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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발전과 미래 농업
이용기 명예교수
I. 서 론
성장을 모르고 살던 인류가 본격적인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18-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면서부터이다. 1만 년 농경사회를 벗어나 산업사회로 전환하면서 긴 정체기를 끝내고 20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세계 경제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비록 국가 간 편차가 심하여 풍요와 극단적 빈곤이 공존하는 시대이긴 해도 세계 경제 규모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 풍요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급속 성장과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는 그에 못지않은 어두운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는 물론 기후변화 문제까지 심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심각해지고 있는 기후위기는 지구 생태계와 식량 위기를 일으키고 나아가 인류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지구위험한계선(planetary boundaries)을 넘어서 여섯 번째 지구 대멸종이라는 섬뜩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들까지 생기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화석 에너지 기반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초래한 결과라는 데서 홀로세(holocene)가 끝나고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도 등장했다. 폭발적 성장과 산업화의 진전은 여기에 더하여 만연하는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 각종 범죄와 자살률 증가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일으키고 있다. 인류의 보다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위해 추구해 온 경제성장의 결과는 오히려 불행한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성장의 한계, 성장의 딜레마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풀어야 할 이 거대 문제를 기술이 해결해 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성장의 역사는 곧 기술진보의 역사였다는 경험과 기술은 엄청난 자원과 에너지 소비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인류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경제 시스템의 무한한 성장은 가능한 일인가? 끊임없는 경제성장은 항상 바람직한 것이고 행복한 인간 세상을 보장해 주는 것인가? 그리고 인류 행복 증진을 위한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먼저 거시적 관점에서 경제성장은 무한히 지속될 수 없고 항상 바람직하거나 행복 증진에 기여하는 것도 아니라는 성장의 한계 문제를 논의한다. 그리고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끝으로 이 총론적 논의를 토대로 우리나라 농업 문제에 초점을 맞춰 미래 농업이 나아갈 방향으로서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 문제를 간략히 살펴본다.
II. 성장의 한계
성장의 한계 문제를 지구와 경제 시스템의 상호관계(생물·물리적 관점), 성장과 인간 행복의 관계, 그리고 경제성장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GDP의 문제 등 세 가지 관점에서 논의한다. 인류가 추구하는 무한한 경제성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적정(최적)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중심으로 살핀다.
1. 지구 vs 경제
(1)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지구는 물질적으로 닫힌(closed) 세계이다. 따라서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없다. 그럼에 반해 경제는 지구 생태(환경) 시스템의 하위 시스템으로서 열린(open) 세계이다. 상위 시스템인 지구로부터 자원과 에너지를 받아들여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는 성장해 가고 폐기물을 지구 생태계로 배출한다. 경제 시스템은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상위의 지구 시스템 내에서 이것과 밀접히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맺고 있다.
지구가 닫힌 세계라는 것은 물질적으로 유한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경제활동이 진행되면 자원의 고갈은 필연적이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은 물론이고 재생 가능한 자원도 지구 시스템의 수용(재생) 능력을 초과할 정도로 경제 규모가 커지면 고갈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해양 어족자원이나 세계 열대우림의 산림자원이 고갈되고 사막화의 진행과 토지(경지)자원이 줄어드는 것이 그런 예이다. 과거 산업혁명 이전 세계 경제가 아주 작았을 때는 지구의 수용 능력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자원고갈 문제는 일어날 수 없었다. 지구가 물질적으로 닫혔다는 것은 또 경제가 성장하면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는 필연적임을 의미한다. 투입된 자원은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상품으로 형태가 바뀌고 폐기물로 변형되어 투입된 만큼 육지와 바다 또는 대기 중에 그대로 쌓인다(질량보존의 법칙). 대기 중에 폐기물(온실가스)이 쌓여 나타나는 현상이 기후변화이다. 자원고갈은 곧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환경오염이고 생태계 파괴이다.
