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곡성”(哭聲)
한국영화, 개봉:2016.05.11
감독,각본:나홍진, 관객:6,877,737명(2016.07.21.현재)
제작:서동현,김호성,임민섭, 주연:곽도원,황정민,쿠니무라 준,천우희,김환희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누가복음24장37~39절)
영화는 신약성경 누가복음 24장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왜 일까? “호기심”과 “의심”이라는 단어를 드러내며 이 영화가 갖는 모티브를 관객에게 던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성경말씀 구절을 인용한 것은 영화의 내용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호기심으로 촉발된 의심의 고리는 어디까지 향할 것인가? 그 종착역을 찾아가는 듯한 영화, “곡성”은 난해한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호기심과 의심이 만들어 내는 끊임없는 불신관계”를 주제로 영화 곡성은 그 어떤 결론도 도출해 내지 못한 채 관객을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용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그럼에도 고통속에 죽은자만 있을 뿐, 명백한 살인자는 밝히지 못한채 막을 내려 버렸다 수많은 경찰들이 등장하고 사건의 중심에 경찰 “종구”(곽도원역)가 존재하지만 그 어떤 사건의 실마리도 풀어내지 못한채 오히려 무당의 힘을 빌리는가 하면 사체를 유기까지 하는 몰락의 과정에 서 있게 만들었다
“이 음탕한 암캐년!!”
무명의 일본인이 한 여인을 호숫가에서 겁탈을 하였다 그 여인은 마을을 떠도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한 존재로 나타나지만 그녀의 정체는 어느곳에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단지 살인사건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그녀의 모습이 발견되고 있을 뿐, 제정신이 아닌 듯한 그녀를 어느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돌을 던지며 경찰 주위를 배회하는 그녀는 그렇게 가려진 커텐뒤에 숨겨진 하나의 비밀처럼 존재하고 있다
무명의 일본여행객(쿠니무라 준역)이 나타난 후로 곡성의 한 마을에는 알수 없는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서 지구대의 평화는 끝이나고 전쟁같은 죽음속에 그려진 피의 낭자는 모두를 격앙케 하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풀어내지 못한다 경찰은 이러한 연쇄적인 죽음의 진앙지로 집단 야생 버섯중독으로 결론내려 버리고 수사를 종결해 버리지만 죽음은 중단되지 않은채 계속된다
연쇄 살인사건의 중심에는 두가지 단서가 있다 하나는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어떤 사유와 방식으로든 일본 외지인과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족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살인의 가해자가 일본 외지인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일본 외지인이 어떤 사람을 의미없이 지명하고, 지명된 그 사람이 들짐승과 같은 식성을 보여주는 증세로 시작하며 살인에 까지 이르게 되는 동일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시방 머한다가?”
“봤어? 어디까지 봤어? 봤네...다 봤네...”
“괜찮아, 효진아, 아빠 경찰이야, 이거 다 꿈이야, 아빠가 다 해결할께”
연쇄 살인사건의 위기속에서도 부부관계는 지속되어야 한다 종구는 출근을 앞두고 아내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자신의 차속에서 부부관계를 끝맺을 즈음 자신의 사랑하는 딸 효진이가 나타난다 이렇듯 “효진”(김환희역)이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딸이었다
딸 효진에게 나타난 이상징후들은 동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과 유사성을 띄며 종구의 가족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경찰이지만 언제나 겁에 질려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던 종구는 언제나 악몽에 시달리며 그 악몽의 부르짖음에서 깨어난다 그러한 종구에게서 효진의 증상은 스스로를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아이고. 맨날 뱀이다 자라다 쳐묵으면 뭐한다? 벼락맞고 한방에 뒤져불 것을, 맞을라고 쫓아댕겨도 못맞는 것을...아이고...으메, 그래도 맨날 뱀이다 자라다 쳐묵더만 벼락맞아도 살았는 갑소”
“병규”(최귀화역)는 외지인 일본여행객이 자신이 잡은 짐승의 시체를 먹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병규가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잡은 짐승을 등에 업고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뒹구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목격자이다 병규의 말을 처음에는 하나의 무용담처럼 농담으로 여겼으나 자신의 딸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게 되자 종구는 병규와 동료 경찰(조한철역)과 함께 산에 오르게 된다 자신이 목격한 장소에 까지 다다른 병규는 갑자기 밀려오는 두려움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하산하려 하자 종구가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병규가 아래로 뒹굴며 넘어졌다 다시 병규가 일어났을 때 때마침 비가 내리고 벼락이 떨어져 병규의 몸에 맞은 것이다 결국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하고 병원으로 데려온 병규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종구는 추적을 중단할 생각이 없었다
“야!! 이 X발놈아!! 왜 지랄이야 지랄이!!!”
“니 딸래미 치맛속을 왜 들여보는디? 말을 하라고 X발놈아!!!”
“직접 봤어요? 직접 보지도 않고 어떻게 믿어?”
