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고려 최고의 실력자였던, 정치가이자 학자인 김부식은 1145년 무렵에 "삼국사기"라는 책을 완성했습니다. 한편, 고려 때의 유망한 불교 승려 였던 일연법사(본명 김경명)은 "삼국사기"가 완성된 후 150년이 지난 1282년 경에 "삼국유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두 책은 모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 시대를 다루는 책인데, 조선시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국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책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대한민국 보물 722호인, 13세기 인쇄판, "삼국사기")
(대한민국 국보 306호인, 14세기 인쇄판, "삼국유사")
단순히 "삼국사기"에 기록된대로, 신라 건국 부터 신라 멸망까지만을 따져봐도, 이 두 책이 다루는 "삼국시대"라는 기간은 거의 1천년에 달하는 긴 시간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이상한 일이나, 신비한 사건에 대한 기록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중에서 괴물에 관한 기록만을 추려내 보기로 했습니다. 모아보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합하여 대략 60 여종 정도의 괴물이 등장합니다.
일단, 말그대로 "괴물"을 골라내기 위해서, 그 겉모습이 보통 동물이나, 보통 사람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에는 제외 했습니다. 따라서 겉모습으로 구분할 수 없는 초능력자나 신선은 다루지 않기로 했고, 또 산 사람과 모습이 다를 바 없는 단순한 귀신이나 유령도 괴물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또, 대표적인 조선시대의 이야기책인 "용재총화"와 "어우야담" 두 서적에 언급된 괴물들도 뺐습니다. 비슷한 괴물들끼리는 하나로 묶어서 한 종류로 보았고, 겉모습의 차이가 미묘하게 있다하더라도, 어느 한 쪽에 대한 기록이 너무 부족해서 구분하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역시 둘 중에 하나만 택하였습니다.
한편, 괴물 자체의 묘사에 대해서는 두 책에 나온 기록 뿐만 아니라, 후대의 기록이나 유물, 옛 그림 등의 자료를 다소간 참조했습니다. 두 책은 고대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으로 둔갑하는 여우, 여우로 둔갑하는 사람"처럼 후대에 여러가지 변형판으로 널리 퍼지는 이야기들의 예스러운 형태가 드러나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런 뒷날의 풍성한 변화를 어느 정도 포함하기 위해서 두 책에 직접 언급된 이야기나 묘사 외에도, 후대의 목격담, 다른 변형판 등등의 이야기도 합해서 설명을 만들어 썼습니다. 그래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묘사가 단순하고 사실적이라도, 후대의 전설이나 일화에 보다 극적이고 괴기스러운 묘사가 있다면, 후대의 묘사를 더 적극적으로 차용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필요한 경우에는, 괴물의 유래나 영향에 대해서 주석을 달아서 다른 괴물이나 다른 문화 현상과의 관계를 짧게 써두기도 했습니다.
사실적이고 재미있는 그림이 있으면, 보기에 더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만, 일단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여러 유물 사진들 중에 분위기가 비슷한 것을 가져와서 자료사진으로 함께 실었습니다. 괴물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억지로 "뭐뭐 귀鬼" 라든가 "천天 뭐뭐", "선仙 뭐뭐" 하는 식으로 한자를 조합해 이름을 짓는 일은 피했습니다. 대신에, 책 원문에 나와있는 괴물을 묘사하는 한문어구를 그대로 발췌해서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또, 괴물이 발견된 지명이나, 괴물을 발견한 사람을 괴물의 이름으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두 책은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고 연구되는 대표적인 중세시대의 서적입니다. 그리고 또 김부식, 김경명 두 사람 중세인의 시각으로 고대를 다루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런즉, 60여 가지의 괴물들을 하나 둘 보다보면, 중세이전의 여러가지 신기한 것들을 구경하고, 거기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상상해 보는 재미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삼국사기 -
1. 신록
(신라 토우) 왕 또는 왕이 될 사람에게만 잡히는 신비로운 사슴으로, 보라색 혹은 자주색인 동물이다. 잡으면 왕이 되거나, 제왕이 될 수 있는데, 왕이될만한 사람에게는 순순히 잡혀주는 듯 하다. 그러나 그 외에는 보기조차 힘들다. "신록"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잡힌 기록은 기원전 14년, 103년, 483년 등등에 나타나는데, 백제에서, 특히 지금의 한강과 금강 사이 지역에서 잡힌 일이 다수다.
- 신기한 사슴을 잡았다고 자기가 왕이 될만하다고 자랑하고 좋아하는 일은 역사에 누차 나옵니다. 조선 초기의 왕들만 해도, 이성계, 이방원등 활솜씨가 독보적이고 사냥에 취미가 많던 인간들이 많아서 이런 이야기가 좀 나옵니다. 하지만, 갈수록 동물 잡는 것 하고 정치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합리주의가 대두되면서 서서히 사라집니다.
2. 노구화위남
(신라 토우) 요망한 괴물로 남녀와 노소를 마음대로 바꾸는 괴물이다. 단, 늙은 할멈에서 젊은 남자로, 혹은 젊은 남자에서 늙은 할아범으로처럼, 정해진 두 부류 사이에서밖에 바뀌지 못하는 듯 하다. 즉 늙은 할멈이 늙은 할아범으로,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로 변하는 예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하는 흉한 괴물이다. 기원전 6년에 백제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3. 신작
(가야 토기) 왕이 될 사람 혹은 왕의 집 뜰에만 내려오는 신비로운 새이다. 보통 서너마리, 혹은 너댓마리가 한꺼번에 돌아다닌다. 모습이 아름답고 내는 소리도 오묘한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어딘가 멀리서 날아왔다가, 또 갑자기 어딘가 멀리 날아기므로, 사람들을 신비스러운 분위기에 빠뜨린다. 하지만, 왕을 잘 찾아 온다는 기이한 습성외에 특별한 힘은 없는 듯 하다. 기원전 32년, 기원전 2년, 276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각국의 왕궁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4. 일수이신
(신라 토우) 어미와 새끼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번갈아 대를 이어가는 짐승이다. 어미는 머리가 넙적하고 뿔이 있으며 힘이 센 소를 닮은 동물이면, 새끼는 머리가 길쭉하고 갈기가 있으며 날렵한 말을 닮은 동물로 태어 난다. 그러나 그 다음 대에서는 이 갈기가 있는 동물의 새끼가 다시 뿔이 있는 동물이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그 다음 대의 새끼는 다시 갈기가 있는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다. 즉 모습을 번갈아가면서 세대가 이어진다. 한편 세대가 이어질 수록 다리의 숫자가 하나씩, 혹은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는 듯 보인다. 다시말해서, 어미가 다리가 넷이면, 새끼는 다리가 여덟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다리 하나인 어미가 자손을 낳기 시작하면, 3대째에는 다리 여덟짜리 짐승이 태어나고, 운이 좋다면, 10대까지 내려가면 다리가 1000개가 넘는 짐승이 태어날 수 있다. 고대의 점치는 사람들은 이 동물을 두 나라가 합해질 징조로 여긴다. 7년에 백제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다리가 보통보다 많은 기형 생물 혹은 샴쌍둥이로 태어난 생물에서 와전된 괴물로 보입니다. 다리의 숫자가 많은 가축을 기이하게 여겨서 중시하는 태도는 조선시대까지도 보이며, 현대적인 발생학과 유전학이 등장하기 전까지, 주술적인 사건으로 종종 이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거나 구체적인 징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다. 그러나, 7년 무렵의 고대 백제에서는 조정에 소속된 점쟁이/주술사가 있어서, 이 동물의 출현을 백제가 삼한 전체의 왕노릇을 하던 마한의 수도를 멸망시키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대단한 길조로 매우 중시했습니다. 386년 고구려 광개토왕이 당시 태자가 되었을 때, 655년 신라 문무왕이 삼한통일을 앞두고 당시 태자가 되었을 때 등에도 등장합니다.
5. 이수약우
(신라 토우) 코가 긴 커다란 네 발 짐승인데 털이 거의 없으며, 꼬리도 상당히 긴 동물이다. 특별히 민가에 나타나는 동물은 아니며 특별이 포악하지도 않다. 그러나 결코 만만한 가축은 아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이 강하며 식성이 좋아서 이 동물의 이동이나 행동을 제지하기란 어렵다. 전체적으로 소나 코끼리와 비슷한 짐승이라고 볼 수 있으나, 훨씬더 커다란 짐승이며, 몸이 길다랗게 생겼다는 느낌을 주는 편이다. 799년에 신라의 우두주 도독이 발견하여, 현성천에서 오식양으로 가는 모습을 조정에 보고한 적이 있다.
