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천리 길
이 정 식
깊어가는 가을단풍이 절정이다. 지난해 가을 새벽 잠 설치며 안개 낀 청주역에 모인 세 사람(紋鳳, 海巖, 芝園), 단풍이 지기 전에 가자고 1박2일 여행길에 나섰다. 가는 곳은 강원도 대관령을 넘어 동해안 ‘정동진’ 을 열차로 가는 천리 길이다
철마(鐵馬)는 뿌연 안개 속을 해치며 굉음(轟音)을 내며 달렸다. 차창 넘어 비치는 산과 들만 보아도 고향 가는 길은 언제고 포근한 정(情)이 느껴진다. 충주를 지나 제천 역에서 ‘강릉‘ 으로 가는 열차로 환승했다. 객실은 단풍잎처럼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승객들로 가득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관광객들이다. 찰각 찰각 레일을 밟고 달리는 소리가 그 옛날 밤 열차로 힘겹게 대관령을 넘었던 그때 그 추억이 주마등(走馬燈)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태백(太白)준령(峻嶺)을 뚫고 힘차게 달리는 차창 너머로 높은 산줄기마다 오색찬란한 단풍! 타오르는 불꽃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스치고 지나간다.
집에서 천정 과 벽만 바라보던 일상에서 눈앞에 닥치는 천혜의 아름다운 절경(絶景)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 아름다운 강산이여! 승객들 모두의 가슴에도 환희의 물결이 넘쳤으리라.
깊은 계곡마다 맑은 물줄기 흐르고, 올망졸망 작은 밭에 가을 농작물!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마을 사람들의 정 깊은 모습이 인생의 포근한 뒷모습을 보는 것 같다. 열차는 태백 역에 이르자 수많은 등산객을 쏟아놓고 숨 가쁘게 계속 달렸다. 터널을 빠져나와 눈앞에 닥치는 지평선!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다가선다.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모래밭에 밀려드는 파도만이 우리를 부른다.
바다에 가장 가깝다는 ‘정동진역’에서 내렸다. 예약한‘향기호텔’이 어디인가. 택시를 타고가 보니 푸른 산 밑 바다 가에 우뚝 선 아름다운 호텔이다. 입구부터 잘 꾸며진 복도, 승강구, 우리가 예약한 방, 305호실 창문 앞이
확 터진 지평선은 우리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 주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어찌나 친절했던지, 그분이 호텔주인이시다. 친절히 안내해 주시는 식당에서 순두부 북어탕으로 텅 빈 속을 풀었다.
오후는 시간과 시계를 주제로 ‘모래시계 공원’에서 전시품과 진귀한 시계의 역사를 한눈에 담아갈 수 있었다. 저녁은 바다 횟집에서 백세 주 마시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자고 다짐했던 그날 밤! 친구야 어찌 그때를 잊을 수가 있을까. 모처럼 한방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다 피곤한 하루 밤을 따뜻한 잠자리에 묻었다.
아침 5시 문봉(紋鳳) 은 사진작가로 늘 우리 여행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이끌 었다. 오늘도 카메라 메고 동해에 솟아오르는 ‘해‘를 찍겠다고 해암(海巖)과 같이 나갔다. 구름에 쌓인 해를 찍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그래도 구름 속에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장엄하고 위대한 생명의 원천이다
아침9시 ‘통일 안보 공원’까지 호텔주인의 승용차 서비스로 쉽게 찾아갔다. 간첩 침투 중 좌초된 북한 잠수정(1996.9,18.)을 중심으로 한국 해군함정.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했던 B-29, 대통령전용기, 각종공군 전투기 등을 전시한 곳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창과 방패의 싸움은 변함이 없다. 땅굴까지 파가며 호시탐탐 창을 든 쪽은 북한이요. 방패 들고 막는 쪽은 남한이다. 겉으로는 평화를 선전하면서 뒤로는 땅굴 을 파고, 바다 속으로 침투하는 북한이다. 지금도 비핵화, 평화를 말하지만 믿어 지지 않는 이유가 기만전술 때문인 것을 똑똑히 기억하리라.
택시로 강릉으로 달려가 청주행 직통 버스를 탔다. 대관령을 넘으면서 산야에 펼쳐진 오색 단풍을 바라보는 눈이 황홀하기만 했다. 3시간을 달려 청주에 도착하고 우거지 해장국집에서 1박2일 짧은 여행이 막을 내렸다,
여름날 그토록 무성했던 나뭇잎이 곱게 물들고 이별을 고하듯 토해내는 찬란한 단풍잎처럼 가을이 저물어 간다.
