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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2022년 11월 13일(일요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중산리 622) 내연산에 있는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입니다.
602년(진평왕 24년) 남조의 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大德) 지명(智明)에 의하여 창건되었습니다. 그 뒤 여러 번의 중건을 거쳤다. 1932년에는 대웅전과 상지전을 중수하였으며, 1975년 이후 약간의 단청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화재로는 보경사 고려 고종때의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 포항 보경사 승탑(보물 제430호) 등이 있습니다.

보경사주차장 상가입구

보경사 일주문
금강문과 천왕문은 일주문과 함께 조선 시대 사찰의 삼문(三門) 체계가 성립되면서 나타난 건축물입니다.
전자는 금강역사(金剛力士), 후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봉안해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합니다.
내연사보경사(內延山寶鏡寺) 편액은 임오성하(壬午盛 夏) 2002년 여름에 운포(雲浦) 정병철(丁炳哲) 선생의 글씨입니다.
두인에 새겨진 明德齋(명덕재)는 ’덕을 밝게 하는 집’란 뜻입니다.
정병철 선생은 김제 금산사 범종각 편액과 평창 상원사 만화루 뒷편액, 평창 월정사 금강루 편액 글씨도 썼습니다.
포항 보경사 일주문(浦項 寶鏡寺 一柱門) 앞 사자 석상
포항 보경사 일주문(浦項 寶鏡寺 一柱門) 앞에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의 사자와 비슷한 모양을 한 두 마리의 석사자상이 있는데, 왼쪽은 입을 벌리고, 오른쪽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통상 사찰의 금강역사를 표현할 때 밀적금강은 입을 벌리고 "아"소리를 내고, 나라연금강은 입을 다물고 "훔"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아마 이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아' 와 '훔' 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의 첫번째와 마지막 글자로 우주의 시원(始原)과 구극(究極)을 상징하는 근본진리라고 합니다.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천왕문(보물 2024년 04월 지정)
포항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은 사천왕상(四天王象)을 모신 전각입니다. 사천왕(四天王)은 수미산 중턱에 사는 신들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교에 귀의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의 동서남북을 시키는 호법신장이다. 보경사 사천왕(寶鏡寺 四天王象)의 지물이 다른 사찰과는 좀 다른것 같습니다.
포항 보경사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숙종 5년(1679) 중창되고 영조 37년(1761)에 중건된 산문입니다. 1979년에 부산시 무형문화재 목조각장 청원스님이 조성한 사천왕상(四天王象)을 새로 봉안하였습니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통로 칸에 쌍여닫이 띠장널 문이 달려 있습니다. 진입영역의 산문이라기보다 중심 주불전 영역의 정문으로서 상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면의 가운데 기둥 밑부분에는 보경사 적광전(보물)과 유사한 사자상이 조각된 신방목(信枋木)이 설치돼 있습니다. 국내 천왕문으로는 유일한 사례로, 학술·예술 가치가 높다고 평가됩니다.
이 천왕문(天王門)은 사찰 천왕문(天王門)의 조성, 시기적 변화 양상을 살필 수 있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편액, 천왕문(天王門), 내연사(内延山), 보경사(寶鏡寺)
포항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에는 이는 일주문(一柱門)이 없던 시절, 천왕문(天王門)이 보경사(寶鏡寺)의 정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천왕문에는 중앙에 '天王門' 좌우에 '内延山', '寶鏡寺' 등 3개의 한자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3개 편액은 모두 달필로 평가되는데, 글씨체가 같아서 같은 시기에 같은 사람이 쓴 글씨로 보입니다.
관지가 없어 글쓴이는 알 수 없으며, 천왕문 편액 오른쪽 ‘內延山’의 ‘山’자 왼쪽에 방서(傍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살펴보면 “乾隆三十五庚寅六月日(건륭35년경인6월일)”이라 판독됩니다. 건륭 35년은 영조 46년(1770)입니다.
천왕문에 걸려 있는 內延山, 寶鏡寺, 天王門 등 3개의 편액은 모두 1770년 6월에 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의 글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보경사(寶鏡寺) 편액
포항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에는 중앙에 '天王門' 좌우에 '内延山', '寶鏡寺' 등 3개의 한자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일주문(一柱門)이 없던 시절, 천왕문(天王門)이 보경사(寶鏡寺)의 정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내연사(内延山) 편액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신방목(信防木)
포항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대문 기둥 밑에는 사자 모양의 신방목(信防木)이 있습니다.
신방목(信防木)은 기둥 밑에 초석을 받치듯이 앞뒤로 받치는 짧은 각목을 말하는데, 이 곳에는 좌우에 사자를 한 마리씩 조각해 놓았습니다. 사자라고 하지만, 모양은 웅크린 개구리 모양입니다. 뒷편에 적광전에도 사자 모양의 신방목(信防木)이 있습니다.
신방목은 대문이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둥 밑에 좌우 양쪽으로 받친 짧은 침목을 말합니다.
포항 보경사 천왕문(浦項 寶鏡寺 天王門) 사천왕상(四天王象)
천왕문(天王門)은 악귀의 범접을 막고 마음 속 잡념들을 없애 주며, 절을 찾는 사람을 수호한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증장천왕(增長天王), 광목천왕(廣目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의 4대 천왕을 모셔둔 곳입니다.
서방 광목천왕(西方 廣目天王 : 좌), 북방 다문천왕(北方 多聞天王 : 우)
광목천왕(廣目天王)은 금강저(金剛杵) 모양의 검(劍)(다른 사찰에서는 용과 여의주)을 들고 서방(西方)을 관장합니다.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보탑(寶塔)과 보당(寶幢)을 들고 북방(北方)을 관장한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업성취와 성불을 이루게 해줍니다.
동방지국천왕(東方 持國天王 : 좌), 남방증장천왕(南方 增長天王 : 우)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보검(寶劍)과 불구슬(다른 사찰에서는 비파琵琶)을 들고 동방(東方)을 관장하며, 백성을 편히 살게 해주고 사업성취와 성불을 이루게 해줍니다.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창(槍)(다른 사찰에서는 보검寶劍)을 들고 남방(南方)을 관장하며 삼독심(三毒心 : 탐욕심貪欲心·진에심瞋恚心·우치심愚癡心)을 없애주고, 지혜(智慧)를 증장시켜줍니다.
보경사 범종각(寶鏡寺 梵鐘閣)
보경사 범종각에는 1층에는 범종(梵鐘)이, 2층에는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두드려 지옥중생, 축생, 조류, 어류 등을 제도한다. 통상 중층 건물은 '루(樓)' 라고 하고, 단층이면 '각(閣)' 이라고 하는데, 이 곳은 중층임에도 범종각(梵鐘閣)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종각(梵鐘閣) 편액
범종각 편액은 종천(宗泉)이라 새겨진 낙관이 있어 ‘종천’이라는 법명을 쓰는 스님의 글씨로 추정됩니다. 이와 같은 추정을 하는 것은 ‘宗泉’의 어감이 그렇고, 두인에 ‘일체유심조(一體唯心造)’라 새겼기 때문입니다.
1층 범종(梵鐘)
1층에는 범종(梵鐘)에는 "이 종소리 울려 울려 / 온 누리에 두루퍼져/ 꿈속 중생 깨우쳐서 괴로움은 소멸되고/
보리심을 모두 내어 / 오는 세상 다하도록 보살도를 행하다가 / 함께 성불하여지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오층석탑(2024년 8월 보물 지정)과 적광전
석탑은 경북 포항시 내연산의 보경사 경내에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적광전’(寂光殿)을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높이 4.6m로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석(塔身石·몸돌)과 옥개석(屋蓋石·지붕돌)으로 구성된 탑신부를 지녔고 이미 보물로 지정된 적광전과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명대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선 중기 승려 유정이 쓴 ‘내연산보경사금당탑기(內延山寶慶寺金堂塔記)’에 이 석탑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사찰에 탑이 없어 청석(靑石)으로 도인(道人), 각인(覺仁), 문원(文遠)이 5층탑을 만들어 대전 앞에 놓았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이 탑은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경사 오층석탑 탑신부에 새겨진 문비형 및 정면과 뒷면에 새겨진 좌물쇠 문양
문비형(門扉形) : 문틀이나 창틀에 끼워서 여닫게 되어 있는 문이나 창의 한 짝 모양