- 훗날 유행하는 불가살이 계열 동물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고대 형태입니다. 코끼리를 처음 본 사람이 느낀 신비로움이 괴물로 구체화 된 것으로 생각하면 거의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삼국시대의 "이수약우" 목격담에 중국 고전의 "맥" 등의 이야기가 융합되면서 점점 묘사가 구체화된 듯 보입니다. 이 삼국사기 기록 속에 있는 799년 신라에서 일어난 사건은 당시 대외 교류가 활발하던 신라에서, 외국에서 들어온 코끼리가 탈출한 사건으로 짐작해 볼만 합니다. 탈출한 코끼리가 즉시 목격된 것일 수도 있고, 새끼 코끼리일 때 놓쳤다가 산에서 살던 코끼리가 장성해서 799년에 발견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코끼리라는 동물자체는 고대로 부터 알려져 있었고, 불교전래 이후 활발히 언급되었습니다. 하지만, 크기와 질감까지 표현한 사실적인 그림이나 사진자료, 직접 본 사람 등등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충분히 이상한 괴물로 오해될 법합니다. 한편, "불가살이" 설화는 고려말의 혼란상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막상 널리 이야기가 퍼지고 기록으로 본격 정리되는 것은 19세기에 나온 "송남잡지" 정도로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6. 황룡
(황룡사 터에서 발견된 부조) 번개와 함께 출몰하며 번개를 다루는 누른 빛깔의 용이다. 신라사람들의 도덕과 윤리 특히 불교를 돕는 용으로 소문나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이며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듯 하나, 지금의 경주 땅에 있었던 황룡사를 쉬어가는 곳으로 여기고 있다. 황룡사에 창건과 관련된 전설로 유명한 용이며, 기원전 35년, 238년 등 여러차례에 걸쳐 골령 등지에서 출현한 적이 있다.
- 조선 이후로는 모든 용들은 비를 내리는 것을 관장하는 존재로 확연히 굳어집니다. 그런데, 의외로 황룡은 비 보다는 번개와 직접 연결되고, 비는 간접적인 상징으로만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황룡은 용 중에서 사람들과 가까운 편으로 묘사되는데, 삼국유사 등에 나와 있는 해모수가 타고 다녔다는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라든가 하는 것 역시 황룡과 관계된 일로 짐작할만합니다. 사는 장소로 따질 때에도, 보통 용은 강이나 바다, 물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으나, 황룡은 하늘과 소통하는 동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음양오행 등을 따져서 보통 용 그림은 "청룡"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림으로 그려놓으면 청룡과 황룡이 색상이 선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황룡은 청룡과 사이가 안좋아서 싸우는 존재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황룡은 신라 혹은 신라 불교를 수호하는 상징으로 굳어 있는데, 용이 어떤 사상이나 나라의 수호자가 된다는 이야기는 불교를 통해 인도의 "불타팔부중"이야기가 들어와서 영향이 받은 점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 "불타팔부중"의 인도 용과 황룡의 모양은 전혀 다른 듯 합니다. 한편, 음양오행의 의미를 따져서, 황색을 띈 용을 위엄이나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서 군사상의 표식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조선때까지 이어 집니다.
7. 흑룡
(고구려 무덤 벽화) 검은색 용으로, 지하에서 지하수를 따라다니며, 보통 각지의 우물을 통해 지상 밖으로 가끔 기어나온다. 매우 검은 먹구름을 불러와서 세상을 캄캄하게 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몰려온 먹구름을 자기 마음대로 다루지는 못한다. 그래서 먹구름 때문에 지상에서 날아다니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먹구름 속에서 헤메며 골치아파 하기도 한다. 특별히 사람을 공격하는 습성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자칫 위험한 동물로 강조되며 불길한 느낌을 주는 동물로 이해되었다. 316년, 455년등 여러차례에 걸쳐 목격되었으며 주로 백제 지역에서 나타난 적이 있다.
- 조선 이후로는 모든 용은 비를 내리는 것을 관장하는 존재로 확연히 굳어집니다. 그런데 의외로 흑룡은 비와는 거의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용입니다. 조선 이후, 용에 대한 기록 중에 사실적인 목격담이나 묘사가 풍부한 것은 대부분 회오리 바람의 모습을 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한국 근처에서는 "용오름 현상"이라는 이름으로 바다에서 회오리 바람이 간혹 발생하는데, 이것을 용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회오리 바람의 색깔은 흰색이 됩니다. 따라서 사실적인 용 목격담은 백룡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시각적으로 흑룡은 백룡과 대조되므로, 백룡과 흑룡이 싸운다든지, 백룡은 선을 상징하고 흑룡은 악을 상징한다든지, 백룡은 조선왕조와 태조 이성계를 상징하고 흑룡은 그 반대파를 상징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도 갈수록 생기게 됩니다.
8. 노구화호
(고구려 무덤 벽화) 늙은 할머니가 여우로 변하는 것이다. 여우가 늙은 할머니로 잠시 변한 상태 였다가,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짧은 시간 사이에 가볍게 변해 버리기 때문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한다. 여러가지 요술을 익히고 기이한 일을 배운다거나 잔꾀를 써서 세상에 안좋은 일을 하는 요괴스러운 느낌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에게 강한 호감을 주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일 때는 유난히 피부가 뽀얀 것이 특징이다. 501년에 백제의 서울땅에서 목격된 적이 있다.
- 501년의 이 사건은, "여우로 둔갑하는 사람" 혹은 "사람이 둔갑하는 여우" 가 나타나는 기록 중에서 거의 최초 무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고려 말 조선 초의 이야기에 나오는 노호정, 즉, "늙은 여우의 정기"는 여우의 요술스런 기운 자체가 사람 같이 생긴것을 만들었다던가, 혹은 여우의 자손인데 사람의 형상을 했다든가 하는 식의 제3의 존재 입니다. 하지만, 노구화호의 경우에는 사람과 여우로 왔다갔다 변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그래서 유럽권의 늑대인간 전설류와 흡사한 면이 많습니다. 조선 때 "성호사설" 등에 실린 묘사를 보면, 여우에서 사람으로 변할 때에는 빠르게 달리면서 네발로 달리다가 두발로 달리다가를 번갈아하는 가운데 어느새 두 발로 뛰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앞다리를 입에 대는 듯한 동작을 하면서 두발로 달리려고 한다는데, 네 발과 입끝이 먼저 사람처럼 변하고 차차 온몸이 사람으로 변해간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9. 흰 여우
(신라 무덤 장식 조각) 요사스러운 여우로, 사람의 일을 이해하고 사람 말을 할 줄 알아서, 여러가지 술법을 익힌 동물이다. 사람처럼 행세하며 걸어다니고 집에 들어와 말을 하며 일을 저지르는 등 여러 일을 한다. 움직임이 날쌔고 묘한 술법을 잘 알아서, 날렵하게 사람사이를 뚫고 다녀서 관청이나 궁궐 속으로라도 침입할 수 있을 지경이다. 다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두렵게 여기고, 사람보다 못한 존재가 자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우연히 사람들의 꼴이 비웃음을 살만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사람을 업신여기고 농락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흰 여우가 너무 설치고 다니면 세상꼴이 꼴같잖다는 뜻으로, 나라 망할 징조로 불리울 정도로 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능력 이상으로 요망한 장난을 치는 마귀에 가까운 동물로 불리운다. 장수하는 동물이라서, 가끔 오랫동안 살면서 요술을 익히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여우니 만큼 여우굴에서 사는데, 이 여우의 여우굴은 사람처럼 책과 가구로 치장해 놓은 경우가 많다. 백제 멸망이 가까워오던 659년 백제의 궁궐에 침입한 적이 있다. 백제의 정승인 상좌평 직위의 집무실 책상 앞에 걸터 앉아 자기가 정사를 집행하는 냥 시시덕 거렸다고 한다.
- 간악한 동물의 대표로 꼽히는 동물로, 훗날 여러 문헌에 수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조선 때 "한죽당섭필" 등의 기록을 보면, 사람의 술을 훔쳐 먹다가 잡혔는데, 사람의 말을 하기도 하고, 그 여우굴 속에 요술을 부리는 방법이 설명된 책을 숨기고 살고 있다는 등의 묘사가 나옵니다. 다양한 변신술을 익힌 것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10. 사비하대어
(신라 토우) 민물, 강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로, 길이는 수십미터에 이른다. 보통 깊숙한 바닥에만 숨어 있으며, 결코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으므로 거대한 몸집에 비해서 결코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나라의 운수와 사람의 도덕성 등을 감지하는 신비한 동물인듯 하여, 사람들의 비명이나 울음, 절망이나 탄식이 잦아지면, 이 물고기는 그만큼 고통을 느끼고 늙어가는 습성이 있어 보인다. 때문에 자신이 사는 강 근처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시련을 겪거나 위험에 빠지게 되면, 병 들고 죽어 버리게 된다. 백제 멸망을 앞두고, 659년에 지금의 부여 백마강인 당시 사비하에서 발견 된 적이 있다.
