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술 마시고 외박하는 중학생 딸, 너무 걱정스러워요
송옥진 입력 2021. 07. 1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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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박구원 기자
저희 가족은 저와 남편, 중학생 딸 이렇게 세 식구입니다. 외동딸이 저희에게 거짓말을 하고 외박, 음주, 흡연을 하는 등 비행이 심해져서 걱정이 큽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이의 문제 행동은 올 초부터 시작됐어요. 밤 9시에 아파트 바로 앞 동에 사는 친구 집에 간다고 해서 밤 10시30분까지 들어오라 하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도 계속 전화를 안 받더군요. 자정이 넘어도 연락이 안 돼 결국 112에 신고했고, 위치 추적을 했더니 집 근처였습니다. 남편이 동네를 다 돌아다녀 새벽 1시 넘어 집 근처 상가 계단에서 이성 친구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아이는 술을 마신 상태였어요. 이런 일이 있고 얼마 뒤에는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공부하러 간다고 나갔는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또 끊겼습니다. 112에 신고를 했는데 이번에는 아침까지 찾지 못했어요. 위치 추적을 피하려고 새벽부터는 전화기를 끄고 친구들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연락했더라고요. 아이는 그날 집에 아예 들어오지 않고 학교로 바로 갔습니다. 아이에게 왜 그러는지 물으면 "엄마 아빠가 너무 구속해서 그런다"고 해요.
아이가 매번 두세 살씩 많은 고등학생을 사귀는 것도 걱정이 됩니다. 아이는 동시에 여러 남학생과 연락을 하는 것 같고, 사귀고 헤어진지 얼마 안 돼 또 바로 다른 이성 친구를 사귄다든지 합니다. 제가 가장 괴로운 건 아이가 이에 대해 반성하는 기색이 없는 거예요. '지금 집에 왔으면 된 것 아니냐', '놀다 보면 친구집에서 잘 수도 있다'며 자신의 행동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아이와 남편 사이 갈등의 골도 깊어졌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혼내면 아이도 악을 쓰며 가만히 있지 않아요. 그러면 남편은 더 화가 나서 난리가 납니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아빠와 부딪힌 후 저에게 와서 "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남편이 그 말을 듣더니 과도를 가지고 와서 애한테 찔러 죽여보라고 했습니다. 아이한테 "내가 몇 년 내로 암 걸리거나 죽으면 너 때문인 줄 알아라" 같은 심한 말도 점점 많이 합니다. 남편은 이제 더 말하기 싫다며 집에서 아이와 눈도 마주치지 않아요.
전문직인 남편은 굉장히 철두철미한 성격입니다. 아이와 전에는 주로 정리정돈 문제로 갈등이 있었어요. 남편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빨리 치우지 않으면 다 버린다' 같은 말을 많이 했고 정리가 안 돼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군다고 생각해서 이 문제로 자주 다퉜어요. 부부 사이는 돈독한 편이지만, 지금도 아이 문제로 종종 싸우게 됩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아이나 가정에 소홀한 아빠는 아니에요. 아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일로 바쁜 저 대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이를 상담 센터에 데려다 주고는 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남편이 아이를 주로 보살폈고요. 아이가 만 3~5세일 때는 제 일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했는데, 그때 아빠와 친조부모가 함께 아이를 키웠습니다. 남편은 본인의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은데, 아이 키우기 가장 힘든 시기에 부모님과 육아를 해서 정말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는 딸이 동네 문구점에 간다고 해도 또 거짓말하고 어디서 담배나 술을 할까봐 너무 불안하고 걱정이 돼요. 방황하는 아이를 어디까지 품어줘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김정연(가명·44·전문직)
정연씨, 자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존재죠. 아무리 수위가 높은 문제 행동을 하더라도요. 딸의 문제 행동에 정연씨 부부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자식에 대한 실망, 노여움과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을 두 분의 마음을 부모 입장에서 가슴 깊이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연을 읽는 내내 정연씨 딸의 외로운 마음이 이해돼 너무 가엾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물론 많은 부모가 아이의 이런 행동에 먼저 화를 낼 겁니다. 보통의 부모가 많이 하는 실수이지요. 하지만 그래서는 딸을 도울 수 없어요. 아이가 왜 자꾸 집 밖으로 나가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해요.
정연씨 남편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입니다. 사회에서 맡은 바를 완수하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런 사람이에요. 부모로서의 책임도 다합니다. 아이가 집에 안 들어오면 밤새 아이를 찾으러 다니고, 아이가 필요한 곳에 시간 맞춰 데려다 주고, 바쁜 아내 대신 주 양육자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거지요.
그러면 정연씨 딸에게 아빠는 어떤 아빠일까요. 사연대로라면 아빠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너는 왜 이렇게 정리 정돈을 안 하니' '왜 이렇게 방이 지저분하니'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했을 거예요. 흔히 말하는 잔소리 많이 하는 아빠인 거죠. 조금 자라서도 아이에게 규칙, 약속을 강조할 때가 많았을 거예요. 아이가 늦게 들어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며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아니라 '너 왜 이렇게 만날 약속을 안 지켜, 이러니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니' 이렇게 시작을 하는 아빠였을 거란 말이죠. '괜찮니'라고 묻기보다는 '너는 봐 주면 한도 끝도 없어. 어디까지 봐줘야 되겠니' 이런 말들을 먼저 꺼내는 거예요. 아이는 아빠를 지적하는 사람, 혼을 많이 내는 아빠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아마 어떤 날은 아이가 밖에서 친구 관계 같은 문제로 속상해서 집에 들어왔을 때도 있었을 거예요. 사춘기라 부모한테 선뜻 표현은 안 했지만요. 아이 표정이 안 좋을 때 아이는 부모가 어떻게 대해주기를 바랄까요.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속상한 일 있었어?' 이렇게 물어 봐주는 부모를, 그런 형태의 사랑을, 아이는 원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그럴 때 아빠가 '책상 좀 정리하라고 몇 번을 말해' 이랬다면, 이런 어긋남이 그동안 많이 쌓였다면, 아이는 어떨 때는 아빠한테 분노했을 것 같아요. '도대체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이러는 거죠.