적광전(보물 제1868호)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적광전은 기둥 상부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기둥을 받치는 부재인 초석(礎石), 고막이 등은 전형적 남북국시대 신라의 건축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면에 신방석(信防石) 부재도 남아 있어 신라 시대 고부재(古部材)를 사용하여 중창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전면 중심칸에는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信防木)이 있는데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 데 비해 그 조각이 정교하고 사자상을 취한 사례가 국내에는 드물어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됩니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에서는 측면에 공포를 두지 않으나 적광전은 예외적으로 측면에도 공포가 있다. 또한, 다포계임에도 우물반자(우물 정 '井'자 모양의 천장)를 설치하지 않고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 연등천장(緣背天障)으로 처리한 것도 특징적입니다.
적광전(寂光殿) 편액
적광전의 편액은 언뜻 보아 글씨를 쓴 사람과 시기가 확인되지 않는습니다. 낙관도 없고, 육안으로는 방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殿’ 자 왼쪽을 보면 음각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 역시 “乾隆三十五庚寅六月日(건륭35년경인6월일) ”로 판독됩니다. 1770년에 씌어진 것입니다. 천왕문 편액과 같은 시기, 같은 사람이 썼습니다. 그러나 낙관은 보이지 않아 누구 글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비로자나삼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
보경사 적광전의 내부에는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이 삼존불은 고려전반기의 불상 제작 작품이 잘 나타난 작품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좌상의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입상의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시립한 비로자나삼본상은 많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고 합니다.
후불탱화 비로자나불도(毘盧遮那佛圖) (보물 제1996호)
포항보경사비로자나불도는 1742년(영조18) 뇌현, 밀기, 석잠 등 조선 후기 경북지방에서 활동한 세 명의 불화승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작품입니다. 높이와 좌우 폭 모두 3m에 가까운 대형 삼배 바탕에 붉은 안료를 칠한 뒤 인물과 의복 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선묘불화입니다. 특히 왕실의 금선묘불화에 비해 민중불화의 일종인 삼배 바탕 선묘불화는 18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중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가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비로자나삼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4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문수, 보현보살과 사천왕 등 권속들이 둥글게 애워싼 원형구도로서, 이렇듯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배치한 불화중에는 이 작품이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합니다. 붉은 바탕과 백색 선묘, 섬세한 필선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장식과 문양 등이 어우러져 시각적인 오묘함과 조화로움이 돋보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재작 시기와 제작자가 뚜렷하여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 도상 및 선묘불화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불
흙으로 만든 비로자나불상은 머리위에서 양 무릎으로 이어지는 정삼각형의 안정감있는 구도와 실제 크기에서 오는 당당함, 그리고 무릎 부분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거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옷주름 등 입체감 있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나발(소라모양의 곱슬한 머리카락)이 뚜렸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높은 육계(肉髻 상투)가 솟아 있습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한 모습으로 자비스러운 인상입니다. 양쪽 어깨를 덮은 통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두 손은 왼손으로 오른쪽 둘째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일반적인 지권인과는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적광전(寂光殿) 후불탱화 비로자나불도(毘盧遮那佛圖) (보물 제1996호)
1742년(영조18), 길이 275.5cm, 폭 272.4cm, 대형 삼베 위에 붉은색과 흰색으로 강렬한 대비의 효과를 표현한 선묘불화입니다.
비로자나불상(毘盧遮那佛像)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毘盧遮那 後佛幀畫)가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적광전(寂光殿)에도 예외 없이 비로자나불도(毘盧遮那佛圖)가 장엄돼 있습니다. 2018년8월 보물제1996호로 지정된 ‘포항 보경사 비로자나불도(浦項 寶鏡寺 毘盧遮那佛圖)’는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불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1742년(영조18) 경북지역의 불화승 세 사람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것이라는 명문이 아랫 쪽 가운데에 적혀 있습니다. 높이 3m에 가까운 대형삼베 바탕에 먼저 붉은 물감을 칠한 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중앙에 배치하고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사천왕상(四天王象)등을 백색 안료로 그린 불화입니다.
불교가 민중 속으로 깊이 확산된 이후에는 이처럼 삼베에 선묘 형태로 그리는 색다른 조선의 민중불화가 출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붉은색과 흰색으로 강렬한 색 대비의 효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본홍지(摩夲紅地)에 백선으로 표현 한 선묘불화로서, 16세기 조선시대 민중불화에 그 연원을 두며 조선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화법입니다.
화면 중앙에 낮은 수미단 위 연화좌에 지권인을 맺은 비로자나불이 결가부 좌하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앞에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왕비전하수제년(王妃 殿下壽齊年)’ ‘세자저하수천추(世子邸下壽天秋)’ 라고 쓰인 전패(殿牌)가 세워져 있는 것이 그려져 있습니다.
본존 좌우에는 문수, 보현 보살이 시립하고 있고, 그 바 깥에 천왕상이 2위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불화 조성의 목적이 왕실을 축수하는 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지방관과 양반 사대부들의 수탈과 억압으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숨어있습니다.
조선후기 경북지역에서 활동한 불화승 뇌현(雷現), 밀기(密機), 석잠(碩岑)3명이다. 보경사 말사인 서운암에 수화승인 뇌현(雷現)스님 승탑이 있습니다.
보살상(菩薩象)의 유연한 자세와 사천왕상(四天王象)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은 격조 있고 기품 있는 선묘불화의 세계를 보여 줍니다. 법당의 규모는 크지 않은 적광전(寂光殿)이지만 불상 앞에 서 있어 보면 장엄한 불법의 세계가 내부 공간에 가득함을 느낍니다.
신중탱화(神衆幀畫)