결국 물질적으로 유한한 닫힌 세계에서 물질적 풍요를 향한 성장이 계속되는 한 인류는 자원고갈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여기에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인구 증가로 인한 성장 압박이다. 생활 수준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려면 경제는 최소한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만큼은 성장해야 한다. 결국 인구 증가는 성장을 통해 지구 환경과 생태계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 인구는 18세기 말과 비교할 때 10배나 폭증했다. 이처럼 닫힌 세계에서의 지속적·폭발적인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자원고갈, 환경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기후위기를 초래하게 되어 있다.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 국면을 맞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200년 동안 세계 경제가 비약적·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엄청난 지구자원이 투입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곧 상응하는 자원고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2) 최적 경제 규모
경제 시스템은 물질적으로 닫힌 상위의 지구 시스템 내에서 성장해 간다. 따라서 경제는 무한히 커질 수 없다. 생산에 필요한 투입 자원이 고갈된다면 물리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또한 경제성장에 수반되는 자원고갈의 문제는 자원의 희소성의 양상을 바꿔 놓는다. 지구 시스템에 비해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을 때는 자연자원(자본)은 무한하고 인공자본이 희소하여 인공자본 축적이 성장의 중요 요인이었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자연자본이 희소자원이 되면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자연자본은 인공자본과 대체관계가 아닌 보완관계에 놓여 있다. 둘 중 최소 공급량 요소가 생산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희소해지는 자연자원이 공급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경제가 성장할 수 있고, 희소해지는 만큼 생산비용도 증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적정(최적)의 경제 규모, 적정 성장은 어디까지인지 결정하는 문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 이론적으로 보면 성장에 따른 사회적 한계편익(marginal benefit)이 한계비용(marginal cost)과 같아지는 조건을 충족하는 수준까지 경제가 커질 때 최적의 성장이 달성된다. 미시적 분석에서 한계효용이 체감하듯 성장에 따른 사회적 한계편익 역시 점차 감소한다. 반면 성장으로 자원이 희소해질수록 가격상승과 함께 총생산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한계비용은 상승한다. 이때 한계비용에는 통상적인 생산활동의 사적 비용(private cost) 외에 자원고갈,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 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social cost), 즉 부정적 외부효과(external effect)에 의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최근 알래스카나 그린란드 같은 동토 지역과 북극권까지 개발이 확대되고 원양어업도 늘고 있다. 그간의 급속 성장의 결과 저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소진되고 지구의 자원이 고갈되어 한계비용이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성장은 이 사회적 한계비용이 사회적 한계편익과 같아지는 데까지 총생산이 이루어지는 수준에서 멈춰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계속 성장을 추구하면 오히려 최적 상태를 초과하여 비용이 편익보다 커져 사회 후생(행복) 수준을 저하시킨다. 성장으로 얻은 편익이 그로 인해 희생된 것(사회적 비용)보다 커야 그 성장은 인간 행복 증진(효용 증가)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정된 이 적정 수준은 지구 생태계의 수용 능력(재생과 흡수) 범위 내에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세계는 끝 모르고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최적 수준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더라도 경제성장은 그 부근 어디에선가 멈춰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물질적으로 유한한 지구 시스템 내에서의 경제성장은 반드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경제성장을 달리는 자전거에 비유한다. 멈추면 쓰러지기 때문에 관성적으로 계속 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경제학자들도 이런 비유에 동조하며 지속적 성장을 옹호한다. 과연 멈추면 국가 경제는 쓰러지는가? 논의한 바와 같이 최적의 경제 규모가 존재하고, 그 수준을 찾을 수 있다면 경제가 그 최적 규모에서 성장을 멈출 때(성장률 0) 사회적 후생 수준은 극대화된다. 성장은 여기서 멈춰야 하고, 이때가 정상상태(steady state) 균형이다. 사회적 한계비용과 한계편익이 일치하고 지구 생태계의 수용 범위 내의 성장이다. 양적 팽창은 멈추지만 질적 발전은 계속되어 후생수준은 증가한다. 인구의 장기 감소 추세에서 물가 부담까지 없어진다면 생활수준과 실질소득은 오히려 증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적 이익은 자원고갈,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에 따른 문제 등 각종 외부비용을 더 이상 키우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나 우리나라 경제의 최적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같은 방식과 속도로 무한히 성장을 추구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점을 찾아 물적 성장은 멈추고,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인류 행복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
(3) 기술진보의 문제
