⑱~11화 성룡보다 먼저 우리 집에 들어온 내비게이션
《⑱오지랖》 #260714 시간 약속을 지키려던 오지랖
by여유시간
3시간전
요즘은 목적지만 입력하면 된다.
휴대전화 하나만 있어도 전국 어디든 길을 안내해 준다.
하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지방 행사를 가기 전날이면 종이 지도책을 펼쳐 놓고 길부터 익혔다.
주소를 찾아 나들목을 확인하고, 연필로 이동 경로를 표시해 두는 것이 일상이었다.
행사에 늦는다는 것은 단순히 약속을 어기는 일이 아니었다.
신뢰를 잃는 일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 대한민국 최초의 웹 출장밴드로 전국에서 행사를 다니고 있었다.
활동 반경이 넓어질수록 시간을 지키는 일은 연주만큼 중요해졌다.
나는 원래 새로운 기계를 살 때 광고보다 기능을 먼저 따지는 편이었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성격도 아니었다.
아내 역시 가계부에 구멍을 내지 않는 내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성룡이 시한폭탄을 들고뛰는 엔트랙 광고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광고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저건 꼭 필요하다.'
며칠을 고민하지도 않았다.
곧바로 엔트랙 판매 전문점을 찾아갔다.
가격은 백만 원에 가까웠다.
당시로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와 직접 사용해 보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아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잘 샀네. 이건 최고다."
사치품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행사 시간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장비였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도 내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엔트랙을 사용한 출장밴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증명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 최초의 웹 출장밴드로 전국을 뛰어다니던 나에게 그 내비게이션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계 필수 도구였다.
재미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비싼 돈을 주고 최신 내비게이션을 샀는데도,
조수석에는 이미 사람 내비게이션이 앉아 있었다.
바로 아내였다.
내비게이션은 도착 시간을 계산했고,
아내는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냈다.
갈 때는 기계를 믿고,
돌아올 때는 아내를 믿었다.
결국 우리 집에는 내비게이션이 둘 있었다.
하나는 시대가 만든 기술이었고,
다른 하나는 결혼? 덤으로 얻은 것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먼저 기능부터 살펴보는 버릇이 남아 있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오래된 오지랖이었다.
먼저 써 보고,
먼저 익히고,
먼저 준비하려는 습관, 그것도 오지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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