- 크고 괴상한 물고기는 보통 바다에서 이상하게 큰 고래를 발견한다든가, 혹은 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죽은 돌고래등을 발견하는 경우가 와전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백마강과 같은 내륙 지역의 강에서 발견되는 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서, 이렇게 고래를 착각하는 이야기와 뚜렷이 구분됩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은 대표적인 흉조로 널리 퍼져 있는 것인데, 이런 일들은 보통 녹조현상이나 적조현상 혹은 기온 이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 평소에 결코 잡거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기이한 물고기도 같이 죽어 나오는 경우가 있을 텐데, 이 역시 그런 경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1. 칠십삼척
(신라 토우) 매우 거대한 거인으로 목격된 사례는 여자 뿐이다. 바다 먼 곳의 섬나라, 혹은 바다 속 사람이 살 수 있도록 공기가 차있는 동굴 따위에서 살 것으로 보인다. 조선 때 "탐라지" 같은 책에 수록된 신화 속의 인물이나 뜬 소문으로 간접 채집된 기록등을 제외하면, 기록된 거인 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크기이다. 그 키가 수십미터에 이른다. 한반도까지 떠내려와서 목격된 것은 오직 여자로, 남녀 간에 습성이나 풍속이 무척 다른 것으로 보인다. 몸에 비해 발은 무척 작아서, 비율로 보면 사람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처럼 땅위에서 달리거나 걷는데 능숙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항상 물에서 헤엄을 치거나 엎드려 기어다닌 듯 하다. 옷을 입지 않거나 단순한 옷의 헐벗은 차림으로 다닌다. 백제에서 지금의 충청도 일원 바다 근처에서 659년 시체가 떠올라 발견되었다.
- 기록이 엇갈리는데, 659년, 661년, 667년 세 차례의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흩어져 나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수미터 정도의 크기로 거인들 치고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크기가 수십미터에 이르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2. 호여인곡성
(고구려 무덤 벽화) 사람처럼 생각하는 나무로 모습은 회화나무 처럼 생겼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선채로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어찌되었든 나무이므로 어떠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는 못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의사를 사람에게 표출하는 방법은 우는 것 뿐인데, 사람이 곡하는 소리와 매우 닮은 소리를 낸다. 그 외에는 어떠한 표현을 할 수 없고, 또 이렇게 소리내어 우는 일을 하는 것도 일평생 몇차례 하지도 못할 만큼 힘겨운 일이므로, 결코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사람처럼 성대로 소리내어 우는 것이 아니라, 특이한 방식으로 몸을 떨어 소리를 내어 울기 때문에,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기이하게 흘러다니며, 한참 동안 돌아다닌다. 때문에 낮에 곡하는 소리를 낸다면, 밤에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에서 갑자기 그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등의 일이 있을 수 있다. 백제에서 659년 지금의 부여땅 궁궐에서 발견 된 적이 있다.
- 회화나무는 중국 고전에서부터 신령스러운 나무로 불리웠기 때문에, 관련된 여러가지 기이한 일이나 귀신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글자로 쓰는 방법에 따라서는, 식물학상의 회화나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묘한 영험이 있는 나무를 통칭해서 부르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사람처럼 울었다는 것은, 바람이 기묘하게 불 때 나는 소리를 우는 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고, 나무가지 사이를 지나는 묘한 바람 소리라든가, 바람이 불때 나무가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에서 착각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때문에 현대에 이르기 까지 나무가 사람처럼 우는 이야기는 많이 나옵니다. 한편으로, 이 괴물은 외부와 전혀 상호작용을 할 수 없지만, 모든 생각을 다 할 수 있는 존재라서, 철학적인 고찰의 소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존액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뇌" 같은 이야기와 비슷한 류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3. 무고경주
(신라 토우) 형태도 없고, 소리나, 빛깔도 없는 괴물인데, 나타나면, 갑자기 사람에게 무서운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 매우 무서운 것이 나타나 자기를 잡아 간다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그 무서운 마음은 주변 사람들에게 삽시간에 퍼져나가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면, 수백, 수천명이 미친 듯이 겁에 질려 도망치게 된다. 너무나 무섭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 도망치다가 몸을 다치거나, 물건을 부수게 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매우 위험하다. 660년 백제에서 지금의 부여 땅에 있던 시장통에서 나타나, 대혼란을 일으켰다. 대체 무엇때문에 갑자기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는지, 어떠한 이유도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 둘 사람들이 도망치게 되자, 큰일 난 것이 아닌가 싶어 너도나도 정신나간듯이 도망가게 되었는데, 이때 밟히고 넘어져 죽은 사람 숫자만 1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 정황이 불안할 때, 일단의 모여 있는 사람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정신병적 공황(panic) 의 극적인 모습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이것을 어떤 괴물이나 귀신의 등장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가끔 발생하는 일인데, 역대 다른 어느 묘사 못지 않게,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멸망을 앞두고 민심이 흉흉할 때 일어난 이 사건이 그럴듯해 보입니다.
14. 견상야록
(백제 무령왕릉 출토 유물) 사슴과 같은 뿔이 있고 털의 무늬도 사슴과 같지만, 크기나 입의 모양, 식성이나 행동은 개와도 비슷한 개와 사슴의 중간쯤 되는 묘한 동물이다. 짖는 소리는 개에 가깝다. 겁이 무척 많고 살육이나 불길한 일을 미리 잘 눈치챌 만큼 예리한 감각을 갖고 있어서, 재난과 재해, 맹수와 사냥꾼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피할 수 있을 법한 동물이다. 겁이 많아서 사람 근처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같이 사는 근처 사람을 죽이러 오는 살인자가 있다든가 하면, 짖는 소리를 내서 알려 주기도 한다. 크기도 작고 다리도 짧은 편이나, 달리는 속도는 매우 빠르다. 몸을 교묘하게 잘 숨기고, 숨은채로도 잘 돌아다녀서 무척 잡기는 힘들다. 660년 백재에서 지금의 부여 땅에 있던 백제 왕궁에 나타나 짖은 뒤에 사라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해가 지나기 전에 신라와 당나라의 침공으로 백제는 멸망했다.
- 묘사나 습성을 보건데,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돌짐승을 연상케 하는데가 있는 동물입니다. 죽은 임금에게 나쁜일이 생길 듯 하면 알려주라고 같이 묻었던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15. 심삼척허귀
(신라 태종무열왕릉비 아랫부분 조각) 땅 속 1미터 즈음의 깊이에서 사는 거북을 닮은 파충류 짐승으로, 등과 배가 딱딱하고, 특히 배에는 복잡하게 새겨진 무늬가 있다. 가끔은 그 무늬가 글자나 어떤 모양처럼 보이기도 한다. 땅을 파고 다니며, 식물 뿌리나 땅속의 벌레등을 잡아 먹고 사는 동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무서운 환영을 몰고다니는 특징이 있다는 점이다. 독특한 지하생활을 하기 때문에 호흡하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기체를 내뿜고, 이것이 강력한 환각제 혹은 귀신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이것이 땅속에 기어 들어왔을 때, 사람이 그 근처를 지나면, 기묘한 환각이나 귀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660년 백제 멸망을 앞두고, 왕궁 앞에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사람들은 귀신이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 라고 외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 거북이 등딱지 등을 가지고 점을 치던, 갑골문에 대한 주술적인 느낌이 있는 사례라 할만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도 이 거북이의 배에 백제와 신라의 운명에 대한 글귀가 짤막하게 새겨져 있어서 그 해석을 놓고 충신과 간신이 대립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궁전에서 무당에게 물어보는 광경이 나오는데, 무당은 제대로 해석을 하는 충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무당을 나라에서 지원하면서, 왕과 신하들이 신비한 일에 대해 묻거나, 주술적인 의식을 부탁하거나 하는 일은 이후 1천년 후 무렵인 조선초까지만 해도, 조정에서 꽤 자주 공식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종 때부터 점차 폐지하고 약화시키는 분위기로 갔다가, 성종과 연산군 시절을 지나면서 명맥만 남는 정도로 유야무야됩니다. 그러다가 1515년에 국무, "돌비"란 사람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으로 금지하면서 서류상으로 폐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613년에 "수연개"라는 70세의 늙은 마지막 국무가 비공식적인 활동마저 중단 당하여 사실상 완전히 명맥마저 사라지게 됩니다.
- 기록된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중심으로 보건데, 가장 귀신, 괴물 이야기가 사상 어느 시기보다 중요하게 쏟아지는 때가 바로, 7세기 중엽 백제 멸망 직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삼한통일의 역사적인 충격을 당대, 혹은 후대에 어떤식으로 느끼고 있는지 간접적인 문화자료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6. 금와
(신라 토우) 개구리 처럼 생긴 양서류 같은 것인데, 색깔은 금속 광택이 나는 금빛이 돈다. 사람처럼 생겼고, 사람이 기르면 상당히 총명한 사람으로 남과 다를 바 없이 살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그 모습도 점차 자라면서 보통 사람과 다를바 없게 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커다란 바위 밑이나 바위틈 같은 곳에 둥지를 만들어 숨어서 살아간다. 잘 숨어 있기 때문에 눈치채기는 쉽지 않은데, 말과 같은 가축은 눈치를 채고 멈추어 서게 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고구려때, 고구려 초기에 부여 지역에서, 주몽의 탄생과 관련되어 부여의 왕자와 왕인 "금와왕"에 관련된 이야기로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는 금와왕이 바로 어린 시절 바위 밑에서 발견된 금와였다고 되어 있다.