그렇다면 인류가 직면한 이 거대 문제(물질적으로 닫힌 세계의 성장 문제)를 기술진보가 해결해 줄 것인가? 지난 200년의 인류 역사는 기술진보 없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없고 기술은 자원과 에너지를 먹고 산다는 걸 보여주었다. 산업혁명은 곧 기술혁명이었고, 산업 전 분야에 화석 에너지가 대체된 결과가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답은 자명하다. 최근 AI 첨단기술도 다르지 않다. AI 기술은 미래 인간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겠지만 그것이 공짜로 오는 건 아니다. 엄청난 전기와 물이 있어야 한다. 전기 생산과 수자원 확보를 위해서는 막대한 시설투자도 필요하다. 환경과 생태계,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다. 벌써 AI 산업 확산 경쟁으로 세계의 탄소중립 의지와 노력도 크게 약화되고 있다. 공짜 점심은 없다. 기술혁신으로 우리 삶이 보다 편리해지고 소득이 늘었다면 반드시 희생(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환경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기술진보도 희생 없이 인간 삶을 개선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술맹신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기계는 인간을 닮아가고, 점점 인간의 사고와 창의력을 무력화하며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기술이 생각(사고)까지 지배하면 인간은 불행해지고 인간 세상일 수 없다. 기술맹신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학의 발달, 과학의 학문적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를 경제성장과 인간 삶에 응용하는 실용적 기술개발에는 한계가 있어야 한다. 성장의 한계를 논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2. 경제성장과 인간 행복
소득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행복해지는가? 소득수준과 행복의 관계 관점에서 성장의 한계 문제를 고찰해 본다. 만일 소득 증가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제성장 단계가 존재한다면 그 이상의 성장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2026년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은 스칸디나비아 3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과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은 매년 최상위 행복 국가 지위를 유지해 왔다. 반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조사 대상 147개국 중 67위로 OECD 국가들 중에서는 최하위 수준이다. 이 북유럽 국가들의 1인당 명목 GDP가 우리나라보다 많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물가수준을 고려한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 PPP) 기준으로 보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실질적인 소비수준, 생활 수준은 별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행복지수는 왜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경제성장과 행복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성장의 한계 논의가 시작된다.
(1) 행복 방정식
행복의 크기는 흔히 욕구(욕망)에 대한 소비의 비율로 표시된다(이정전, 2017). 행복 소비/욕구. 욕구에 비해 소비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원하는 것을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는지의 상대적 값에 의해 행복 수준이 좌우되는 것이다. 소비를 위해서는 반드시 소득이 있어야 하므로 분자의 소비는 곧 소득이다. 이 단순한 식에 의하면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욕구가 불변이라고 가정하면 소득을 늘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을 벌려 애쓰고, 국가는 고용을 늘리고 경제성장에 매달리는 것이다. 만일 분모의 욕구 수준도 변하여 증가한다면 행복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소득과 더 빠른 경제성장이 필요해진다. 반대로 동일한 소득수준이라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구 수준을 낮춰야 한다. 결국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크게 소비(소득)와 욕구(욕망) 두 변수이다. 여기에서 경제성장 논의가 제기되는 것은 분자의 소비 변수 때문이다.
먼저 분모(욕구)는 불변이라는 가정하에 분자(소비, 소득)와 행복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과 행복은 서로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소득과 행복 수준은 비례적인 선형(linear) 관계인가, 그리고 소득이 무한히 증가하면 행복지수도 무한히 상승하는가이다. 만일 소득에 따라 행복지수가 무한히 커진다면 국가는 무한히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을 위한 길이다.
미시경제학 소비자이론에 의하면 개인의 상품 소비 행위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이 작용한다. 소비가 늘수록 추가되는 단위 소비량에서 얻는 효용(utility), 즉 만족도는 점차 줄어든다. 두 가지 의미가 여기에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양자의 관계가 선형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효용 수준의 극대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소비를 무한히 늘린다고 무한히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극대 행복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소득을 늘려 소비를 한다면 오히려 만족도, 행복도는 떨어진다. 이 논리로 일관한다면 거시경제 상황에서도 행복을 극대화하는 소비(소득) 수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성장을 무한정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성장의 한계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분모의 욕구가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욕구가 증가하면 행복과 소득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 곡선은 아래로 이동(shift)하여 동일한 소득수준에서 행복도는 더 낮아지고 극대점도 변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물질적 풍요를 좇고 무한 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는 이유다. 욕망이 무한하다면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는 소비를 무한히 늘려야 한다. 따라서 무한히 소득을 늘려야 하고 무한히 성장해야 하는 성장의 함정에 갇히게 된다.
