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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 2024년 09월호(통권 355호)
제26회 한국수필 해외심포지엄 · 코카서스
민족문학과 수도원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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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수도원에서 피어난 문화예술
최원현
사)한국수필가협회 명예이사장 · 수필가 · 평론가
1. 들어가며
살다 보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가보고 싶어 하는 그런 곳 중 하나가 코카서스다. 코카서스Caucasus-Kafkas 3국으로 불리는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다. 지리상으로는 아시아에 포함되지만 문화나 역사가 동유럽에 가까운 독특한 분위기의 나라들로 와인의 본고장인 조지아,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 불의 나라로 일컬어지는 아제르바이잔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사)한국수필가협회 제26차 해외심포지엄을 코카서스에서 갖게 된 것은 이런 여러 소망을 충족시키는 데도 한몫을 할 것 같다. 이번 주제는 ‘조지아 수도원에서 피어난 문화예술’인데 사실 그곳을 가본 곳도 아니고 또한 그쪽에 대한 자료도 구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문화예술 쪽에서는 더욱 그랬다. 해서 본 고에선 조지아를 중심으로 수도원에서 피어난 문화예술들을 살펴보는데 인터넷상의 자료 및 몇몇 관련 서적에서 빈곤한 추출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현지를 찾아가 그곳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빈약한 자료라도 간단한 예습을 한다는 의미로 생각했으면 싶다. 특히 와인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는 조지아는 웅장한 코카서스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스탈린의 고향인 고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적인 므츠레타를 비롯하여 기원전 8천 년부터 시작된 와인 산지로 수많은 와이너리가 펼쳐져 있는 곳인데 그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자못 흥분이 되기도 한다.
2. 조지아(Gruziya), 조지아공화국이란 나라
10세기에서 13세기에 최고의 번영을 누렸고 중세에 강력한 왕국을 건설했던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이다. 오랫동안 터키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엔 러시아 제국에 병합되었다. 1918년에서 1921년까지 조지아 독립국을 유지하다 1921년 다시 소비에트 연방에 포함되었는데 1936년 소련의 위성 연방공화국으로 편입되어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될 때까지 그 관계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가장 독립적 성향이 강했던 연방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던 조지아는 1989년 11월 19일 독립적 주권을 선언했고, 1991년 4월 9일 드디어 정치적 독립을 이루었다.
우리나라는 1992년 4월 조지아를 국가로 승인하고 그해 12월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나 대사관은 개설되지 않다가 2011년 주한 조지아 대사관이 개설되고 2015년 12월 주 조지아 대한민국 대사관 트빌리시 분관이 개설되므로 양국 관계가 긴밀해졌으며, 2016년 2월에는 조지아 국회의장 방한, 4월엔 한국 국회의장(정의화)이 조지아를 방문 양국 관계가 격상되었다.
2023년 기준으로 조지아 거주 재외동포는 229명, 한국 거주 조지아 국적 외국인은 95명이라고 한다.
아시아에 있는 소련을 구성했던 공화국 중 하나로 흑해 동남해안을 끼고 있으며, 카프카스산맥 지대에 자리잡고 북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 터키, 동남쪽과 남쪽으로 아제르바이잔 및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접하면서 북서쪽에 아브하지야(주도는 수후미), 남서쪽에 아자르(주도는 바투미), 북쪽에 남오세티아(주도는 츠힌발리) 등 3개의 민족 자치공화국을 포함하고 있다.
조지아(Georgia)는 러시아어로는 '그루지아(Гру́зия)'이지만 2008년부터 러시아식 명칭을 원하지 않아 ‘조지아’란 이름을 사용한다.
지중해 문명과 이슬람 문명 사이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치로 그리스-로마-페르시아-몽골-티무르-오스만제국과 러시아 등의 침략과 점령을 쉼 없이 당해왔다. 그런데도 종교적·역사적 유서 깊은 나라로 문화적 자긍심이 강하다. 대부분이 코카서스산맥의 산악지대로 평균 4,600m 이상의 높은 산과 만년설의 산세다. 4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여 아르메니아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기독교 국가로 현재는 80% 이상이 조지아정교
를 믿고 있다.