- 사람, 특히 아기를 개구리로 보는 것은 기형의 일종인 무뇌증 (anencephaly) 에서 유래한 전설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뇌증은 인간의 수정란이 발생하다가 뇌가 없는 형상이 된 것으로, 정형화된 기형증상 중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이야기가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출생후에는 생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삼국사기에 기록된 금와 이야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편 개구리를 닮은 사람이 숨겨져 있다가 은밀히 나타났으며, 말과 행동이 사람과 다를바 없다는 면에 주목해보면, 털이 없고, 몸에서 빛을 발하는 외계인 이야기들과 통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17. 백장
(신라 토우) 눈처럼 하얀 빛깔의 노루이다. 눈은 파란색이나 붉은 색이다. 귀한 존재로 여기고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으나 소문과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 매우 값지고 아름다운 생물로 여긴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잡아보면 특별한 약효도 없고,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닌 그냥 색깔만 흰 색인 노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흰 노루의 가치에 대해서 별별 소문이 다 돌았기 때문에, 시세가 좋을 때는 그 가격이 쌀 10톤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매우 비싼 값에 거래되었던 동물이다. 흰 사슴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기원전 98년, 기원전 18년 무렵 부터 799년 까지, 고구려 지역과 만주 지역은 물론이요, 한반도 각지에 걸쳐 여러번 나타난 기록이 있다. 213년 백제의 초고왕은 서쪽 사람인 회회에게, 현재 시세로 환산해서 4천만원 정도를 백장 한 마리 값으로 줬다는 기록이 있다.
- 빛깔이 흰 동물은 대부분 알비노 증후군 등으로 생긴 특이한 변이입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속에 나오는 백장은 값비싼 가치와 희귀하다는 말에 비해서 따져보면 별로 드물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10차례 가까이 발견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천수백년 전인 당시에 혹시나 아직 멸종되지 않은 흰 빛이 도는 사슴, 순록, 노루 종루의 동물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상상해볼만 합니다.
18. 양액유우
(고구려 무덤 벽화) 겨드랑이 부터 팔까지 새처럼 깃털이 길게 나 있는 사람이다. 날개라고 볼 수 있으나, 두 팔 외에 따로 날개가 돋아 있는 것이 아니라, 팔 자체가 날개와 닮은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날아다닌다거나 할 수는 없다. 겉보기 모습 이외에 특별히 사람과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다만, 지혜나 신체적 능력 면에서 어느정도 뛰어난 편이다. 사람의 수준을 초월하는 요술을 부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재능있고 실력이 출중한 사람으로 기량을 뽐낼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주위에서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고,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심하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숲속이나 산속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5년에 고구려에서 왕이 사냥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결국 등용해서 신하로 삼은 뒤에 우(깃 우羽)씨 성을 쓰도록 했고, 왕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은 적이 있다.
- 날개가 있는 사람이 뛰어난 재능이 있는데, 그것을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류의 이야기는 조선에 이르러 특히 더 유행하게 됩니다. 이것은 1400년대에 남이 나 이징옥 처럼, 젊은 나이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으나, 시기하는 무리들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일이 널리 회자되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하여, 전국 각지에는 소위 "아기장수" 이야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매우 재능이 있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을 우려해서 미리 죽여 버린 다는 류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중에 많은 경우 종종 날개나 깃털이 신체적인 특징으로 제시되곤 합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성경의 일화와도 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전래 이후에 더욱 확산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고, 뒷날의 "아기장수" 이야기와 5년의 고구려 이야기를 대조해서 보면, 호탕한 왕에 대한 칭송담이라고 볼 수도 합니다.
19. 거루
(고구려 무덤 벽화) 보통 말의 수준을 넘어선 놀라운 명마로, 고구려 대무신왕이 지어준 이름이 "거루馬巨 馬婁" 이다. 구체적인 묘사 중에는 붉은 색 얼룩 무늬가 있는 백마의 모양으로 기록된 것이 전하고 있다. 빠르고 오래 달리며, 사람의 말을 알아 듣고, 슬픔을 표현할 때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다른 말들을 지휘하여 스스로 이끌고 다니는 말의 왕행세를 하기도 한다. 20년에 고구려의 골구천이라는 곳에서 사냥하다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 한반도 북쪽 지역과 만주 지역과 관계되어 왕들에게 자주 보이는 말과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부여에 비해 고구려가 더 좋고, 고구려 왕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주몽이 말키우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고구려 초기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당연히 몽골이나 여진족 등의 유목민족 일화에는 심심하면 등장하는 형태의 이야기인데, 조선 초기의 왕들이 이름을 붙여 몇 마리 명마니 하는 것을 몰고다닌 일화도 이런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 적오
(고구려 금동관 장식) 붉은 까마귀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보통 삼족오 라 불리우는 기이한 형상의 까마귀와 닮은 새 종류를 통칭한다. 까마귀와 거의 같은 모습의 검은색 새 인데, 붉은 빛을 내 뿜고 있으며, 크기가 좀 큰 편이다. 대체로 다리의 개수가 보통 새 보다 많은 것으로 모습이 묘사 되어 있다. 이것이 날아든 곳, 혹은 이것을 잡은 왕이나 장군은 전쟁에서 꼭 승리한다든가 내뿜는 색깔 변화에 따라 싸움에서 어느 편이 승리할지 예언한다는 이야기가 돈다. 태양에서부터 왔다든가, 태양이나 달이 바로 이 새라든가, 다 자라면 엄청나게 커져서 수백 수천 미터에 이른다든가, 다시 태양으로 가서 그 불덩이를 먹고 살게 된다든가, 여러가지 다양한 설들이 있고, 아름다운 빛깔로 여러 요술을 부리는 봉황의 조상이라고도 한다. 20년에 부여의 왕이 처음 잡았다. 그런데 적오를 잡은 부여 왕은 이제 고구려에게 이길 수 있겠다는 기세등등한 자신감에 고구려에 적오를 보내어 과시한다. 그런데, 고구려 조정에서는 부여에서 갖고 있던 것이 고구려로 온 셈이니, 고구려야말로 부여를 이길 수 있겠다고 주장 하여, 도리어 고구려의 사기를 올린다. 이를 보고 부여왕은 매우 후회 했다고 한다.
- 중국 고전 속의 주작, 봉황 이야기나,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기이한 새들에 대한 상상력, 다양한 고대의 장식품에 나타나는 새 형상 등등과 어울려, 다양하게 고대 문화를 상징하는 새 입니다. 처음에는 까마귀와 닮은 점이 확연한 새의 형태로 나타납니다만, 후대로 갈수록 이런류의 신비하고 강력한 새들은 주로 모습이 점차로 닭과 비슷하게 온순한 새로 변화하고, 중국 고전의 봉황, 주작이나, 몽골의 매 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흡수되고 섞여서 단순한 까마귀 모양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21. 경어목야유광
(신라 토우) 바다 속에서 사는 커다란 짐승으로, 고래와 비슷한 모습이다. 그런데 어두운 곳에가면 눈에서 빛을 뿜을 수 있기 때문에, 밤 바다를 환하게 비출 수 있다. 그 빛으로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물고기를 불러 모을 수 있기에, 그 속임수로 사냥을 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래를 잡은 뒤에도 밤이 되면 눈에서 빛이 나기 때문에, 이 고래의 눈을 도려내면 불 없이도 빛을 비출 수 있을만 하다. 47년에 고구려의 지금 동해안 지역에서 고주리라는 사람이 한 마리 바친 적이 있다.
22. 적시백어
(가야 토기) 날개 달린 물고기 이다. 몸은 흰색이고 날개는 붉은 색으로 크기는 그다지 크지는 않다. 수심이 깊지 않고 강과 시내로 연결되지 않는 내륙의 연못에서 아늑하게 살며, 흐르는 물이나 깊은 물에서는 살지 못한다. 붉은 날개로 날아 올라 다른 연못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디 물 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는 동물이므로, 이렇게 날아다니는 것을 자주 하지는 않는다. 오직, 커다란 홍수를 앞두고, 연못물이 넘칠 지경에 이르면, 그때 살기 위해서 물밖으로 나온다. 습기와 날씨를 미리 알아채서 다른 연못으로 이동해 홍수 지역을 피하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59년에 고구려의 고안연이라는 연못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발견된 후에 매우 극심한 홍수가 일어났다.
23. 삼각록
(신라 토우) 뿔이 셋 달린 사슴과 비슷한 네 발 짐승이다. 보통 뿔 하나는 크고 뿔 두 개는 작거나, 뿔 두 개는 크고 뿔 하나는 작은 모습이다. 근처에 있는 사람, 동물 내지는 먹이를 주는 사람과 동물에게 항상 행운을 주는 신비로운 힘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이 갖혀 있어서 갑갑한 느낌을 가져서, 고통 받는 소리를 지르고 울음소리를 내거나 하면, 크게 놀라서 죽어 버렸다고 믿었던 듯 하다. 상당히 멀리서 들리는 울음소리나 신음소리도 알아 듣고 비실비실거리다가 죽는 수가 있을 정도라고 짐작된다. 77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삼각록을 얻게 되자, 이를 이유로 각종 고문을 중단하여 서둘러 죄수들을 방면했다고 한다.