부모는 자식이 원하는 사랑을 줘야 해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요. 자식의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 그러면 '그래, 하지마', 뭐 사달라 그러면 '그래, 사줄게' 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면서 자라도록 하는데 부모 자식간에 필요한 '열쇠' 같은 부분들이 있어요.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는 생존에 필수적인 보호를, 조금 더 자라면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며 놀아주기를 원해요. 중학생쯤 되면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또래 관계에서 상처 입거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나오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부모가 함께 의논해 주고 또 격려해 주기를 원합니다. 남편은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자기 기준에 의한, 자기 방식의 사랑을 한 겁니다. 정리정돈하라고 시킨 게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와의 관계에서 열쇠를 찾지 못한 거예요.
이런 분들은 자신의 부모와도 다정하게 부대끼며 어울렸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아요. 남편은 아이와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가 아니라 아이를 책임질 존재로 인식하고 책임을 완수하는 데만 집중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아이를 잘 먹이고, 입히고, 좋은 학원에 보내고,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고, 필요한 것을 사주고, 시간 맞춰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이런 것을 성실하게 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고 부모 할 일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지요.
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하는 나이대가 있어요. 생후 첫 3년, 초등학교 입학 전후인 만 6, 7세, 만 나이로 12, 13세인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일 때예요. 그런데 남편도 말했듯이 자기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이 만 3세 어린 아이를 같이 키운 거예요. 정연씨 딸은 너무 어릴 때라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아이한테도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어요.
아빠는 더군다나 아이가 말이나 표정으로 불만을 표현하면 그 신호에 분노가 폭발합니다. 아이는 그저 자기 감정을 드러냈을 뿐인데, 아빠는 이를 허용하지 않아요. 그럼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볼게요.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아빠는 아이 사정도 좀 들어보고, 입장도 이해해주고, 의논을 하는 상대여야 하는데 항상 기준을 제시하고 일방적으로 요구만 해요. 안 따르면 불같이 화를 내고요. 가끔이지만 어떨 때는 기억에 오래 남을 공포스럽기까지 한, 과한 반응을 보이고요. 자신을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엄마가 자기 편을 좀 들어주려고 하면, 결국 그것 때문에 엄마 아빠가 다퉈요. 아이가 그걸 반복해서 겪다 보면 아빠하고 말을 하고 싶을까요, 아이가 집에 있고 싶을까요.
정연씨 딸은 지금 밤에 나가서 누군가와 계속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엄청 외로운 거예요. 부모는 '너 남자 애들이랑 무슨 짓하고 다녀' 이렇게 생각하겠지만, 아이는 그저 따뜻한 대화 상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기는 '나쁜 짓 안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술 마시고 그냥 잠든 건데 이런 생각이죠. 아이는 속으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세요' '내 마음이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언제 내 말 한 번 귀담아 들어준 적 있어요' '그 오빠는 아빠보다 내 말 더 잘 들어주거든'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다 이 남친하고 끝나면 며칠 안 돼서 또 새로운 남친을 만나는 거죠. 누군가에게 자기 마음을 말하고 싶으니까요.
아이는 상호작용을 할 상대를 원하고 있어요. 나는 어떤 장점이 있고, 이걸 위해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이야기를 평소 부모하고 하지 못했던 거지요. 정연씨 부부가 이 점을 빨리 깨닫고 아이와 이런 관계를 맺기 시작해야 아이가 집으로 돌아올 거예요. '몸'이 집에 있다고 아이가 집에 있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늦게까지 밖에 나가 있는 건 사실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거예요. 어릴 때는 내면에 힘이 없어서 불만이 있어도 가만히 있었지만 중학생쯤 되니까 반발하는 거지요. 아이도 부모를 싫어한다기보다 같이 있으면 불편한 거예요. 심하게 간섭하고, 화를 내니까요. 자기를 보호하려고 부모를 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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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을 정해서 실행에 옮겨 보세요. 부모는 자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물어봐야 합니다. 아이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요즘에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브랜드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친구는 어떤 아이들인지, 아이의 주변 환경이나 대인 관계 같은 데 관심을 갖고 일부러라도 아이와 대화할 만한 주제를 찾아 시작해 보세요. 가족이 함께 상담을 받아보는 방법도 있어요. 사춘기 아이들은 중립적인 제3자, 부모가 아닌 어른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도움이 됩니다. 청소년기 가면 우울증이나 따돌림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전문의를 만나보시기를 권합니다.
이런 편안한 대화가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겠지만 자꾸 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작심삼일로 끝나면 또다시 작심삼일 하는 걸 반복해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자꾸 집 밖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할 거예요. 아이가 부모와 짧은 시간이라도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을 경험하도록 해주세요. 그제서야 아이도 마음을 조금씩 열고 부모와 가까워지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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