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에는 뜻이 없다
옛 선비들은 이름이 많았다. 아명兒名, 본명本名, 자字, 아호雅號, 넷은 보통이요, 아호가 수십을 헤아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니, 특출한 선비일수록 이름이 많았던 모양이다.
나는 이름이 넷이다. 내 이름임 많은 것은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이지 내가 특출한 사람이어서는 결코 아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항렬자行列字여서 우리 문중 족보에는 지금도 길진吉鎭으로 등록되어 있다. 당연히 초등학교 졸업장에도 김길진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 학교에 제출항 호적초본을 떼면서 내 이름이 길전吉田이라는 걸 처음 알있다. 호적기록부에 김본길전金本吉田으로 등재된 것에서 本자만 붉은 펜으로 X 표가 되어 있는 걸 그때서야 발견했다. 하루아침에 이름이 바뀐 나는 아무것도 모른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께서 나를 '요시다'라 불렀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지나쳤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金本吉田'이 창씨개명한 성명이며, '吉田'의 일본어 발음이 '요시다'라는 걸 알았다. 내가 태어난 때가 창씨개명을 강행하던 때라 '吉鎭'이란 이름으로 신고한 내 이름을 호적에 등록하는 사람이 '吉田'으로 고쳐버린 게 확실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광복 후 본이름으로 호적을 정리할 적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나쳤던 모양이었다.
억울했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작명가들의 믿음은 그만두고서라도 이름이 그 사람의 상징이라면 적어도 문중의 항렬을 따르거나 집안 어른의 바람쯤은 반영되어야 할 터였다. 집안에서도 모르는 사이에 바뀌어버린 이름, 이것은 분명 내 이름이 아니었다.
부끄러웠다. 이름을 기재할 적마다 '진' 자를 먼저 써놓고 'ㅣ' 안쪽에 점을 찍어 넣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생각한 게 호적상의 개명이었다. 그런데 재판을 받아야 개명할 수 있는데 그 절차가 수월치 않을뿐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했다. 사철 하얀 쌀밥 한 끼 구경도 못하는 우리 집 형편에 그만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필명筆名이란 걸 쓰기로 했다. 대학생 시절 학보에 시나 소설을 발표할 때는, 아버님께서 어느 작명가에게 받았다는 '亨鎭'이란 이름을 썼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못마땅하다는 느낌이 따랐다. 지방방송국에서 모집하는 라디오 드라마 대본에는 '泉峙'라는 이름을 썼다. 천치는 장난기 섞어 쓴 이름이었지만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무엇인가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연배가 위인 동료들로부터 '요시다'란 부름을 자주 들었다. 화가 났다. 호적상 개명을 할까 몇 차례나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하지는 못했다. 개명 절차도 절차지만 개명 뒤에 겪을 복잡한 일들이 발목을 잡아서였다.
그래도 늦게나마 필명을 다시 쓸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필명은 '형진' 그냥 한글로 형진이라 쓰기로 했다. 아버지의 뜻인 '亨鎭'의 음을 살리면서 우리 글자로 쓰고 싶었다.
연전에 어느 잡지사에서 원고청탁이 왔기에 '김형진'이란 필명으로 원고를 부쳤다. 그런데 편집인으로부터 문의가 왔다. '김형진'의 한자가 무어냐고. 나는 '김형진'과 한자와는 무관하다고 끊어 말했다.
요즈음에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쓰는 이들이 많다. 한솔, 누리, 끝별……. 발음도 산뜻하고 뜻도 멋지다. 그런데 '형진'은 순수한 우리말이 못 된다. 그냥 한자음을 우리 글자로 쓴 것일 뿐이다. 역시 뜻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