조지아의 와인은 8,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최초의 조지아 와인은 크베브리(qvevri)라는 토기 항아리에 만들어 저장되었고, 크베브리는 지금도 가장 중요한 와인 양조 용기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생산국 전통을 지키고 있다.
조지아는 스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프랑스처럼 맛있는 와인이 있고, 이탈리아처럼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에 스페인처럼 정열적인 춤과 몽골같은 초원까지 있는 나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또한 조지아어라는 언어, 조지아정교라는 종교, 조지아 와인이라는 술까지 있는 나라다. 곧 조지아의 언어와 종교와 술까지 있는 대단한 나라로 물에 빠져 죽은 사람보다 와인에 빠져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와인의 나라다.
3. 조지아의 역사
조지아 일대에 처음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콜치스라는 전설적인 부(富)의 땅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까지 알려져서 목축과 농업에 종사했던 부족들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BC 65년에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AD 337년 이후 3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 간의 분쟁에 휘말렸다. 654년 이후 아랍의 칼리프들이 티플리스(트빌리시) 시를 거점으로 토후국을 건설하여 일대를 다스렸다. 8세기 말부터 12세기까지 아르메니아에서 기세를 떨쳤던 바그라티드 왕조가 조지아인들과 카프카스 혈족이 살던 이 지역을 통일했다.
바그라트 3세(975∼1014)는 조지아 동부와 서부의 모든 공국을 하나로 통합했다. 특히 조지아는 타마라 여왕의 재임(1184~1213) 동안 동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북서쪽으로 체르케스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범(汎)카프카스제국을 이루면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범 카프카스제국이 몽골의 침략을 받은 1220년부터 조지아의 황금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1386~1403년에는 티무르의 맹공격을 받고 경제적·문화적으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타격을 입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오스만투르크제국에 함락되면서 조지아는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와 교류할 수 없게 되고, 그후 3세기에 걸쳐 투르크와 페르시아인들의 계속되는 침공에 시달렸다.
1783년 러시아와 조지아 조약을 맺어 독립을 보장받는 대신 러시아의 종주권을 인정하기로 했으나, 1795년 페르시아의 공격을 받았을 때 러시아로부터 원조를 전혀 받지 못했으며, 1801-1864년 조지아 내의 왕국들은 차례로 러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조지아를 모든 외부세력으로부터 보호하여 그 실체가 말살되는 것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조지아는 1917-1921년에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지배권에 속하는 자카프카지예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자카프카지예 독립국으로, 이어 조지아 독립국이 되었다. 조지아 독립국은 처음에는 독일 보호령이었으나 이어 영국에 점령되었다가 1920년 1월 사실상 독립했고, 1921년 연합국으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았다.
1921년 2월 소비에트의 지배를 받는 자카프카지예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1936년에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면서 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1990년 조지아 역사상 최초로 복수 정당이 참여한 가운데 자유총선거가 실시되어 독립을 기치로 내세운 비공산 연합이 승리해 정권을 잡았고, 1991년 4월 9일 조지아는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초대 대통령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한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야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감사후르디야의 권위적 통치는 지지 세력의 반발을 초래했고, 1991년 말에는 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감사후르디야는 1992년 1월 대통령직에서 축출되고, 3월에 소련 외무장관 출신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가 대통룡이 되어 1992년 국제연합(UN)에, 1993년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다. 1992년 북서쪽에 위치한 아브하지야 자치공화국이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조지아 정부가 군사적 대응에 나서면서 조지아는 내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가 1993년 7월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협정이 체결, 이에 따라 UN 조지아 정전감시단(UNOMIG)이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
8) 이상은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3792b006 다음백과 [조지아의 역사] 참고한 것임.
조지아는 옛 수도인 므츠헤타, 광천수가 유명한 보르조미, 이슬람문화를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아할치헤, 동굴도시 바르지아,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마을 이름도 피난처나 망명의 뜻인 성곽도시 시그나기, 유일한 항구도시 바투미는 조지아의 보물 같은 곳들이다.
