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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전집(산문), 김수영, 2001, 민음사
제 精神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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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없는가. 이것을 이번에는 좀 범위를 넓혀서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가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4월 19일이 아직도 공휴일이 안된 채로, 달력 위에서 까만 활자대로 아직도 우리를 흘겨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 까만 19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 국민을 믿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지성을 말살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이 통행금지 시간을 해제하지 못하고 있고, 윤비의 국장을 다음 선거의 득표를 위한 쇼오로 만들었고, 부정 공무원의 처단자조차도 선거의 투표를 계산에 넣은 장난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신문은 감히 월남파병을 반대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은 질식상태에 있고, 언론자유는 이불 속에서 활개를 못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위험한 일은 지식층들의 피로다. 이것은 우리 나라뿐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보면 그뿐이겠지만 좌우간 비어홀이나 고급 술집의 대학교수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목석같은 사나이가 나를 울린다>를 부르면 좋아하지만, 언론자유 운운하면 세련되지 않은 촌닭이라고 핀잔을 맞는 것이 상식이다. 얼마 전에 모신문의 부정부패 캠페인의 설문을 받은 명사 가운데에 바로 며칠 전에 그 집에 가서 한 개에 4천 8백원짜리 쿠션 10여개나 꼬매주고 왔다고 여편네가 나에게 말하던 그 노 경제학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낙담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일로 낙담을 했다고 간단하게 처리될 수 없는 심각한 병상이 우리 주위와 내 자신의 생활 속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나의 주위만 보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6부니 7부니 8부니 하고 돈놀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여편네더러 되도록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구두선처럼 뇌까리고 있기는 하지만 할 수 없다. 계를 드는 여편네를 막을 수가 없고, 돈을 빌려쓰지 않을 수가 없고, 딱한 경우에는 돈을 꾸어주지 않을 수가 없고, 돈을 꾸어주면 이자를 받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버렸다.
우리들 중에 누가 죄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인간은 神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다. 그러나 건강한 개인도 그렇고 건강한 사회도 그렇고 적어도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진지하게라는 말은 가볍게 쓸 수 없는 말이다. 나의 연상에서는 진지란 침묵으로 통한다. 가장 진지한 시는 가장 큰 침묵으로 승화되는 시다. 시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더라도 지금의 가장 진지한 시의 행위는 형무소에 갇혀있는 수인의 행동이 극치가 될 것이다. 아니면 폐인이나 광인 아니면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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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정신>을 갖고 산다는 것은, 어떤 정지된 상태로서의 <남>을 생각할 수도 없고, 정지된 <나>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제 정신을 갖고 사는> <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이 <제 정신을 가진>비평의 객체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창조생활(넓은 의미의 창조생활)을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창조생활은 유동적인 것이고 발전적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순간을 다투는 어떤 윤리가 있다. 이것이 현대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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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5>
詩의 <뉴 프런티어>
결론부터 말하자. 詩의 <뉴 프런티어>란 詩가 필요없는 곳이다. 이렇게 말하면 벌써 예민한 독자들은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나온다고 냉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詩 無用論은 시인의 최고 혐오인 동시에 최고의 목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시인은 언제나 이 양극의 마찰 사이에 몸을 놓고 균형을 취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정치가에게 허용되지 않은 詩人만의 모럴과 프라이드가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不可能>이다. 연애에 있어서나 정치에 있어서나 마찬가지. 말하자면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인 혁명가인 것이다.
건방진 소리같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시인다운 시인이나 文人다운 문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아니 세상의 지론이라고 본다. 『알맹이는 다 이북 가고 여기 남은 것은 다 찌꺼기뿐이야』하는 말을 나는 과거에 수많이 들었고 내 자신도 했고 아직까지도 역시 도처에서 그런 이상을 받고 있다. 이 이상의 모욕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필자는 언제인가 崔貞熙시한테 술을 마시고 몹시 주정을 한 일이 있었지만, 실로 우리들은 양심적인 文人들이 6·25전에 이북으로 넘어간 여건과, 그후의 십년간의 여기에 남은 작가들이 해놓은 업적과, 4월 이후에 오늘날 우리들이 놓여있는 상황을 다시한번 냉정하고 솔직하게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과연 그동안에 문학의 권위와 문학자의 존엄을 회수할 수 있었던가? 4월 이후는 어떠한가? 일전에도 또 술이 억병이 되어서 눈 위에 쓰러진 것을 지나가던 학생이 업어가지고 고반소에 데리고 갔다는데 나중에 여편네 말을 들으니 고반소의 순경을 보고 내가 천연스럽게 절을 하고 『내가 바로 공산주의자올시다』하고 인사를 하였다고 한다. 나는 이튿날 사지가 떨어져나갈 듯이 아픈 가운데에도 이 말을 듣고 겁이 났고 그렇게 겁을 내는 자신이 어찌나 화가 났던지 화풀이를 애꿏은 여편네한테다 다 하고 말았다. 겁을 낸 자신이, 술을 마시고 <언론자유>를 실천한 내 자신이 한량없이 미웠다.