적광전 입구는 옥돌이 깔려 있습니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浦項 寶鏡寺 寂光殿) 지붕 청기와
적광전(寂光殿)의 용마루 중앙에는 청기와가 있는데, 이는 왕이 하사한 것입니다. 청기와는 당시 사용이 극히 제한된 염초(화약의 주 연료, 질산칼륨)를 사용한 귀한 것이라고 하는데, 왕실에서만 관리했다고 합니다.
포항 보경사 적광전(浦項 寶鏡寺 寂光殿) 어간문 기둥 밑에는 천왕문과 동일한 사자(獅子) 모양의 신방목(信防木)이 있습니다
전면 중심칸에는 사자를 조각한 신방목(信防木)이 있는데 보통 둥글게 만들어 태극문양 등을 새기는 데 비해 그 조각이 정교하고 사자상을 취한 사례가 국내에는 드물어 그 가치가 높게 평가됩니다.
적광전(寂光殿) 앞에 앉아 있는 작은 사자상(獅子像)은 귀한 것을 지킨다는 표시로 존재합니다.
출입문을 중심으로 왼쪽 사자상(좌)과 오른쪽에 있는 사자상

보경사 대웅전(寶鏡寺 大雄殿)
포항 보경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입니다. 정확한 건립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건하고 그 후 몇차례 중수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32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앞의 칸은 통칸으로 처리하였고 법당 바닥에는 현대식 마루를 깔았습니다.
기단은 화강석으로 된장대석을 3단으로 쌓고 가장자리로 덮개돌을 둘렀으며, 위쪽면은 1978년에 벽돌을 깔아 고친 것입니다. 부처를 모신 불단은 고주에 의지하여 설치하고 삼존불상을 모셨으며 상부에는 낙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보개를 설치하였습니다.
새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 방형(方形)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둥근기둥을 세운 다음 기둥 윗몸에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둘렀습니다
대웅전(大雄殿) 편액