4. 신화가 깃든 땅- 조지아의 신화
역사가 있는 땅에는 신화가 있다. 조지아에도 이런 신화들이 존재한다.
1) 창조신화
태초에 세상에는 최고신이자 창조신인 모리지 그메트리(Morige Ghmerti)와 그의 누이만이 존재했다고 한다. 모리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주를 만들었는데 우선 하늘인 제스크넬리(Zeskneli)를 만들었고, 그브티스 시빌니(Ghvtis Shvilni)라고 이름을 붙인 작은 신들을 만들어서 온통 하얀색으로 가득 찬 공간인 제스크넬리에 살게 한 다음 자신은 그곳의 가장 높은 9층 하늘 황금 옥좌에서 살았다. 그는 다음으로 땅(지구)을 만들었는데 9개의 산과 바다를 만들어 땅을 감싸게 한 다음, 선한 종족인 인간 남자들을 만들어 땅 위에서 살게 하였는데 땅은 붉은색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 번째로 땅 밑 세계인 크베스크넬리(Kveskneli)도 만들었는데 그곳은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이 세 세계는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거대한 세계수(樹)에 의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세계 나무가 지탱하는 우주 바깥에는 가레스크넬리(Gareskneli)라고 불리는 ‘망각의 세계’가 있게 했는데 이곳은 끝없는 어둠이 계속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모리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저녁을 먹다가 코카서스 봉우리에 넘어져 음식을 떨어뜨린 곳이 조지아여서 천국의 식탁이란 별명이 붙었고 해서 조지아의 음식은 한 편의 시와 같다고 한다.
2)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신화
BC 65년 로마제국에 합병되기까지 조지아는 그리스의 지배를 받았다. 해서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나 문화가 자연스레 조지아에도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탄족 영웅인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주었다는 이유로 제우스(Zeus)의 노여움을 사서 캅카스 산(Kavkaz Mt의 바위에 묶이게 된다. 카즈벡산(Kazbek Mt)이라고도 불리는 높이 5,047m의 코카서스산맥 중앙부 7번째 고봉으로 ‘얼음산’으로 불리며 코카서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도 불리는 이 산에 묶여 프로메테우스는 무려 3천 년 동안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고 있었는데 해라클래스가 그 독수리를 죽이고 그를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 산이 바로 조지아에 있는 캅카스 산(Kavkaz Mt)인 것이다.
3) 아르고나우타이(Argonautai)-아르고호 원정대
- 그리스 전설에서 이아손과 함께 '아르고선(船)'을 타고 황금 양털을 구하러 간 50명의 영웅 -
양털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맡은 이아손은 원정에 참가할 그리스의 가장 뛰어난 영웅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은 예언자들만 사는 땅인 렘노스에 도착하여 거기에서 수개월을 머물다 헬레스폰트로 나아가던 중 돌리오네족이 사는 나라에 이르러 그곳의 왕 시지코스에게 후한 대접을 받고 다시 항해를 했으나 폭풍 때문에 되돌아왔고 그들을 못 알아본 돌리오네족 공격을 받는 중에 이아손은 시지코스를 죽였다.
베브리케족이 사는 나라에선 아미코스라 왕에게 권투시합을 도전받아 폴리데우케스가 그를 죽였다. 흑해 어귀에서는 눈멀고 나이든 왕 피네우스를 만나 보레아스의 날개 달린 아들들이 피네우스를 해방시켜 주자 피네우스가 콜키스로 가는 길과 절벽의 밑뿌리가 움직여 지나가려는 것은 무엇이든지 박살내는 2개의 절벽인 키아네아 암벽 심플레가데스를 지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아손은 그의 조언대로 비둘기 1마리를 미리
보내 암벽에 끼어 죽게 한 다음 암벽이 다시 되돌아가는 사이에 '아르고선'이 빠져나가는데 그 후로 암벽은 고정되어 다시는 닫히지 않았다.
아르고나우타이가 콜키스에 도착했으나 그곳 왕 아이에테스는 황금 양털을 내놓는 조건으로 이아손에게 불을 내뿜는 황소들을 쟁기에 잡아매어 아레스의 들판을 갈라고 요구해서 들판을 다 갈고 거기에 용의 이빨을 심으니 무장한 용사들이 솟아올랐다.
