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를 어릴 때부터 교회로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어려서 교회에 다닌 아이들은 커서 잘못된 길로 가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어려서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13절에 부모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축복기도를 받게 하려고 데려왔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부모든지 부모님들의 마음에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잘되는 것입니다.
이를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은 분히 여기셨다(14절)고 기록돼 있습니다. '분히 여기셨다'는 표현은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분히 여기셨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여기 자녀교육의 지침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겠습니다만, 사랑의 방법과 표현이 미숙해 자녀를 노엽게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소위 '투사형 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이루려는 심리입니다. 물론 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오는 아픔이 큽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어느 사형수가 마지막 유언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어머니를 한번 만나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어머니를 만나게 해 주었더니 어머니에게 혀를 좀 보자고 하더니 어머니의 혀를 깨물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의 이 혀 때문에 내가 죽게 되었다"고 하며 울더랍니다. 어려서 남의 집 물건을 훔쳐 왔는데 어머니가 꾸짖지 않고 잘했다고 칭찬하며 안아주어 그것이 버릇이 되어 큰 도둑이 되고 결국 살인강도가 되어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는 성경말씀을 명심해야겠습니다.
15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간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진실 순결 온유 신뢰의 마음이 있습니다. 여름에 비가 안 와 교회 임원들이 산에 기도하러 갔다고 합니다. 교회를 나서는데 어린 주일학교 학생이 우산을 가지고 나오니 교사가 하는 말이 "야! 하늘이 이렇게 맑은데 무슨 우산이냐?" "지금 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가잖아요!" 쉽게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들의 차이입니다.
부모의 신앙을 어린 자녀들이 더 잘 압니다. 부모가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자녀들이 더 잘 파악합니다. 진실은 통하는 법이며 거짓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김인환 목사(성은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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