석조삼존불좌상
중앙에 석가모니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협시불로 모셨습니다.
법화경의 수기삼존불은 석가모니, 제화갈라보살(연등불), 미륵불을 말하는데 제화갈라보살(연등불0이 수메다(석가모니)에게 부처가 될 것이란 수기를 주고 석가모니는 미륵불에게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주어 이 세상에부처가 끊임없이 출현할 것이라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삼존불은 조선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조성시기는 조선 후기 작품이며 독특하게도 수인은 모두가 동일한 모습입니다.
후불탱화는 상하로 나누어 상단에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함께 그려진 삼세불을 봉안하였습니다.
중앙에 자리한 석가불은 키형 광배를 갖추고 오른손을 항마촉지인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왼손을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편삼을 걸치지 않은 상태라 맨살이 노출되지만,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대의자락이 오른쪽 어깨를 덮은 변형편단우견으로 걸치고 있습니다.
화면 하단과 측면에는 팔대보살과 사천왕이, 좌우와 상단에 불제자인 아라한과 신중들을 꽉 차게 그려 넣었습니다. 삼불회도는 세련된 필치로 각 존상의 얼굴과 신체, 문양 등을 표현하고,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불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미륵부살과 제화갈라보살의 보관은 두건형태인데 경북 의성 수정사의 삼존불에서 그 비슷한 형태를 볼 수 있으며, 17세기말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슬호파의 양식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삼존불이 제화갈라보살(과거), 석가여래(현재), 미륵보살(미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웅전(浦項 寶鏡寺 大雄殿) 삼장탱화(三藏幀畫)
포항 보경사 대웅전(寶鏡寺 大雄殿) 삼장탱화(三藏幀畫)는 상계를 담당하는 천장보살(天藏菩薩), 음부를 담당하는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옥을 담당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과 그 권속을 그린 탱화(幀畫)입니다.
현재는 모든 영가 천도를 지장보살(地藏菩薩)에게만 의지하지만, 과거엔 하늘세계는 천장보살(天藏菩薩)이, 지상세계는 지지보살(持地菩薩)이, 지하세계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각각 관장하여 의지하였다고 합니다.
보경사에서 도난당한 불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던 삼장보살도입니다. 이 불화는 1778년에 혜화(惠和) 스님을 비롯하여 수민(守敏)·도청(道淸)·지연(智演) 스님이 그렸습니다. 화면 중앙의 천장보살과 그 좌우에 지지보살·지장보살을 두고 주위에 권속들이 둘러싼 형식입니다. 상단 중앙의 천장보살 아래에 진주보살·대진주보살이 서 있고, 그 앞으로 2위의 권속이 배치되었습니다. 천장보살은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였습니다. 화면 오른쪽의 지지보살은 경책을 들고 있으며 좌우에 용수와 다라니보살이 합장한 모습으로 협시하고 있습니다. 지지보살과 지장보살의 두광은 천장보살의 채색과 동일하나 신광은 연두색으로 칠하여 천장보살과 차이가 난니다.
보경사 괘불탱(寶鏡寺 掛佛幀) (1725년) (보물 제1609호),높이 1,051cm, 폭 516.5cm
이 괘불화의 본지는 마본채색(麻本彩色)이며 삼베 16폭을 옆으로 잇대어 한 화폭을 이루고 있습니다. 화면 가장자리 상단과 좌우 변에는 범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외곽에 보상당초 연속문을 그렸습니다.
중앙에는 10m에 이르는 대형의 화면에 연꽃 줄기를 든 보살형의 여래만을 단독으로 크게 부각시켰는데, 의균(義均)의 작품 중에서 최대의 역작입니다. 화관은 합장형 5불을 중심으로 보주, 영락, 서조를 장식하여 화려하며, 장신구와 가사의 장식화문등에 금박이 확인됩니다.
전반적으로 원만한 상호 와 건장한 체격, 색면과 문양의 조화 등이 뛰어나다. 5여래가 표현된 화려한 보관 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 지역에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데 의미있는 작품이다. 숙종34년(1708)에 조성되었지만,17년 뒤인 영조 원년(1725)에 중수하였습니다.
조선후기에는 의식이주의 불교로 정착함에 따라 불화는 전각에 봉안되어 의식의 대 상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조선전기까지 후불화의 주류를 이루던 벽화는 거의 사라지고 걸개 불화인 탱화를 제작하였습니다
보경사 괘불탱(보물 제1609호, 1725년)
5여래가 화려한 보관과 연꽃을 들고 있는 괘불도상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 경상도 지여겡서 유행한 괘불형식으로 괘불도상의 계승을 연구하는데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보경사 팔상전(浦項 寶鏡寺 捌相殿)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팔상전에서 1997년 도난당했던 영산회상도는 1778년 조성된 것으로, 24년만에 되찾아 보경사로 돌아오게 된 불화입니다.
영산회상도는 비단에 채색한 220×242cm크기로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보경사 지장보살도(寶鏡寺 地藏菩薩圖)
명부전에서 1999년 도난당했던 지장보살도는 비단에 채색한 158.9 × 180cm크기로 1778년 제작된 것입니다.
지장보살도는 영산회상도와 함께 24년만에 보경사로 되돌아온 18세기 후반 불화의 전형적인 채색법과 세련된 필치가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지장보살도는 비단에 채색한 158.9 × 180cm크기로 현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팔상전(捌相殿) 산령각(山霊閣)
사찰에서는 대웅전(大雄殿) 뒤에 여타의 삼존불을 모신 전각을 잘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경사(寶鏡寺)는 대웅전 (大雄殿)뒤에 좌측부터 팔상전(捌相殿)·산령각(山霊閣)·원진각(圓眞閣)·영산전(靈山殿)·명부전(冥府殿)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특히 배치가 특이합니다. 대웅전(大雄殿 : 석가모니불) 위에 팔상전(捌相殿 : 석가모니불)이 있는 형태로 기존 사찰에서 볼 수 없는 구조입니다.