욕구(망)가 무한하다는 배경에는 인간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는 경쟁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모두가 똑같이 가난할 때는 불행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주변에 잘 사는 사람이 생기면 경쟁심과 함께 불행을 느끼기 시작한다. 상대적 소득수준이 행복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정책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또한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초기에 느끼던 만족감, 행복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같은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욕구가 줄지 않는 한 지속적인 소득 증가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2) 행복과 성장의 한계
소득이 높아질수록, 소득이 높은 국가일수록 행복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 Paradox)에 따르면 소득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잉글하트는 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소득수준이 존재하는데, 이를 디커플링 포인트(decoupling point)라고 했다(Inglehart, 1996). 이런 주장들은 어찌 보면 상식 수준의 얘기인데, 그 바탕에는 모두 앞서 논의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놓여 있다. 한편, 개인들의 특정 시점 횡단면 분석에서 보면 소득이 많은 사람이 적은 사람보다 행복도가 높아지지만, 거시적 국가 차원에서 장기 시계열로 보면 1인당 소득수준이 높은 나라가 반드시 낮은 나라보다 평균적인 행복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
설령 욕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행복 곡선이 계속 아래로 이동한다고 해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성립하는 한 무한히 소비를 늘려야 할 필요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인간 욕구 충족과 행복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성장은 이 수준 이상을 추구할 필요는 없어진다. 논의했듯이 자원고갈과 생태계 파괴, 기후위기, 각종 사회적 문제 등 성장에 따른 사회적 비용만 커질 뿐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분모의 욕구(망) 변수를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욕구는 개인의 내면적 선호 체계를 구성하는 주관적 속성이다. 따라서 개인에 따라 다르고, 국가의 국민 의식이나 문화와도 직결된다. 우리나라 국민은 상대적으로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국민이다. 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물질적 욕구가 상대적으로 크다. 한국전쟁 후 아주 짧은 기간에 세계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시성 사치 소비가 많고, 고가일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속물효과(snob effect)가 관찰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고소득 국가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자값을 늘리기 위한 성장에 끊임없이 매진해야 하는 이유이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왜 삶의 만족도가 낮은가에 대한 질문에는 물질적인 게 중요한데 이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응답이다. 이미 공식 선진국에 진입하고 1인당 GDP가 4만 달러에 가까운데도 평균적인 한국인은 여전히 배고프다. 분모 값이 너무 큰 탓에 우리는 부유하지만 불행한 나라이다. 그러니 분자(소득) 값을 높이기 위해 보수든 진보든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성장제일주의에 집착해 왔다.
북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되었는가? 그들의 실질적인 소비 수준은 평균적으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최상위 수준의 복지 시스템이 큰 요인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국민의 조세 부담률도 매우 높다. 기본적으로는 높은 소득 수준하에서 물질적 욕망보다는 자연과 환경, 사회적 신뢰 등 비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성장지상주의에 매달리지 않고도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해질 수 있고, 남보다 앞서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지향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거론하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수한 인력과 자본, 기술력을 갖춘 나라가 30년이란 긴 기간 성장 정체에 빠진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다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일본의 1인당 명목 GDP는 우리나라와 같은 수준이다. 내수 중심 경제구조에 고령화 사회의 소비 침체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검소한 생활 문화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필요 이상으로 분모 값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기를 쓰고 성장에 집착하기보다 깨끗한 환경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즐기고, 적정 소득수준에서 여유와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분자 값을 높이기 위한 국민적 요구나 압박이 크지 않으니 국가는 성장에 크게 집착할 필요를 갖지 않는 것이 ‘잃어버린 30년’의 근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매스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설에서 보듯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물적 요소 외에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인 비경제적 요소들이 있다. 한정된 국가 자원을 경제활동 외에 다른 데 사용하는 것이 국민에게 더 큰 행복을 준다면 굳이 경제성장에 집착할 필요성은 없다. 예를 들면, 환경 수요는 소득탄력성이 커 소득이 높아질수록 그에 대한 수요는 증가한다. 따라서 국민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물질적 풍요보다 비물질적, 정신적 욕구가 더 증가하기 때문에 성장은 더욱 필요성이 떨어진다. 성장의 한계,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발견하게 된다.
