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4장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꿈에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는 예수님께 무엇을 해드리고 싶어서,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을 말씀해주십시오. 그랬더니, 예수께서는 웃으시면서 너가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고약과 같습니다.
죄 투성이 허점 투성이인 우리를 예수 안에서 받아주시고, 의롭다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약에서 썩을 나무 곧 조각목을 가지고 금으로 씌우는데, 예수를 믿는 것은 금으로 싸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은 죄인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은 1장에서 죄를 나열하고, 2장에서 유대인도 죄인이라고 말하며, 3장에서 자신도 그리스도인들도 죄인이라고 말하고, 모든 죄를 율법이 가두었고,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 곧 복음을 보내셨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심으로,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얻게 되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또는 양심적으로 사는 것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의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한데,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육신으로 봤을 때, 아브라함도 실수를 많이 하였는데, 하나님이 씨를 주신다고 하였음에도 하갈에게 들어가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고, 마누라를 누이라고 속여서 남자 망신을 시키기도 하였는데, 아브라함이 때론 의인처럼 보여도 사람 속에는 완전한 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할 것이 없었습니다.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특히 아브라함은 자식이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어도, 아브라함은 수심이 가득하였고, 상속자를 자신의 충실한 종 엘리에셀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70넘은 아브라함 노인이 자식을 낳을 것을 예언하시고,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以信稱義(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입니다.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행위에는 삯 곧 급료가 있는데, 일을 하고 돈을 받고, 율법에도 상이 있습니다.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그러나 믿음은 다른데, 무엇을 하고 안하고를 따라 의롭다 하는 것이 보다도, 오직 죄인을 예수 안에서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 예수 피공로로 인하여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다른 예를, 다윗이 본 시편에서 예를 들었는데, 다윗이 살면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가려주시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사울과 비교하였을 때, 간음 살인죄 등 죄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실지언정 사울처럼 대하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일종의 이신칭의입니다. 바울은 다시 아브라함의 예를 살펴보는데,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이신칭의의 복, 곧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 받기 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할례와 무관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런데 이후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지시를 받았고, 할례를 받았는데, 할례는 무엇입니까.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례도 사실은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표일 뿐입니다.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브라함은 할례자와 무할례자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할례의 유무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상속자가 되는 것도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율법은 죄의 고발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아무리 잘 지켜도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짜피 불완전한 죄인인 인간은 율법을 어길 수 있기 때문에 잠도 편히 못잘 것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는데, 율법의 눈으로 볼 때, 마음까지 볼 때, 아무도 벗어날 자가 없습니다.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상속자가 되는 것은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복음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는 것으로만 받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에는 상이 있고, 믿음에도 상이 있다고 말하는데, 상속자가 되는 것은 내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믿음으로 상속자가 됩니다. 물론 믿음에도 상급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으로 볼 때 내 행위는 불완전합니다. 완전한 것이 없습니다. 또한 허점투성이이며, 죄가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으로 잘 보면, 고약으로 쌈을 받아할 고름덩어리이며, 금으로 씌움을 받아야 할 연약한 나무입니다.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은 노인 아브라함을 두고 믿음의 시험을 많이 하셨는데, 자식이 없을 때,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또한 이삭 번제 시험을 내셨는데, 이삭을 정말 번제로 바치려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없던 자식을 주셨으니, 죽여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은 정말 바랄 수 없을 때 바라고 믿었는데, 100세 노인이 자식을 어떻게 낳을까요. 일반적으로 볼 때,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의 태가 죽어서 둘 다 고목나무같이 되었는데,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자식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의 믿음은 기이한 믿음입니다. 자식이 생긴 것과, 또한 자식을 죽이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한 것은 그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믿음은 은혜이며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런데 우리도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엄청난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대개 끝으로 아는데, 부활할 것을 믿는 것과, 나 같은 죄인이 예수 안에서 의롭다 여김을 믿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입니까. 성경은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합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그러나 만일 율법으로 상속자가 된다면, 우리는 아이고 나는 이제 아버지 앞에 가면 회초리만 맞을 일만 남았구나. 이것도 불완전하고 저것도 불완전하니 어떻하나. 또한 두려워서 무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려면 사람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피공로를 의지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고름투성이 썩은 죄 자기의 허점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믿음의 분량이 있지만, 아무도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한 보상이나 보수 상급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브라함과 다윗이 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고 상속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전적타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