍을 몰아치면서 공사 자재를 날라 오고 부서진 구조물들을 수거해 가고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심해 구상나무와 전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로 숲을 이룬다.
4시간 40분 만인 10시 50분 정상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아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화구호 백록담을 발아래 두고 하늘로부
터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과 청명한 하늘의 소리를 들으면서 보고싶고 그리운 이들의 숨결을 떠 올리며 섰다. 세상살이에 묻혀 잊고
지낸 얼굴들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불러내어 머릿속에 세워 본다.한참을 그러고 섰다.
이렇게 조용한 가운데 따뜻하고 포근한 햇살과 함께 맑고 시원한바람을 한라에서 느껴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정상에 서니 산 너머가 보인다. 또 다른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들게 산을 오르
는가 보다.
둘레가 2 Km에 이른다는 백록담에 물이 가득했으면 한결 보기가 좋으련만 갈수기에 접어든 호수에는 노루 몇 마리가 한 차례 목을축이면 없어질 듯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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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양의 물이 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돌아서 내려다보니 제주 시가지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에 와있다. 한 시간을 머문 후11시 50분 올랐던 길을 되돌아 하산 길에 오른다.
내려오는 길, 제주 오름의 으뜸이라고 하는 사라 오름을 향해 발 걸음을 옮긴다. 가장 높은 오름에 있는 호수라 하늘 호수라 불리기도한다는 사라 오름은 평소에는 물이 없으나 비가 온 후 물이 가득 찬상태의 사라 오름의 모습은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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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길 기대하면서 부지런히 올랐으나, 호수에 물은 없다. 안내판 그림 속 물찬 호수의 모습을 보며 미루어 짐작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호수를 돌아 오름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올랐다.
멀리 제주 바다와 서귀포시가지가 보이고 제주시가지도 보인다. 한라산도 보인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수많은 오름은 한치도 어긋나지 않고 내 발아래 모두 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친환경적으로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멋스럽게 만들어 둔 사라호수 둘레 길을 걸으면서 찰랑찰랑 물이 찬 사라호수에 발을 담그고 앉아 세월을 낚고 싶다는 피안의 세상에 대한 욕심을 부려본다. 감히천사들에게나 주어질 호사를 일개 범부가 욕심을 내다니 이 또한,하나님에 대한 불경이 아닌가?
2012.10.22.월
7코스 외돌개 ∼ 월평(13.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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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수년 전 아들 보배와 함께 걷다가 힘이 든다며 중도에 포기한 길. 재도전하는 셈이다. 7코스 시작점에서 외돌개 가는 길에 세워져 있던 팔각정을 비롯한 구조물들이 태풍의 피해로 부서지고 널
부러진 채 나동그라져 있다. 이 길은 차도에서 가깝고 경치가 빼어나 가까이 있는 대장금 촬영지까지는 중국 관광객을 비롯해 늘 많은 사람이 붐빈다. 저번에 왔을 때나 오늘도 많은 중국단체 관광객이 왁자지껄 걷는 사이사이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중국 관광객들의 손에는 먹다 남은 생수병이 하나씩 들렸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끼워두거나바다 쪽을 향해버리고 간다. 경제가 민도를 이끌어가지 못하나 보다. 십여 년 전 은이와 반쪽과 함께 하얼빈 빙등제를 보러 가기 위해북경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다 피운 담배꽁초를 버릴 곳이 없어서 손에 들고 역무원에게 이것을 어디에 버리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철로 바닥을 가리키며, 그곳에 버리면 된다고 했다. 이게 그들의 현주소다. 아직 우리들보다 민도가 낮다. 이들도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환경에 대한인식도 달라지겠지. 그때까진 우리가 좀 열심히 줍고 치워야겠다.
대장금 촬영지를 지나면서 바람에 실려 오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음향에 이끌려 갔더니, 그 끝에 요리조리 아름답게 단장한 꿈 같은 카페가 나타났다. 그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달려드는 바다와 서로 무릎을 맞대고 앉았다. 파도에 멍이 들 대로 든 시퍼런 서귀포 바다가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함께 내 가슴속으로 달려든다. 육지와 바다와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한 몸이 된다.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다. 신선이 된다. 카페라떼와 아메리카노 커피잔 위에 하얗고 예쁜 하트를 정성스레 담아주는데, 행여나 찢어지고 부서질까? 노심초사마음 졸이며 조심조심 마셨더니 다 마실 때까지도 하트는 그대로남아 맛과 향과 함께 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태풍이 불 때면 제주를 연결한 텔레비전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던 법환 포구 앞을 지난다. 법환포구도 태풍을 비켜 가지 못했다. 포구를뒤집어 놓은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인간의 힘은 자연 앞에선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도인간들은 자연과 함께하려 하지 않고 정복하려는 만용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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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근천 다리를 지나자, 아름다운 잎이 터질 듯 부풀어 올라 반 짝 반짝 윤이 나다 못해 녹색의 물방울을 금방이라도 내뱉을 듯한 난대림 숲 터널 길 풍림리조트 산책길이 나타났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풍림 바닷가 우체국 메모판에 메모를 남기고 아이스크림으로 더워진 몸을 식혀주면서 주변 경관을 즐긴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로 뉴스 시간 텔레비전을 통해 낯이 익은 강정마을 앞을 지난다. 바닥에 깔린 깔개 위에는 햇볕에 새카맣게 그을리고 깎을 시간이 없어 제멋대로 자라나 수염이 텁수룩한 신부님한 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그 옆으론 ‘제주 해군기지 결사 반대’ 등의 현수막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자그마한 책상을 앞에 두고 반대 서명을 받는 사람 옆으론 오랜 투쟁으로 쉬어 갈라 터진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듣는 사람도 없는공간 속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누가 들으라고 하는 시위인지 그들의 절규는 메아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농장 쪽으로 들어서니 시위자들에게 식사 제공을 위해 만든 간이식당은 둘러친 비닐이 군데군데 찢기고 떨어져 나가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벽면에도 오랜 시간 비바람에 헤어지고 찢긴 시위 포스터와 현수막이 어지러이 날리고 빛이 바랜 채 붙어 있다.
길 건너 반대쪽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전경들의 버스가 전경들과 함께 대기 하고 섰는데, 이 길을 걷는 나에겐 이런 모습이구구절절 피부에 와 닿기보다도 구경거리가 된다. 이들의 평범한일상처럼 보인다.
강정포구와 월평포구를 거쳐 오늘의 목적지 월평 아왜낭목엔 14시에 도착했다.
2012.10.23.화
7-1코스 월드컵경기장 ∼ 외돌개(15.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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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월드컵 경기장을 출발하여 엉또폭포와 고근산 정상을 지나고 토계촌 입구를 지나서 외돌개로 오는 코스를 걷는다.
이 길에서 제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귀한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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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또폭포 입구에서 이렇게 이루어졌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왔는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대구에서 왔습니다. 올레길 많이 걸으셨나요?”
“12코스까지 걷고 오늘은 7-1코스를 걷고 있습니다.”
“제주도에 오신 지 오래되셨나 봐요?”
“안식년을 맞아서 이곳에 3달 정도 살기 위해 9월 4일에 왔습니다.”
“저보다 꼭 한 달 먼저 오셨군요.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지신 분을 만
나 더 반갑습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근무하다가 8월에 정년 퇴임을
하고 두 달 일정으로 노력 항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럼 50년생 이시네요.”
“저도 50년생이거든요. 이 사람도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명예퇴직했습니다.”
“그렇습니까? 더욱 반갑습니다.”
이후에도 나보다 생일이 두 달 늦다는 것과 부산에서 오는 것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자기도 노력 항을 통해서 제주도에 왔으며, 잠자리는 대학을 통해 부산대학 앞에 대학에서 알선해 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부산 부경대학에 근무한다는 그는 우리가 안내지에다 인증 도장을 찍는 것을 보곤 자기들도 처음엔 우리처럼 찍고 다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올레 수첩에다 찍는다면서 우리한테도 올레 수첩을 사서다닐 것을 권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같은 생각에 나이까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그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까?’
엉또폭포는 비가 오지 않아 쉼터 텔레비전 영상을 통해 폭포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밖에 없어 아쉽다. 쉼터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나선다.
고근산 오른쪽 둘레길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앞바다는 주변 자연과 너무 잘 어우러져서 환상적이다. 아름답다. 이렇게 같이 걷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면서, 오늘의 목적지인 외돌개 버스 정류장에서 부산에서 온 부부를 다시 만나자, 대뜸
“올레 수첩 꼭 사세요.”
하곤 부부가 한 손으로 수첩을 흔들어 보이면서 웃는다.
2012.10.24.수
1코스 시흥 ∼ 광치기(15.6Km)
일주 버스를 타고 두 시간 만에 11시 30분 시흥초등학교 앞에 도착하였으나, 시흥초등학교 입구에 있다고 안내된 올레 안내소가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안에 두 번씩이나 들어가서 찾아보았으나 보 이지 않는다. 할 수 없어 올레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더니 올해 올레1코스에서 일어난 여성 올레꾼 성폭행 치사 사건과 관련하여 1코스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돌아서려고 하는데 함께 버스를 타고 와 이곳에 내린 서울에서 내려온 여성 올레꾼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디론가 전화하더니 이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올레 안내소가 있는데 그곳에 전화했더니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안내소를 향해 걸어간다. 우리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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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뒤를 따라갔더니 산 아래 안내소가 있다. 제주올레 안내소와 이곳 안내소가 서로 다르게 말한다. 한쪽은 폐새되었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올라가도 된다고 하고. 평생을 공직에 몸담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쪽이 안내소에 들렀다가 나오면서 올레 수첩을 두 권 사서 나온다.
“기어이 사셨구먼.”
“오늘부터 이곳에다 스탬프를 찍을 거예요.”
하며 올레 수첩에다 입을 맞춘다.
출발하려는데 여성 자원봉사자 한 분이 호루라기를 들고 따라나선다. 올해 1월 사고 이후 위험한 구간은 이렇게 자원봉사자가 동행하고 있다고 한다.
사유지인 목장을 통해 들머리에 있는 말미오름을 오르니 사방이 탁트이면서 정면엔 성산일출봉이 아래로는 성산포 들녘의 밭들이 구불구불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돌담 경계를 따라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흡사 다랭이논 같다.
이번엔 알처럼 생겨 이름 지어졌다는 알 오름을 오른다.
저 멀리 한라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두 오름에서 건너다보는 성산포 좌우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다. 바다 깊숙이 머리를 쑥 들이민 모습이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완 또 다른 느낌이다. 가까이에 우도
도보인다.
중 산간에 있는 종달리 수다들 식당에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계좌 당근 주스를 마시면서 잠시 목을 축인다. 이곳이 아니고는 맛볼 수없는 즉석에서 뽑아주는 달큼한 당근 주스의 맛이 일품이다.
종달리를 지나 바닷가로 나오자 예쁜 종달리 해수욕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록의 바닷물을 자랑하는 해수욕장을 지나 오징어가 줄지어 매달린 건조대 앞 목화휴게소에서 아득한 수평선과 이마를 맞대고 앉아 피대기 오징어 한 마리를 다리와 몸통을 따로 떼어 연탄화덕에 올렸더니, 또 또르르 말리면서 구워지는 모습이 예술이다. 뜨겁고 알맞게 굽힌 또르르 말린 오징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두 손바닥을 옮겨가며 호호 불어 식힌 다음 북북 찢어 커피와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생전 첨 먹어보는 새로운 맛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먹을만하다.
담소의 즐거움과 탁 트인 바다를 향해 내닫는 바다처럼 넓은 가슴,거기다 쫄깃쫄깃하고 씹을 때마다 침과 골고루 섞이면서 베어져 나오는 오징어 특유의 향과 맛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한 번도 맛 본적 없는 특별한 맛이 된다.