(3) 공리주의적 행복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어떤 행복이어야 하는가?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좋은 세상인가? 나 홀로 내 국가만의 행복, 현재 세대만의 행복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끊임없이 무한 성장을 추구해야 할지 모른다. 닫힌 세계라 해도 자원고갈,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를 걱정할 필요를 갖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 바람직한 사회는 미래 세대를 포함한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일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공리주의(utilitarianism)적 행복이어야 한다. 개인적 행복을 넘어 사회 공동체적 행복, 미래 세대의 행복, 나아가 글로벌 공동체의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불평등과 양극화 완화를 위한 소득재분배 정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효용의 개인 간 비교는 사실상 어렵기는 하지만, 소득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고려하면 고소득층 일정 소득을 빼내 저소득층에게 더해주면 사회 전체의 후생 수준은 증가한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이럴 때 좀 더 평등한 사회가 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되는 더 좋은 세상이 된다. 인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소득의 절대적 수준보다 남과 비교한 상대적 소득수준이다. 따라서 소득재분배 강화를 위한 정부의 역할(재정, 조세정책, 금융정책, 복지정책, 규제 등)이 중요해진다.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소득재분배 정책 강화로 함께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야 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최상위 행복 국가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3. GDP 지표의 문제
경제성장은 실질 GDP의 증가로 측정된다. 경제성장률은 이것이 몇 % 증가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국가는 이 GDP 성장률 수치에 집착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질적인 소득(소비)수준이나 국민의 실제 후생(행복) 수준을 나타내 주지 못한다는 데서 또 다른 측면에서 성장의 한계 문제를 얘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외부성(externality) 문제이다.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고 평가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만 포함하는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성장은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자연경관 파괴, 생물다양성 감소 등 생태계 파괴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행복(효용, 후생) 수준에 악영향을 주는 부정적 외부효과로 사회적 비용이다. 마땅히 비용으로 계산되어야 하지만 현재의 GDP 회계 방식은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온실가스 배출에 따른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 역시 성장의 외부효과로서 사회적 비용이지만 이것도 반영되지 않는다.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 엄청난 사회적 비용들을 고려한다면 이 성장률에 집착하는 이익이 있는지 의문이다. 경제 규모는 커지고 GDP로 평가한 국민소득은 증가하지만 사람들의 실제 행복 수준은 향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감소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 같은 GDP 기준 성장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실질적인 국민의 후생, 행복 수준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성장의 한계이다.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공해물질을 제거하고 오염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또 다른 자원을 투입하는 경제활동 역시 GDP를 증가시킨다. 그러나 이런 자기 모순적 지출이 순소득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또한 군수산업(방위산업)이 발달할수록 GDP로 평가한 경제는 성장한다. 수출로 국가의 성장에 기여한 첨단무기로 인해 다른 나라의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난민이 생기고 경제를 파탄시켜 큰 재앙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성장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것인가?
수십 년 사용되고 있는 GDP 지표의 증가로 평가되는 경제성장은 실질적인 경제적 후생 증가, 행복 수준을 나타내 주지 못한다. MEW(Measure of Economic Welfare), ISEW(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같은 대안 지표들이 오래전부터 등장하고 있지만, 세계는 여전히 GDP를 중심으로 한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III. 지속 가능한 발전
1. 패러다임 전환: 성장주의 → 지속 가능한 발전
지난 200년 사이 세계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런 속도라면 머지않은 미래 각종 지하자원, 산림자원, 수자원과 해양자원, 비옥한 토양 자원 등 대부분의 자연자원은 심각한 고갈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자원고갈은 곧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이고 기후위기이다. 여섯 번째 지구 대멸종을 얘기할 정도로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지구 생태계는 한계에 와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앞으로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원인은 인류세(人類世)가 말해주듯 성장주의에 집착한 인간의 과도한 경제활동이다. 자연 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고려한 최적의 경제 규모를 찾고,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물질적으로 닫힌 세계에서 양적 팽창을 추구하는 성장(growth)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앞서 우리는 최적의 경제 규모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경제성장은 그 최적 수준의 정상상태(定常狀態) 균형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정상상태 경제에서는 1인당 소득과 자본 증가율이 0이다. 지구의 수용 능력(재생, 흡수) 범위 내에서 경제활동이 이루어짐으로써 더 이상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아가 기후변화의 진행도 더 이상 심화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지구촌에서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여러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다. 러-우 전쟁,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미국의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관세 폭탄, 그린란드 등에 대한 미국의 야욕 노골화 등. 강대국들의 이런 제국주의적 팽창주의 행태 역시 끝없는 성장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희소해지는 에너지와 자원 확보를 위한 경쟁이다. 지구자원이 희소해지고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 국가 간 자원, 에너지 확보 경쟁의 격화는 필연적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다자주의 협력체제는 위협을 받고 국가 간 분쟁과 전쟁 가능성 또한 커진다. 그 끝은 공멸이다. 미래 인류 번영과 행복 증진을 위해 세계는 200년 계속해 온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국가 발전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성장주의에 묻혀있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다시 소환하여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세계의 다자주의적 협력체제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2. 지속 가능한 발전의 개념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SD) 개념이 국제사회에 공식 등장한 것은 1987년 유엔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의 ‘우리들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일명 ‘브룬트란트(Brundtland) 보고서’가 나오면서부터이다. 이 보고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미래 세대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개발(발전)” It meets the needs of the present without compromising the ability of future generations to meet their own needs.