이아손과 사랑에 빠진 아이에테스의 딸 마법사 메데이아는 그에게 불을 막아내는 고약을 주고, 용의 이빨에서 태어날 용사들에게는 돌을 던지면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을 것이라고 조언하여 이 과제를 완수했으나 아이에테스는 여전히 황금 양털을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메데이아가 용을 잠들게 한 사이에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가지고 메데이아와 함께 몰래 달아날 수 있었고 마침내 '아르고선'은 이올코스에 도착하여 코린트 지협에 있는 포세이돈에게 바쳐진 숲속에 정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4) 아라라트 산(Mount Ararat) - 노아의 방주가 머무른 산
아라라트산은 튀르키예 동부, 이란 북부, 아르메니아 중서부 국경 아르메니아고원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 5,137m에 달하는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라라트산은 성서에서 홍수가 끝난 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곳으로 전해진다. 아라라트라는 지명은 BC 9~7세기에 아라스강과 상(上)티그리스 강 사이에서 번성했던 한 왕국의 아시리아바빌로니아어 이름인 우라르두 혹은 우라르투의 히브리식 이름이다(튀르크어로는 퀴취크아리다이). 아르메니아인들은 자신들이 노아의 홍수 이후 세상에 나타난 최초의 인종이라고 믿어 아라라트산을 신성시한다.
페르시아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인류의 발상지로, 아라스 평원 위로 높이 솟은 아라라트 산기슭에 마을이 있었으며 노아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첫 포도원을 가꾸었다고 한다. 그 마을 위쪽의 방주를 찾아 대 아라라트 산꼭대기에 오르려고 여러 차례나 시도했지만 결국은 실패한 성(聖)야코브스를 기념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이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마을과 성야코브스 수도원, 그리고 근처의 성야코브스 예배당 모두 1840년에 일어난 지진과 사태로 완전히 부서졌는데 이 지방의 전설에는 방주가 아직 산꼭대기에 있으며 다만 하느님이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도록 했을 뿐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29년 9월 독일인 요한 야코프 폰 파로트가 처음으로 산 정상 등정에 성공했으며, 그 후 여러 탐험가들이 등정했는데 이들 가운데 몇몇은 방주의 조각을 보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9)
9)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0786a 두산백과 [아라라트 산] 참조
5) 조지아의 기독교 전래
기독교는 4세기 초 조지아의 이베리아 왕국(Iberian Kingdom)에 전해졌는데 성녀 니노(Nino)가 기독교를 전파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그녀는 현재의 튀르키예에서 조지아로 건너와 조지아의 왕 미리안 3세와 그의 아내 나나 여왕을 개종시켜서 조지아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가 되게 했다고 한다. 또한 니노는 조지아 전역에서 많은 기적을 일으켰으며, 그녀의 전도 활동은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그녀가 세운 십자가는 므츠헤타(Mtskheta) 지역에 위치한 여러 기독교 성지의 기초가 되어 이 지역이 조지아 정교회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5. 조지아의 문화와 예술
조지아는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다. 4세기에 문자가 만들어졌고, 5세기부터 조지아 특유의 문학이 나타났다. 조지아인·그리스인들에게 수사학을 가르친 고대의 고등교육 기관이 조지아 중부의 콜치스에 있었으며, 중세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인 이칼토·겔라티의 학당들이 12세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파했다.