24. 장미토
(고구려 무덤 벽화) 꼬리가 길다란 작은 동물로 귀가 길어서 토끼와 비슷하다. 길을 잃거나, 먹을 것이 없는 짐승 앞에 일부러 나타나서 길을 알려주거나 먹을 곳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등 착한 일을 하다가 도리어 사냥당하는 등 억울한 일을 많이 겪는다. 그래서 억울하게 갑작스런 위기에 놓인 동물의 상징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나 다른 짐승에게 잘 속고, 조금만 정성을 들이면 금방 친하게 따르며 믿는 습성도 있다. 그 때문에 쉽게 멸종되어 없어진 듯 하다. 영리한 편이라서, 간혹 사람말을 알아듣고 도구를 사용하고 사람 사는 이치를 이해하게 되어, 옷을 입고 작업을 한다든가 하는 경우도 있다. 77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장미토는 소위 "신명후예"인 경우가 많을 것으로 연결해 볼 수 있다. 신명후예는 성스러운 존재의 자손으로 각종 동물이나 사람이 해당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몸속의 장기를 잠시 동안 인위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경우에 몸 밖으로 그런 장기를 꺼내서 따로 보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통 자기 종류의 평균에 비해서 영리한 편이다. 642년에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선도해와 술을 마시다가 가장 유명한 판소리, 동화 중의 하나인 "별주부전" 이야기를 하다가 언급한 바 있다.
25. 모색심명
(신라 무덕 조각) 털 가죽이 밝게 빛나는 특징이 있는 거대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이다. 꼬리가 없어서 사람처럼 다닐 수도 있으며, 온 몸에는 검은 색 얼룩무늬 줄무늬가 마치 호랑이 처럼 나 있다. 영리한 동물이며, 크기도 보통 3,4 미터 정도로 거대해서 힘도 상당하다. 때문에 보통 호랑이, 표범 등에 비해 훨씬 귀하고 잡기 어렵다. 105년에 고구려에 온 부여의 사신이 선물로 바친 적이 있다.
26. 주표
(신라 그릇 손잡이 장식) 빨강색 털로 뒤덮힌 나는 표범이나 삵쾡이 같은 맹수이다. 꼬리가 2미터 이상으로 몸 길이 보다도 더 길 정도라서, 이 꼬리를 이용해서 나무에 매달리거나 동물을 휘감거나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만큼 꼬리를 붙잡힐 위험이 많아서, 꼬리를 말고 다니거나 휘감고 다니거야 해야 하는 등, 고생도 많다. 107년에 고구려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27. 계룡
(신라 토기) 머리는 닭처럼 생겼고, 몸은 거대한 뱀처럼 생긴 동물이다. 크기와 굵기는 용만큼 큰 편이다. 색깔은 머리 부분 혹은 몸 전체가 흰 빛으로 되어 있고, 순식간에 움직이며 아주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다. 사람의 수정란이나 태아, 혹은 갓난아기를 잡아 먹을 수 있는데, 이렇게 될 경우 먹게 되면, 소화되는 것이 아니라, 뱃속에 있는 주머니 같은 장기에 넣은채로 계속 자라나게 된다. 그러면, 태아나 아기는, 사람의 태반과 매우 흡사한 계룡의 뱃속에서 자연스럽게 기생하게 된다. 아기가 너무 많이 자라는 동안 계룡은 다양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계룡은 결국 죽는데, 계룡이 죽게되면, 아기는 배를 찢고 나오려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자란 아기는 입이 닭부리 모양으로 되는데, 계룡의 몸밖으로 꺼내서 맑은 물을 많이 접하면서 키우면 얼마지 않아 보통 사람의 입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원전 53년에 신라에서 지금의 경주 지역, "아리영 우물"이라는 우물에서 나타났다고 한다. 이 동물의 배를 가르고 한 할머니가 아기를 꺼냈는데, 이 사람이 박혁거세의 아내가 되어 신라의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28. 유자기
(신라 금관) 스스로 움직이는 커다란 나무로 보통 버드나무와 비슷한 종류이다. 걸어다닐 수도 있을 정도이나, 너무나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에 한자리에 가만히 있고 극도로 움직임을 꺼린다. 가끔 가뭄이 너무 심해서 말라죽을 정도의 날씨가 되면, 살기 위해서 물이 가까운 곳으로 조금 움직인다거나 한 두 발 걸어간다거나 하는 정도이다. 수분과 땅의 양분, 빛의 밝고 어두움 정도를 느낄 뿐 특별히 눈코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253년에 지금의 경주땅에서 발견되었다.
29. 성광입구
(백제 벽돌) 별빛 처럼 빛나며 날아다니는 이상한 기생생물이다. 처음에는 남자의 몸속에서 살며 기생하다가, 남자가 장성할 무렵이 되면, 남자의 정자를 먹어치우며 살고 그 정자를 몸속에 저장한다. 그러다가, 남자의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그때부터는 밤이나 새벽에 날아다니며 움직이고 낮에는 숨어 있게 된다. 항상 습기를 머금어야 살 수 있으므로, 보통 물가나 우물근처에 숨어 있는다. 어두워진 후에 움직일 때는 힘을 많이 소모한다. 때문에 날아 올랐을 때는 별처럼 빛을 내며, 한 자리에 앉아 물속에 가만히 있을 때에는 마치 태양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마침내, 길가던 여자의 입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몸속에 품고 있던 정자를 이용해서 여자를 임신시킨다. 임신한 아이가 여자라면 더 이상 살지 못하고 결국 죽게되지만, 임신한 아이가 남자인 경우에는 다시 이 남자의 몸속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계속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데, 생명이 위급해 질 수록 진한 향기가 난다. 삼국사기에는 유례이사금의 어머니가 임신한 경우로, 삼국유사에는 범일법사의 어머니가 임신한 경우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이상한 빛을 먹고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신비로운 출생을 강조하기 위해 누대에 걸쳐 여러번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아무래도 태몽을 이야기한 것이 와전된 경우로 보입니다. 이 임신을 시키는 빛 덩어리의 이야기들을 대체로 종합해보면, 이것을 일종의 기생생물처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0. 일각록
(고구려 벽화) 머리 가운데에 뿔이 하나 달린 사슴이다. 결코 민가 근처에 나타나지 않고 인간의 흔적 근처에 보이지 않으므로 발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동물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날씨가 좋고 곡물이 잘 자라나서, 민가에 먹을 것이 많아지고 풍요가 넘칠 기미가 있으면, 그 풍요와 번영을 구경하러 사람 곁에 아주 간혹 나타나는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동물 자체가 풍년과 온 세상에 경사가 생길 상징으로 추앙 받는 동물이라 할만하다. 376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고, 그 해에 크게 풍년이 들었다.
31. 개이죽엽
(신라 토우) 귀에 대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자라나는 사람과 닮은 독특한 종족이다. 바람 처럼 등장해서 바람처럼 사라지므로 정처를 알 수 없고, 정체도 알기 어렵다. 싸움에도 매우 능하며 말이 별로 없는 무뚝뚝한 편이다. 보통 수백수천 정도의 무리로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깊은 산속이나 숲속에 살고 있다는 볼수도 있고, 지하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볼수도 있다. 존경이나 맹세를 할 때 혹은 중요한 일을 겪을 때 등등 특정한 이유에 따라 귀에 있는 대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떨어지게 된다. 수명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의 1대 보다는 긴것이 거의 확실하다. 297년에 신라에서 지금의 경주 땅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서고국의 군사가 침공해 왔을 때 갑자기 나타나 신라를 도와 물리쳐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죽은 미추왕, 혹은 미추왕릉과 관련있다하여,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32. 대영차
(가야 토기) 뿔이 달린 물고기로 바다에 살며, 크기는 매우 커서 1미터를 넘기는 정도 이다. 416년에 신라, 동해에서 잡힌 물고기다.
- 뿔이 달린 물고기에 관한 기록은 보통 머리뼈가 이상하거나 몸에 이상한 돌기가 있는 물고기를 잡은 기록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이한 심해어나 괴상한 종류의 복어류를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특히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이후에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어촌의 생태를 잘 몰라서 생전처음 보는 기이한 물고기 모양에 놀라서 괴물로 여긴 경우가 많을 법 합니다. 그런데, 416년의 경우는 이 정도로 거대한 모양을 볼작시면, 외뿔고래(monodon monoceros)일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외뿔고래는 길고 단단한 뿔처럼 생긴 이빨 하나가 튀어나온 기이한 고래인데, 현대까지 북극권에서 주로 살고 있습니다. 발견지가 동해인 것을 보면, 기상이변으로 갑자기 동해에 한류가 유입되었을 때, 특이한 외뿔고래 한 마리가 나타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물고기를 잡은 사람이 북극권까지 표류했다가 살아돌아왔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외뿔고래의 죽은 사체, 뼈 같은 것을 우연히 건져내서 보인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33. 백치
(고구려 무덤 벽화) 흰 색 꿩으로 꼬리가 매우 길어서 1미터를 훨씬 넘는다. 비교적 자주 보이는 동물이나, 매우 아름다운 생물이라서, 기념품과 나라간의 선물로 귀하게 여겼다. 496년, 793년 등등 여러 차례에 걸쳐 주로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나타난 적이 있다.