그 후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UNCED)가 채택한 리우선언(Rio Declaration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과 어젠더 21(Agenda 21)에서는 그 개념을 더 확장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미래 인류사회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규정하고 이를 위한 27개 원칙을 제시했다. 인간은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의 중심에 놓여 있고 자연과 조화되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해야 한다(제1원칙). 개발의 권리는 현재와 미래 세대의 개발 및 환경적 욕구를 공평하게 충족시키도록 이행되어야 한다(제3원칙).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환경보호가 개발 과정의 핵심 부분을 구성해야 하며 그것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제4원칙). 경제적 문제에 국한했던 초기 개념에서 더 나아가 자연과 환경을 포함시킴으로써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추가시키는 데까지 확장했다. 유엔은 2015년 다시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위한 17개 분야 행동계획을 제시하면서 사회적 지속가능성까지 포함시켰다.
데일리(Daly, 1996)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만 누구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그만큼 모호하고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정의가 쉽지 않은 복잡한 개념이다. 현실에서 다양한 의미로 왜곡 사용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지속가능성’과 ‘발전’ 두 단어(개념)의 합성어다. 발전(development)이 성장(growth)의 대립 개념이란 점을 고려하면 방점은 시간적 연속성 의미를 지니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보다 발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장은 양적인 팽창을 의미함에 반해 발전은 질적인 향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장과 달리 발전은 물질적으로 닫힌 세계에서도 무한히 지속 가능하다. 성장이 오직 경제적 요소만 대상으로 하는 데 반해 발전은 이 외에 사회, 환경, 복지, 문화, 정신, 윤리 등 인간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분야가 망라된다고 할 것이다.
결국 지속 가능한 발전은 현재는 물론 미래(세대)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질적인 향상을 지향하는 발전이다. 규범적(normative) 가치 개념으로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미래 바람직한 사회상 또는 그런 세상의 모습, 이를 향한 변화의 과정이다. 그러기 위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성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충족될 때 지속 가능한 발전이 달성된다. 단순히 소득을 올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여 행복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사회, 환경 등 3개 기둥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2022년에야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 제1조는 경제·사회·환경의 균형과 조화를 통하여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포용적 사회 및 기후·환경 위기 극복을 추구함으로써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가 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국가와 지방 나아가 인류사회의 지속가능발전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농업기본법)에 농업·농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큰 정부가 필요하다.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기둥인 사회적 및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IV.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
지금까지의 총론적 논의를 토대로 한국 농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 문제를 살펴본다. 농업의 특성과 국내적 여건을 무시한 채 성장주의 농업정책으로 일관해 온 한국 농업의 현실과 미래 한국 농업이 나아갈 방향으로서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에 대하여 간략히 논의하고자 한다.