성산포구 앞에 있고, 분화구 내부가 성처럼 생겨서 성산이라 이름 지어졌다는 성산일출봉을 오른다. 일출봉은 여행객들로 넘친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며 그들과 보조를 맞춰가며 오른다.
탁 트인 잔디밭 사이사이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중국인, 드문드문 보이는 서양인, 그들은 각자 자신의체력에 맞는 걸음걸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일출봉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1코스 안내소 입구에서 만났던 자원 봉사자를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위험한 코스를 안내하곤 차로이곳까지 왔다고 하는데 각자 안내해야 할 시각이 정해져 있다고한다. ‘이런 제도가 얼마나 오래 갈려는지 또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여 버리고 말겠지.’
1코스의 날 머리에 있는 광치기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 식당 앞을 지나는데 ‘이 길은 사유지이므로 올레꾼의 출입을 금합니다. 돌아가시오.’ 하고 줄이 처져있다. 아직 마지막 코스가 개장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 같다.’내려간 광치기 해변은 사진에 안내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태풍 볼라벤에 부서지고 파헤쳐지고 망가진 모습 그대로다. 모래바닥은 온 세상 쓰레기를 전시하듯, 어디서 밀려온 지도 모를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깨끗했던 모래밭엔 돌들이 뒹굴고, 편안하게 해변을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두었던 데크 산책로는 흔적도없이 사라지고 그 잔해들이 사체처럼 해변을 뒤덮고 있다.
2012.10.25.목
1-1코스 우도(15.9Km)
일주 버스를 타고 07시 40분 성산항에 도착했다.
우도에 들어가면 1-1코스를 따라 돌면서 맛집으로 소문난 풍원식당에서 화산처럼 만든 한라산 볶음밥과 한치 주물럭을 맛보기로 하고 08시에 출발하는 우도행 첫배를 타고 08시 30분 하우목동항에 도착했다.하선 준비를 하는데, ‘성산항으로 돌아가는 배를 탈 때는 반드시 지금 내린 하우목동항에서 타야 한다’며 선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당연한 이야길 왜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항 내에 있는 안내소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터미널 왼쪽으로 가는 올레 표식을 따라 걷는다.
가는 길에 인간극장에 소개된 안철수의 사촌 여동생 안정희가 운영한다는 갤러리, 폐버스 속 작품 전시관에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잠겨있어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보고 섬 속의 미니 섬, 비양도에 들어가 소라껍데기로 높게 쌓은 소원 탑과 올망졸망 쌓아 둔 돌탑들을 보면서 바닷가를 거닌다. 전망대에 올라가 주변 풍광을 감상하면서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물어본다. ‘울 부부 이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게 맞냐고’ 그러나 무심한 바다는 말이 없다.
비양도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는 바람에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우도봉 입구 가게에서 검멀레 해변을 바라보고 앉아 주인장이 입에침이 마르도록 선전하는 동굴음악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꾸덕꾸덕 반쯤 말려 찢은 문어를 안주로 우도 특산 땅콩 막걸리도 한 모금맛본다.
잠시 눈을 감고 매년 10월 눈앞 고래 콧구멍 동굴에서 열린다는 우도 동굴음악회를 상상한다. ‘태우’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과 함께 동굴을 두들기고 한 바퀴 돌아 나온 천상의피아노 소리가 파도의 울림으로 들려온다. 물과 함께 푸하고 내 뿜는 고래의 숨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피아노 건반을 튕겨 난 소리는동굴 속에서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져 하나가 되면서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되어 돌아온다. 심박이 빨라진다.
자연을 마신다. 음악을 마신다. 그리고 우도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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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멀레 해변 쪽에서 우도봉 정상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동화 속길 같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천천히 정상에 오르자,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름 위에는 바닷바람을 받으면서, 반짝반짝 빛을내는 검푸른 빛깔의 아름다운 잔디가 한달음에 달려온다. 깎아지른듯한 절벽과 파아란 하늘이 쪽빛의 우도 바다와 어우러져 하나가되면서 커다란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환상적인 정경이다.
선계가 따로 없다. 해안 절경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어우러지며 바다를 지키고 선 하얀 우도등대는 그림이다. 등대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우도 전경은 빼어났는데 군데군데 경치가 빼어난 자리마다 우후 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철근 콘크리트 펜션은 우도의 자연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나만의 생각인가? 우도의 미래가 걱정되어 마음이 무거워진다.관람로를 따라 내려오는 오솔길엔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난 등대모형 14점과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 모습을 조성한 아름다운 등대
공원이 있다.
이렇게 돌아 선착장까지 왔으나 우리가 찾는 식당은 눈에 띄지 안는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 왔나 보다.’ 3시 40분에 출발하는 배를타려고 표를 바꾸려고 하니 이 선착장이 아니란다. 앞으로 3km는 더 걸어가야 우리가 아침에 내린 선착장에 갈 수 있다면서 이곳에서 배를 타도된다고 한다. 이곳 우도에는 항구가 두 개 있는데 여긴천진항이라고 한다. 이제야 아침에 우리가 배에서 내릴 때 꼭 내린선착장에서 다시 타라고 한 말의 뜻을 알 것 같다. 우리가 찾던 식당은 여기서 3km쯤 더 걸어가다가 산호해수욕장 못미쳐 있다고 한다. 이제 더 걸을 힘도 없어 스쿠터를 타고 가시는 할아버지께 도움을 청해 스쿠터를 얻어 타고 가다가 하우목동항에서
출항하는 배는 5시라고 해 너무 늦을 것 같아 3시 40분 배를 타기위해 스쿠터에서 내려 2km를 걸어서 천진항으로 되돌아오는데 먹어보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해 돌아오는 발길이 무겁다. 다음에 다시 찾을 땐 한라산 볶음밥과 한치 주물럭도 먹으면서, 한밤에 달과별들이 태평양 바다 위의 작은 소머리 섬과 함께 엮어내는 대자연의 공연을 맘껏 즐겨봐야지.......
2012.10.26.금
2코스 광치기 – 온평(18.1km)
10시 50분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한다.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는 말 방목장을 지나고 석산 봉을 돌아 성산하수종말처리장으로 오는 내수면 둑길을 걸으면 오른쪽으론 성산일출봉이 우람하게버티며 앉아 있고, 조금 떨어진 뒤편으론 우도가 일출봉을 호위하고섰고, 앞쪽엔 성산포 갑문이 튼실하고 믿음직한 모습으로 지키고섰다.
둑길 주위는 철새도래지로 저어새와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나는 곳이라는데, 우리가 걷는 발소리에 놀라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철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철새들의 단잠을 깨운 것은 아닌지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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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걸을걸’ 하며 새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성산하수종말처리장을 지나면서부터 길은 중 산간으로 이어진다.
중 산간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무밭이 많다. 이제 막 싹이 터서 올라오는 무에서부터 제법 자란 크기의 무까지 기후가 온화해 그런지
파종 날짜가 다른 지방과 달리 들쭉날쭉한 모양이다. 이렇게 자란 무는 육지와 달리 겨울을 보내고 봄철에 수확하는 월동 무라고 하는데 전국 월동 무의 90%가 제주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무밭으로 들어가 무가 자라는 밭을 살펴보면 흙은 오다가다 눈에띄고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돌밖에 없다. 이런 돌 구덩이 속에서 무가 어떻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카메라의 셔터를 자꾸만 눌
러댄다. 이 길은 참 조용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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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내수면의 바닷길을 지나고, 무가 한창 자라고 있는 넉넉한 들판도 지나고, 꼬부랑꼬부랑 아름다운 산길도 지난다. 혼자보다는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과 단둘이 호젓하게 걷기에 딱 어울리는 낭만적인 길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내 곁엔 그런 사람이 함께 걷고있다. 그래서 이 길이 더 아름답게 가슴속에 자리하고 들어앉는지도 모른다.
2012.10.28.일
9코스 대평-화순(7.1km)
남 제주교회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김밥을 사서 배낭을 꾸린후 버스를 타고 짧은 구간인 9코스를 걷기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갔으나 버스 시간이 잘 맞지 않아서 내 차로 시작점인 대평포구까 지가서 포구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 시작한다.
포구 규모가 작아서 마을과 잘 어울린다.
대평포구를 지나면, 한때 원나라의 힘이 강해 그들의 강압적인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던 고려 시대 이곳 박수기정 위의 너른 들판에서 키우던 말을 원나라에 보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말이 다니는길이란 뜻의 몰질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랏일이란 이름으로 허기진배를 움켜쥔 채 돌을 깎고 나무를 잘라내고 산비탈을 비켜 돌아 말이 다닐 수 있도록 없는 길을 만들어야만 했던 힘없는 고려 민초들삶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우리나라 어느 곳이나 역사의 현장이 아닌 곳이 있으리오 만 이곳 제주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행정이 잘미치지 못해서 그런지 유독 한 많은 역사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같다.
산방산 아래에 있는 산방 연대와 연락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만들었다는 봉수대를 지나 안덕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창고천 하류의 안덕계곡으로 들어서자, 별천지가 나타난다.
태고의 숲 곶자왈이다. 계곡 양쪽을 따라 활엽수림이 빽빽하게 하늘을 덮었다. 천연기념물 377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이 원시 난대림은 먼 옛날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고 구름과 안개가 대지를 덮은 지 칠 일 만에 큰 산들이 솟았는데 시냇물이 암벽 사이를 굽이굽이 흐르며 계곡을 이루어 치안 치덕한 곳이라 하여 안덕이라 이름이 붙었다 유래한다.
예부터 경치가 좋아 많은 선비가 찾던 곳으로 김정희, 정온 등도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쳤다고 하는데,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나면서,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머나먼 이곳제주에서 한양 소식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며, 오매불망 임금만 바라보고 살았을 그들의 삶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맘껏 소리 질러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이런 숲은 커다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고 원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환상적인 제주의 속살을 맛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에 취해 있다.
용머리해안과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 그리고 형제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화순 금 모래 해변은 산방산자락으로 숨어들던 물이 이곳 금 모래 해변에서 담수로 솟아올라 해수욕 후 밀물로 몸을 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해수욕장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보드라운 황금빛 모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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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밭처럼 펼쳐져 있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만큼 주변과 어우러진 바다는 무지 아름답다. 일몰 시각이라 내일 아침 부활을 꿈꾸며 오늘의 생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장엄한 태양과 그 모습을 애써 감춰주는 바다와 금모래 백사장이 어우러지면서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공연에 혼을 빼앗겨 반쪽이 여보, 여보 하고 부를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
2012.10.29.월
3코스 온평-표선(20.7km)
아침 7시 30분 버스를 타고 9시 온평 포구에서부터 출발한다. 처음 만나는 곳, 석유가 없던 시절 현무암을 쌓아 만들고 생선 기름
으로 불을 밝혔다는 제주만의 전통 등대인 도댓불을 만난다. 도댓불을 지나 30분쯤 걷다 보면 오늘 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산간 지방의 초입에 도달하게 된다.
마을로 들어서자, 둘이 겨우 걸을 수 있는 한적한 오솔길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끊어질 듯 이어진다. 길옆으론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구멍이 숭숭 뚫린 역사가 깃든 현무암 돌담들이 옛 모습 그대로 늘어서서 밭을 나누는 경계선이 되었다가 집을 둘러싼 울타리가 되기도 하면서 끝이 보이지 않게 돌아가며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돌담을 들여다본다, 흔들어 본다. 흔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아귀를 잘 맞추었을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고즈넉한 이 길을 걷다 보면 주위 환경이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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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군데 종류별로 나뉘어 무리를 이루며 피어나는 패랭이, 쑥부쟁이 꽃이 연한 보랏빛으로 피어오르며 파란 하늘과 마주한다.
온평 포구를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는 길은 외로움을 느낄 만큼 조용하다.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를 알아보는데 더없이 좋은 길
인 것 같다.
