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걱정도 그리움인가 素庵 배 주 석
일곱 사람이 ‘수수회’ 라는 모임을 한다. 20년 연령차가 무색하다. 종교가 각각 이라도 이질감이 없다. 사람들이 수수하다 보니 말도, 글도, 수수하다. 나를 제외한 모두 수필이며 시며 수준급 필력을 가졌지만 글 일에 나대는 사람이 없다. 어두운 일 없고, 목젖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한 회원이 고향 그리기 병을 앓다가 지난봄에 두메산골로 낙향하였다. 전원생활에 대한 향수와 장남으로서 태어난 고향을 지키려는 사명감이 작용했던 듯하다. 나하고는 정이 들기도 전이었지만 귀향이라는 어감이 환향과 맞물려 서운함이 앞섰다. 가재도구 몇 점 싣고 떠나던 날 배웅을 못 했다. 본인이 도저히 계면쩍어했다. 그가 떠나기 며칠 전 송별을 빌미로 자리를 만들었다. 자주 마시던 끼리가 아니어서 대화의 유연성이 부족했다. 그가 마라토너라는 것. 수필가라는 것. 1남 1녀 자녀를 두고 오랫동안 지방공무원으로 헌신했다는 것. 이별용 대화일수록 곱씹을 스토리가 풍부해야 하건만 그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친분이었다. 자전거 여행과 마라톤이 취미이자 특기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19분대에 끊는다면 상위급 뜀 꾼이다. 둘러앉는 그의 빈자리가 휑해도 아직은 그리움이 익지 않아 그런지 그냥 좀 그렇다는 정도다. 마주한 사람들에게 대놓고 표현하기 저어싶어 눈치 나눔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매주 한두 차례 카톡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 작지만 댐이 가까이 있어 가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워낙 외져서 사람 냄새가 그립다. 강냉이도, 감자도 심고, 참외도 파종을 마쳤다. 푸성귀도 씨를 뿌렸고, 오며 가며 돌을 추려 쌓다 보니 꽃밭이 되었다. 예쁜 강아지도 두 마리 입양했다. 이런 소식이 올 때만 해도 산천은 초여름이었다. 봄에 떠났건만 가을이 돼도 겨울 채비가 시원찮아 보인다. 가을 걷이를 해서 부산의 누이에게 한 줌, 30리 밖 동생에게 한 줌, 사람 그리울 때 찾아와준 독자에게 한 줌, 그렇게 나누고 나니 남는 게 없다. 호미로 일군 텃밭 일테지만 나눔으로 하여 존재를 확인 시키고 싶었나보다. 지금은 가까이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정황을 주고받는다. 나이가 있어 힘도 부칠 것이다. 생각할수록 일손이라도 보태고 싶은 짠함이 솟는다. 고라니가 배춧잎을 몽땅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에 김장거리를 실어 보내야 하는 건 아닐런지 별생각이 다 든다. 멧돼지가 밭을 파헤쳐 놓았다는 글은 화들짝 옛 생각을 일깨운다. 산중에서 악전고투할 때 멧돼지를 잘 쫓는 개를 키웠던 기억이 나서다. 놈들이 한 번 침입하면 밭뙈기는 온통 초토화 되고만다. 산골에서 밭 일구는 일을 전원생활로 생각하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그에게는 일상이다. 오늘은 읍내에 나가 이발도 하고 자장면도 먹고 마트에도 들렸단다. 기록 가치가 있는 일탈인 셈이다. 이웃이라고는 다섯 가구가 고작이라 하니 물자조달이 힘들 터이다.
마당 가운데 드러누운 강아지 사진을 보면 한가롭다 싶다가도. 구들 놓는 사진을 보면 솜씨가 따라줄지 걱정이다. 누님뻘 아랫집과 한잔 하는 소식도 보내온다. 추억은 훗날에 기억 할 일이고 지금은 이웃이 가족이다. 그 누님도 어렸을 적 냇가에서 함께 놀았겠지. 곁에 있어도 인연이지만 멀리 있는 삶이 더 살가운 인연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추억을 더듬으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남쪽은 가을이지만 그의 골짜기는 이미 겨울이다. 구들 마르면 초대하겠단다. ‘아나 콩떡’ 싶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저녁은 읍내 가서 대접한단다. 산골 마을은 음주 단속을 안 하니 다행이다. 첫얼음 얼었다, 첫눈 내렸다. 땔감은 돈으로 해결했다. 외풍이 심해 방 안에 텐트를 쳐야 잠을 잘 수 있다. 초고 삼아 카톡을 보내도 읽는 사람은 걱정 아닌 게 없다. 눈이 많은 지역인데 서까래는 튼실한지. 그런 곳에 내 땅 네 땅 다툴 일 없고 쌀뒤주 넘볼 사람 없으려니 싶어 담을 쌓지 않는다. 싸리나무로라도 울타리를 둘러두면 바람 센날 외풍을 막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사진 어디에도 울이 안 보인다. 천장에 스티로폼 한 겹이면 외풍을 막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한다. 텐트 위로 서까래가 노출된 방이 눈에 선하다. 전문 목수라면 모를까 보통사람이 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확연한 작업이 천장 돌리기다. 대臺, 루樓, 당堂 등은 서까래 마감이 원안이지만 가家, 사舍, 택宅 등 잠을 자는 공간은 천장으로 마감을 한다.
v그는 ‘나 홀로 뜀 꾼’이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14년 정도 뛰고 나서야 달리는 즐거움을 터득했다. 완주 100회 돌파 기념 파티는 조촐하지만 보람이었노라 토로한다. 말이 쉬워 귀향이지 막상 살아보면 후회하기 마련이다. 설피는 준비했는지. 눈이 내리면 아예 출입을 못하지만 사람이 꼼짝 않고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싸시락한 걱정거리가 줄지어 머리를 맴돈다. 어릴 때 뛰놀던 산천은 어느새 나의 뼈가 되고 살이 되었다. 나의 기억은 온통 시냇물이 되어 아팠던 기억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그 장면에서 나는 영원한 아홉 살이다. 그의 귀향은 나의 고향을 파노라마로 나에게 펼쳐준다. 그가 보내온 소식 에는 내 추억이 녹아있다. 걱정과 그리움의 차이가 애매해진다. 그리움은 추억될 줄 모르고 쌓은 기억의 조각들이다. 살면서 그리운 사람 하나 없으면 무슨 맛일까. 미움도 그리움이라는 보자기에 싸면 예뻐진다. 예뻐도 미워도 진솔하게 살다 보면 다 추억이 된다.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안다는 옛말이 비행운飛行雲처럼 아롱거린다.
[출처] 걱정도 그리움인가|작성자 소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