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푸토코스(가난한)는 세상 물질이 아니라 근본(그 생명의 그 빛)에 목마른 자다.
나.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하나 되게 하는 분이시다.
2. 본론
가. 푸토코스(가난한)는 세상 물질이 아니라 근본(그 생명의 그 빛)에 목마른 자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눅 18:22)”
부자 관원이 예수께 나아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아이오니온, 조예)을 얻으리까?’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푸토코스)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비유)’ 하였지, 십일조와 헌물을 가져오라 하지 않았다.
지금도 예수께서는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눅 18:25).’ 하신다. 단순히 돈 물질이 아니라 부자의 그 마음속에 천국(그리스도 예수)보다 더 무엇이 우선해 있기에 그렇게 가혹한 말씀을 하시겠는가!
약대는 바늘귀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런데 부자(겉 사람)는 약대보다 바늘귀로 들어가기가 더 어렵다고 하신다. 그러나 목사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십일조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많이 하는 자에게 관심도 많고 기도도 많이 해준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내용과는 별개로 거꾸로 가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사도, 장로, 집사로 번역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내면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빛을 드러내는 자들이다. 직분이나 직업이 아니다.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나온다.
가난한(푸토코스) 형제에게 베푸는 것(그 생명의 그 빛)이 곧 그와 함께한 하나님께 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하나님의 일은 아들을 찾아 하나 되기 위함이다.
‘푸토코스’는 세상 물질로 가난한 자(물질이 없는 자가 아님)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으로 나사로와 같은 자를 지칭하는 말로 생명의 말씀(근본)에 목마른 자다.
나.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 생명의 그 빛(근본)으로 하나 되게 하는 분이시다.
“마음이(여격)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 번역이 잘못되었다.
(‘심령이’로 오역한 ‘토 푸뉴마티’는 명사, 여격으로 ‘그 영’이다. 주격인 ‘심령이’가 아니라 여격으로 ‘그 영에 대하여’다.)
그 하나님(영)에 대하여 ‘그 갈구하는 자’가 ‘가난한 자(푸토코이)’다. 마음이 허한 것이 아니며, 돈 물질이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 것을 비워내고 오로지 하나님(영)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진 자가 ‘그 가난한 자(호푸토코스)’다.
세상에서는 세상 물질이 없는 자를 가난한 자라고 하지만, 이런 자가 하나님 말씀을 찾는 마음 역시 없다면 이는 세상 것으로만 채우려는 부자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들(저희)을 떠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반드시 심판(테라타)이 뒤따른다. 자업자득이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심판(테라타)하지 않으신다. 심판은 비유다. 비유로 나와 있는 내용을 잘못 해석하여 심판하시는 하나님, 무서운 하나님으로 오해하게 된 것이다. 심판은 각자 안에 있는 근본(베레쉬트)에 의해 겉 사람의 속성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