시원한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앞이 탁 트인 드넓은 바다목장(신천목장)이 시원스럽게 눈앞에 펼쳐진다. 바다목장에서 내려다보는바다의 끝이 하늘과 이어지면서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
다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겨울엔 이 넓은 잔디밭에서 한약재로 쓰이는 노란 귤 껍데기를 말린다는데 지금은 풀을 뜯는 말과 소들의 목가적인 정경이 한 폭의
수채화다. 같은 동물이라도 이곳에서 사는 동물들은 참 행복하겠단생각이 든다. 이 목장 아래는 일본군들이 뚫어 놓은 무수한 땅굴들이 자리하고 있어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되살리는 역사의 현장이 되고 있다.
2012.10.30.화
3코스 남원-쇠소깍(14.7km)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해안 산책로로 알려진 큰엉 산책로를 지나 6코스 쇠소깍까지 가는 바닷길을 걷는다.
바닷가의 산책로가 주변에 둘러쳐진 기암절벽과 따가운 태양과 바닷 바람에 바짝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잎이 반짝반짝 윤이 나는 돈나무가 군락을 이뤄 이색적인 아열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무지무지 아름다운 길이다. 그러나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군데군데 피해를 입은 곳들이 많이 남아 있어 안타깝다.
가정집 울타리를 타고 올라 안전하게 몇십 년은 자랐을 선인장이 태풍에 휩쓸려 울타리가 넘어가는 바람에 흙은 다 씻겨 나가고 남
아 있는 현무암 담장 돌 틈이 만들어 준 작은 호의에 겨우 몇 가닥의 뿌리만 지탱한 채 위태롭게 붙어 있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새싹을 틔우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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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할머니의 집념으로 이루어진 동백나무 군락지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생각한다. ‘17살에 시집와서 어렵게 마련한 황무지 밭으로 불어오는 제주의 세찬 바람을 막아내기 위해 한라산에서 채취해 온 한 섬의 동백 씨앗을 심어 이렇듯 기름진 땅과 아름다운 동백 숲으로 가꾸어 내었다고 한다.’ 이렇게 크고 많은동백나무에 꽃이 활짝 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내려오다가 마을 머리에 있는 곤래골 올레 점방에서 중간 스프 찍는 것을 잊고 넙벌레, 망장포구, 예촌망을 지나 위미항에 있는 뾰족한 조베 머들코지에 가서야 생각이 났다. 할 수 없이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 주인에게 중간 스탬프 지점을 확인한 후 곤래골로 되돌아가서 스탬프를 찍는 바람에 족히한 시간은 더 걸었다. 가을의 전령 갈대도 만나고 한참 맛과 자태를 뽐내며 노랗게 익어 가는 감귤밭도 지난다. 이렇게 구석구석에서 제주의 가을은 소리 없이 아름답게 익어가고 있다.
2012.10.31.수
10코스 화순-모슬포(14.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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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시작되는 제주올레 축제에 참석하려고 8시 40분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서귀포 3호 광장 앞에서 줄을 섰다. 이곳에서만 5대의 버스가 출발한다고 한다. 버스 안은 전국 각지에서모여든 올레꾼들이 각양각색의 복장과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9시 10분 화순 금모래 해변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금모래 해변 모래밭엔 무대가 꾸며져 있고 주변에는 수많은 작은 천막들이 오늘의축제를 축하하고 있다,
각 천막 속에서는 천막에 어울리게 나름의 특화된 행사가 펼치고있다. 생수를 나누어 주는 곳, 페이스페인팅을 해 주는 곳, 끓인 커
피나 음료수를 나누어 주는 곳, 게임을 통해 선물을 나누어 주는 곳등. 먼저 인터넷으로 신청했던 참가 확인을 받기 위해 본부를 찾아갔다. 본부에서 확인받고 기념 타올을 받은 뒤 가장 줄이 길게 늘어선 페이스페인팅 하는 곳에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어오른쪽 볼에 제주올레 마스코트인 예쁘장한 조랑말 페이스페인팅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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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해 보는 페이스페인팅이다. 처음엔 이 나이에 내가 하며쑥스러웠으나, 이런 곳이 아니면 감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 다그
치는 반쪽에게 등 떠밀려 용기를 내고 섰다. 얼굴에 조랑말 한 마리 그렸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주변 인물이 아니라 행사의 주인공이된 것 같은 기분이다. ‘맞아 주변에서만 맴돌게 아니라 이렇게 풍덩뛰어들어 주인공이 되는 거야.’
정해진 시각이 되자 개회식이 열렸는데 국제적 축제답게 중국말과 영어로 진행되었다. 많은 외국인이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가장 많다. 개회식 뒤 커피를 마시면서 점심으로 토스트를 준비한 다음 맨 먼저 도착한 곳이 산방 연대였다. 연대는 봉수대와 같은 것으로 봉수 대가 산 정상에 있다면 연대는 주로 해변이나 구릉에 위치한다는 점이 다르다. 산방산 앞 연대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듣고 사계 포구 에선 제주 신화를 바탕으로 한 연희 적 놀이 성격을 띤 놀이 굿 초공풀이와 대정여고 학생들의 풍물놀이를, 바다를 배경으로 보고 듣는다.
제주에는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세 개의 산이 있는데 세 개의 산중 오늘 두 개의 산을 지난다. 산방산을 지나 송악산 전망대 앞에서는 송악산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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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모슬봉 소리패들이 옛 어부들이 그물로 멸치 떼를 후리면서 불렀던 소리꾼의 선소리에 이어 후렴을 따라 부르며,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흥겨운 멜 후리기 공연과 물 허벅 놀이 공연을 관람한다.
물 허벅 놀이 공연엔 물 허벅을 짊어지고 직접 참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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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로 길을 만들고 산이 생긴 모습대로 이리구불 저리구불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오솔길을 따라 송악산 정상에 오르자, 이마에 흐른땀을 식히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멀리 한라산과 탁 트인 태평양이 시원스레 다가온다. 우리나라 국토의 최남단 섬 마라도가 손만 뻗으면 닿을 듯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이 미군 함대를 공격하려고 우리나라 사람을강제 동원해서 판 인공동굴 고사포 진지와 전투기 격납고, 송악산의 아름다운 분화구 주변 솔숲을 볼 수 있어 아름다운 코스면서 한편으론 슬픈 우리 역사의 현장도 지난다.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곱씹어 보아야겠다.
도착한 모슬포항 하모체육공원에는 각종 공연이 이어지고 각 부스 에서는 먹거리와 함께 부산의 갈맷길을 비롯한 각 시도에서 만든 아름다운 길들이 소개되고 있다. 다음 걷기에 참고가 될 자료들을 구하기 위해 각 부스를 돌면서 자료들을 모은 뒤 길을 걷는 동안에생긴 쓰레기와 주워 모은 쓰레기봉투를 본부에 가져다주고 확인을받는다
2012.11.1.목
11코스 모슬포 – 무릉(18km)
9시 하모체육공원에 도착하여 난타 공연과 기악 합주를 관람하고 9시 40분 전국 각지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들의 박수 속에 출발한다.오늘 코스는 반쪽과 한 번 걸어 낯이 익은 코스라 설렘은 덜하나 오늘은 또 어떤 공연이 준비되어 있을까? 기대해 본다.
그렇게 바람이 심하다는 모슬포의 바닷바람도 오늘의 중요한 행사를 눈치챘는지 따뜻하게 내리쬐는 아침햇살에 바다는 잔뜩 갈
기를 세우고 점잖게 지켜보고 섰다. 모슬봉 초입에 있는 공동묘지를 거슬러 올라 모슬봉에 이르자 모슬봉엔 벌써 먼저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공연을 기다린다. 이런 공연을 자주 가질 기회가 없었는지 잔뜩 긴장된 표정의 대정서초등학교 학생들의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공연 관람 확인 표식을 받는다. 다음 목적지로 간다. 모슬봉 기슭을 따라 내려가 큰길로 들어서는 길머리에 늙수그레한 농부 한 분이 귤 한 상자를 가져다 두고 지나가는 우리에게 목이 마를 텐데 먹으라면서 권한다. 자기가 애써 지은 농산물을, 올레꾼들을 위해 선뜻 내어놓는 농부의 마음이 천심이다.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먹을 수 있게 귤한 개만을 집어 들자
“몇 개 더 가져가세요.”하고 말한다.
“한 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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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리 곶자왈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걷는다. 며칠 전 이곳 숲속에서 언뜻 지나가는 고라니를 본듯해서 오늘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 속에 두리번거리며 살폈으나 오늘은 숲이 소란스러워 자취를 감췄나 보다.
무릉리 곶자왈 잔디밭에는 피아노를 어떻게 옮겨왔는지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었으며, 음악회가 시작되자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클레식 연주와 클라리넷, 비올라. 바이올린의 협연과 함께 우리 가곡을연주한다.
매번 방음 된 공연장에서 보고 듣다가 숲속 음악회는 처음 접해보는터라 손뼉을 치면서 연주자와 자연과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자연속으로 녹아들면서 맘껏 즐겼다. 또 다른 느낌이고 맛이다.
2012.11.2.금
12코스 무릉 – 용수(17.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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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걷는 12코스는 해안을 따라 서귀포 올레길 전 구간을 이어 주면서 또 다른 한쪽 끝은 제주 올레길을 잇는 첫 출발지가 된다. 무릉생태학교를 출발하여 녹 남봉-산경도예-신도포구-수월봉 정상-자네포구-당산봉-용수포구를 거치는 길은 들과 바다를 이어주며. 오름과 오름을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길이다. 넓은 들도 보고 산과 제주의 바다와 농촌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길이다.
산경도예 앞에서 제주 쁘라뽀체 소년소녀 합창단의 합창과 모이 맘어쿠스틱밴드(주부락밴드)공연을 관람하고 신도리 방사탑 앞에서는 플라밍고와 현대무용을 관람하면서 꾸물거리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다음 지점에서 공연하는 이원경의 판소리와 김정춘의 거문고 연주와 시조창은 감상 못했다. 태평양이 무대배경이 되고 때로는 언덕과 하늘 그리고 오름과 나무들이 배경이 되기도 하는 자연과 함께하는 야외 공연은 오랫동안올레꾼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특히 생이기정 바당길로 들어서면서 절벽 아래 검푸른 바닷속으로 한 송이꽃잎이 지듯 떨어지다가 솟구쳐 날아오르며 비상하는 갈매기가 바다와 하늘과 벼랑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자연 순수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있다.
2012.11.3.토
13코스 용수 – 저지(16.4km)
세계인과 함께 걷는 제주올레 축제 마지막 날이다.어제와 같이 8시 20분 셔틀버스를 타고 용수포구에 이르러 전교생
이 22명이 라는 미니 초등학교 동북 분교 전교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하는 소금, 핸드밸, 난타 공연을 보고 올레 봉사꾼들의 박수 속에서 용수 포구를 출발했다.