팔상전
팔상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협시보살로 조성되어 있으며,
부처님의 일대기를 표현한 팔상도에 설명이 있습니다.
팔상전(捌相殿) 편액
팔상전 석조석가여래좌상
팔상전에 석조석가여래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과 두 협시보살은 모두 호분을 칠하고, 입술과 가슴의 띠에는 주황색을 머리와 보관에는 검은색과 자주색을 채색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석조 석가모니삼존불
중앙에 석가모니불이,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하고 있는데, 모든 불상들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상은 근래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모두 하얀색으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본존인 석가모니불좌상은 높이 120.3cm, 무릎 폭 84cm크기의 불상입니다.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 미륵불의 수기 삼존불은 조선후기에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이 세 불상은 근래에 조성한 것을 보이는데 모두 하얀색으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두 보살상의 보관에 칠한 보라색은 사찰에서 거의 접하기 어려운 보라색이라 더 독특합니다.
본존인 석가모니불상의 우측에서 협시하고 있는 보살은 제화갈라보살좌상입니다. 높이 94cm, 무릎 폭 73.2cm 규모입니다.
좌측에서 협시하고 있는 미륵보살좌상입니다. 조선후기에 돌로 만든 것이며, 높이95.cm입니다.
팔상전(捌相殿)의 팔상도 탱화(八相幀畫)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타고 이 세상에 오는 상(相)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 기원전 623년에 룸비니에서 태자로 태어나는 상(相)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 성(城)의 4대문을 나서서 생로병사를 보는 상(相)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 29세에 애마 칸다카를 타고 성을 나와 출가하는 상(相)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 6년간 설산에서 고행하는 상(相)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 35세에 보리수 밑에서 성도(成道)하는 상(相)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 제자들에게 전법(傳法)하는 상(相)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 80세에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相)
팔상전(捌相殿)은 석가세존의 일대 생애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여덟 가지로 나눠 팔폭 화면에 그린 팔상탱화(八相幀畫)를 모신 전각입니다. 이곳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주존으로 양쪽에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이 있었습니다. 양 벽에는 각 네 폭의 팔상탱화(八相幀畫)가 배열돼 있었습니다.
이 전각은 조선 숙종때 지총스님이 화주해 세웠다고 합니다.
산령각
팔상전 바로 옆에는 산령각이 있습니다.
원래는 북쪽 100m 산중에 있던 것을 1914년에 현재 장소로 이건하였는데, 내연산 산령각에는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했다고 합니다.
산령각(山霊閣) 편액
산령각(寶鏡寺 山霊閣) 산신탱
산령각(山霊閣)은 산신을 모시는 한국 사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국 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로, 보경사(寶鏡寺)에서는 내연산 산신과 시방법계의 산신을 봉안해 놓은 게 특징입니다. 원래 북쪽 100m 산중에 있던 것을 1914년에 현 장소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원진각(圓眞閣) 영산전(靈山殿) 명부전(冥府殿)
원진각
원진국사를 비롯하여 사명대사 등 대덕스님들의 진영을 모신 원진각입니다.
원진각(圓眞閣) 편액
보경사 원진각(寶鏡寺 圓眞閣) 내부
보경사 원진각은 보경사 창건주인 지명법사의 영탱을 비롯한 열다섯 분의 고승 진영과 원진국사의 등신상을 모신 전각입니다. 원래는 원진국사의 진영을 모시기 위해 숙종 3년(1677)에 학열스님이 건립하였는데, 후에 다른 고승과 보경사에 주석했던 역대 고승의 진영을 같이 모시게 되었습니다.
포항 보경사 원진각(寶鏡寺 圓眞閣) 진영 앞에는 보경사 중창주 원진국사의 등신상
높이 63cm로 조선 후기에 흙으로 만든 소조상입니다
영산전(靈山殿)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신 영축산을 표현한 영산전은, 중앙에 석가모니불 (釋迦牟尼佛)을 모시고, 좌우에는 사자를 탄 문수보살 (文殊菩薩) 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普賢菩薩)을 조성하였으며, 그 좌우에 16나한 (羅漢)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산전을 참배하는 것은 사바세계의 불국토인 영산회상에 참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산전(靈山殿) 편액
영산전 편액은 다행히도 ‘靈’ 자 오른쪽에 글씨를 쓴 날짜가 육안으로 보입니다. 이 역시 건륭삼십오경인육오일(乾隆三十五庚寅六月日)입니다. 이로 미루어 천왕문 편액 3개와 적광전, 영산적 편액은 글씨체가 같아서, 같은 날에 같은 사람이 쓴 것임이 분명합니다. 숙종대에 보경사를 중창할 무렵인 경인년 육월(1770년 6월)에 동일인이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산전 불단(靈山殿 佛壇)
