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김희정 |
시를 쓸 때마다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욕심이다. 시 쓰는 일이 때로는 고욕이고 가끔 자괴감을 심어줄 때도 있다. 그런데 왜 시를 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런 행복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를 쓰면서 뿌듯한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첫 시집 출간기념회 날 엄마를 단상에 모셔놓고 오신 분들에게 소개시켜드렸다. 엄마의 모습을 보며 시를 쓰며 아팠던 기억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시온학교(동구 중동 47-18)에 초대받아 강연 아닌 강연을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들과 함께 시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낭송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온학교는 중.고교 통합 도시형 대안학교이다.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한 친구들이 함께 모여 심리치료도 하고 교과과정도 배운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정원이 20명 밖에 되지 않지만 교장선생님을 포함하여 선생님들의 열정은 뜨거움 그 자체였다. 학교라는 분위기보다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교육과정에서는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1년에 한번 아이들이 직접 주인공이 되어 자신이 무대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만들어 학부모님들을 초대해 시낭송도 하고 과외 활동을 영상으로 제작해 함께 보며 추억을 되새김질했다. 한 시간이 채 안 된 축제였지만 아이들이 준비하는 시간은 그 보다 수십 배 긴 시간과 정성이 쏟아졌으리라는 것을 축제를 본 사람들이라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하교할 시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들의 축제를 준비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다음 날 아침 일찍 등교해서 리허설까지 하는 모습은 보기에 참 좋았다.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잘 되지 않는 것은 서로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것을, 아이들은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 충분히 느꼈으리라 짐작했다. 행사가 시작되고 초대 시인이 시 낭송도 하고 아이들의 자작시 낭송도 하고 집단으로 시를 써서 낭송도 했다. 몇 시간도 아닌 한 시간 동안 시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강의가 끝나고 시를 써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으니까 두 명이나 손을 들었다. 시 낭송 역시 짧게 설명을 했을 뿐인데 곧잘 해 냈다.
20명의 아이들이 일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느리고 어눌하지만 기다려주면 이 아이들이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 낼 수 있을텐데 무엇이 그리 급해 우리 교육은 더딘 아이이들을 기다려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시낭송을 들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는데 청명한 가을하늘이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런 행사를 3년째 이어온 것도 멋있지만 실수를 해도 서로 격려해주고 함께 하고 있다는 믿음이 서로의 울타리처럼 엮고 있었다. 아이들이 행사의 시작과 끝을 진행하는 모습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가 써지지 않을 때 나 역시 조급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조급함을 견디다보면 시는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왔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일반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늦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기다려 준다면 더딜 수는 있어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시온학교 아이들이 생생 시낭송 축제에서 보여주었다. 늦가을 아이들의 모습은 나에게 기쁨의 한 자락이 되었다. 시를 쓰면서 얼마만에 맛본 행복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