- 역시 알비노 증후군으로 발생하는 동물입니다. 꿩은 상당히 흔한 동물이고, 현대에도 비교적 숫자가 많은 야생동물이기 때문에, 백치는 최근에도 발견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대에는 단순히 신기한 경우를 넘어서서 아름답고 신비로운 상징으로 여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34. 육안귀
(가야 토기) 비늘이 있고, 털이 없는 동물인데, 걷는 모습과 딱지로 둘러쌓인 모습은 달팽이나 거북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달팽이 눈 같은 식으로 눈이 여러 개 튀어나와 있는데 그 숫자는 여섯개이다. 배 아래쪽에 복잡하고 묘한 무늬가 생기고 꾸물거리면서 자꾸 변하는데, 마치 글자처럼 보일 때가 있다. 488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35. 목우사자
(고대 청동 거울) 호랑이나 사자를 닮은 맹수 모양의 짐승이다. 피부는 마치 나무 껍질과 같아서 창칼로 공격해도 당할 수가 없으므로, 만약 여러마리가 사람들을 공격한다면 군대가 나선다고 해도 치명적이다. 멀리 바다 저편에 있으면서, 호시 탐탐 사람을 잡아 먹을 궁리를 하고 있으나, 헤엄을 칠 수가 없어서 바다나 강으로 떨어져 있으면 안전하다. 그러나 만약 누가 고의로 배에 실어서 이것을 운반해 준다면 위험해진다. 얼굴 모습 역시 공포스럽다. 울릉도 사람들이 매우 사납고 무서운 괴물로 믿어서, 언젠가 말세가 오면, 바다 저편에서 이것이 나타나 사람들을 다 죽인다는 소문을 믿었다고 짐작된다. 전후 사정을 보면, 이것은 자연적인 동물이 아니라, 세상을 멸망시킬 사람이 나무로 교묘하게 만든 기계 로봇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512년 아찬 이사부가 신라 하슬라주를 다스리는 제후가 되었을 때, 나무로 이 괴물 모양을 생동감있게 만든 후에, 울릉도에 가서 괴물을 풀어놓겠다고 위협한 적이 있다. 당시 우산국을 건국하고 살고 있던 울릉도 사람들은 크게 겁을 먹고 항복하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 사자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문화속에 깊숙히 자리잡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512년은 불교를 조정에서 채택하기 전이므로, 불교의 영향력이 특별히 강했던 시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6세기 초에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했던 무서운 사자 모양의 괴물은 사자와 특별히 닮은 점이 없는데 다만 기록만 그렇게 남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렇게 사자를 두려워한 것이, 불교 전래 초기의 오해와 신기함이라든가, 혹은 토착 신앙을 믿던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느꼈던 이상함, 거부감을 나타낸 일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36. 자이
(신라 불상) 스스로 걸어다니거나 굴러다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이다. 육중하고 무겁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다. 한 번 움직일때에 채 1백보를 걸어다니지 못할 정도로 움직이는데 서툴지만, 성격이 무서워 잘 싸우며, 무게가 무거워서 다루기 힘들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돌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만약 이 돌로 탑이나 불상을 만들면, 그 탑이나 불상이 언젠가는 움직이고 걸어다니게 될 수가 있다. 638년, 816년 등 몇차례에 걸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돌이 저절로 움직였다는 것은 돌의 무게 때문에 땅이 꺼져서 돌이 구른다거나, 혹은 미약한 지진으로 균형이 무너져서 돌이 움직인 현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커다란 돌, 특히 사람이나 동물과 비슷한 모양의 돌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가 있기 때문에, 돌이 걸어다니는 전설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돌고 있습니다. 울산바위 이야기 같은 것이 가장 유명한 축에 속하는데, 그에 비해, 신라 때의 이야기는 돌로 만든 불탑이 서로 격투를 했다는 둥 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몇차례 있습니다.
37. 장백척
(신라 토기) 독을 품고 있는, 거대한 민물고기로, 굵기도 굵기지만 길이가 길어서, 20,30미터 정도에 이른다. 매우 강한 맹독을 품고 있어서 물속에서 독을 뿜으면 일대의 물고기가 다 떠오를 정도이다. 가끔 자기가 자신의 독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듯이 날뛰다가 강 밖으로 뛰쳐나올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죽어버린다. 독이 매우 강해서, 물고기가 죽은 뒤에 이 물고기의 살을 조금 떼먹어도 사람은 즉시 죽는다. 655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38. 흰 까치
(신라 토기) 까치와 모든 면에서 같으나 색깔이 흰색이다. 비교적 드문 동물이지만, 또 그런 동물 중에는 흔한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특징보다는 "흰 까치"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문제 때문에 유명하다. 662년, 720년 등등 여러차례에 걸쳐 한반도 각지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백치"의 예처럼 까치 역시 현대에도 숫자가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흰 까치"는 지금도 가끔 확인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에 흰 까치가 중요한 것은 연역법, 귀납법, 외연, 내포 등의 추상적 개념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까치"가 뭔지 정의내리거나 설명하라고 하면, 누구나 "몸 색깔이 까맣다"라는 설명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모든 면에서 까치와 완전하게 동일한 동물이 있고, 어미도 까치고 형제자매들도 까치인 동물이 있는데, 다만 색깔만 흰색이라면, 이 동물도 "까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만약 이 동물을 까치로 인정한다면, 특징 몇 가지를 더 위배할 때까지 까치와 까치가 아닌 생물을 나눌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됩니다.
39. 수악당
(신라 불상 조각) 몸에 "수악당"이라는 글자 같이 생긴 무늬가 있는 사람과 비슷한 종족으로, 매우 포악하며 나쁜 짓을 많이 하고, 형제 자매 부모 자식 간에도 아무런 인의가 없어서 사악하다. 인상이 더럽고, 모습이 흉칙하며, 무기를 사용하기 보다는 주로 맨손으로 싸우고 설치며 도덕 관념을 찾아 볼 수도 없다. 악행을 하면 할 수록 몸속에 이상한 성질이 쌓여서 점차로 주변에 먹구름을 생기게 하고 강한 번개가 떨어지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것이 등장하는 일대는 분위기가 몹시 흉흉하게 되는데, 나중에 가서 도가 지나치게 되면 결국 자기 자신도 벼락을 맞아 결국 죽게 된다. 사람과의 잡종이 생길 수도 있으며, 이 때에는 사람의 성질을 가지는 수도 있으나, 그래도 본래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662년 신라의 사찬 작위를 갖고 있던 여동 이란 자가 기록되어 전해진다.
40. 북원이조
(신라 토우) 새의 종류인데 다리는 꼭 포유 동물 다리처럼 많은 털이 있는 동물이다. 깃털은 깃털 하나하나 마다 미묘한 글자, 그림, 무늬 같은 것이 다양하게 새겨져 있어서 한 마리를 잡아 깃털을 뽑으면 책 한권치는 될만할 정도이다. 678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몇 마리 남지 않았던 원시적인 조류나, 조류와 파충류, 조류와 포유류의 중간형태의 동물 같은 것일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41. 동루천구
(고구려 수막새) 구름 밖 하늘 높은 곳에서 사는 개만한 크기의 작은 동물이다. 그러나 모습을 따지고 보면, 짧은 다리가 있고 올챙이 같이 머리만 커다란 몰골이다. 그런데 털이 돋아 나 있는 것이 아니라, 털처럼 작은 불꽃이 온몸에서 나와 활활타오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밝다. 머리가 항아리만하고, 꼬리는 1미터 정도의 길이이다. 하늘 위에서 표표히 살기 때문에 거의 죽는 일이 없는데, 가끔 죽으면 더이상 하늘을 날아다니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진다. 아주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천구가 땅에 떨어지면, 그 충격으로 땅이 넓게 패이고 작은 지진이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667년, 710년, 748년 등에 신라를 중심으로 발견된 적이 있다.
- 천구는 별똥별이 땅에 떨어진 운석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사기에는 묘사가 생동감있고 독특한 특징이 있어서, 말그대로 하늘에 사는 개같은 괴상한 생물로 여길만도 합니다.