포항 보경사 영산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보현보살(普賢菩薩)이 협시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16분의 아라한상(阿羅漢像)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아라한(阿羅漢)' 은 본래 부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나, 후에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위로 바뀌었습니다.
영산전 불단(靈山殿 佛壇)
보경사 영산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모셔져 있고,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영산전이니 모신 부처가 석가모니부처이어야 하는데 불상으 수인은 아미타불의 구품인에 가깝습니다.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은 근래에 조성한 불상으로 보이는데 백의관음상을 제외하면 하얀 색의 보살상은 보기가 어려운 불상입니다. 하얀 색 불상은 강릉 한송사터에서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문수보살, 보현보살상과 전등사 무설전의 보살, 부천 석왕사의 스리랑카 불상, 서울 옥천암 마애불 등이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하얀색 불상입니다. 게다가 밝은 청색의 머리카락이 흘러 내린 모습과 화려한 보관대신 두건을 쓴 모습도 특이한 불상입니다.
16 아라한상
16분의 아라한상(阿羅漢像)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아라한(阿羅漢)' 은 본래 부처를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나, 후에 불제자들이 도달하는 최고의 계위로 바뀌었습니다.
수행 결과에 따라 범부·현인·성인의 구별이 있는데, 잘 정비된 교학에서는 성인을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사위(四位)로 나누어 아라한을 최고의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아라한과(果)는 더 이상 배우고 닦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이라고도 합니다.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 (地藏菩薩) 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보살로 있으며, 그 양 옆으로 시왕 (十王) 을 모신 전각입니다.
지장전(地藏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숙종 3년(1677)에 세워졌습니다. 명부전(冥府殿)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음 생을 받기 전에 이 세상에 있을 때 행한 선악 간의 행위를 심판받아 새로운 몸을 받게 되는 데 그 심판하는 관부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명부전(冥府殿)
명부전(冥府殿) 내부
중앙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좌정하고 있고, 협시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시립하고 있습니다. 그 좌우에 열분의 명부 시왕(冥府 十王)과 판관(判官), 녹사(錄事), 인왕상(仁王像)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명부전 지장보살
중앙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좌정하고 있고, 좌우로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입멸하고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성불할 때까지,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菩薩)입니다.
특히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 보살로 불리는데, 모든 중생이 구원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에 중생들의 발길이 잦았습니다.
원진국사비(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
보경사(寶鏡寺)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圓眞國師)의 탑비입니다.
원진국사(圓眞國師, 1171∼1221)는 고려 중기의 고승(高僧)으로 속성(俗姓)은 신씨(申氏)이며 이름은 승형(承逈), 자는 영회(永廻)로 13세에 승려가 되어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왕의 부름으로 보경사(寶鏡寺)의 주지가 되었습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를 ‘원진(圓眞)’이라 내리었습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입니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습니다. 비신의 상단에는 '원진국사비명(圓眞國師碑銘)'이라고 전자체(篆字體)로 횡서(橫書)하였으며 비문(碑文)은 "고려국보경사주지대선사증시(高麗國寶鏡寺住持大禪師贈諡) 원진국사비명병서(圓眞國師碑銘幷序)"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특히 비석의 둘레에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의 독특한 장식법을 쓰고 있고 또한 고려(高麗) 중기(中期) 이후부터 나타나는 비석의 상단 양끝을 귀접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圓眞國師)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글씨를 썼습니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圓眞)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입니다.
비석은 갓이 없고 신석양각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龜趺)와 대석은 단일석이고 비좌는 폭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은 6각형의 갑문내에 ‘왕’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두화를 조각하였으며 신석 둘레에는 7.4센티미터의 당초문양을 장식하였습니다.
