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7장 미카욘과 나론다가 미르다드와 한밤중에 대화를 나누다.
세번째 당직 시간이 두 시간쯤 지날 무렵, 방문이 열리면서 미카욘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일어나 있소, 나론다?"
"오늘밤 잠은 내 방을 찾아오지 않는구려. 미카욘"
"내 눈꺼풀에도 잠이 깃들지 않소. 그런데 그 사람 말이오, 그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오?"
"스승 말이오?"
"자네는 벌써 그를 스승이라 부르는가?
아마 스승일지도 모르지.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해질 때까지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구려. 지금 즉시 그가 있는 곳으로 가 봅시다."
우리들은 살며시 방을 빠져나와 스승의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창백한 달빛이 벽 위쪽 높은 곳에 나 있는 작은 창으로 들어와, 마루 위에 놓여진 스승의 간소한 침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날 밤 사람이 그 침상 위에 누운 흔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우리가 찾고 있는 그는 있어야 할 장소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부끄러움과 당혹함으로 실망해서 돌아서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우리들 귀에 들려 왔다.
우리는 곧 입구에 서 있는 아름다운 표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놀라지 말라. 편히 앉으라. 절정 속에 있는 밤은 눈깜짝할 사이에 새벽의 미명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이 시간은 녹아들기에 좋은 때다."
미카욘은 낭패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침입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오늘 밤에는 전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잠은 아주 짧은 자기 망각이다. 아주 조금만 자면서 망각 한 모금 마시기보다는 자기에 몰입하면서 깨어 있는 편이 낫다. 그대들은 무엇때문에 미르다드를 찾아 왔는가?"
미카욘이 대답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나는 신, 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사람. 내가 누구인지 알겠는가. 미카욘?"
"당신은 신성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미카욘의 신에 대해서는 아마 그럴 것이다. 미르다드의 신에 대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미카욘이 말했다.
"신의 숫자가 사람만큼이나 많기 때문에 미카욘의 신도 있고 미르다드의 신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신은 여럿이 아니다. 신은 하나다. 하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다양하다. 사람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한, 각 사람의 신은 그 그림자보다 위대하지 않다. 그림자 없는 것만이 완전한 빛 속에 있다.
그림자 없는 것만이 하나인 신을 안다. 왜냐하면 신은 빛이며, 빛만이 빛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미카욘이 말했다.
"우리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은 말아 주십시오. 우리의 이해력은 아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합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림자를 질질 끌며 가는 자에겐 모든 것이 수수께끼이다. 인간은 남에게서 빌려온 빛 속을 걷고 있다가, 자신의 그림자에 걸려 넘어진다. 그러나 '이해'의 빛이 비추어졌을 때, 그대는 더 이상 어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게 된다.
머지 않아 미르다드는 그대들의 그림자를 한데 모아 태양 아래서 태워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그대들 마음 속의 수수께끼는 너무나 분명해져서 어떤 설명도 필요없는, 빛나는 진실로 나타날 것이다."
미카욘이 말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의 이름, 본명, 출신국, 선조를 알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아아. 미카욘! 미르다드를 그대의 쇠사슬로 묶고, 그대의 베일로 덮으려는 짓은 독수리를 강제로 알 껍질 속으로 되돌리려는 것과 같다. 어떤 이름이 이미 껍질 속에 없는 인간에 대해 알려주겠는가? 어떤 나라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인간을 포함하겠는가? 어떤 나라가 우주 전체를 담고 있는 인간의 선조가 될수 있겠는가?
미카욘, 나를 잘 알고 싶다면 먼저 미카욘 자신을 잘 알라."
미카욘이 말했다.
"아마 당신은 인간의 옷을 입은 환상일 것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렇다. 어느 날엔가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미르다드는 환상에 불과했다고, 그러나 그대들은 머지 않아 이 환상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알 것이다. 인간의 그 어떤 현실보다도 훨씬 현실적임을 알 것이다.