42. 독오각
(신라 토우) 털로 뒤덮힌 송아지 비슷한 네 발 동물인데, 몸에 네 다리 외에 촉수 같은 다리가 하나 더 달려 있다. 이것을 등위로 처들고 다니면서, 삶에 사용하거나 적을 공격한다. 766년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43. 광화산
(백제 금동관) 세 개의 불덩이가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서로 합쳐졌다 떨어졌다 하면서 움직이는 것인데, 불꽃놀이 불꽃처럼 매우 눈부시고 뜨거운 빛을 낸다. 도깨비불 종류라기 보다는, 운석이나 비행접시 등과 비슷한 더 크고 뜨겁고 강한 것이다. 세 개의 덩어리가 하나로 뭉칠 때, 뭉쳤던 덩어리가 떨어질 때, 더욱 강한 빛과 열을 내며 터지는 듯한 느낌이 난다. 767년에 신라의 왕궁 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44. 구척인삼
(백제 토우) 겉으로 보면 그냥 아름다운 풀꽃이다. 그러나 뿌리를, 파보면, 3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뿌리가 있다. 이 뿌리는 인삼인데, 마치 커다란 사람과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인삼으로서의 효능이 없다거나, 오래 살던 인삼을 헤쳤기 때문에 벌을 받는 다거나 하는 나쁜 소문도 있다. 799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커다란 인삼과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상당히 독특하게 많이 전해 내려 옵니다. 그것은 고려 인삼이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요한 특산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인삼을 캐는 사람들이 깊은 산중을 돌아다니면서 고달프고 험한 무용담을 많이 겪게 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인삼을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이나 어린이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사람인 줄 알았더니 커다란 인삼이더라 하는 이야기라든가, 사람을 따라 갔더니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인삼이 있더라는 류의 이야기가 상당 수 입니다. 물론, 그러한 변형판 중에서 가장 기막히게 멋진 걸작은 속칭 "내다리 내놔" 이야기로 통하는 덕대골 전설일 것입니다. 799년에 발견된 이 인삼은 역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거대한 경우입니다.
45. 남지이조
(고구려 무덤 벽화) 머리가 사람 아이처럼 생겼고 크기도 그만큼 크며, 몸 역시 아이 정도의 덩치인 커다란 새이다. 그런데 부리가 특별히 길게 튀어 나와서 수십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고, 눈빛은 사람과 꼭같고, 밥을 많이 먹는다. 흉측하고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는 성질이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799년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46. 강수선생
(신라 토우) 뒤통수에 뿔이 하나 돋아나 있는 종족을 높여 일컫는 말이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가 좋고, 재능이 뛰어나며, 특히 말재주와 외국어, 문학 등지에서 사람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는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의 체계가 고등하기 때문인지, 혹은 말과 문자 이전에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600년대에 지금의 김해 땅에서 강수의 어머니가 강수를 낳을 때 어머니 태몽에서 만난 적이 있고, 강수 역시 왠지 머리 뒤편에 뼈가 불쑥 튀어나온 모습으로 태어나 외모가 특이했다고 한다. 강수의 본명은 자두 인데, 이러한 외모를 보고 당시 신라 태종이 강수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기에,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두라는 이름보다는 강수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리우고 있다.
- 역사책에 조차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나오는 몇 안되는 사람이 강수입니다. 백결선생은 본명이 알려져 있지 않아 백결선생으로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강수는 본명이 있는데도 본명을 무시하고 강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도깨비의 모습은 한국 전통 도깨비가 아니라 일본 오니를 삽화 때문에 착각한 것이다, 한국 도깨비는 뿔이 없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민족주의의 비분강개처럼 돌고 있는데, 이것은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물론, 대중화된 도깨비의 그림이 일본의 오니 삽화에서 온 것은 맞지만, 한국 도깨비에도 뿔은 있습니다. 뒤에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한국에서 "도깨비"란 것은 그 실체가 명확하거나 모습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어떤 한 가지 괴물의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여기에 언급된 신라 때의 강수선생을 필두로 해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뿔이 있는 괴물은 지속적으로 보입니다. 뿐만아니라 방패나 깃발에 그리는 도깨비 얼굴 그림이나, 기왓장이나 벽돌 등에 새겨넣는 도깨비 얼굴 조각에도 뿔은 자주 들어갑니다.
47. 속독
(신라 무덤 조각) 피부색이 짙은 파란색 혹은 남색인 종족으로, 눈과 귀가 크며, 코가 길고 커서 앞쪽 아래쪽으로 툭 튀어 나와 있다. 눈동자는 노랑색, 초록색, 파랑색 등의 밝은 빛이며, 남자의 경우, 얼굴에 수염을 잔뜩 기르고 있고, 얼굴에는 이마와 광대뼈 부분에 유난히 뼈가 튀어 나와 있다. 대체로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려고 하는 종족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멀리 이동할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고, 장풍을 쓴다든가 하는 묘한 기술에 능하기도 하다. 남녀가 짝을 지어 다니기를 잘하고, 머리 뒤로 길게 늘어뜨리는 특이한 두건을 머리에 쓰고 있고, 그 밖의 옷차림도 삼국이나 발해, 중국, 일본 풍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원래 고향은 머나먼 서쪽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는 종족이다. 879년에 신라의 왕이 서양인 혹은 중동인 네 사람의 노래와 춤을 구경했던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와전되면서 신령스러운 존재로 과장해서 상상하여 믿던 이야기가 신라사람들 사이에 퍼졌다고 한다. 또 신라 후기에 속독을 표현하는 가면 무도회가 있어서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 무역과 탐험을 위해 찾아온 우즈베키스탄 지역의 사람들이 왕이나 귀족들에게 인사를 올리던 일에 대한 여러 헛소문에서 파생되었다고 짐작되는 것입니다. "속독"은 수그디아나를 표기한 것이라는 설이 우세한데,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이를 표현하는 가면을 만들고 이야기가 부풀어지면서 신비한 이야기와 믿음이 자꾸 덧붙은 것입니다. 한가지 재미난 것은, 유명한 처용이 보통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 외모로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속독은 좀 사람 같지 않게 생겼다는 것 입니다.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탈춤 속 "말뚝이" 의 원형적인 한 형태라는 설도 있습니다.
48. 유사산예
(신라 향로 뚜껑장식) 온몸에 털이 길게 덮힌 호랑이와 사자와 닮은 구석이 있는 맹수로 사막 건너 먼 지역에 산다. 낙타처럼 사막을 헤메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때문에 몸은 모래먼지로 뽀얗게 뒤덮혀 희뿌옇게 지저분한 모습이다. 이빨이 날카롭고 입이 커서, 어떠한 동물도 공격해 잡아먹을 수 있을만큼 강한 동물이다. 하지만, 의외로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매우 온순해서 강아지 처럼 잘 따르고 말을 잘 듣는 묘한 습성이 있다. 음악을 좋아해서, 좋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일도 많다. 신라 후기에 신라사람들이 이 동물을 믿어서 이를 표현하는 탈춤이 있었으므로,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다.
- 산예는 보편적으로 사자를 표현하는 다른 말 중에 하나인데, 여기서는 실제 사자 라기 보다는, 동양에 널리 퍼져 있는 사자춤에 등장하는 상상속의 동물입니다. 불교의 설화들과 관련이 있어서 널리 유행하기도 했고, 때문에 실크로드 저편 중동과 서양 지방에서 건너온 괴물이라는 생각이 당시에 퍼져 있었다고 보입니다. 사자는 귀신이나 악귀를 쫓는 신령스러운 존재, 혹은 무시무시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언급되곤 하는데, 삼국사기의 신라 기록에 나오는 산예는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로 흥겹게 춤을 즐기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는 한국 사자춤의 원시적인 한 형태로 볼 수 있고, 이 경우에 사자는 농담따먹기를 하면서, 탐관오리나 재수없는 위선자들을 잡아 먹는 재미있고도 위엄있는 존재입니다.
- 삼국유사 -
49. 장시상천
(신라 유물) 흰 색 말로 하늘을 날아 다닌다. 말임에도 불구하고 푸른색이나 보라색 계통의 커다란 알을 낳는다. 이 알은 자기 자손일 수도 있지만, 다른 동물이 들어 있는 것을 대신 뱃속에서 길러서 낳는 수도 있다. 울음소리가 큰 편이고, 날아 오를때 힘차게 울고나서 빠르게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기원전1세기 무렵 신라의 첫 임금인 혁거세 거서간이 이것이 낳은 알에서 태어 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50. 중서함미
(신라 무덤 조각) 쥐 정도 크기의 작은 털달린 동물로 쥐와 비슷하나,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영리한 동물로 여러마리가 모여서 살기 때문에, 사람처럼 사회와 문화를 이루고 지하나 숲속에서 살아가는 듯 하다.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서 서로 헤어나지 못하고 수없이 엉켜서 떼거리로 죽는 일과 관계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이런 일을 주동하는 듯 보인다. 488년에 신라의 천천정이라는 곳에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 조선시대 때는 수만마리의 쥐들이 떼거리로 움직이는데, 그 사체로 강물 위에 다리를 놓고 강을 건너 와서 고립된 지역의 사람들을 공격했다는 류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실제로 들쥐가 사나워 질 때처럼, 이런 쥐들은 사람을 공격하기도 하고, 온갖 시설물을 갉아서 무너뜨리거나, 곡식을 축내는 등 피해가 막심한데, 사람이 엄청난 쥐떼 때문에 죽은 기록도 왕왕 나타납니다.