12세기에는 조지아인의 민족 정신을 잘 표현한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의 민족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Vepkhis-tqarsani)」가 나왔다. 그 후 18세기에 작가 술칸-사바 오르벨리아니, 소설가·시인·극작가 일리아 차프차바제 등이 나타났다. 19세기에는 극작가 기오르기 에리스타비가 근대 조지아 연극을 확립했다.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서정시인 아카키 체레텔리, 카프카스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카즈베기, 자연시인 바자 프샤벨라 등이 활동했으며,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이 소련을 통치하고 있을 때 많은 작가들이 수난을 당하는 가운데 소설가 미헤일 자바히슈빌리, 시인 티치안 타비제가 처형되고 시인 파올로 이아슈비리는 정부의 비판을 받고 자살했다. 1987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텐기즈 아부라제 감독의 영화 〈후회 Repentance〉는 당시의 억압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조지아는 연극과 건축 문화의 전통을 자랑한다. 조지아 연극은 유럽과 기타 지역의 연극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쳐 왔으며, 아르메니아 건축과 더불어 비잔틴 양식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조지아의 건축문화는 오늘날 많은 수도원·교회 등의 대형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많은 신문·정기간행물이 조지아어로 발행되고 있으며 라디오 방송은 조지아어와 몇몇 소수민족 언어로, 텔레비전 방송은 조지아어와 러시아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10)
10) 위의 내용은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3792b005 다음백과 [조지아의 문화]를 참고한 것임.
조지아는 ‘내일에 할 일은 철저히 내일로 미루라’ 할 만큼 오늘을 중시하는 국민 정서로 와인은 생활음료인 만큼 기쁜 날엔 1회에 28잔을 마시고, 슬픈 날엔 18잔을 마시는 와인문화를 갖고 있는데 첫 잔은 신을 위하여, 둘째 잔은 왕을 위하여, 셋째 잔은 영주를 위하여 마신 후 그 다음부터 자신들을 위하여 마신다고 한다. 독특한 기독교 문화 속 50여 종족이 함께하고 있는 나라이며, 6,400여 종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는 세계적 생태 보존지역이란다.
1) 시인 쇼타 루스타밸리(Shota Rustaveli.1172-1216)
크메보카르틀리주 출신으로 조지아의 황금기로 불리는 12세기 민족시인으로 타마라 여왕(치세 1184~1213)의 궁정시인 및 재무대신으로 활동하였다. 조지아 세속 문학의 가장 훌륭한 기고가 중 한 명으로 여왕에게 바친 장편 서사시로 조지아의 국가적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용사>(Knight in the Panther’s Skin.'ვეფხისტყაოსანი, 베프키스트카오사니)의 저자이다. 이 작품은 조지아 문학의 모태가 되어 중세 최고봉으로 꼽힌다고 하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러시아에 '막심 고리끼'가 있고, 영국에 '세익스피어'가 있다면 조지아에는 '루스타밸리'가 있다고 내세울 만큼 위대한 문학가로 트빌리시에 그의 이름이 들어간 쇼타 루스타벨리 트빌리시 국제공항이 위치하고 있고, 트빌리시의 루스타벨리 대로(Rustaveli Avenue)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트빌리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1.5km의 대로에는 국회 의사당, 조지아국립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of Georgia), Opera House, 조지아박물관, 레스토랑 등이 밀집해 있는 중심거리이다. 루스타벨리 문화회관, 조지아과학아카데미의 조지아 쇼타루스타벨리문학회, 지하철 쇼타루스타벨리역, 그 외의 다른 명소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조지아 100라리 지폐의 인물이기도 하며, 2001년 11월 3일, 이스라엘과 조지아 합동으로 쇼타 루스벨리 우표도 발행했다. 이트자크 그라노트가 디자인한 이스라엘의 우표(3.40 NIS)는 그 배경에 히브리어로 그 작가의 이름을 그려 넣었다. 조지아의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국가에서 주는 가장 가치가 높은 상도 쇼타 루스타벨리 국가 상이다.
(참고 : 한국에서는 지식을만드는지식 출판사와 도서출판 문예림에서 국역 출판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관련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한국어로 번역한 조주관 연세대 교수는 조지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루스타벨리의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의 컬렉션은 16세기~18세기 당시부터 소장해 온 필사본 등 총 96권의 필사 서적으로 조지아 트빌리시(Tbilisi)에 있는 국립고문서센터(ხელნაწერთაეროვნულიცენტრის, National Centre of Manuscripts)에서 94권을, 영국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ies)에서 2권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는 1712년 조지아의 문자로 인쇄된 최초의 비종교 서적이었다는 점도 가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UNESCO)는 2012년을 이 서사시의 초판본 출간 300주년의 해로 선언, 조지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을 위해서도 이 서사시의 의미와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11)
11) https://heritage.unesco.or.kr//중세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Knight in the Panther’s Skin)』(조지아어 : 베프히스트카오사니(ვეფხისტყაოსანი))는 흔히 조지아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2세기~13세기 사이인 타마르(Tamar, 1160~1213) 여왕 시대에 쇼타 루스타벨리(შოთა რუსთაველი, Shota Rustaveli, 1160~1065년 사이에 출생)가 쓴 조지아의 민족 서사시이다./쇼타 루스타벨리의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 필사본 컬렉션 참조.