요즈음 비트닉 이야기가 저널리즘에서 소일거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고 비트닉족을 자처하고 나서는 시인들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 그들처럼 다방에서 이유없이 테이블을 치고 찻잔을 부셔보라지. 큰일나지. 아니 찻잔을 깨뜨리기는커녕 무수한 영웅들이 다방 안에서는 절간에 간 색시모양으로 마담의 눈초리만 살피고 있는 것이 서울의 생태이다. 문화는 다방마담의 독재에 사멸되어가고 있다. 젊은 문학동인지의 매니페스토에 나올 것만 같은 이 말이 아직도 사실은 우리들의 정신풍토를 대변하는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래서 서울에서 염증이 나면 시골로 뛰어가지만 시골도 마찬가지. 밤낮 도르래미타불이다. 개똥이다. 좆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의 뉴 프런티어,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무한한 꿈이다. 계급문학을 주장하고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의 문화센터운동을 생경하게 부르짖을만큼 필자는 유치하지 않다. 그러나 언론자유의 <넘쳐흐르는> 보장과 사회제도의 어떠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것은 필자도 바보가 아닌 바에야 <상식적으로> 느끼고 있으며 계급문학이니 앵그리문학이니 개똥문학이니 하기 전에 위선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천만번이라도 역설하고 싶다. 뉴 프런티어의 탐구의 전제와 동시에 본질이 될 수 있는 것이 이것이라고 확신한다.
鄭貴永 盧榮壽 金昌稷 제씨의 「詩와 詩論」第三輯의 선언문을 환영한다. 근자에 필자가 본 유일한 뉴 프런티어 운동의 싹. 사실 우리나라의 문단은 당신들의 말처럼 24시간이 전부 통행금지시간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24시간이 전부 통행시간이 전부 통행시간이 될 필요도 없다. 그중의 단 한 시간이나 단 10분만이라도 우리들에게 통행이 해제된다며 우리들은 우리들의 적들과 맞설 수 있다. 우리들이 우리들의 적들과 맞선다는 이 사실이 곧 우리에게는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시인의 간략과 영광(소위 25시의 자랑)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우리들의 적은 한국의 정당과 같은 섹트주의가 아니라 우리들 對 爾餘全部이다. 혹은 나 對 전세상이다.
우리들은 보다 더 유치하고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詩의 無用>을 실감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들은 우리들을 無로 만드는 운동을 해야 한다. 뉴 프런티어는 그 뒤에 온다. 쉬웁고도 여려운 일이 이것이다. 마치 이북과의 통일이 그러하듯이.
끝으로 나는 이북작가들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판되고 연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사업이야말로 문교당국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이는 아니되고 이러한 문화활동은 한국문화의 폭을 넓히는 것 이상의 커다란 성과를 가지고 오리라고 믿는다. 불온서적 云云의 옹졸한 문화정책을 지양하고 명실공히 리버릴리즘을 실천해야 하며, 이 사업은 남북서한교환이나 인사교류에 선행되어야 할 획기적인 뉴 프런티어 운동인줄 안다. 아직도 필자가 보기에는 학문도 창작도 고루한 정치인들의 턱 아래서 놀고 있다. 안된다. 적어도 해방 이후의 남북을 통합한 문학사에 대한 활발한 재구상쯤 있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1961>
生活現實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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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詩가 가장 골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회복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인간의 상실이라는 가장 큰 비극으로 통일되어 있고, 이 비참의 통일을 영광의 통일로 이끌고나가야 하는 것이 시인의 임무다. 그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고, 또 자유를 산다. 여기에 시의 새로움이 있고, 그 새로움이 문제되어야 한다. 시의 언어서술이나 시의 언어작용은 이 새로움이라는 면에서 같은 감동의 차원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활현실이 담겨있느냐 아니냐의 기준도, 진정한 난해시냐 가짜 난해시냐의 기준도 이 새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새로움은 자유다, 자유는 새로움이다.