오늘은 출발지만 바다일 뿐 끝날 때까지 바다가 없는 중 산간 지방을 걸으면서 땅의 모양대로 경계를 지우고 그 경계에 돌을 쌓아만들어 둔 제주 특유의 아름다운 밭두렁과 숲을 보면서 정감 넘치는 작은 마을들을 지나간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1957년에 제방을 쌓아 만든 겨울 철새들의 보금자리로 이름난 용수저수지 앞에서 제주 초등학교 교사들이 트럭 위에서 펼치는 아카펠라 공연을 관람했다. 서로 취미가 같은 선생님들끼리 틈나는 대로 모여서 연습하고 그렇게 갈고닦은 실력으로 이렇게 지역행사가 있으면 나와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래전에 끊어지고 없어진 길을 특전사 대원들이 찾아내고 새롭게만들어 개통하여 이름 지어진 특전사 숲길엔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틈새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숲을 살려내고 있다. 이어지는 고목숲길과 고사리 숲길을 지나 이번 코스의 하일라이트인 저지 오름 정상에 올랐다. 전망대 위에선 파란 하늘과 하나가 된 쏘프라노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외 2곡을 열창한다. 특히 이 노래는 퇴임식 때 선생님들이 내게 불러준 합창곡이라 가사 내용이 더욱 의미 있게 가슴을 파고든다. 이어서 베이스 창살님의 ‘청산에 살리라’ 외 2곡을 더 바람과 함께 들었다. 선풍기 바람과 에어콘에 길들어진 도시인에 숲 향 가득한 산 위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전망대 위의 공연자를 올려다보면서 청산에서 듣는 청산에 살리라는 가슴을 울리는 메아리가 되어 가슴으로 스며든다. 멋있는 모습으로 멋있는 노랫말로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공연이 끝난 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 다운 숲으로 선정되었다는 저지 오름 분화구를 둘러보기 위해 가파른계단을 따라 분화구 속으로 내려갔다. 둘레가 800m에 달하는 분화구 둘레길을 해송과 삼나무, 팽나무 등 울창한 숲으로 가려 분화구속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저지마을 회관을 지척에 둔 저지 오름 아래 휴식터엔 제주지역 초등여교사들로 구성된 오카리나 연주와 거문고 연주가 있었다. 모두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관중들 또한 뜨거운 반응으로 그들의 노고에 힘을 보탠다.
4시 10분 달빛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저녁을 먹으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가 노란 가발을 쓰고 축제 옷차림을 한 올레 서명숙이사장을 만나 싸인도 받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고운, 박인배, 퍼니밴드, 들국화가 출연하는 달빛 축제는 참가한 올레꾼들과 함께 어울려 흥을 돋우며 즐기는 가운데 내년을 약속하면서 4일간의 제주올레 축제는 끝이 났다.
2012.11.5.월
18코스 산지천 ∼ 조천(16.4km)
제주시 한복판에 동문 로터리 산지천 마당에서 시작하여 제주시의 바닷가를 걸어 조천 만세동산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 바다로 흘러드는 산지천 물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1927년에 개항한 제주특별자치도의 관문 항인 제주항을 지나 비탈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다 보니 한라산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제주시에 자리하고 있는 산책로, 두 오름 사라 오름과 별도 오름이 나타난다. 오르내리는 길이 아름답고 가파르지 않으며 접근성이 좋은제주 시내에 있어 시민들의 쉼터이자 체력단련장이기도 하다. 이곳저곳에 운동 시설도 있어 가족들 바라지를 끝내고 나온 아낙들과현역에서 은퇴한 이들을 비롯해 여가를 즐기려는 많은 제주시민들이 찾아오고 있다. 특히 사라 오름의 해송 숲은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숲이 아름답고 별도 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보는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제주항이 알록달록 건물들과 서로 어우러지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삼양 사람들이 신촌에 제삿밥을 얻어먹기 위해 다녔다는 없어진 옛길을 올레길을 만들며 지역 주민들의 고증을 거쳐 다시 찾아 복
원했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 중 호젓하게 혼자서 걷기에 가장 좋은 길이라고도 한다. 신촌 가는 옛길을 지나고 삼별초 군이 제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처음으로 쌓았다는 역사의 현장 환해장성을 지나 제주의관문이었던 연북정에 도착했다.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맘껏 휘두르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몰락해 이곳 제주로 귀양 온 벼슬아치들은 그날부터 오매불망 한양으로부터 사면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냈다는 누각에 서서잠시 눈을 감고 당시 귀양 온 권력자들의 절절했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권세와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북적이던 집과 화려했던 술자리와 벗들을 떠나 절해고도에 위리안치되어 전전긍긍 생활하는 작금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하였겠는가? 그러니 몸에 딸린 모든 촉수를 한양 쪽으로 향하게 열어젖혀 두고, 일구월심 사면 소식만을 기다리던 절박했던 그들의 심정을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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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서 이사장님과 함께
2012.11.8.목
용머리해안,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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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해안으로 갔다. 25년 전에 찾아갔던 한적했던 해안의 모습이 아니었다. 일부만 개방 되던 당시와 달리 용머리해안 전체가 개방되고 있다. 수 천만년에 걸쳐 물과 바람과 모래가 깎아내고, 파도가 들이쳐 바닷물이 깎아내고, 또 뚫고 빚어 만들어 낸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대자연의 모습이다. 아무나 만들어 낼 수 있는 흔한 모습이 아니다. 인간의 노력들 수 있는 정경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하고 있다. 하나님 아니시면 이렇게 아름다운 조각은 빚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만든이의 허락 없이는 구경할 수도 없다. 며칠 전에도 반쪽과 함께 왔으나, 그분이 허락하질 않아 되돌아간 적이 있다. 오늘은 하늘도 맑고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로 우리를 받아들이신다. 제주로 초대한 두 쌍의 친구 부부들과 함께 천천히 더 천천히 걷다가 궁금하면 앉아서 구석구석을 차근차근 살핀다. 보면 볼수록 신비롭고 아름답다.
감상에 젖어 멀리 수평선을 향해 서서 생각에 잠긴다. 저 수평선 너머에선 또 누가 같은 생각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가까이서 왁자지껄하는 소란한 소리에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다. 한무리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온다. 그들에 떼밀려 밖으로 나왔다.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있는 섬 마라도에 가기 위해 정기여객선이다니는 모슬포항으로 왔다. 마라도는 이곳에서 가파도를 지나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고 한다. 배편은 10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는데 먼저 여객선 터미널에서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등을 적는 간단한 승선 수속을 마친 후에 배표를 사고, 우리 국토의 최남단에 들어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마라도 정기여객선 삼영호에 몸을 싣는다.마라도는 이곳에서부터 11Km쯤 떨어진 곳에 있다는데 갑판 위의풍경은 석모도 들어갈 때와 같아 낯설지 않다. 우리는 많은 관광객과 함께 갑판 위에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
매기들이 펼치는 군무를 본다. 여객선을 따라 몰려드는 갈매기 떼
들을 향해 팔을 뻗어 새우깡을 내밀면, 갈매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잽싸게 단단하고 노란 부리로 새우깡을 낚아채어 하늘로 솟구쳐오르고 난 빈자리는 또 다른 갈매기가 차지한다. 이렇게 하늘로 솟고 그 자리를 메우고 달아나고 하는 모습은 하늘의 계획에 따라 그려지는 한 폭의 그림이고 장관이다. 나도 잠시 하늘이 그린 그림 속의 객체가 되고 자연이 된다.
이렇게 갈매기와 노는 사이 배는 마라도 선착장에 접안 한다. 마라도에 내려서자, 사방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주 작은 섬이다. 어
린 왕자가 살던 별과 크기는 비슷한가? 더 큰가? 큰 나무는 한그루도 없고 잔디밭으로 되어 있다.
태풍의 영향인지 우리가 걷는 바닷가 쪽 섬 둘레 바위틈새엔 부서진 스티로폼조각과 비닐, 휴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는데도 줍는
사람이 없어 섬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 ‘1인당 1,500원씩 입도 요금까지, 받으면서 왜, 청소는 하지 않는지.......’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짜장면 집골목에선 손님 유치전이 치열하다. 서로 원조라고 우겨대는 여러 짜장면집 중 유명한 철가방을 든
해녀 집에 들러 홍합이 잔뜩 들어간 해물짬뽕으로 점심을 먹는데여러 개의 짜장면집이 모두 친척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손님을 끌
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노력할까?
가파 초등학교 마라분교장을 지나고 짜장면 골목을 지나 최남단 표지석과 등대를 돌아오는 마라도 둘레 길은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100명이 못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마라도엔 학교, 절, 교회, 달팽이 모양의 성당, 식당과 등대 등 없는 것이 없다. 이곳에서 멀리떠 있는 제주는 섬이 아니라 대륙이다.
다음 방문 때는 충분한 시간 여유를 가지고 찾아와 사방이 바다가 보이는 B-612 소행성처럼 작은 섬 마라도와 하늘과 바다와 태양이어우러지며 펼쳐내는 대자연의 장엄한 Panorama를 꼭 지켜봐야지하고 다짐해 본다.
2012.1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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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코스 한림항 – 고내항(19km)
15코스 출발지인 한림항으로 갔다. 먼저 한림항에서 비양도를 다니는 도항선 선착장에 들러 비양도를 왕래하는 배편을 알아두고 출발한다. 바다에서 시작해서 중 산간 마을과 무밭, 오름을 돌아 다시 고내 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항구를 벗어나자, 바다 위에 갈매기와 기러기들이 떼를 지어 앉아있다. 갈매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바닷물속에 세운 솟대 위에 나래를 접고 내려앉아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갈매기와의 어울림이 이채롭다. 한수리를 지나면서 길은 바로 농로로 접어든다. 농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취나물과 양배추를 재배하는 밭들이 이어지고 밭둑에는 스프링클러에 물을 공급해 주는 물탱크와 스프링클러를 이어 주는 검은 비닐 호스들이 밭이랑 구석구석으로 혈관처럼 구석구석 연결되어 있다. 돌밭인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지속적인 물의 공급
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읍 마을로 들어서는데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가던 길을 되돌아와 걷는 동안에 먹으라면서 들고 온 귤을 내민다. 자신의 밭에서처음 재배한 천리향이라 향이 좋다고 먹기를 권한다. 아저씨의 정
을 한 아름 받았다. 귤은 껍질에 상처를 내는 순간 향긋한 향이 사방으로 달아나며 퍼진다. 향이 무지 짙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귤이다. 금산공원은 아름다운 난대림 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예부터 양반들이 이곳에 모여 시를 짓거나 담소를 나누는 장소로 이용되어 왔기때문에 이 상록 수림이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의 종류는 단순하나 전형적인 난대림으로 학술적으로 가치가높아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숲에는 후박나무, 생달나무, 식나무, 아왜나무, 종가시나무 등 보기드문 상록 수림이 울창하고 숲 사이사이로 난 산책로도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아름다움에 취한다. 도 새기 숲길의 해송 숲은 일품이었으며, 고내봉 둘레길 초입에 있는 제주조릿대 숲이 인상적이었다. 산을 내려와 배염골에 이르렀을때 갑자기 돌풍이 불어닥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반쪽이 겁을잔뜩 집어먹었는지 내 팔을 꼭 붙잡고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애원한다.
할 수 없이 돌담 밭머리에 몸을 숨기고 웅크리고 앉아 잠시 바람을피한다. 이렇게 걸음을 옮겨 놓을 수 없는 세찬 바람 속에서도 생활력 강한 제주 아낙은 허리를 굽힌 채,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반쪽이 무서워하는 거센 바람도 이곳 여인들에겐 미풍인가 보다.
2012.11.14.수
16코스 고내항 – 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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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9시 50분 고내 항에서 걷기 시작한다. 바다가 성났는지 연신 소리를 질러 댄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의 포말과 함께 세찬 바람의 도움을 받아, 연신 집 체 같은 물기둥을내륙을 향해 토해내고 있다. 누가 왜? 또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까? 현무암으로 바닷가에 쌓아 올려 생선 기름으로 불을 밝혔던 제주 전통의 등대, 신엄도대불을 지나 구엄 돌 염전으로 발길을 옮겼으나, 염전은 바다가 데려가 버렸고 난 파도만 흠뻑 뒤집어쓰고 돌아선다. 오늘 바다는 무지무지 화났나 보다. 쉬 화가 풀릴 것 같지 않아 바닷가 올레길을 포기하고 도로변으로 나선다. 마을로 들어서자, 바람이 잦아든다. 제주에 가뭄이 들면 제주 목사가 이곳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는 수산 오름을 내려서자, 저수지를 지키고 선, 멋있는 곰솔이 나타난다. 수산리를 지키는 수호목으
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있다는 곰솔은 균형이 잘 잡혀사방으로 거침이 없이 뻗었다. 기품이 있다. 늠름하다. 아름답다.