2) 니코 피로스마니 Niko Pirosmani (1862-1918).
조지아 국민화가이자 조지아 화폐 1라리에 올라있는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여덟 살에 고아가 된 그는 철도 노동자와 간판장이를 하면서, 학교 문턱에는 가본 적 없이 혼자 그림을 그린 외로운 영혼이었다. 원초적인 단순함과 원시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러시아의 시인이던 동생이 1910년 모스크바 중앙지에 그의 작품 네 편을 소개하면서 세상의 주목을 끌었지만 그의 조국에서는 조지아의 예술을 모욕한다 하며 그를 따돌렸다. 그의 나이 쉰 살이던 1912년 마침내 조지아 화가협회에 가입했으나 동료 화가들의 혹평과 비판에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아무도 만나지 않은 대인기피증에 시달렸으나 유럽에서는 그의 그림들을 인정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1918년 4월 9일 그의 나이 56세에 지켜주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지하실에서 배고픔과 가난에 의한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어 니노 공동묘지에 신원미상의 떠돌이 행려병자로 매장되니 그의 묘지도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1926년 그의 작품만이 실린 최초의 도록이 출판되자 유럽 화단에서 깜짝 놀라 그를 소개하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화가가 피카소였다고 한다.
3) 백만 송이 장미(Millions of Red Roses)
심수봉이 부른 <백만송이 장미>의 원곡은 1980년대 러시아 가수이자 배우인 알라 푸가체바가 부른 〈Million Alyh Roz〉인데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쓴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란다.
피로스마니가 상점의 간판을 그리던 어느 날, 평소 짝사랑하던 프랑스 출신 여배우 마르가리따(Margarita)가 그의 동네에 순회공연 차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그림과 전 재산을 팔아 백만 송이 장미를 사서 그녀가 단 하루 묵는 호텔 앞 광장을 장미광장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다음 날 아침 여배우가 창문을 연 순간 온 세상이 장미로 뒤덮인 장면에 환호하며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보지만 누가 한 것인지 알 수 없어 자신의 열혈 팬인 어느 큰 부자가 선물한 것으로만 알고 기차에 올라 떠났다.
니코 피로스마니의 불우했던 삶과 고독했던 소설 같은 이야기는 그의 사후에 러시아 대표 시인 안드레이 보즈넨센스키(Andrei i Vozene sensky)가 쓴 시에, 라트비아 출신 작곡가가 곡을 붙여 〈백만 송이 장미(Millions of Red Roses)〉로 태어났고, 소비에트 연방의 가수 알라 푸가체바가 불러 알려진 것이다.
니코가 죽은 후, 시간이 흐르고 빛을 보게 된 피로스마니의 개인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곳을 찾은 그 프랑스 여배우가 자신을 그린 작품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한 가난한 화가가 살았네/그는 집과 캔버스를 갖고 있었지/화가는 한 여배우에 푹 빠져버렸다네/그러나 그녀는 오직 꽃만 사랑했다네/그래서 화가는 집도 그림도 모두 팔았네/화가는 집과 그림을 판 모든 돈으로/온 세상 꽃을 모두 샀다네/ - 알라 푸가체바, 러시아 곡 〈Million Alyh Roz〉 중에서
왼쪽부터 < 니코 피로스마니 자화상>, 니코가 그린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따>, <붉은 옷의 어부>(조지아 국립미술관 소장)
6. 조지아 문화의 중심 수도원과 교회
조지아의 문화는 수도원문화라 할 수 있다. 해서 조지아의 역사적 기념물도 대부분 종교와 관련이 있다. 4세기에 아르메니아에 이어 기독교를 받아들인 조지아는 80%의 국민이 조지아 정교회 신자이다. 해서 수도원과 교회는 오랜 고난의 역사를 지켜내며 그들을 살게 한 정신적 고향이면서 삶이었다. 그중 몇 개를 살펴보면
1) 네크레시 수도원
4세기에 지어진 수도원 복합체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보여주며 성당, 궁전, 와인저장고, 탑 등이 모여있는 일상생활과 종교실천을 보여주는 수도원이다.