요즘의 시단 저널리즘은 현실참여의 시라고 해서 무조건 비참한 생활만 그려야 하는 것같이 생각하고, 신문 논설란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작품들을 도매금으로 난해시라고 배격하는 성급한 습성에 흐르고 있다. 우리의 주위는 모든 정경이 절박하기만 하다. 눈으로는 차마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일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참말로 눈을 돌릴 곳이 없다. 우리의 양심의 24시간은 온통 고문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시는 좀더 여유를 가져야 할 것 같다. 적어도 시의 양심을 지킬만한 여유는 가져야 할 것 같다. 시대는 언제나 聖人이 되라고만 하지 시인이 되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인을 만들어야 할 때도 성인이 되라고 한다. 이런 유혹에 쏠려들 때 항용 가장 위험한 자위의 시가 나오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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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10>
히프레스 文學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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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이 일본서적에서 자양분을 얻었다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을 통해서 서양문학을 수입해왔고, 그러한 경우에 신문학의 역사가 얕은 일본은 보다더 신문학의 처녀지인 우리에게 중화적인 필터의 역할을(물론 무의식으로)해주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낡은 필터 대신에 미국이라는 새 필터를 꽂은 우리 문학은, 이 새 필터가 헌 필터처럼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께와 나미다까」는 의미를 알고 부를 수 있었지만 「하이 눈」의 주제가는 그것을 부르는 김씨스터나 정씨스터도 그 의미를 모르고 부른다. 미국대사관의 문화과를 통해서 나오는 헨리 제임스나 헤밍웨이의 소설은, 반공물이나 미대통령의 전기나 민주주의 교본의 프레미엄으로 붙어나오는 크리스머스 선물이다. 그들로부터 종이배급을 받는 월간잡지사들은 이따금씩 애틀랜틱의 소설이나 번역해냈고, 이러한 소설들은 O. 헨리상을 받은 작가들의 것이 아니면, 우리나라의 소설처럼 괄호가 붙은 대화부분의 행이 또박또박 바뀌어져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탁류 속에서 미국의 <국무성 문학>이 서구문학의 대명사같이 되었고, 우리 작가들은 외국문학을 보지 않는 것을 명예처럼 생각하게 되었던 것같다.
그러나 식민지문학으로 등장한 미국문학이라고 하지만 그의 역사는 일본문학의 3배나 되고, 그의 밀접한 배후에 장구한 역사를 가진 유럽문학과 부단히 혈액관계를 가지고 있는 문학은 일본문학처럼 다루기 쉬운 것은 아니었고, dry cleaning은 알아도 <禁酒州>는 모르는 문학청년들이, 일제시대에 일본책에 親炙하듯 자양분을 딸 수 있는 것은 못되었다. 너무 성급한 판단은 내리기 싫지만 또다시 단적으로 말하자면, 해방 후의 문학청년들, 아까 말한 35세 이하의 작가들은 뿌리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다. 식민지문학을 벗어나지 못한 문학이 F.O.A.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 거기에서 무엇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심금의 교류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 오늘날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인간의 형상을 전달하는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언어, 인간의 장래의 목적을 위해서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유로운 언어-이러한 언어가 없는 사회는 단순한 전달과 노예의 언어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진정한 새로운 지식이 담겨있는 언어를 발굴하는 임무를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멸망하는 나라다.