원진국사비는 귀부는 여의주를 물고있으며 귀갑에는 육각형 무늬마다 ‘王’자를 새겼고 비좌에는 연잎문양이 사방으로 새겨져있습니다. 비신의 윗부분은 양끝을 귀접이 한 규수형(圭首形)입니다.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는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이 비를 세운 모습을 띤다. 비몸 윗 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잘라 놓았으며, 이는 당시의 건축 양식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뤄진 거북 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자의 한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비문에는 원진국사(圓眞國師)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돼 있는데, 글은 당시 문인이던 ‘이공로’가 지었으며 ‘김효인’이 글씨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원진(圓眞)이 입적한 지 3년 후 비석이 완성됐다고 합니다.
보경사 서운암 동종(寶鏡寺瑞雲庵銅鐘) (보물 제11-1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사인비구 (思印比丘)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입니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지닌 형태를 합해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시기가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습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새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습니다. 이 띠 아래로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연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 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을 새긴 점이 이 종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범종의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후기 종과 장인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보경사 서운암 동종(寶鏡寺瑞雲庵銅鐘) (보물 제11-1호)
조선 현종 8년(1667), 총 높이 54.1cm, 종신 높이 42.cm, 종입 지름 41.4cm, 종입 두께 4.5cm
조선 숙종 때인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승장(僧匠) 사인(思印), 태행(太行) 등이 주조하였습니다.
사(思印)인은 뛰어난 승장으로 전통적인 신라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기법으로 사인비구(思印比丘)가 만든 종 중에서 조성연대가 가장 앞선 것으로, 사인비구(思印比丘)의 초기제작기법 을 볼 수 있다는데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는 한국 종의 가장 큰 특징인 음통音筒이 있는 전통형 종들입니다. 사인(思印)의 종들은 그의 청년기(1660년대), 장년기(1670~1700년), 노년기(1701~1711년)에따라 조금씩 변화되었는데, 전체적 으로 조선후기의 외래형 종들보다는 전통을 고수하면서 음통대신 중국종의 특징인 쌍룡의 종뉴나 띠장식이 수용된 예도 있습니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寶鏡寺瑞雲庵銅鐘)은 고려후기 종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하동 쌍계사 동종 (1641년)과 종신형, 입상화문대와 상대,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을 도안화한 원문범자의 시문위치 등이 매우 유사합니다.
꼭대기에는 종을 메다는 데 사용하는 둥근 고리가 있으며, 견대 어깨 부분에는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넓은 띠를 이루었으며, 각 잎마다 인물상을 안치했습니다.
유곽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9개의 돌기대신 5개의 돌기를 설치하였다.이 견대 아래로는 줄기가 위 아래로 뻗어나가며 둥그런 구획을 짖고 그 내부에 길상을 상징 하는 보상화 무늬를 새겨넣었습니다.
포항 보경사 승탑 (浦項 寶鏡寺 僧塔) 9보물 제430호)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圓眞國師)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습니다.
원진국사 신승형(申承逈)은 고려 중기의 승려로, 51세에 입적하자 고종이 그를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기단부(基壇部)의 아래·중간·윗받침돌 가운데 3단으로 이루어진 8각 아래받침돌은 맨윗단에만 연꽃조각이 둘러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8각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의 조각을 새겨두었습니다.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입니다.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탑신의 전ㆍ후면에 자물쇠모양을 새겨놓았습니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습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입니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합니다.
전체 높이는 4.5m이고 단면 8각형을 기본으로 하였다. 승탑은 기단부(하대석), 탑신(중대석), 상륜부(지붕돌)의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부의 위 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는데, 곷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솟아 있어 당시로는 드문 모양의 승탑입니다.
전체적으로 길이가 길쭉하고 너비는 좁게 표현하였으며,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호 : 제왕이나 재상, 유현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 추증 :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문수암 갈림길
한흑구문학비 50m, 서운암 0.2km, 극락교 0.15km, 연산폭포 2.5km, 관음폭포 2.2km, 문수암 2.0km, 보현암 1.8km