1. 성장주의 농정과 한국 농업의 현실
(1) 성장주의 농정의 성과
1990년대 중반 농산물 시장개방이 본격화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 농업의 정책 기조는 성장주의 농정이었다. ‘농업은 미래 성장산업’이라는 정책 슬로건을 내걸고 수출 주도적 성장주의 농정을 추진해 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공공연히 ‘돈 버는 농업’을 농정 지표로 내세우고 농식품 수출 100억 불 달성 목표를 추진하기도 했다. ‘농업에도 돈 냄새가 나야 한다’는 말도 이때 나왔다. 생산성 향상과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기술개발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등 농업 성장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었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이 같은 성장주의 농업정책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오랜 기간 성장주의 농정을 추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농업과 농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농업 성장은 WTO 출범 이후 장기 정체 국면에 빠졌다. 농업의 GDP 비중은 1.3%(임업, 어업 제외)까지 하락하고, 농가의 농업소득은 놀랍게도 지난 30년 동안 천만 원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도시 가구소득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농가소득이 지금은 60%까지 추락했다. 농가소득 중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까지 감소했다. 2024년의 경우 농가소득 50,597천 원 중 농업소득은 9,576천 원으로 18.9%에 불과했다. (농외소득 39.8%, 이전소득 36.0%, 기타 비경상소득 5.2%). 또한 65세 이상 농가인구가 절반이 넘어 고령화 현상이 깊어지고, 농촌 사회는 공동화(空洞化)를 넘어 많은 지역이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농촌의 자연경관과 환경 파괴도 심각한 상황이다. 경지면적 대비 비닐하우스 재배면적의 비율은 압도적인 세계 1위로 전국의 농촌지역은 비닐하우스 천국으로 변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최근 농촌 들녘은 시커먼 태양광 패널과 시설물로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주민들 반대도 돈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농지까지 투기 대상이 되고 농촌은 난개발 현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 30년 동안 추진해 온 성장주의 농정성과의 단면이다. 성장과 소득증대에 매진해 왔지만, 농업은 오히려 장기 정체에 빠지고 농가의 농업소득은 30년 전 수준 그대로이면서 각종 사회·환경적 문제만 심화하였다.
(2) 농업, 성장산업이 될 수 없는 이유
농업·농촌의 현실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농업은 성장산업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일관되게 성장주의 농정기조를 견지해 왔다. 한국 농업의 여건과 특성을 무시한 채 의욕만 앞서 국가의 대외 경제정책 방식을 그대로 모방해 왔다. 다른 산업이 수출 주도적 성장전략을 추진한다고 농업도 그대로 따라 했다. 의도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으면서 농촌지역의 경관과 환경파괴, 공동화 현상만 심화시켰다.
농업이 성장산업이 될 수 없는 데는 농업의 본질적 특성에서 오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농업은 1차 산업으로서 기본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아니다. 공산품과 달리 농산물은 디자인, 기능성, 기술, 아이디어 등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경제가 성장하고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농산물 수요도 증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농산물은 필수 식량으로서 수요의 소득탄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셋째, 특히 우리나라의 농업은 대표적인 비교열위 산업이기 때문에 수출이 어렵고, 따라서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첨단기술 시대에 기술농업을 도입한다 해도 농업은 기본적으로 토지 집약 산업이다. 우리는 토지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농업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없고 농업 부문의 수출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1인당(농가당) 경지면적 세계 최하위인 나라에서 농업에서 비교우위를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이유로 농업성장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어렵고 농업 생산활동을 통해 농가소득을 올리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30년 동안 농가의 농업소득이 천만 원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놀라운 현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농업의 경제·산업적 역할로는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없고 농업의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농업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일반 산업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똑같은 방식으로 성장주의 전략, 그것도 수출 주도적 성장주의 전략을 그대로 모방해 왔다. 농업의 특성은 다른 산업과 현저히 다르다. 농업은 자연과 생명이라는 본질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한국 농업의 비교 열위적 산업적 특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기술혁신이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지금 농업 문제와 함께 농촌 지역사회가 무너지고 국토 균형발전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농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런 모방전략을 수십 년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른 접근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장주의 농정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으로의 농정기조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농업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정부와 국민적 인식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2. 농업의 역할 변화: 다원적 공익기능
농업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수십 년 농업의 경제·산업적 역할에 기반한 성장주의 농정성과는 초라하다. 이 경험이 말해주듯 농업은 기존의 경제·산업적 역할만으로는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기여할 수 없다. 농업의 중심적 역할은 경제·산업적 역할을 넘어 국가 식량안보 제고, 환경보호(생물다양성 유지, 동·식물 서식지 보호, 토양 보존, 대기 정화 등) 같은 공공적·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로 그 외연을 확대·전환해야 한다. 식량안보와 환경보호 기능 외에도 자연경관 보존 기능, 전통 문화유산 보존 기능, 여가와 휴식처 제공 기능, 농촌 지역사회 유지와 국토 균형발전 기능, 탄소 저장·흡수 기능(특히 임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농업은 이 같은 다양한 사회·환경적 공익기능을 통해 외부효과로서 공공재(public goods)를 사회에 공급해 주는 산업이다. 농업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서 비롯된다.