아무래도 앞으로 우리 문학은 세계의 창을 내다볼 수 있는 소수의 지적인 젊은 작가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애매한 老子哲學을 講譯하는 우화를 쓰는 「木蓮」의 작가보다는, 산아제한의 강박관념을 패러프레이스하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작가가 다소 신경질적이기는 하지만 공감이 가고, 대학교수의 음전한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는 시를 정기적으로 써내는 시인보다는, 개밥의 도토리모양으로 이 술집 저 술집으로 구걸술을 마시고 다니면서 <추천시>에는 응모할 생각도 하지 않는 거지시인들에게 더 희망을 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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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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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품도 그렇고 시론도 그렇고 <문맥이 통하는> 단계에서 <作品이 되는>단계로 옮겨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진들의 시급한 과제는 그들의 시나 시론이 정상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는 영양의 보급로를 찾아야 할 일이다. 우리의 현대시가 서구시의 식민지대로부터 해방을 하려는 노력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서구의 현대시의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것도 철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 교육이 모자라기 때문에 <참여파>고 <예술파>고를 막론하고 그들의 작품이 거의 전부가 위태롭게 보인다. 이런 의구심은 2,30대의 시인들의 오히려 좋은 작품을 대할 때에 더 커진다. 결국 안심하고 칭찬할 수 있는 젊은 작품이나 젊은 시인이 아직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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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사회현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들이 새로운 시적 현실을 발굴해나가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존재의식을 상대로 하는 詩는 새로운 폼의 탐구를 시도해야 하는데, 우리 시단에는 새로운 시적 현실의 탐구도 새로운 시형태의 발굴도 지극히 미온적이다. 소위 순수를 지향하는 그들은 사상이라면 내용에 담긴 사상만을 사상으로 생각하고 大忌하고 있는 것같은데, 詩의 폼을 결정하는 것도 사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미학적 사상의 근거가 없는 곳에서는 새로운 시의 형태는 나오지 않고 나올 수도 없다. 그리고 이런 미학적 사상이 부르조아사회의 사회적 사상과 얼마나 유기적인 생생한 연관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비근한 예가 뷰토오르나 귄터 그라스를 보면 알 수 있다. 진정한 품의 개혁은 종래의 부르조아사회의 美-즉 쾌락-의 관념에 대한 부단한 부인과 전복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우리 시단의 순수를 지향하는 시들은 이런 상관관계와 필연성에 대한 실감 위에 서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낡은 모방의 작품을 순수시라는 이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고 대치하고 있는 것은 어제까지의 우리들의 현실이나 美의 관념이 아니라, 이삼십년 전의-혹은 훨씬 그 이전의-남의 나라의 현실과 美의 관념이다. 요즘 나오는 철없는 신진들은 이런 모조된 아류의 시를 진정한 새로운 시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또다시 흉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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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위 <예술파>의 신진들의 거의 전부가 적당한 감각적인 현대어를 삽입한 언어의 彫琢이나 세련되어 보이는 이미지의 나열과 구성만으로 현대시가 된다고 생각하는 무서운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러면 이와는 대극적인 위치에 놓여있다고 보는 <참여파>의 신진들의 과오는 무엇인가. 이들의 사회참여의식은 너무나 투박한 민족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의 세력에 대한 욕이라든가, 권력자에 대한 욕이라든가, 일제시대에 꿈꾸던 것과 같은 단순한 민족적 자립의 비전만으로는 오늘의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는 독자의 감성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단순한 외부의 정치세력의 변경만으로 현대인의 영혼이 구제될 수 없다는 것은 세계의 상식으로 되어있다. 현대의 예술이나 현대시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젊은 시가 상대로 하고 있는 민중-혹은 민중이라는 개념-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이것은 세계의 일환으로서의 한국인이 아니라 우물 속에 빠진 한국인같다. 시대착오의 한국인, 혹은 시대착오의 렌즈로 들여다본 미생물적 한국인이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라보는-즉 작가가 바라보는-군중이고, 작가의 안에 살고 있는 군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와 함께 앞을 향해 세차게 달리고 있는 군중이 아니라, 작가는 달리지 않고 군중만 달리게 하는 遊離에서 생기는 현상인 것이다. 오늘의 민중을 대변하는 시는 민중을 바라보는 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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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12>