겨울에 눈이 나무 위에 쌓이면 그 쌓인 모습이 흡사 곰 모습과 같다 하여 곰솔이라 불린다고 한다.
수산리를 지나 얼마 가지 않으면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가 있다. 13세기 고려 시대 삼별초의 마지막 요새였던 항파두성이다. 진도를 빼앗기고 배중손 장군이 전사하자 김통정 장군이 잔여 부대를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토성을 쌓고 항거하다가 여‧몽 연합군의공격을 받아 항파두성이 함락되면서, 강화에서 시작해 진도를 거쳐이곳 제주까지 쫓겨 내려온 삼별초의 항쟁은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새롭게 복원된 토성을 보면서 외세를 끌어들이려는 고려 왕실에 항거하며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자 했던 그들의 숭고한 뜻을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2012.11.15.목
18 – 1 코스 추자도(17.7km)
제주도에 속한 유인도 중에서 본섬, 제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섬 추자도, 100년 전까진 전라남도에 속해있었다.
추자도로 가기 위해 제주항으로 갔다. 추자도는 해남과 제주도의 가운데쯤 있으며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비롯해 황간도, 추파도.
등 4개의 유인도와 서른여덟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섬이다. 제주항 연안여객터미널 2부두에서 9시 30분에 출발하는 쾌속선 핑크 돌핀호에 몸을 실었다. 울릉도와 홍도에 입도할 때 심한 멀미를 경험한 터라 걱정이 되었으나 풍랑주의보가 해제되고 1시간 30분이면닿을 수 있다는 말에 일단 안심은 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전날 풍랑이 잦아들고 있는 가운데 일어나는 너울로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바이킹을 타고 앉은 느낌이다. 반쪽이 걱정되는눈빛으로 내 손을 꼭 잡는다. 속이 뒤틀리고 구역질이 나고 얼굴이 창백해진. 이렇게 1시간 30분을 견딜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람들을 살펴보니 나만 그런 것 같다. 경치를 즐길 여유도 배 안을둘러볼 생각도 없다. 빈 비닐봉를 입에 가져다 대고 헛구역질을해댄다. 그러다간 또 배가 높은 파도를 타고 넘으면 버스 뒷좌석에앉아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깊은 심연 속으로 툭 떨어지는기분이다. 입을 꽉 다물고 두 손으론 앞 의자의 등받이를 움켜잡는
다. 이렇게 1시간 30분을 보내고 초주검이 되어 10시 50분 상추자도 추자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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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잠시 안정을 취하자, 몸은 속만 거북살스러울 뿐 걷는데는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최영이 장군의 사당을 찾아간다.
묵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제주도로 가는 길에 태풍으로 이곳에잠시 머물면서 주민들에게 어망을 만들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 장군의 고마운 마음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자그마한 최영 장군사당을 지나고 봉글래산 입구에 있는 보건소를 지나 한가한 식당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점심을 시켰으나, 속이 진정되지 않아먹을 수가 없었다.
먼저 숙소를 정하고 짐을 푼 다음 걷기로 하고 모텔을 찾아갔으나, 예약이 만원이라 할 수 없이 2층짜리 여관을 숙소로 정해 잠시 쉬면서 몸을 안정시킨 뒤 13시부터 걷기 시작한다. 추자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하여 – 나빌론 절벽 정상 – 추자등대 –
추자교 – 목리마을 – 몽돌 해안 – 담수장 – 추자교 – 숙소로 돌아오는 추자도의 야산의 여러 봉우리를 넘고 또 넘으면서 민초들 삶의모습과 섬 구석구석 숨은 비경들을 남김없이 들여다본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한 바퀴 돌아오는 데 힘은 들었으나, 즐거운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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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교에 도착했을 땐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드는 일몰이 시작된다. 추자교 위에 서서 하늘이 해를 거둬가는 아름다운 일몰의 장관을 본다. 해가 점점 내려앉으면서, 주변 바다와 하늘을 점점 붉게 물들여 가며 조금씩 조금씩작아지는 것 같더니 용의 입속에 예쁘게 물려있는 작고 빨간 여의주 처럼 변하더니 긴 여운을 남기고 내일을 약속하며 모습을 감춰버린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모습으로 부활할까?
2012.11.16.금
제주로 돌아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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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부활 모습을 보기 위해 6시 40분 등대산 공원 정상에 올랐다. 이른 새벽인데도 앞바다엔 벌써 고기잡이에 나선 배들이 보인
다. 정상에는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시멘트로 축조된 어설프고 빛바랜 반공 탑과 간첩을 잡다가 순직한 경찰관들 그리고 추자도
간첩 사건 이야기가 적힌 알림판이 서 있어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징 이곳에서도 남북분단의 비극은 이어지고 있었다.
수평선을 중심으로 잔뜩 모여있는 회색빛 구름을 보면서 추자도 태양의 부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걱정하며 마음을 졸였는데시각이 되자 수평선과 맞닿은 바다와 하늘을 조금씩 붉고 길게 물들이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동쪽 하늘 끝에 뜬 흰 구름마저도 붉게 물들이면서, 빨갛게 잘 익은 홍시 같은 아침 해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수평선 너머에서 찬란하게 부활한다. 웅장하고 환상적인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을 어떻게 졸필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내게 솟아오르는 아침 해는 볼 때마다 부활이란 새로운 모습로 다가온다.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다.
등대 산에서 내려다본 상추자 항은 정말 아름답다. 세계 여러 항을보았으나 규모만 작을 뿐, 조용하고 아름다운 그림 같은 항구다. 항구와 섬이 서로에게 스며들며 어우러져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뒤지지 않는 섬이고 항구다.공영버스로 10분을 달려 하추자도 신양항에 닿았다.
1시 일반 여객선인 한일 카훼리 3호를 타고 출발하였는데 어제들어 올 때와는 달리 오늘 바다는 그림 같이 잔잔하다. 갑판에 나가 바람을 쐬기도 하고 뱃머리에 앉아서 시원하게 포말을 그리면서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는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는데 나만의 생각일까? 갑자기 가슴이 탁 트이면서 맑고 푸른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배 안으로 들어오자, 반쪽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휴가를 내고 와서 며칠씩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젊은 올레꾼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제주올레 이야기에 풍덩 빠져있다. 그렇게 2시간 20분을 달려 제주항에는 1시 20분에 도착했다.
2012. 11. 17. 토
14-1코스 저지 – 무릉(18.8km)
곶자왈을 걷는 위험한 코스라 올레 걷기팀과 함께 걸으려고 다른날 보다 서둘러 출발해서 저지마을회관 앞에 주차하고 올레 팀을
찾았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기다리려고하다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저지마을을 벗어나자, 길은 밭과 밭 사이로 구불구불 오솔길로 이어지다가 이내 숲으로 들어선다. 인적이 없고 휴대전화도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 난청 지역이라 혼자서 걷기엔 위험하다고 안내되어있다. 호젓한 길로 들어섰다. 군데군데 위험을 알리는 표식들이 나무에 걸려 있거나 표지판으로 세워져 있어 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자 나지막한 오름이 나타났다. 문도지 오름이다. 정상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멀리한라산이 주변으로 올망졸망 여러 오름이 한라산을 둘러싸고 지키고 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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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쁜 숨을 가다듬고 내려다보니 발아래로 야트막하나 울창한 녹색의 장원이 펼쳐지고 있다. 잠시 뒤 우리가 지나갈 저지 곶자왈의 모습이다. 내려오는 길도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산 아래엔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말들이 방목장을 벗어나 혹 농작물에 피해를 줄까?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ᄅ’자 형태의 특수한 모양의 목장 출입구가 만들어져 사람들도 그 출입구를 통해 드나든다. 길은 곧장 저지 곶자왈로 이어진다. 오랜 세월 나무와 덩굴식물들이 어수선하게 뒤엉키며 제멋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라며만들어진 숲, 올레길이 생기기 전까진 인간의 손길이 닿은 적 없는원시 상태의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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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한계와 북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 유일의 독특한 숲,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숲 곶자왈이 우리를 반긴다. 한 사람이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 미로처럼 울퉁불퉁 끊어질 듯 끊어질듯 이어지는데 잠시 한눈을 팔다 간 앞서가던 사람의 모습은 나무사이로 숨어 버린다. 우거진 숲으로 빛은 차단되고 이끼류를 비롯한 땅 위를 기는 음지 식물들이 쓰러진 나무의 그루터기에 붙어 생명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자연이다. 생명의 숲이다.
곶자왈을 벗어나는 끝머리엔 야트막한 산자락을 일구어 사람의 필요에 따라 가꾼다는 명목으로 억지로 같은 키와 같은 폭으로 만들어 차 나무를 세웠다. 몇 송이 안 되는 통통하고 하얀 소중한 꽃을피워서 가지 사이에 감췄는데, 은은한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애써 숨긴 꽃을 들키고 만다. 이렇게 향과 초록으로 가득한 녹차밭 오설록을 지나고, 청수 곶자왈을 지나고, 무릉리 곶자왈 갈대밭에 앉아 명상을 즐긴다. 그러고도 20분을 더 걸은 끝에 오늘의 목적지인 무릉리 생태학교에 도착했다. 계획보다 빨리도착했다. 제법걷는 걸음에 속도가 붙은 모양이다.
2012.11.19.월
세계자연유산(거문오름 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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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오전과 오후 각 200명씩 하루 400명만 입장 할 수 있다고 한다.
거문오름을 오르기 위해 예약 시각에 맞춰 정오에 도착해서 매표후 거문오름 입구에 있는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둘러본 후 일행들과 함께 숲 해설사를 따라 탐방에 나섰다.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 일대 해발 456m의 오름으로
2,109,410m3의 면적이라 한다.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를 형성한 모체이며 말발굽 형태의 모습을 띠고 있으며, 그 안에는 깊게 파인 분화구가 있었는데 일행은 안내자를 따라 오름 말굽 쪽으로 해서 분화구로 들어가 분화구 내부를 살펴보니 분화구 속에는 식나무, 붓순나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있으며, 분출된 용암이 장거리에 걸쳐 여러 종류의 용암굴을 형성한 것이 이 오름의 특징이라면서 예전에는 분화구 속에 무덤을 쓰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많이 훼손되기도 했다고 한다.
걷는 동안에 화산탄, 용암 함몰구, 항아리 모양을 한 독특한 형태의동굴인 수직굴도 보고 풍혈과 함께 분화구 안에 있는 숯 가마터도보았다.
학술적 자연 유산적 가치가 높아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거문오름에서는 오름의훼손을 방지하기 위해서 양산, 우산, 스틱, 아이젠 등과 음식물의 섭취가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른 일행들은 모두 돌아가고 울 부부만 안내자를 따라 분화구 바깥쪽 능선으로 난 길을 따라 일주 코스를 돌았는데 오름의 훼손을
막기 위해 군데군데 인공구조물이 세워져 있었으며, 오름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보호하고 있었다. 3시간 10분 동안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돌아왔다.
