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우연히 금성정씨에 대한 검색을 하게 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되어 조심히 경열공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같은 一家지만 다른 파라서 제가 매우 매우 조심스럽게 노크합니다. 금성 정씨를 검색을 하게 되면 일부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 하동정씨에서 분파가된 금성 정씨의 상계가 잘 못되어 있으므로 정정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 우리 선조가 손위와 세유가 되었을까요? 도정계에서 분파된 금성 정씨라면 금성 정씨만의 일이 아니고 우리 하동 정씨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둔다면 도정 할아버지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윤공파의 시범공 임신보나 남린공의 임신보 또 1790년도 경술보가 맞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금성정씨(鄭氏)
sohyuk2 - 아마 자료를 올린 사람의 도메인 같습니다.
2003.10.05. 04:10 -기록이 작성된 해인것 같습니다.
유래
시조 정성(鄭盛)은 하동정씨의 시조 정손위(鄭遜位)의 둘째 아들 정세유(鄭世裕)의 12세손으로 1330년(고려 충숙왕 17년) 문과에 급제하여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에 올랐으며, 금성군(錦城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하동정씨로부터 분관하여 본관을 금성으로 하고 있다.“
가문의번영
정성의 아들 정이(鄭履)가 판군기시사(判軍器寺事)를 지내고 도첨의사(都僉議事)에 증직되었으며, 정지(鄭地)는 고려 공민왕 때 전라도 안무사(按撫使)를 거쳐 1377년(우왕 3년) 순천도병마사(順天道兵馬使)가 되어 순천, 낙안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고 전라도 순문사(巡問使)에 올랐다. 그후 남원, 남해 등지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한뒤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서 해도 도원수(海道都元帥), 양광(楊廣), 전라, 경상, 강릉도 도지휘치사(江陵道都指揮置使)가 되고, 1384년 문하평리에 이르렀다.“
이상의 기록을 보시고 우리 하동 정씨에서 분파된 금성 정씨의 기록이 맞다면 경열공파의 종회장께서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