體臭의 신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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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체취적인 신진들과의 정반대의, 세련된 고답적인 방향을 걷고 있는(이들보다는 대체로 詩歷이 좀 오래되지만) 黃東奎 朴利道 鄭玄宗 등의 季刊詩同人誌 <<四季>>가 이달에 창간호를 내놓고 있다. 이 동인들 중에서 鄭玄宗만은 처음 대하지만, 黃東奎 朴利道 金華榮은 필자의 이미지로는 각각 경향이 다른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작품이 한데 묶여 나온 동인지를 보니 네 사람의 작품이 모두가 같은 색깔로 보인다. 좋은 의미로도 그렇고 나쁜 의미로도 그렇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의미로도 그렇다. 이 동인지를 일독하고 나서 우선 느끼게 되는 것은 여기에 수록된 28편의 시작품이 하나도 문맥이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우리 말에 유창하다는 것이다(유창하다는 말에 어폐가 있다면 잘 다듬어진 말이라고 해도 좋다). 이것은 다른 동인지나 문학지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금방 눈에 뜨이는(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놀라울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좋은 의미의 공통점이다. 그런데 나쁜 의미의 공통점은, 이들에게는 한결같이 앞에서 말한 체취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대체 당신이 말하는 체취란 뭐요?>하고 필자의 체취의 설명이 미흡한 데에 대한 공박을 오히려 받게 될 것같다. 여기에 대한 성급한 답변으로 이들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肉聲이 모자란다는 말을 나는 감히 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肉聲이란 어떤 거요?> 이에 대해서는 나의 말이 아닌 그들의 동인의 한 사람인 金柱演의 명석하고 진지한 詩論 「詩와 眞實」에 나오는 말을 빌어 하자면, 그것은 <眞實의 原點으로 가려는 피나는 고통 앞에서 언어는 부활하는 것이며, 언어와 시와 진실은 모두 하나의 디멘션에 늘어서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평자가 <<四季>>의 동인들의 작품에서 일률적으로 받은 인상은 <言語>의 조탁에 지나치게 <피나는 고통>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四季>>의 동인들이 우리 시단의 신진들 중에서 가장 교양있는 젊은 역군들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잇다. 그리고 그들이 내가 요청하는 이런 초보적 詩의 지식을 안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이 詩는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시를 지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식으로 쓰게 되는 것같은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의 원인이 나변에 있는가 하는 것까지도-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에게 감히 말한다. 고통이 모자란다고! <言語>에 대한 고통이 아닌 그 이전의 고통이 모자란다고. 그리고 그 고통을 위해서는 <眞實의 原點>운운의 시의 지식까지도 일단 잊어버리라고. 시만 남겨놓은 절망을 하지 말고 시까지도 내던지는 철저한 절망을 하라고. 그러나 아직도 이들은 젊고 이들은 이제부터 노력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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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7>
새로운 포멀리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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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參與詩가 없는 반면에 진정한 포멀리스트의 絶對詩나 超越詩도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브레흐트와 같은 참여시 속에 범용한 포멀리스트가 따라갈 수 없는 기술화된 형태의 縮圖를 찾아볼 수 있고, 전형적인 포멀리스트의 한 사람인 앙리·미쇼의 작품에서 예리하고 탁월한 문명비평의 훈시를 받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참여시와 포멀리즘과의 관계는 결코 간단하게 구별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고정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중한 시론의 문제는 제쳐놓고라도, <<現代詩>>지의 최소한도의 내용을 가진 金榮泰 朱文暾 李秀翼 李海寧의 작품에서 우리들이 미흡하게 느껴지는 것은 언어적 윤리 이전에 사회적 윤리와 인간적 윤리와의 격투의 자죽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거의 癌的인 불리한 제한이다. 이런 제한은 고의적으로 가해도 안되고 무의식적으로 가해도 안된다. 고의적으로 가하게 되면 그것은 역사의식을 망각하는 것(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이라는 말이 싫다면, 詩史的 의식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해도 된다)이 되고, 무의식적으로 가하게 되면, 지식인이 아니면서 현대시를 쓰는 착오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된다. <現代詩는 역사적인 면에서 볼 때는 과거와의 단절의 시> 운운의 말을 하는 포멀리즘의 무수한 현대시론이 범람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이것은 역사의식을 근절하라는 말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완전한 언론의 자유가 없는 데에서 派生하는 역사의식의 跛行을 누구보다도 먼저 시정해야 할 것이 지성을 가진 시인의 임무인 것을 생각할 때, 젊은 시인들의 편파적인 존재시의 이행은 어찌보면 경계해야 할 일이기까지도 하다. 우리의 현실 위에 선 절대시의 출현은, 대지에 발을 디딘 초월시의 출현은 서구가 아닌 된장찌개를 먹는 동양의 후진국으로서의 역사의식을 체득한 지성이 가질 수 있는 포멀리즘의 출현은 아직도 시기상조인가? 아니 오히려 이런 고독감이 오늘의 포멀리즘의 출발점이 될 수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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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