2) 알라베르디 수도원(Alaverdi Monastery)
카케티 지역의 평원에 위치한 높이 55m의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 건축물인데 6세기에 건축되었지8.82024 한국수필 해외심포지엄본문.indd 25 2024-08-13 오전 8:47:09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11세기 것이다. 중세 조지아의 건축 미학을 잘 보여주며 조지아의 석조술, 예술, 건축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데 '알라베르디'는 '신이 주셨다'라는 의미란다.
3) 이칼토 수도원(Ikalto Monastery)
이칼토는 조지아 정교회 중심지로 12세기에는 이칼토 아카데미라는 교육기관 역할도 했다. 폐허 속에 방치된 크베브리(와인 만들던 큰 항아리)들과 잘 다듬어진 비석들이 있다.
4) 그레미 대천사 성당
그레미는 카헤티 지방의 고대 도시로 16-17세기 카헤티 왕국의 수도였다. 1565년 완공된 성당과 그레미 왕궁 복합체로 무덤, 성물, 교회, 종탑이 있는데 언덕 높이 위치하여 전망도 좋고 분위기가 고요하며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5)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 of St. Nino)
조지아정교회의 수녀원으로 4세기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의 유해가 묻혀있는 곳으로 조지아 주요 성지 중 하나인데 9세기 이후에 건축되어 17세기에 복원된 흔적이 있으며 치유의 효과가 있는 니노의 샘이 있는 곳이다.
6) 바르지아(Vardzia), 다비드 가레자(David Gareja Monastery) 동굴 수도원
동굴수도원은 조지아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 속에서 때로는 요새의 목적으로, 삶의 공간인 동굴도시로서 조지아인들의 삶과 정신을 지켜준 성스러운 동굴수도원이다. 바르지아Vardzia는 12세기에 요새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타마다여왕시엔 수도원 기능을 했으며 규모로나 보존상태로나 가장 훌륭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비드 가레자(David Gareja Monastery)는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위치한 고대 수도원 복합체로 동굴을 만들어 생활했는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7) 게르게티 트리니티 교회(Gergeti Trinity Church)
조지아를 대표하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 교회는 코카서스 산맥 고봉 중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카즈백을 배경으로 해발 2,200미터에 홀로 우뚝 서 있다.
8) 성삼위일체 교회(holy Trinity Cathedral)
트빌리시 랜드마크 중 하나로 사메바 성당(Holy Trinity Cathedral of Tbilisi)으로 불리는 조지아정교회를 대표하는 가장 큰 성당이다. 노아의 방주가 이곳을 거쳐서 아라랏산으로 갔다는 전설 때문에 이곳에 새워졌다는데 조지아정교 150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에 착공 2004년에 완성된 높이 87미터에 지붕은 황금 돔 황금십자가 높이만도 7.5미터이며, 내부는 아름다운 아이콘과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9)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
므츠헤타(Mtskheta)에 있는 수도원으로 므츠바리강과 아라그비 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바위산 꼭대게에 위치하며 이베리아왕국 수도였던 므츠헤타 마을 풍경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잇는 곳으로 199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10)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Svetitskhoveli Cathedral)
조지아의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장소 중 하나로 11세기에 지어진 조지아의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건물로 내부는 정교하게 조각된 벽화와 프레스코로 장식되어 조지아 초기 기독교 예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일부가 묻혀있다고 전해지는데 므츠헤타에 위치해 조지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여겨진다.
11) 게라티 수도원(Gelati Monastery)
조지아 중세기의 중요한 종교 및 문화 중심지로 1106년에 조지아의 국왕 다비드 4세에 의해 설립된 이 수도원은 다양한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는 아름다운 벽화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어 중세 조지아의 문화와 역사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교육과 학문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어서 조지아 정교회 신자들의 중요한 순례지다.