시간이 흐르면서 효진의 증세는 악화되고 종구의 모친은 무당을 불러 굿을 할 것을 제안한다 누군가 종구의 손에 쥐어 준 것은 종구의 딸 효진의 실내화였다 효진의 실내화가 발견된 것은 외지인의 폐가였고 이것을 동네사람이 가져 온 것이다 종구는 동료경찰과 마을의 성당 부제 “양이삼”(김도윤역)과 함께 다시 산에 오르고 결국 산속 폐가처럼 보이는 외지인의 숙소를 찾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독사견이 끊임없이 짖어대고 종구와 경찰은 방을 뒤지기 시작한다 무엇인가 제단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방에는 문이 잠겨져 있다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간 방에는 매우 위험해 보이는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다
동료 경찰이 찾고있는 방의 한켠에서 바라본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죽은 사람들의 끝도 없는 사진들이 벽을 온통 뒤덮고 있다 겁에 질린 경찰은 말문이 막히고 그러는 동안 폐가의 주인인 일본 외지인이 나타났다 성당 부제 양이삼이 마당에서 망을 보는 사이에 성난 독사견이 양이삼의 옷을 물어 버린 것이다 이에 어디선가 급히 달려온 일본 외지인에 의해 모든 상황이 노출되어 버린 것이다 딸 효진의 일로 이미 이성을 잃은 종구는 일본 외지인과 마주치자 더욱 거센 기세로 몰아 부치며 범죄인 취급했지만 아무것도 알아 내지 못한채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성당 신부를 찾은 종구와 그 일행은 도움을 요청하지만 신부는 직접 보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믿느냐며 의심의 고리를 다시 만들어 갔다 마을에 떠도는 흉흉한 소문의 진원지는 한 방향을 향하고 있으나 결국 이 방향은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의심과 의심의 혼란으로 이어져 가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을 던져주고 있지만 스치고 지날 뿐이다
“절대, 현혹되지 마소잉~??”
“자네 몇 일전에 만나면 안되는 것을 만난적 있제? 누굴 찾아가 건드린 적 없냐고.. 이거 내가 본 악질중에서 갑중에 갑이여”
“왜 하필이면 자네딸이냐고? 그 어린것이 뭔 죄가 있다고~? 자네는 낚시할적에 뭐가 걸릴건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가? 그놈은 미끼를 던진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고”
종구의 집에서는 무당, “일광”(황정민역)이 굿을 하고 방에는 효진이 고통속에서 뒤척이는 장면을 종구와 그의 아내(장소연역)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굿판의 과녁은 저 멀리 산속 어딘가에 숨어 있는 외지인에게로 향하지만 고통은 방안에 있는 효진에게도 극심한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 어떤 순간에도 무당을 의심하지 말고 제사를 중단시키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지만 딸의 고통을 끝내 이기지 못한 종구는 굿판을 부수고 결국 의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였다 모든 것이 끝나는 듯한 연쇄살인의 고리는 바로 하나의 또 다른 의심으로 인하여 새로운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복선은 때로 방황을 잃게 만든다 무속인 “일광”, 외지인 일본여행객, 그리고 무명의 한 여자,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무엇일까?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이들이 주도해 나가는 곡성의 마을은 집집마다 걸려있는 버섯들과 함께 묘한 여운을 남기지만 아무것도 밣혀내지 못한다 이들은 한꺼번에 만난적도 만나지도 않는다 단지 어디선가 그 어떤 의심의 고리를 생산해 내며 자극적인 의문만 그려낼 뿐이다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종구와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의 살인을 멈추어야 하는 절대절명의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전열을 가다듬고 곡괭이와 삽자루를 트럭에 실은채 산을 향하였다 동일한 시간, 일본 외지인은 마을의 한 사람을 살려내려는 것인지 아니면 죽이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제를 올리고 있다 좀비와 같은 한 사람은 거의 죽은 시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얼굴에는 악마의 흔적이 그려져 있다 산에 오른 종구와 일행은 산속 외지인의 폐가에 다달았고, 가재도구와 집기류와 제례 의식에 사용되고 있는 듯한 물건들을 부숴놓고 있었다 일본 외지인은 이들을 피하여 도주를 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내었다 종구와 일행은 좀비와 같은 마을 사람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끝내 목숨을 건졌지만 허겁지겁 도망을 쳐야만 했다
“여긴 또 뭣하러 왔어, 나가”
억수같은 비바람이 몰아치던 도로위에서 마구 달리던 차량위에 무엇인가 떨어졌다 그것은 그들이 끝내 발견하지 못한 일본 외지인의 시체였다 자신들이 죽였다고 생각한 종구와 일행은 시체를 절벽 낭떠러지에 다시 던져 버리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마을로 돌아온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더 이상의 희생도 죽음도 없는 것일까? 이 의문의 고리는 종구의 집을 찾은 무속인 일광과 무명의 한 여자의 만남에서 다시 시작된다 무속인 일광은 그녀를 바라보자 구토를 하며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도주를 한다 왜 일까? 두사람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일광은 종구에게 다급히 전화를 한다 이제 일본 외지인은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관심밖에 있었던 한 사람, 종구에게 돌을 던지며 스치던 무명의 한 여인이 모든 살인의 몸통이라는 것이다 무속인이 과녁을 잘못 맞춘 것이라는 황당한 얘기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종구를 또다시 수렁으로 몰아 넣고 있었다
“시방 어디 가는겨? 가지말어~ 가면 다 죽어”
“지금가면.. 니 가족 다 죽어불어...”