우리 인생도 되돌릴 수없는 老境의 서글픈 가을여행 천리 길 에 황혼의 아름다우움을 느껴보는 여행이었다
둥지 이 정 식
하늘을 나는 새듷도 ‘둥지‘부터 마련 한다. 누애는 뽕입만 먹고 살지만 집을 지을때는 자신의 창자에서 실을 뽑아 둥지를 짓는다. 또 제비들은 흙을 물어다 자기의 침을 벹어 진흙을 만들어 둥지를 만든다. 이렇게 날짐승과 곤충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둥지를 만들지만 계절이 바뀌면 미련 없이 떠난다,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에는 내집 마련이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 생긱힌디.,
더욱이 결혼을 하고.가정을 이룬다면 의.식.주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 먹고 입는 겻이 아니라 짐이 있어야 한다. 황혼 인생 길에서 옛날 내 삶을 되돌아 보며 어떻게 둥지를 마련 하였는지 그 과정을 생각하면 너무나 초라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나는 60년대 초 중등학교 교사로 취직을 했고. 바로 이어 결혼을 했다. 가족과 정도 들어야하고 8 남매의 맞이라 적어도 3년은 함께 살아야한다 는 아버지 말씀을 지켜야 했다. 신혼생활이 주말 부부가 되기도 했고 어떤때는 통근도 했다. 불편한함을 보다 못한 어머니의 권유로 1년만에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냈다.
.우리 부부는 모든 살림은 고향에두고 단 봇짐을 꾸려 단칸 셋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언젠가는 내 힘으로 내 둥지를 마련한다는 꿈을 갖고 살았다. 당시에 우리집은 동생들 공부 시키는데도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운데 나까지 부모에게 의지할 생각은 꿈에도 바라지 않았다.
어느 시골 중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허술한 세방을 얻어서인지 야근을 하고 저녘늦게 퇴근해보니 연탄까스로 어린 아들 딸은 거품을 내뿜으며 방바닥에서 딩굴고 아내는 정신을 잃고 있었다. 나는 주인댁을 소리처 부르고 김치 국물을 먹이고 해서 아이들은 깨여났지만 아내는 깨여나지 않아 병원에 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치료하여 살아난 일을 생각하면 내 둥지마려의 꿈이 더욱 절실해 젔다.
그 때는 왜 그리 전근을 자주갔던지 1~2년이면 한번을 이사를 가야했다. 방을 얻으려 다니면 “애기가 몇이요”하고 묻는다. 둘이라고 하면 “다른데 가보시요” 거절당하기 일수다.. 그래서 전세 집 이라도 장만해야 겠다고 용돈도 줄여가며 저축만이 살길이라 판단하고 적금을 크게 늘렸다. 5년간을 꾸준히 저축을 하여 전세금을 마련하였다. 사글세 단간방에 살다 전세집을 얻어가니 대궐에 사는것 같았다.
어느 날 둘째놈이 “아빠 이 집이 우리집이야?” 하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젔다. 눈치빠른 큰놈이 “남의 집이야” 하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다시는 묻지않았다.
또 어는날 어린 것들이 엄마 시장간 사이에 크래용으로 하얀벽에 대서특필을 해 놓았다. 집주인이 와보고 화를 벌컥내면서 ‘ 아이가 있는 사람은 이래서 주지 말아야 했는데.....집주인도 시골에 살면서 재택수단으로 힘들게 마련한 애지즁지하는 잡 이다. 우리 내외는 죄지은 사람으로 페인트를 사다 깨끗이 해놓고 노인이 왔길래 깊이 사죄를 했다,.
새 살림을 나온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꼬박꼬밖 저축으로 모아온 돈과 은행 대출도 끼고, 옆방 전세도 놓고 해서 꿈에 그린 둥지를 마련했다. 이제는 아이들도 “아빠 진짜 우리집이야? 하고 묻는다. 나는 그래 이제는 벽에 낙서를 해도 괜찬아., 우리집이니까”.
산업화 시대에도 내집마련은 힘들고 어려웠었다.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요즘청년들은 어떻게 둥지를 마련할까. 둥지가 있어야 결혼도하고 출산도 하는데 요즘 미친듯이 치솟는 아파트 값을 생각하면 3포 4포세대가 생겨나는 서글픈 현실에서 집값 폭등은 청년들에게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을 만듷어 놓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더,
홀로사는 사람의 60%가 집이 없이 산다고 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중 40%는 월세집에 산다고한다. 전세는 씨가 말렸다는 뉴스를 보며 코로나 시대에는 호텔을 주거용으로 꾸민다는 발표도 있었다.
사람이 거주하기위해 잡이 있는 것인데 그 집을 몇채 씩 사서 욕심을 부려 투기의 장 이되니까 서울의 집값이 미친듯이 춤을 추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미친 집 값을 잡겠다고 부동산3법...전월세 임대차보호법..부동산 중과세 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니 집을 가진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집값이 요동을 치는 것 아닌가.
자연을 완전히 소유하는 생명체는 세상천지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태여난 모든 생명체는 이땅에 살아 있는 동안 자연에서 모든 것을 잠시 빌려쓰다가 떠나는 것아 안생 이라하지 않은가.그래서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 했던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소유할 것은 결코 물질이 아니다. 아름다운 마음이 아닐까
궁여지책이지만. 긴~안목으로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모든 규제부터 과감하게 풀어야한다. 그래서 수요와 공급을 원활하게 하면 청년들에게 꿈에 그린 둥지를 스스로 찾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