2012.11.20.화
광령 산지천 올레(18.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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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걷기 단을 만나 그들과 함께 걷기 위해 다른 날보다 일찍 준비해서 일주 버스를 타고 무수천 입구에서 하차하여 잡다한 마음의근심을 없애 준다는 무수천을 따라 걷는데 한라산 서북 계곡에서시작되어 오십여 리를 달려와 외도동 앞바다로 흘러드는 무수천은아득하고 깊어, 추락사고나 익사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비가 내릴 땐 수량이 많아 제주도민들의 주요한 수원으로 이용하는데, 한라산에서 시작해 제주 앞바다를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려내려 오던 용암이 힘이 달려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이곳에 멈춰 선 용암들이 기기묘묘한 수많은 형상으로 굳어져 섰다. 보는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용암들을 하늘은 덮어주고 크고 작은 나무들은 숨겨주는데 이렇게서로 어우러지면서 무수천 구석구석에 서서 보는 사람들의 탄성을끌어내고 있다.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뜨고 내리는 분주한 공항과 관광객을 실은 여객선이 드나드는 도두항에는 어선들까지 주변 정경과 서로 어우러지면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림이다. 중간 스탬프를 찍는 닐모리동동을 지나쳐 다시 돌아가느라 족히1Km는 더 걸었다. 제주시로 들어와 조선시대 제주의 행정관청, 제주목 관아를 둘러보고 앞에 있는 제주 관아 앞에 있으며 병사들의훈련장으로 사용하려 세운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관덕정을 둘러보고 조선시대 이곳에 유배되어 왔거나 방어 사로 부임하여 큰 업적을 남긴 다섯 분을 모신 오현암(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현, 동계 전온, 우암 송시열을 배향했던 옛터)에 들러 그분들의 업적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반쪽이 오현고등학교 학생과 고등학교 때 펜팔을 한 적 있었다고 자랑한다. 풍물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동문 로터리에 도착하여 마지막 스탬프를 찍은 뒤 동문 시장에 들렀더니 아침부터 만나 함께 걸으려던 이음 걷기 단을 그곳에서 만났다.
2012.11.21.수
저지 한림 올레, 가파도 올레19.3Km)
14코스를 서둘러 끝내고 오후 배로 가파도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날 보다 일찍 시작했다. 월령 선인장 자생지는 돌로 구조물을 설치하여 선인장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고, 아담한 정자를 마련해 두어 쉬어 갈 수 있도록 배려도 하고 있다. 다른 한쪽으론 손바닥선인장 재배포가 넓게 펼쳐져 있고 손바닥선인장 끝에는 풍부한 비타민 C와 함께 항암과 변비등에 효험이 있다는 백련초가 달려있다. 빨간 선인장 열매인데 또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선인장밭에서 또 멀리서 선인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즐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작고 실처럼 가느다란 선인장 가시가 옷에 달라붙어 피부를 찔러대는 바람에 떼어내느라 한참을 씨름했다.14시에 코스를 끝내고 모슬포항에서 주변 섬을 서로 이어 주는 연락선에 올랐다. 작은 배 안에는 손에 꼽을 만한 사람들로 낚시객 한
사람을 빼면 모두가 가파도 주민들로 보였다. 그중 차림이 색다른사람이 있어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가파도 민박집과 식당에 대해 몇
가지 물어보았더니 자신은 가파도 태고종 절의 주지승이라고 하면서 자기 집에 놀러 오면 차 한 잔을 대접하겠다고 하면서 자그마한섬인데도 교회도 있고 절도 있다고 한다. 배는 거울같이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달려 출항 25분 뒤인 16시 25분 제주도와 마라도사이에 자리 잡은 가파도 상동 포구에 도착했다.
보슬비가 내리고 있어 우리는 우의를 걸쳐 입고 가파도 올레 코스를 걷는데 제주에 그렇게나 흔하게 보이던 오름 하나 없다.평평한 길을 한 시간쯤 돌다가 나머지 코스는 내일 아침에 돌기로하고 섬 가운데 위치한 가파초등학교 앞에서 민박집을 찾던 중 스님이 사신다는 절을 보았는데 말이 절이지 작고 보잘것없는 가정집이다.
가파도 민박에서 숙식이 된다고 해서 가파도 민박을 찾아갔더니 배정 받은 전기 패널이 깔린 방은 스위치를 넣자마자 따뜻해져 여독을 풀기에는 좋앗으나, 문을 여닫을 때마다 화장실 냄새가 나는 것같아 여름철엔 역겨워 이용하기 불편할 것 같았다.
식당으로 올라갔더니 서울에서 다니던 잡지사를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왔다는 젊은 청년 한 사람이 앉아 혼자 식사하고 있다. 오늘 손님은 우리를 포함해서 세 사람이라고 했다.저녁 메뉴인 용궁 정식은 깔끔하고 정갈하였으며 맛 또한 일품이었다. 거기다 안주인은 친절하고 집을 꾸미는데, 남다른 재주를 가졌는지, 한 가지 종류의 조개껍데기를 붙여 식당 외벽과 본체의 벽을 수년에 걸쳐 단아하게 장식해 나가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색다른풍경이었다, 화분과 돌을 이용하여 마당 구석구석을 장식하는 모습
에서 이 집 안주인의 바지런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2.11.22.목
조천 김녕올레(18.8Km)
아침 9시 20분에 출항하는 배를 타기 위해 어제 걷다가 날이 어두워다 걷지 못한 구간을 걷고 스탬프를 찍기 위해 새벽 6시 20분에 일어나서 하동포구를 찾아 나섰으나 길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아들어왔다가 30분을 기다린 후 다시 나갔다.
꼬불꼬불 정겨움이 샘솟는 낮은 돌담 골목을 지난다. 자그마한 언덕배기 하나 없어 1년 내내 바람이 거세게 불어 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하는 밋밋하고 평평한 섬이 가파도다. 보리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하얀 포말을 만들며 달려드는 파도와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면서 리밭을 감싸고 들어앉은 섬의 정경은 일품이다. 여기에 청보리밭이 어울리면 금상첨화겠지? 오월 청보리밭 축제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객지로 나간 가족들의 안녕을 위하고, 바다에서의 안전과 만선을위해 길일을 택해 풍어제를 지낸다는 하동마을 할망 당에 들렀다가하동포구에서 스탬프를 찍고 주변 경관을 둘러본 뒤 지나가는 주민에게 가파도 민박집 가는 길을 물어서 골목길로 들어섰더니 몇 걸음 걷지 않아, 바로 민박집이 나타났다. 하동포구를 바로 코앞에 두고 오늘 다 걷지 못하고 떠나게 될까, 새벽부터 일어나 부산을 떨며소란을 피운 것을 생각하면 바보처럼 누구에겐가 크게 속은 것 같아 피식하고 헛웃음이 나온다.
시즌 끝난 가파도는 조용하고 한산하다. 사람들의 법석거림도 북적임도 없는 시각이 정지된 조용한 휴양지다.
우리가 며칠 만에 처음 들른 관광객이라고 하니 오늘 떠나고 나면 이 섬은 또다시 정적에 빠져들겠지?
각종 조개를 으깨어 넣어 끓인 가파도의 별미 조개죽으로 아침을 그릇 반이나 먹고 집 주변을 둘러보다가 하동포구로 나왔다. 여객
터미널에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는 가파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났는데 가파초등학교는 학생이 7명이고 교사 2명과 유치원 교사 행정직원이 근무하고 마라분교가 있다고 했다. 몇 년 뒤 이 아이들이 졸업하고 나면 이 섬엔 주민은 없고 몇 명의 해녀들과 관광객들만 드나드는 섬이 되지 않을까?
퇴직 후 아내와 여행을 하고 있다는 내 얘기를 듣고 참 좋은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 계신다며 축하하며 자기는 퇴직 후에 중남미를 여행할 꿈을 가지고 3년째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모슬포항에 내려 정차해 두었던 차의 트렁크를 열고 배낭을 싣는데
뒤에서 누가 “사진 한판 찍어드리겠습니다.” 하는 소가 들려 돌아보니 어제저녁 우리에게 막걸리를 얻어먹었던 청년이 환한 얼굴로 폴로라이드 카메라를 들고 섰다. “고마워요.” 하는 인사말과 함께 트렁
크 앞에 포즈를 잡고 섰더니 바로 사진을 뽑아서 건넨다.
이렇게 여행은 낯모르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예고 없는 만남을 갖게한다. 내가 먼저 다가가면 반드시 상대도 다가온다.
10시 55분 만세동산을 출발하여 신흥리 마을로 오목하게 깊숙이 들어앉은 신흥리 해수욕장을 지나 함덕 서우봉 해변에 이르렀더니 하늘이 물속에 잠겨있다. 드넓은 해변은 인간과 자연이 사투를 벌이는 현장이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으로부터 해수욕장 모래를 지켜내려고 부직포 그물을 해변 모래밭에 펼처 덮어두고, 그 위에 모래를넣은 자루로 움직이지 못하게 촘촘히 눌러두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커다란 파도 한 방이면 끝날 일인데도 파도로부터 바다로부터 바람으로부터 모래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아름답다 못해 숭고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차(車)에다 각종 차(茶)를 싣고 와서 교차지점의 거리에 세워두고 물을 끓여가면서 지나가는 올레꾼들에게 내미는 따뜻한 오미자차를 얻어 마시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 동안 걷고 왔다는 75세의 전직 여교사로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받는데 가슴이 반응한다. 처음엔 칠레의 도시 산티아고인 줄 알고 들었는데 듣다가 보니 프랑스의 국경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대성당 까지 걷는 800Km의 순례길이라고 했다. 입이 딱 벌어졌다. 잠시 함께 걷는데 걸음이 얼마나 른지 나도 빠른 걸음인데 아무리 빨리걸어도 쉬 따라갈 수가 없다.
막연히 산티아고를 떠올리면서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그날 저녁 숙소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봤더니 많은 사람이 가고 있고, 우리나라 젊은이들 관심의 대상이며, 온라인상에는 이미여러 카페들이 생겨나서 순례길에 대한 각종 유익한 정보들이 제공되고 있다. 예루살렘 길과 로마 길에 이어 세계 3대 순례길 중의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렇게 울 부부의 마음속에 들어와 자리잡았다. 이렇게 만남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2012.11.23.금
김녕 하도 올레(16.5Km)
일주 버스를 타고 남흘 동에서 내려 10시 10분 제주 북동부 바다의아름다움을 남김없이 보여준다는 김녕 서포구 어민복지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바닷가에서 시작한 길은 마을로 이어지고 마을의 돌담길을 걷다가보면 어느새 자갈투성이 무밭으로 이어지고 처음 보는 생경한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바다로 되돌아 나온다. 그 옛날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을 위해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불을 밝혔다는 도댓불을 지나면,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작은 성, 성세기를지나자, 고운 모래가 일품인 월정리 해수욕장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이곳도 모래가 바닷바람에 날려가고 파도에 쓸려 가는 바람에해변의 모래 폭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에 풍선처럼 부풀었던 맘은 현재 진행형인 모래밭의 아픔을 보고 나선 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수욕장을 등지고 쑥이 지천이라 쑥 동산으로 이름 지어진 행원마을로 넘어가는 야트막한 쑥 동산으로 들어서자, 계절이 지난 탓이라 싱그럽진 못하였으나 그곳에서 되돌아본 월정리 마을과 바다의정경은 나무랄 데 없이 정경과 어울려 아름다웠으나 바다의 아픔이우리 아픔이 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다음에 만나게 되는 곳이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이다. 서자로 임금 자리에 올라 15년간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도 명나라의 인정을 받지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태안을 거쳐 제주로 재, 유배 길에 올랐을 때 처음 기착했다는 행운 포구다. 교직원 수가 100여 명 남짓한 학교를 경영하다가 정년퇴임이란 제도에 의해 예고된 내쫓김을 당했는데도 40여 년 동안아침밥만 먹으면 가던 곳이 없어져서 그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가힘이 들어서 이렇게 빡빡한 일정에 몸을 묶어두고 있는데 하물며 만인을 호령하며, 절대 지존으로 부러움 없이 군림하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내쫓김당한 신세에 억울한 죄인이 되어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망망대해를 돌고 돌아 한양으로부터 1,200 여리나 떨어진 이곳 제주까지 흘러올 때 광해의 원통하고 비통한 심정을 나 같은 범인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세월이 유수라고
했던가? 그날의 억울하고 원통함은 무심한 세월과 함께 기록에 묻히고 역사로 남아 40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사연은 자그마한 검은 표지석으로 남아 지나가는 길손에게 우리 역사의 흔적을 말해주며 쓸쓸하게 서 있다.억울하기 짝이 없는 광해 임금의 체온이라도 느껴보고 위로라도 해드려야겠다는 맘에 표지석을 가슴에 안았으나, 수백 년 조선 역사
는 싸늘한 烏石의 한기가 되어 온몸으로 전해지는데 역사는 말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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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4.토
마지막21코스 (10.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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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길 총연장 420.6km중 마지막 21코스가 개통되어 제주올
레 코스가 완성되는 날이자 반쪽과 내가 제주 섬을 한 바퀴 도는 마
지막 날이기도 하다. 서귀포 3 광장에서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마련
한 셔틀버스를 타고 9시 50분 해녀박물관에 도착하여 개회식과 더
불어 간단한 공연을 마치고 10시 50분 출발하는데 무지 춥다.