“인자 두 번 남았어”
“네 딸의 애비가 죄를 지었어.. 남을 의심하고 죽일라 카고.. 결국은 죽였어”
무속인 일광은 여인을 믿지 말라고 하고, 한 여인은 무속인의 말과 상반되는 말을 하고 있다 닭이 세 번 울기 까지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종구는 지금 안절부절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의심해야 하는가? 역시 또다시 등장하는 하는 것은 의심이다 결국 종구는 자리를 떠나 집으로 향하고 아내와 모친의 싸늘한 죽음을 바라본다
“너는 악마다”
“나의 손과 발을 보거라”
“너는 내가 악마다라는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온거야”
“그냥 간다고? 누가 널 그냥 보내주기나 하겠대?”
동일한 시간, 산속 어딘가에서는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본 외지인이 버젓이 살아 있다 그는 무엇인가 제를 올리며 다가올 미래를 예견하고 있다 때마침 성당의 부제가 나타나고 그는 이미 공포에 질려 있었다 부제와 외지인의 대화속에는 또다시 의심이 등장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영화에는 성경의 한 대목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마치 기독교를 조롱이라도 하는 듯 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이것 또한 또다른 의심의 고리일까? 닭이 세 번우는 것과 손에난 못자국과 성경구절은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의 대목들은 곳곳에 나타나며 복선을 깔고 있다 그 복선의 중심에는 항상 “의심”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이 영화의 칼끝은 종구의 딸과 그 가족을 향하고 있다 무명의 한여인은 딸의 아버지인 종구가 의심하여 생긴 비극이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종구는 일본 외지인에 대한 의심과 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이 비극을 초래한 첫 번째 동기가 된 것이다
무속인 일광과 일본외지인은 어떤 관계속에 존재하는가? 무명의 한여인과 무속인 일광이 대척점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속인이 종구의 집앞에 다다랐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명의 한 여인이었다 무명의 한 여인은 일본 외지인과도 대척점에 서 있다 그를 쫓으며 그의 시신을 종구의 트럭위로 던져버린 것 또한 그 여인이었던 것이다
무명의 한 여인은 종구에게 닭이 세 번울기전에 집에 들어가서는 않된다고 만류했지만 종구는 끝내 의심을 선택해 버린다 무명의 여인은 악마를 잡기 위해 그곳에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종구의 의심으로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그후 무속인 일광은 사진을 찍고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사진을 쏟아 내는데 그 사진들은 모두 일본 외지인의 방에 있었던 사진과 동일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속인 일광과 일본 외지인은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동반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악마의 현현이었다 즉, 의심의 생산자이며 불신의 원동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일광이 날린 화살의 한 촉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외지인과 일광이 영적으로 싸우는 듯한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일광이 우상의 몸에 못을 박을 때 마다 효진과 일본 외지인 모두에게 고통이 주어졌지만 일본 외지인은 자신의 영적 능력으로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반면 딸 효진은 그 어떤 방어책도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종구가 굿판을 뒤집어 엎어 버린 것이 잘한 결과가 된 것이었다
무명의 한여인은 무엇일까? 무속인 일광을 유인하고 일본외지인을 추격하며 사선으로 내몰았던 무명의 한 여인은 마을을 지키려 했던 마을의 수호신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의심의 고리를 차단하려는 인간 내면의 무엇일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어떤 상황속에서든 언제나 악마와 대척점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외지인이 이미 죽은 박춘배의 시신을 좀비로 구원하기 위해 의식을 하던중 한 여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종구의 트럭위로 밀어버린 것은 그가 이 영화에서 어떤 신분임을 밝혀주는 중요한 대목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진정한 살인자는 누구일까? 무속인 일광과 일본외지인의 공조에 의한 완전범죄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어느 누구하나 살인자로 지목되지 않았고 구속된 사람도 없다 결국 이 영화에서 던져주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의심”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심으로 인한 확신이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영화는 끝이 나고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엇인가 자막뒤에 또 다른 장면이 있을거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나 모든 선택과 결과는 이미 관객의 손에 주어져 있었다 관객의 손에 쥐어진 것은 또다른 의구심이다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채 떠나야 하는 관객의 심경 어딘가에는 의문점과 그 의문점의 한 지점에는 “의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영화는 무엇을 주고 있는가? 의심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두려운 유혹인가를 깨달아야 하는가? 무속인들의 긴 잡음속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만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의심이 가져오는 종말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고 있슴은 분명하다 눈으로 확인한 것을 믿는 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그것을 신뢰하고 믿는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불신이 있고 의구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의구심이 신앙의 위험요소로 등장하여 불신을 낳고 죄를 생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의구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신뢰함으로 그것을 억제하고 자제 시킬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작은 신뢰함이 지속성을 갖고 유지된다면 의심의 연결고리는 언젠가 녹이 슬고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