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구문소로 1... (영월을 지나며)
황지(黃池)에서 발원한 낙동강... 이곳 동점(銅店)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간다. 그해서 뚜루 내라고 하는데 석문(石門)을 만들면서 큰 소(沼)를 이루는데 이를 구문소(沼)라 한다. 구문은 구멍 또는 굴의 고어(古語)이며 “굴이 있는 늪, 구멍沼”라는 뜻이다. 주위의 낙락장송(落落長松)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일품으로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천천(穿川)으로 표기하였다. 이는 ‘강물이 산을 넘는다(渡江山脈)’는 특이한 지형만큼 많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에는 논에서 커다란 싸리나무가 떠내려 와서 부딪혀 뚫렸다고 하기도 하고, 중국 하나라의 우왕이 단군에게 치수를 배울 때 칼로 뚫어서 생긴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황지천의 백룡과 철암천의 청룡이 낙동강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다가 백룡이 청룡을 기습하기 위하여 뚫었다고 하는 설이 가장 유력한 전설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는 오랜 기간에 강물의 힘으로 석회암 암벽을 깎아 내린 자연현상이라고 보아야한다.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없는 산을 뚫어 가로지르는 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다.
이 도강산맥(渡江山脈)은 1억 5천 년 전부터 형성되었다고 추정되니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구문소 높이는 2∼30m, 넓이 30㎡ 정도 되는 커다란 석회동굴로 석문 위에 자개루(子開樓)가 있고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예로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마당소, 자개문, 삼형제폭포, 닭벼슬바위, 용소, 여울목, 통소, 용소 등 구문팔경을 볼 수 있다. 이 석굴을 자개문(子開門)이라 하는데 정감록에 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자시(子時)가 되면 문이 열리고 축시(丑時)에 문이 닫히는데 문이 열리는 子時에 재빨리 들어가면 전쟁과 굶주림이 없는 오복동천(五福洞天)이 나온단다.
한편 銅店은 옛날부터 동광(銅鑛)을 채굴하여 마을 한 가운데에서 놋쇠를 만든 것에 기원하여 붙여졌다. 이 구문소를 10월 15일 한화관광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음성에서 제천IC로 나갔다. 국도 38번을 따라 영월과 정선을 지나니 태백시에 도착한다. 이 도로가 4차선으로 포장되어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달려간다. 봉화와 울진 사이인 36번 도로도 4차선으로 뚫린다면 경북 북부 지역 등 더 많은 곳으로 관광지를 갈 수 있을 텐데... 빨리 개통되기를 기대해 본다.
태백 구문소로 2... (정선을 지나며)
정선군 고한읍을 지나면 왼쪽으로 정암사(淨巖寺) 안내판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하였다. 慈藏은 당나라 운제사(雲際寺)에서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 석가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얻어 귀국한 후 이 사찰 외에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에 나누어 모셨다. 이 사찰들을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하는데 이들 사찰의 법당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있다. 정암사에는 眞身舍利를 수마노탑(水瑪瑙塔)에 봉안되어 있다. 사찰 주변에 천연 기념물인 열목어서식지(熱目魚捿息地)가 있다.
정암사 앞으로 414번 도로가 지나는데 이를 만항(晩項)재라 한다. 해발 1,340m로 포장도로상의 고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여말선초(麗末鮮初) 개성의 두문동에 살던 고려에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가장 높은 곳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망향(望鄕)'이라고 불리다가 후에 '망항'으로, 다시 晩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침에 운무(雲霧)를 가를 때 호젓한 드라이브 코스다.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감을,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만추(晩秋)의 정취를 느낀다.
여행길은 두문동 터널을 지난다. 지상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855m) 곳에 위치한 추전역(杻田驛)이다. 일반열차는 정차하지 않는 이 驛은 중부내륙순환열차(O-Train)가 운행되고 있다. 杻田은 싸리 밭이 많아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데 杻는 죄인의 형틀이라고도 한다. 연평균 기온이 남한의 기차역 가운데 가장 낮고 적설량도 가장 많은 역이다. 그래서 한여름 외에는 연중 난로를 피워야 할 만큼 춥다. 우리나라의 해발은 인천 앞바다의 수면을 기점으로 한단다. 계룡산이 828m이니 그 높이를 추정할 수 있다.
이 추전역에서 서북방 500m 떨어진 곳에는 길이 4505m의 정암터널이 있다. 길이만큼 태백선 개통에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주변에 용연동굴(龍淵洞窟)... 금대봉 아래 920m에 위치한 이 동굴은 길이 843m로 다양한 석순과 종류석, 동굴 진주, 석화(石花), 산호(珊瑚) 등 생성물이 많다. 약 3억 년 전부터 생성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진 석회동굴이다. 동굴 내에는 관박쥐, 장님 새우 등 38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동굴 속에서 피난을 하던 사람이 암벽에 붓글씨로 피난하게 된 내력을 적어 놓은 것이 있다. 여행길은 백두대간의 중심 산소도시인 황지에 도착한다.