12) 주마라 성당(Jvari Monastery)
6세기에 건립된 조지아의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므츠헤타의 아라그비강과 쿠라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 성당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조지아 왕 미리안 3세의 전설과 관련이 있으며, 조지아 정교회의 상징적 장소로, 조지아의 초기 기독교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유적지인데 이곳에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세웠다고 하여 조지아 최초의 기독교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
13) 시오미 수도원(Shio-Mgvime Monastery)
조지아 중부에 위치한 6세기 수도원으로, 조지아의 초기 기독교 수도사의 삶을 반영하는 유적지로 그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인데 조지아의 성인 중 한 명인 시오에 의해 설립되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고대 조지아의 수도원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14) 바그라티 대성당(Bagrati Cathedral)
조지아의 옛 수도였던 쿠타이시(Kutaisi)에 위치한 아름다운 이 성당은 조지아 중세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11세기에 바그라트 3세(Bagrat III)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조지아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많이 파손되었지만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쿠타이시 시내와 주변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란다.
15) 안치스카티 대성당(Anchiskhati Basilica)
트빌리시에 위치한 조지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로 6세기 초에 건립된 이 성당은 초기 조지아 건축양식을 대표하며, 내부에 신성한 벽화와 안치 아이콘들이 보존되어 있어서 성당 이름도 안치 아이콘(Anchiskhati Icon)이라 불린다고 한다.
16) 베타니아 수도원(Betania Monastery)
조지아 중부 트빌리시 근처의 아름다운 숲 속에 위치한 12세기 수도원으로 조지아 왕가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아름다운 중세 벽화와 조각들로 조지아 중세 예술의 중요한 예시로 여겨진다.
7. 나가며
조지아에 대한 역사와 신화와 문화 그리고 수도원에 대해 살펴보았다. 주마간산으로 훑어보아도 흥미롭고 정감이 가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많은 침략과 정복을 당해서 피아(彼我)의 구분이 모호해져 누구에게도 친절할 수밖에 없다는 조지아는 어쩌면 우리나라보다도 더 슬픈 민족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엄청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 모든 것을 문화로 역사로 지켜오며 수난의 시간조차 수양과 정신 고양의 기회로 삼는 놀라운 정신력과 적응력이 8천 년 와인의 역사를 지켜온 것처럼 숙성된 민족문화를 유지해 오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수도원 하나 하나에도 그곳만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고 특별한 건축 양식들도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그들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가장 높은 곳에 더러는 동굴에 생존적 문화를 만들어 냈던 그들에게서 많은 깨달음과 배움의 자리가 될 것 같다. 이번 기회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우리만의 가장 아름답고 성스럽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좋은 문학작품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행복의 시간으로 되게 했으면 싶다.
※ 참고자료(도서)
· 코카서스 3국의 역사와 문화-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의 숨겨진 매력, 허승철,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19.
· 코카서스 3국 여행-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가다(김로미 여행에세이), 김로미, 생각나눔, 2017
· 코카서스 사진편지-시인에게 쓰는 여행에세이, 김혜식, 푸른길, 2019
· 조지아+아르메니아, 서병용, 트레블북스, 2023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3792b006 다음백과 [조지아의 역사]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0786a 두산백과[아라라트 산]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2g3792b005 다음백과 [조지아의 문화]
/쇼타 루스타벨리의
서사시 [표범가죽을 입은 기사] 필사본 컬랙션
최원현 nulsaem@daum.net
『한국수필』로 수필, 『조선문학』으로 문학평론 등단. 한국수필창작문예원장·사)한국수필가협회 명예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역임)·국제펜한국본부·국립세계문자박물관·범우문화재단 이사. 한국수필문학상·펜문학상·한국문학상 수상 외, 작품집 『날마다 좋은 날』, 『그냥』,『누름돌』 등 21권, 중학교 『국어1』 『도덕2』에 수필, 고등학교 『국어1』 『문학 상』에 수필 이론 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