지금 세계는 미르다드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미르다드는 늘 세계에 관심을 품고 있다. 머지 않아 세계는 미르다드에 관심을 품게 될 것이다."
미카욘이 물었다.
"당신이 혹시 밀항자입니까?"
미르다드가 대답했다.
"나는 미혹의 대홍수 속을 대담하게 헤쳐 나가는 모든 방주 속에 머무는 밀항자다. 선장이 도움을 호소할 때는 언제나 키를 잡는다. 그대들의 마음은 오래 전부터 부지불식간에 내게 큰소리로 호소해 왔다.
그리고 보라! 미르다드는 이곳에 있으며, 그대들의 배가 안전히 나아가도록 키를 잡고 있다. 그 대신 그대들은 일찍이 없었던 최대의 홍수 속에서 세계를 인도하기 위해 키를 잡아야 한다."
미카욘이 물었다.
"또 홍수가 일어납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 홍수는 지상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낙원을 가져다준다. 인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신을 드러낸다."
미카욘이 물었다.
"옛 홍수가 남긴 무지개가 아직 채 걷히기도 전인데, 어째서 당신은 새로운 홍수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아마 진행중인 이 홍수는 노아의 홍수보다 훨씬 파괴적이다.
물이 삼킨 대지는 몸의 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열에 들뜨고 피에 물든 대지는 그렇지 않다."
미카욘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종말을 기다려야 합니까? 밀항자가 오는 것은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 들어 왔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대지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대지는 너무나 젊고, 그 젖은 넘쳐 흐를 정도다. 이제부터라도, 그대가 셀 수 있는 숫자 이상의 세대가 대지의 젖을 빨면서 자랄 것이다.
인간, 즉 대지의 주인에 대해서도 염려하지 말라. 인간은 불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인간은 없앨 수 없다. 그렇다. 인간은 무한하다. 용광로에 들어갈 때는 인간으로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신으로서 나온다.
굳세어지라, 준비를 하라. 일단 한번 채워지면, 영원히 그대를 계속 채우는 신성한 갈망을 그대의 마음이 깨달을 수 있도록 눈과 귀와 혀를 확실히 보전하라.
결핍된 자를 채울 수 있도록, 그대는 늘 충만해 있어야 한다. 도피하는 자나 약자를 받쳐 줄 수 있도록, 그대는 늘 강하고 굳세어야 한다. 바람에 희롱당하는 표류자를 감쌀 수 있도록, 그대는 늘 바람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어둠 속을 걷는 자를 인도하기 위해, 그대는 늘 빛나고 있어야 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는 무거운 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는 즐거운 부담이다. 약자를 찾아내라. 그들의 약함이 그대의 강함이다.
배고픈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자는 굶주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부른 자의 입장에서 배고픈 자는 환영할 만한 지출처이다. 배고픈 자를 찾아 내라. 그들의 결핍이 그대의 충만이다.
장님의 입장에서 장님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앞을 볼수 있는 자의 입장에서는 장님은 이정표. 장님을 찾아내어라. 그들의 어둠이 그대의 빛이다."
이때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아침 기도 시간을 알렸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자모라의 나팔은 다가올 날에는 또 다른 기적을 알릴 것이다. 그 기적은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배를 채웠다가는 비우고, 쓸데없는 말로 혀를 갈고 닦고, 안 하는 게 나을 행위를 많이 하고 할 필요가 있는 행위는 하지 않음으로써 그대들을 실증나게 할 것이다."
미카욘이 물었다.
"그럼 우리는 기도를 하지 않는 편이 좋은가요?"
미르다드가 말했다.
"기도를 하라. 가르침 받은 대로 기도하라. 어쨌든 기도하라. 기도로 무엇을 간구할까 마음 쓰지 말라. 그냥 기도하라. 그대들이 자기를 가르치고, 자기에게 명령하고, 어떤 언어든 기도가 되고, 어떤 행위든 헌신이 되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명령받은 것을 모두 행하라. 마음 편히 행하라. 미르다드는 그대들의 아침식사가 풍성하고 맛이 들도록 배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