태백 구문소로 3... (황지에서)
넉동강의 발원지인 황지... 남한에서 가장 긴 물줄기로 태백시의 중심부에 있다. 황지공원의 커다란 비석(碑石)옆에 길이를 잴 수 없는 깊은 수굴(水窟)이 있다. 둘레가 100m는 될까? 하루 5,000t의 물이 용출(湧出)되고 있다. 이 물은 15℃ 정도의 수온(水溫)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단다. 이로 인해 새벽이나 겨울철이면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찾는 사람들에게 영험한 기운과 신비감을 안겨준다. 태백을 감싸는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에서 만들어내는 작은 물길이 땅속으로 모여들어 만들어진 청정한 물이다. 하늘(天)의 기운이 땅(潢)으로 연결되는 첫 물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으로 불리었다.
그 옆에 ‘낙동강 1,300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는 석비(石碑)... 경상도를 지나 부산의 을숙도 앞 남해로 흘러간다. 황지 옆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상(女人像)이 있다. 그 연유(緣由)는? 영험(靈驗)한 지식을 가진 노스님이 이곳의 지독한 구두쇠였던 황씨를 찾아 시주를 권하며 선행을 베풀기를 빌었다. 그러나 황씨가 노승에게 시주 대신 던진 것은 쇠똥 한 덩어리였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서는 노승에게 미안한 마음을 지닌 며느리가 시아버지 몰래 쫓아가 쌀 한 바가지의 시주를 하자 노승은 집안의 운명이 다 되었다고 말하였다.
스님은 또 며느리에게 절대 집을 돌아보지 말고 즉시 나를 따라오라고 일렀다. 노승의 예언을 믿은 며느리가 마을 언덕을 넘어가는 순간 황씨의 집은 땅에서 꺼지며 지금의 연못이 되었단다.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본 며느리는 그 자리에 굳어 돌장승이 되었다 한다. 돈에 인색한 황부자...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일던 날 집터가 꺼지면서 큰 연못으로 변하였으니 인과응보(因果應報)인지... 황지를 신성시하였을 사람들이 연못을 소중히 여기길 원하는 마음으로 만들어낸 전설일 것이다.
황지(黃池)옆에 한정애 식당(533-1331)이 한정식으로 유명하여 매번 찾았는데 이왕 태백에 왔으니 곤드레 밥을 먹으러 가잔다. 해설사님의 추천에 의하여 한밭식당(552-3160)을 찾았다. 하지만 예약손님이 많아 먹을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사정도 하여 보았으니 정중히 거절하니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신선관(552-8890)에서 된장찌개로 대신하였다. 둘이 먹었는데 고등어구이 두 마리를 주어 태백의 후한 인심을 읽을 수 있다. 이는 황부자의 자린고비(玼吝考妣)에 비하면 생각할 수 없는 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태백 구문소로 4... (구문소에서)
지독한 구두쇠를 뜻하는 玼吝考妣... 그 유래는? 부모 제사에서 ‘고비(考妣)’라고 적힌 지방을 썼단다. 더 인색한 사람은 이 지방을 기름에 절여 두고 해마다 제사 때마다 썼다고 하여 ‘절인 고비’라고 하다가 이것이 변하여 ‘자린고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옛날 한 부인이 생선을 사러 갔었다. 그녀는 이것저것 만져만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생선을 만진 손을 솥에 씻어 국을 끓였단다. 이 사실을 알은 마을 사람들... ‘만일 우물에 가서 씻었으면 온 동네가 다 먹을 수 있었을 텐데!’생각하며 아까워하였단다.
다른 이야기는 어느 자린고비는 간장을 종지에 조금씩 담아 먹었단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종지에 간장을 가득 담아 내 왔단다. 자린고비는 며느리에게 간장을 아끼지 않는다면서 혼을 냈다. 며느리는 이렇게 간장을 가득 담으면 보기만 해도 짜서 먹지 않게 되어 간장을 아낄 뿐만 아니라 숟가락으로 긁지 않아도 되니 숟가락과 그릇까지 아낄 수 있다고 말하였단다. 어느 구두쇠는 짚신, 장도리, 담배, 바둑판과 바둑돌처럼 자기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웃에 빌리는 이야기, 장독에 앉았다가 날아가는 파리를 쫓아가 다리에 묻은 장을 빨아 먹는다는 이야기 등이 자주 회자(膾炙)되고 있다.
오늘 따라 황지 주변에는 그림이 많이 걸려있다. 제 28회 태백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태백예술제는 문화예술인들의 창작품 발표의 장을 통해 창작의욕 고취와 시민참여를 통한 예술문화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협회 등이 주최가 되어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제 여행길은 구문소로 갔다. 물은 깨끗하지 않지만 울긋불긋한 단풍과 함께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곳에 오니 ‘노끈으로 톱질하여도 나무를 자를 수 있고, 물방울이 떨어져 돌에 구멍을 낸다.'는 繩鋸木斷 水滴石穿(승가목단 수적석천)이 생각난다.
이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다. 물이 모이면 개천을 이루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는 것처럼 어떠한 일도 침착하게 밀고 나가라는 뜻이다. 여행길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태백 고생대 자연사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생대 지층 위에 건립된 고생대를 주제로 한 전문 박물관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태백시도 바다였다니 얼마 전 아이티에서 벌어진 지진(地震)처럼 지구의 지각변화를 느끼면서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위는 황지 아래는 구문소
첫댓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항상건강 하세요^^.
고맙습니다.
감상 잘~허구갑니다.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