가슴이 설렌다. 몇 시간 후면 제주올레 완주증을 받게 된다. 처음 시
작할 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많이 걱정도 되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끝점에 섰다.
선발대를 따라 걷고 있는데 올레 코스가 완성되는 날이라 여러 방
송사에서 나온 카메라 기자들이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주란 자생지로서 여름에 문주란이 지천으로 피어나 멀리서 보면
섬이 하얗게 보이는 데서 이름 붙여졌단 토끼섬을 지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별 방진에 도착해
김밥을 먹는데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들오들 떨면서
먹었다.
마을 부녀회원들이 어묵을 끓여서 나누어 주는 천막 앞에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어묵 한 꼬치와 국물 한 컵을 받아 마셨더니 속이 따뜻
해져 온몸에 온기가 돌아 견딜 만하다. 쉬엄쉬엄 앞 사람을 따라 소
나무숲 사이로 난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땅끝을 뜻한다는
지미오름을 오른다.
정상 전망대에 서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며 멀리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앞서 거니 뒤서거니 종달리 앞바다를 향해 달려들 듯 떠 있
고 종달 마을과 종달리 앞바다는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지런히 누
워 숨 고르기 하는 앞에 1코스 시작점이 보인다. 산골짜기 다랭이
논처럼 구불구불한 밭두렁으로 나누어지는 올망졸망한 밭떼기들이
종달 마을을 지키고 얌전히 들어앉았다. 잠시 관망하다가 철새도래
지로 향했으나, 계절 탓인지 철새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1코스를 걸을 때 구운 오징어를 사 먹던 나들가게와 연결된 곳에 본
부가 차려져 있다. 여러 동의 천막과 간이음식점이 마련되어 있고
본부석 앞에는 많은 봉사자가 줄지어 늘어서서 들어오는 우릴 향해
환한 얼굴로 박수와 함께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다. 본부석 앞에서
완주 카드를 내어놓고 완주 확인을 받은 후 완주증을 받아 들고 인
증 사진과 함께 울 부부가 전국에서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완주자가
되어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등재되는 영광을 얻었다.
일상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
보며 걸었다. 자고 나면 걸었다. 제주 섬과 제주 섬이 거느리고 있는
다섯 개의 유인도를 모두 한 바퀴씩 뚜벅뚜벅 앞만 보고 걸었다. 무
념무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이게 치유인가
보다.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함이
밀려온다. 벅차오른 가슴과 고생한 내 몸을 위해 조촐하지만, 따끈
따끈한 어묵으로 달랜다. 서귀포로 돌아와 두 시간에 걸쳐 새섬을
일주하고 아름다운 조도의 일몰을 보면서 조 미미의 바다가 육지라
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속에 조용히 제주 올레길에 마침표를
찍는다.
2012.11.25.일
족은 노꼬메, 큰 노꼬메, 궷물오름
오늘부터 오름을 답사하기로 하고 남제주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
치고 네비게이션을 켜고 찾아가는데도 오름을 들어가는 입구를 찾
기 힘들다. 두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입구를 찾아 13시 40분부터
큰 노꼬메 오름을 오른다.
소길 공동 목장 내에 있는 오름이다. 입구는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거나 딩구는 목장이 있어 한가하고 목가적인 정경이다.
토양을 보존하기 위해서 오르는 길에 폐타이어를 잘라 엮어 만든
깔개를 깔아두고 가파른 곳은 368개의 좁고 가파른 계단을 만들어
두고 오르내리게 하고 있었는데 미끄러지지 않게 일정한 간격마다
선박용 로프를 잘라 가로질러 박아놓아서 비가 쏟아지거나 눈이 와
서 쌓이지 않는 한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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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 되어 있다.
갈대밭과 조릿대 군락과 고사리밭도 지나면서 쉼 없이 25분을 오른
후에야 정상에 설 수 있었다. 해발 833.8m로 애월읍에 있는 오름 중
에선 가장 높은 오름이다. 사슴이 살았다고 하여 廘高岳이라고도
불리는 말굽형의 분화구로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주변 정경이 무지
아름답다. 멀리 한라산이 손을 뻗으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들어
와 앉았다.
족은 노꼬메도 지척에 있다. 내려오는 길로 족은 노꼬메에 올랐는
데 단풍 숲길을 지나고 삼나무 숲을 지나 말굽형의 특색 있는 분화
구로 규모는 작으나 넓게 퍼진 족은 오름에 올랐다. 큰 노꼬메 오름
과 이웃하고 있어 형제 오름이라고도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다본 주
변 정경은 공사 관계로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족은 노꼬메 오름을 내려오는 길에 이 오름 북동 사면에 궷물이라
불리는 샘이 있어 궷물 오름이라 이름 지었다는 궷물오름을 올랐다
가 하산하니 2시간 40분이 걸렸다.
2012.11.2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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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사와 함께 탐방을 시작한다.
단일 수종의 숲으로는 세계 최고라는 말과 이 숲에서 가장 나이 많
은 비자나무는 800살이며, 비자나무 열매는 한방에서 주요 약재로
쓰이고 있으며, 재질이 단단하여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인다고
한다. 특히 비자나무 바둑판이 인기라고 했다.
천연기념물 제 374호 비자림 숲으로 들어서자 500년 이상 된 비자
나무 2,800여 그루가 하늘을 덮고 있어 하늘은 비자나무 잎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수줍은 듯 숨어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정말 조용
하다, 가끔 푸드덕 하늘로 솟구쳐 날아오르는 새 소리가 정적을 깰
뿐 내가 내쉬는 숨소리만 들린다. 仙界에 들어가 본 적은 없으나 만
약 仙界가 있다면 이러한 곳이 아닐까?
뺏고 뺏기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아닌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면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가고 있다. 습지 식물한테 몸을 내준 비자
나무 등을 타고 넝쿨식물이 비자와 한 몸이 되어 빛을 찾아 하늘을
향해 오르는 곁으로 외로이 선 한 그루의 단풍나무는 가는 가을이
아쉬운 듯 농염하게 우릴 유혹하며 타올라 주위의 땅과 하늘을 노
랗게 물들이고 사방을 반짝이는 노란 황금색으로 만들어 내고 있
다.
오솔길은 화분용 토양으로 많이 쓰이는 붉은 색의 화산 송이를 작
게 분쇄하여 깔아놓아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상나무와 비자나
무 그리고 주목 나무는잎이 생긴 모양이 비슷해서 구별하기 힘든
다.
오름 중의 오름 다랑쉬 오름을 오른다.
처음 시작은 나무계단이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다 보니 사람
들이 가꾼 숲들이 나타난다. 삼나무, 편백 그리고 해송 숲을 지나 힘
들게 1,000m가 조금 넘는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전경에 압도된다. 아름답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오름 위에는 백
록담만큼 깊은 분화구가 있고 둘레에는 잔디가 예쁘게 자라고 있
다. 억새와 가시 쑥부쟁이도 자라고 멀리 농작물을 재배하는 들녘
논두렁이 다랑이논처럼 아름답고 정겹게 다가온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1,500m나 되는 분화구 둘레를 걷는데 자연환경
에 도취 되어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고 싶다.
다음으로 간 곳이 용눈이오름이다.
하늘의 은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든 감각 기관을 하늘 향해 열
어 두고 선 억새가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물결을 일으키면서도 모
든 촉각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참 아름답
다.
이 오름은 타원형의 분화구가 있어 아름다운 여체처럼 굴곡이 있고
미끈하게 생겼고, 복합형 화산체로 마치 용이 누워있는 형체라서
용눈이오름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서 있
기가 힘이 들 정도라서 조용히
서서 차근차근 조망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안고 내려온다.
2012.11.27.화
아부,백악이,동거문,문석이,대록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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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개의 오름을 오르는 빡빡한 일정인데 찾아가는 길도 쉽지 않
다. 09시 40 아부오름을 오른다. 하늘을 마주하고 녹색 풀밭 위에
누워 한가로이 노닥거리는 누렁소가 있는 목장을 지나 오른 아부오
름 분화구 속에는 분화구 모양을 따라 동그랗게 조림 한 삼나무가
동그란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잔디가 잘 가꾸어지고 다듬어진
예쁜 분화구 둘레를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온다.
다음으로 간 곳이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내려다보이는 백악이 오름
이다.
오름에 자생하고 있는 약초가 1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분화구 등성이는 잔디가 넓게 깔려 있어 걷기에 좋았고,
한라산과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다음 오른 곳이 멀리서 보면 뾰족한 모습의 동거문 오름인데 정상
에 올라서면 분화구를 일주할 수 있는 길은 없고 한 사람이 겨우 걸
을 수 있을 만큼의 좁은 길이 나 있는데, 분화구가 매우 깊고 가팔라
서 겁 많은 반쪽은 서서 내려다보지 못하고 엉거주춤 무릎을 꿇은
체 분화구 내부를 들여다본다.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보지 못하고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온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문석이 오름은 동거문 오름을 내려오는 길에서 연결된 길로 올랐는
데 정상은 갈대로 덮여 있다. 잠시 전까지 그렇게 맑고 높고 파랗던
하늘은 간곳없고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바람을 일으키더니 구름
의 색깔을 바꾸면서 하늘은 낮아지고 구름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꾸역꾸역 불러 모으며 비를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른 곳이 큰 사슴이 오름이다.
갈대 숲길을 지나면 오름이 가팔랐으나, 나무계단이 있어 오르기에
힘들지는 않았다. 출발하고 30분쯤 지나 정상에 서니 사방으로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저 아래 들녘
에 산마장이 있어 거대한 말 방목이 이루어졌다는데 갈대로 이루어
진 정상은 황금 들녘이다. 우리의 가을 산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
대로 보여준다. 말굽형의 두 개의 분화구로 이루어진 정상 분화구
둘레로 난 오솔길은 잔디로 덮여 있다
2012.11.28.수
영실, 비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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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실, 한라산 신들이 살고 있다는 방,
며칠 전에 찾았을 땐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던지 광풍을 보내서 접
근을 한사코 막더니 오늘은 그 속살을 보여주시겠지? 하는 기대 속
에 영실 휴게소 에 들러 커피 한잔으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등산
화 위로 아이젠을 덧신고, 두터운 장갑과 목 후드로 무장하는 등 만
반의 준비를 한다.
설렘 속에서 등정을 시작한다. 처음 길은 지난번에 걸었던 길이라
눈은 내렸으나, 어려움 없이 오른다. 하늘은 어제 오후부터 구름을
한라산으로 불러 모으더니 밤사이 눈을 만들어 보냈나 보다. 눈이
천지삐까리다. 신들의 정원으로 들어선다.
영실을 지키고 선 나무들은 하늘이 보낸 눈을 밤새 욕심부리며, 쌓
아 올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얼음꽃으로 피워냈다.