농업의 공공적 기능은 자연과 생명이라는 농업의 본질적 특성에서 온다. 농업은 자연적 요소(토지, 물, 햇빛, 공기)를 투입하여 생명체를 생산해 내는 산업이다. 인공자본보다 이 자연자원(자본)의 공급이 농업생산에 더 중요한 특수한 산업이다. 아무리 첨단 과학기술 시대라 해도 이 본질적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이 공공적 역할이 시장을 통해 나타나는 경제·산업적 역할보다 훨씬 중요하다. 최근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국가 식량위기와 농업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실증적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공공재 공급 기능이 주는 화폐적 가치는 농업 부문의 부가가치보다 훨씬 크다.
이런 특성 때문에 농업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공존하는 산업이다.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것은 민간의 사적 영역이지만 동시에 앞서 언급한 다양한 공공재를 공급하는 공공의 영역이 존재한다. 따라서 국가의 식량안보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하고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것과 같이 적정의 공공재 공급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가재정에 의한 정부의 정책간섭이 필요한 것이다. 현재 시행 중인 공익직불제도 그 일환이다.
3. 미래 농정 방향: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
농업은 경제·산업적 관점에서 시장 가치로만 보면 GDP 비중 1.3%의 보잘것없는 산업이다. 그러나 농업은 환경과 생태계, 자연경관, 지역사회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기후 등 적정한 자연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생산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농업 관련 문제와 농업정책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경제적 비중은 아주 작은 산업이지만 통상의 산업정책처럼 단순한 경제 논리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공존하는 산업으로서 경제, 사회, 환경, 생태, 지리, 문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매우 복잡한 산업이다. 이런 복잡한 산업을 대상으로 단순 경제 논리를 적용한 성장주의 농정을 펼쳐왔기 때문에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초라한 농업·농촌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이제 농정기조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기존의 성장지상주의 농정, 특히 수출 주도적 성장주의 농정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농업의 공공적·공익적 기능 관점에서 통섭적(統攝的) 농정이 필요하다. 전통적인 경제·산업적 역할에만 머물러서는 더 이상 농업의 존재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공익적·공공적 역할로 중심이 옮겨져야 농업이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농업기본법(제1조)이 천명하고 있듯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으로 과감히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의 자원 총량은 한정되어 있다. 거시적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분야와 산업에 집중 투자하되, 그 성장의 과실은 재분배 정책을 통해 농가소득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경쟁력을 갖춘 대농이나 기업농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농들의 소득은 국가의 소득재분배 정책을 통해서만 안정될 수 있다. 농가소득 안정화를 기반으로 국가의 식량안보 제고, 환경보호 등 최적 수준의 공익적 가치를 창출하게 함으로써 국민 후생 증대에 기여하는 농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럴 때 농업은 그 고유의 본질적 특성과 공공적 기능을 토대로 미래 지속 가능한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 증진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는 농업에 대한 시혜적 지원이 아니라 농업·농촌의 공익기능의 공공재 서비스 공급에 대한 대가이다. 농업을 통해 공익기능을 발현하여 국가안보(식량안보)와 국토 균형발전, 국민 행복 등 공공의 이익 증진에 기여한 데 대한 정당한 대가이다. 미래 지속 가능한 농업 발전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이용기(2025) 제16장, 17장 참조.
V. 결 론
지구는 물질적으로 유한한 닫힌 세계다. 이 닫힌 세계에서 산업혁명 이후 짧은 기간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인구 증가로 인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자원이 고갈되고 각종 폐기물이 쌓이면서 환경오염과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최근 빙하가 녹으면서 촉발된 네팔의 대홍수 참사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가 말해주듯 인간의 무분별한 경제활동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는 지구의 생태적 수용 능력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적의 규모까지만 성장해야 한다. 양적 팽창인 성장에서 삶의 질적 향상인 발전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리하여 함께 행복한 세상,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이것이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지속가능성이 총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미래 비전, 즉 지속 가능한 발전이 지향하는 인류의 미래다. 그러기 위해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야욕으로 위협받고 있는 다자주의적 국제협력 체제도 다시 공고히 해나가야 한다.
농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성장주의 농정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 발전으로 농정의 기본 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농업의 전통적 경제·산업적 역할을 넘어 국가 식량안보와 환경보호 등 공공적·공익적 역할로 그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 농업이 발전하면 농촌이 변하고, 이는 다시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는 국토의 균형적 발전으로 이어진다. 그럴 때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산촌은 거대한 국가 정원으로 변하고, 농업은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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