문수봉 갈림길
문수봉 2.0km, 선일대 1.5km, 소금강전망대 1.4km

문수암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문수봉 1.6km

문수암
문수봉 1.0km, 보경사 1.4km, 연산폭포 0.4km

문수암 대웅전

나무사이로 가야할 문수봉이 보입니다.

문수봉(삼지봉) 0.5km, 문수암(보경사) 1.0km


해탈문(解脫門)
지금의 해탈문은 일주문과 함께 임오년(2002)에 세웠는데, 원래 불이문(不二門)이라 이름하고, 운포 정병철의 글씨로 된 편액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후 지금의 해탈문(解脫門) 편액으로 바꿨습니다.
해탈문(解脫門) 편액
해탈문 편액 글씨는 남령 최병익(南嶺 崔丙翼 1959~ ) 선생이 썼고, 두인에 새겨진 山高水長(산고수장)은 ‘산은 높고 물은 길다’란 뜻입니다.
해탈문(解脫門) 편액은 시·서·화를 겸비한 선비 작가 남령 최병익 선생이 글을 썼으며, 포항서각협회 이사·서각협회 경북지회장, 경남·북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한 취산 박훈포(翠山 朴塤布) 선생이 판각하였습니다.

내연산보경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
해탈문에 처음 걸렸던 불이문(不二門) 편액. 門 자 왼쪽에 壬午盛夏 雲浦丁炳哲(임오년 한여름 운포 정병철)이라는 방서가 보입니다.

보현사 상가지역도 어느새 해가 저물고 상가 전등이 환하게 비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