가지 끝에 피어난 하얀 꽃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참 신비롭다. 녹색
의 가녀린 잎 위에 하얀 눈을 주는 대로 받아 수북하니 머리에 얹고
눈으로 얼음꽃을 피워낸 비자나무가 신기하고 아름답다. 넘, 아름
다워 와 아!, 와 아! 하고 탄성을 지르다가도 나무의 비명에 맘이 아
프다. 하늘이 하는 일에 일개 범부가 끼어들 순 없지만 욕심껏 쌓아
올리며 만용을 부린 나무들은 눈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
된다.
이곳저곳에서 ‘뚝, 빠지직, 찍’ 하는 나무의 신음이 들린다. 한라산
신들의 정원이 부서지며 망가지고 있다. 한라의 신들은 하늘에 무
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혼나고 있을까? 오늘은 하나님이 주
인인가 보다.
비자나무들은 쌓은 눈을 밤사이 반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 이고 힘
겹게 버티고 섰더니,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몸의 일부를 포기하
고 도려내며 타협에 나서 맘을 비운다. 이렇게 하늘의 가르침을 무
겁게 받아들이는 처절한 삶의 현장이 이곳저곳에서 펼쳐진다. ‘우리
삶의 무게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 비워가며 살라는 하늘의 소
리를 듣는다.
하늘이 또 심술을 부린다. 시커먼 구름을 하늘 가운데로 꾸역꾸역
모아들여 해를 숨겨버리자, 한라는 꽁꽁 얼어붙으며, 추위와 함께
짙은 어둠이 내리깔리며 앞이 잘 안 보인다. 앞서가는 사람의 흔적
을 살펴 가며 조심조심 따라가는 형국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앞
에 선 나무가 전우인 줄 착각하고 출발 신호를 보내지 않아서 우리
분대가 멈춰서는 바람에 줄줄이 멈춰서서 구 대 전체가 혼났던’ 후
보생 시절 야간 훈련을 받던 모습을 더듬으며 걷는다.
윗세오름에 오르면서 잠깐 한쪽 귀퉁이만이라도 보여주길 고대했
으나, 하늘은 구름으로 한 치의 틈도 없이 꽁꽁 싸매고 묶어 보듬어
안는 바람에 한 치의 틈도 없다. 옆모습조차도 보지 못하고 돌아선
다.
내려오는 길 하늘이 내 소원을 알아챘는지 꼭꼭 감추고 있던 눈 덮
인 장엄한 한라의 모습을 숨바꼭질하듯 언 듯 언 듯 보여주길 반복
한다. 이렇게 4시간 동안 하나님과 한라와 어울려 숨바꼭질하면서
얼음꽃 핀 한라의 모습을 맘껏 즐겼다.
한림항에서 손에 잡힐 듯 빤히 보이는 신비의 섬, 비양도에 가기 위
해 비양호를 타고 15분 만에 지질학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비양 항
에 도착하니 손바닥만한 도항선 승선장이 우리를 맞는다.
먼저 해안 산책로를 따라 섬 둘레를 한 바퀴 돈다. 참 조용하고 안락
하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어가는 길, 바닷가 쪽으로는 관
광객을 끌기 위해 각종 형상의 돌들을 의미 있게 전시하고 있다.
섬을 한 바퀴를 돌고 사라호 태풍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생겨났
다는 바닷물 연못, 펄랑호 위에 나무 데크로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의
미 없이 만들어 둔 다리 위를 걷고 비양봉도 올랐다. 섬이 작아서 한
시간 남짓 걸렸다.
2012.11.29.목
비양도, 새별, 정물오름, 서광이 비치는 숲
아침 일찍 올라간 비양봉 정상에는 오랜 시간 비바람에 퇴색한 흰
등대가 정상을 지키며 섰고, 천연기념물인 작고 볼품없는 비양 나
무 한 그루가 있었으나 철조망으로 둘러쳐 보호받고 있어 먼발치에
서 사진만 찍어왔는데 아침에 호동이 식당 할머니가 자기 집에서
자라고 있는 비양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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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을 뜯어와 보여 주신다.
아침 배로 제주에 돌아와 서귀포를 오 갈 때 커다란 바가지를 엎어
둔 것 같아 기억에 남았던 이름이 예쁜 새별오름을 오른다.
최영 장군이 2만 5,000의 군사로 몽골군 목호를 맞아 전투에서 승
리를 거두었다는 역사의 현장이다.
매년 3월 들불 축제가 열려 오름을 모두 태운다는 오름이다. 마침
새별오름 앞에 주차장과 편의 시설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어 둘
러친 벽 사이로 들어가 오른쪽 길로 정상에 올랐는데 가팔라 힘들
었다. 오름 전체가 갈대로 덮였고 군데군데 풀꽃들의 흔적도 눈에
띈다.
다음으로 간 곳이 서광이 비치는 숲길, 곶자왈이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걷거나 휴양을 통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리모델링 하는 곳이 바로 때 묻지 않는 자연이고 숲이다.
차도에서 몇 걸음 걸어 숲으로 들어서자 길이 말끔 하게 단장되었
다. 아스팔트가 깔린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나란히
걸을 정도로 길을 내고 길 위엔 붉은 송이나 마대를 깔아 깔끔하고
걷기 편하게 자연의 소재를 활용하여 친환경적으로 꾸며 놓았다.
숲속엔 옛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보전해 두었다. 말을 풀어 방목
하던 곳, 화전의 흔적과 함께 주거지와 숯을 굽던 흔적도 있어 제주
토착민들의 생활 모습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곶자왈로 들어서자 울창한 나무들과 나무와 어울려 살아가는 갖가
지 넝쿨식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서로의 삶을 통해 원시림
을 만들어 내면서 공생의 중요성을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다.
환경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는 현장이다.
화산암 틈새를 비집고 겨우 터를 잡거나 얕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바람과 척박한 환경에 순응하며 살다 보니 나무의 생김
새는 말이 아니다. 이리 저리 뒤틀리면서 갈라지고 찢어졌다. 그러
나 나뭇가지 사이의 작은 틈새를 비집으며 들어오는 햇살을 쉼 없
이 받아 모으면서 주변과 어울리게 자랐다.
남방식물과 북방 식물들의 잎새는 금방이라도 녹색 물감을 뚝뚝 떨
어뜨릴 것만 같이 튼실하게 자라 빈짝반짝 힘이 넘친다. 예전엔 길
건너 숲들과 이어진 한 덩어리의 커다란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
나 지금은 주변의 개발로 인해 나눠지고 떨어져 나와 이렇게 도로
옆 작은 섬으로 남았다 한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들이 태양을 가려 한여름에도 숲속은 시원해
걷기에 편하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오솔길은 둘이 함께 걸으면 없
던 정도 솟아날 것 같은 정감이 가는 길이다.
2012.11.30.금
한라산 어리목코스, 윗세오름, 어승생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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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영실로 올랐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다. 눈이 없다. 봄날이다.
어리목을 출발하여 1시간 50분 만에 윗세오름에 도착하여, 라면과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11시 50분 윗세오름을 내려와서 어리목 주차
장에서 어승생악을 올랐다. 정상에는 일본군들이 만든 동굴 진지가
있고, 사방을 둘러보는 경치가 백미다. 망원경을 통해 한라산 정상
과 서귀포의 새연교도 봤다. 내려오는 길에 세계 람사르 습지로 등
록된 1,100고지에 있는 습지를 둘러보았는데 정성을 들여 가꾸고
아끼고 보호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2.12.1.토
시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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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영실 쪽으로 8.2 Km 떨어진 지점, 거니는 길이 모두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내리다가 식어서 굳은 상태로 이렇게 길을 내어
주고 있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 원시림이 하늘을 덮어, 하늘 보는 것
은 포기한다. 사람이 힘을 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채 남아 있어
들어서는 순간 힐링 되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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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길도 자연이 내어준 자그마한 오솔길이 전부다.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삼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편백 나무 군락지에 이르자
길은 한라산 둘레길과 이어진다. 우린 다시 이어지는 호근산책로를
통해 시오름을 오른다.
시 오름을 올라가는 정상 쪽이 계단으로 되어있어 오르기가 힘들었
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분화구 속은 조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
어 바닥은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정상 둘레도 나무들이 우거져 전방
만 보일 뿐 다른 쪽은 볼 수 없다. 편백을 비롯한 삼나무, 조롱나무,
동백나무 등 아름드리 숲이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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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름을 끝으로 제주에서의 계획했던 목표를 달성했다.
제주 올레길 완주에 도전하면서 한땐 목표가 덫이 되어 제주에서의
생활이 즐겁지 않고 힘들어 쉬 이곳을 떠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
정을 한때도 있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도 끝에 목표가 세워지자,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음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믿음과 도전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거기다 같은
생각으로 걷고 있는 올레꾼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완
주에 대한 의식이 더욱 또렷하고 분명 해지면서, 믿음으로 시작한
일, 끝을 보도록 도와주시겠지? 하는 믿음은 더욱 단단해지고 분명
해졌다.
이렇게 두 달을 힘겹게 버티며 마지막 21코스를 여는 날. 목표에 다
달았는데, 기쁨도 잠시 어느 틈에 새로운 목표가 울 부부의 가슴속
에 들어와 앉는다.
세계 삼대 순례길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마을 생
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서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800 Km 가 넘는 길이다.
7Kg 이상의 배낭을 등에 메고 하루 16,7km 씩 50일 가까이 걷는 고
된 행군이 울 부부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
고 나면 하나님은 또 다른 꿈을 향해 나아가게 등을 떠다밀며 우리
의 삶을 이끌어 주시나 보다.
싼티아고 순례길에 도전하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하나님은 또 어떤
새로운 꿈을 주실까? 벌써 가슴이 설레며 기다려진다.
우리 삶은 이렇게 하나님의 보살핌과 도움으로 하나하나 꿈들을 이
루면서 살아가게 하시는가 보다.
퇴직으로 주류사회를 떠나 출근의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해가 중천
에 올 때까지도 이불 속을 뒹굴던 따분한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그
런 일상을 신나고 즐겁고 보람 있는 하루하루가 되게 하면서 지금
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 믿음의 환희를 맞보게 해준 건 바
로 여행을 통해 뵙게 된 하나님이셨다.
그동안의 여행은 누군가 세워둔 계획에 따라 코뚜레 꿰인 소처럼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여행에서 스스로 계획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드리고 도움을 청하면서 나의 생활 모습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한 주에 한 번 교회에서 잠시 뵙기도 힘들었던 하나님을 이번 여행
에선 영실을 오를 땐 영실에 계셨고,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 한라산
을 오르면 환한 얼굴로 두 팔을 벌린 채 백록담에서 날 반기셨다. 사
라 오름을 오를 땐 한발 앞서 가셨고 엉또폭포 앞에선 폭포 위에 서
내려다보고 계셨다. 우도와 추자도 등 배를 타고 갈 때면 손수 배의
키를 움켜잡으셨고, 서산마루에 걸린 지는 해 앞에 선, 두 팔로 보듬
어 안으시듯 인자하신 표정으로 희망찬 내일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천지 사방에 계셨다. 다만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귀에 들리지 않았을 뿐 늘 그렇게 지켜보고 계셨다.
멋있고 생경한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멘’으로 화답하고 찬양하는 생활에 평
생 처음 마음속 하나님과 교감하면서 일상을 함께 한 제주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렇듯 이번 제주 여행은 내게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함께 걷
고, 보고, 느끼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믿음 여행의 신세계가 있음을
알게 해준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이렇듯 감사하는 마음속엔 늘 그
분이 계셨다.
이젠 숟가락을 놓아도 갈 곳이 있다.
할 일이 있다.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지는 삶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힘차고 새로웠다. 두 달 동안의 제
주 생활은 축복받은 생활이었다.
늘 같은 생각으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속도
로 살아가며 말없이 따라와 함께 해준 반쪽과 이 일을 실행할 수 있
는 여건을 주신 야훼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으로 이곳 제주에서의
생활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