51. 귀수산
(신라 무덤 조각) 산처럼 거대한 거북이와 닮은 커다란 동물로 수백미터를 훌쩍 넘는 엄청난 크기이다. 바다에서 사는데, 때문에 섬이나 암초처럼 보일 수도 있다. 등에는 대나무와 비슷한 더듬이나 촉수 같은 것이 조그마하게 돋아나 있다. 이 대나무 같은 것은 두 가닥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 때는 두 가닥으로 떨어져 있고, 잘때나 죽었을 때는 한 가닥으로 붙어 있다. 이것을 잘라내면 곧 도망치거나 죽게 된다. 이 대나무 모양의 더듬이는 조각조각을 잘라 물에 넣어 키우면 한 조각 한 조각이 그대로 변해서 이상한 동물의 새끼가 되며, 그 어린 모습은 용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자라나서 커지면 이렇게 거대해지는 듯 하다. 600년대 말에 신라에서 동해에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52. 구호구호출수로
(신라 토우) 거대한 뱀이나 도마뱀과 같은 비늘로 덮힌 생물의 머리를 갖고 있는 바다 동물인데, 거북이 처럼 등딱지를 갖고 있다. 사람의 말을 알아 듣고 매우 먼 곳에 있는 소리도 듣는 예민한 귀를 갖고 있으며, 사람과 사랑에 빠지거나,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등의 기묘한 습성을 보인다. 그러나 사람만큼 지혜로운 동물이라거나 사회와 문화를 이루고 사는 지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을 데리고 안전하게 바다속 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등딱지 혹은 몸에 있는 주머니, 입 속 같은 곳에 사람을 넣을 경우 충분한 공간이 있어서 사람을 물속으로 데려갈 수 있다고 짐작된다. 이것이 사는 바다속에는 사람이 숨을 쉴 수 있고 편안하게 살 수있는 묘한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삼국시대의 문명을 월등히 초월하는 기이한 도시와 궁전이 건설되어 있다. 이 동물은 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이 도시에 다른 사람이 산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도 이 동물은 한 때 그곳에서 부렸던 가축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만 하다. 이 바다 속 도시는 이상한 향기가 감도는 곳인데, 원래 살던 사람들이 멸망했는지 많은 음식과 옷가지 등만을 남기고 텅비어 있는 듯 묘사되어 있으며, 이 동물만 살면서 어슬렁 거리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순정공이 부임하던 도중 천하제일의 미녀였던 그 부인 수로부인이 이 동물에게 붙들려 바다에 잡혀간 적이 있다. 사람들이 이 동물을 욕하는 노래를 다같이 바다를 향해 부르자, 얼마후 이 동물은 수로부인을 돌려 주었는데, 수로부인은 그때 구경한 바다속 도시를 생생히 기억했다고 한다.
53. 원토소주
(고대 유물) 자라와 비슷한 동물인데, 몸 속에서 진주처럼 구슬을 계속 키운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크기에 이르면 내뱉는 습성이 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구슬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따르고 좋아하게 되는 이상한 기운을 풍긴다는 점이다. 구슬에서 사람을 끄는 이상한 향기나, 빛, 소리 같은 것이 묘하게 퍼져나오는 듯 하다. 신라의 원성왕 때 황룡사의 묘정이라는 사미가 발견했으며, 이 구슬로 명망을 얻어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가 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54. 도림죽전
(신라 금관) 유명한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땅, 공간, 혹은 흙을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은 이 흙에서 자란 나무이다. 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기묘하게 나뭇잎들이 부딪히고 문질러져서 사람 목소리 같은 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사람이 이 곳에 와서 한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기도 한다. 땅속에 어떤 존재가 있어서 나무들을 조종하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를 지목하면, 신라의 경문왕 때 도림사 뒤편의 숲지역이다.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 전설의 원형을 타고, 인도 설화, 아라비안 나이트 등등을 거쳐 전세계적으로 널리 전파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실명과 시대가 확정된 구체적인 "어느 나라 어떤 왕"으로 정해진 경우는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주변에서도 신라 경문왕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고, 기록도 중세때부터 확실하지만, 이웃 중국과 일본에는 이상하게도 상대적으로 크게 유행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문화의 교류관계를 연구하는데 여러가지 설이 돌고 연구도 많이 된 이야기거리가 많은 괴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미다스 왕의 이야기에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이야기했더니, 그 땅에서 갈대가 돋아났다는 식인데, 신라의 이야기는 땅에서 이미 돋아나 있는 대나무가 직접 말을 듣고 따라한다는 느낌이 좀 더 강합니다.
55. 오소사십
(고대 수막새) 사람의 집안, 특히 행랑과 복도안에서 사는 새로, 건물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 죽는 습성이 있는 듯한 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끼를 치며 숫자가 불어나 건물 안을 온통 새가 사는 곳으로 뒤덮어 버리기도 한다. 어느 건물로 들어 오느냐, 그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30, 40개 정도의 둥지를 하나의 건물안에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습성을 갖고 있다. 912년과 915년에 신라에서 발견되었다.
56. 자복남자
(고구려 무덤 벽화) 보라색 빛이 나는 발이 없는 길다랗고 굵은 벌레이다. 땅속에 사는데, 밤이 되면 기어나와 활동한다. 사람에게 이상한 꿈을 꾸게 하는 기운을 풍기고, 잠자는 사람을 희롱한다. 여자의 경우에는 임신을 시키는 수도 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그냥 보라색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범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800년대 말, 신라에서 견훤이 태어날 때, 바로 이것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57. 능원신물
(신라 토우) 10미터가 조금 못되는 길이의 커다란 뱀과 같은 동물인데, 눈에서 묘한 빛을 뿜을 수 있다. 이 빛은 번개나 불처럼 주변을 부수고 태울 수 있다. 사람의 커다란 무덤속에 들어가서 관을 집으로 여기고 산다. 그래서 근처에 접근하는 작은 동물을 공격해 먹어 버린다. 그러나 무덤 주인인 시체를 씹어먹거나 하지는 않고 오히려 지켜 준다. 턱과 이빨도 억세어 사람도 쉽게 물어 죽일 수 있다. 신라 말에 능원에서 발견되었다.
- 뱀은 겨울을 나기 위해서 땅에 굴을 파고 들어 앉아 겨울잠을 자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땅에 묻은 곳 근처에서 겨울잠을 자기 위해 뱀이 파는 굴이 있었다거나, 생기게 된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보통 "무덤 속에 뱀이 산다"는 류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무덤에 사는 뱀은 파 묻은 죽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상징하거나, 죽은 사람에 대한 저주와 연결되는 불길한 징조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눈에서 불을 뿜는 뱀 같은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도 보입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뱀과 닮은 괴물은 이와는 다른 비교적 드문 사례입니다. 즉 그 뱀이 무덤을 보호하는 우호적인 수호신 형태를 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신라의 왕릉 등을 노린 도굴꾼 등이 뱀을 보고 놀라 달아난 이야기가 와전된 것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58. 지중사방불
(신라 유물) 땅 속에 사는 돌로된 것으로, 사방으로 뻗은 네 개의 사람 같은 머리가 있다. 말을 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으며,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알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되므로, 불경을 왼다거나 하는 일이 많다. 땅 밖으로 높이 꺼내어 놓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신라 경덕왕 때 백률사의 산 밑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불상에 관련된 전설 중에는, 돌이나 나무가 사람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무척 많습니다. 가장 많은 종류로는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언뜻 본다거나, 말하는 소리를 문득 들었는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그 정체가 돌이나 나무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가져가서 불상으로 쓰기도 하고, 그 모양을 기초로 깎아서 불상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는 종류의 위와 같은 이야기도 꽤 있는 편입니다.
59. 만불산
(백제 유물) 고대와 중세를 통틀어 로봇, 자동 기계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10미터 정도의 크기로 만든 모형 산 속에 모형 집과 나무가 있는데, 그 안에 수십 수백의 아주 작은 사람 모양의 자동 기계가 살게 되어 있다. 크기는 10센티미터가 안되는 매우 작은 정도이나 모습은 사람과 흡사하고 매우 정교하게 움직이며 마치 사람처럼 울고 웃고 떠들고 걷고 달리고 앉고 누우며 생활한다. 완성된 것을 놓아두고 사람들이 구경하게 하니 모두가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제작했다고 한다.
- 지금도 오르골 등의 장식품에 붙는 자동인형을, 대규모로 정교하게 제작한 것이 과장되고 와전된 듯 보입니다. 내용 자체는, "토탈리콜"이나 "트루먼 쇼"처럼, 자기가 현실 세계에 사는 줄 알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왔지만, 어느날 자기는 매우 작은 자동 기계일 뿐이고, 자기가 사는 세상은 만불산 장치일 뿐임을 깨닫는 우화를 바로 떠올 릴 수 있을법한 것입니다. 우리의 지구가 만불산이고, 거대한 괴물들이 우주를 거닐면서 지구를 기이한 장식품으로 여기며 구경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60. 비우내포
(고구려 무덤 벽화) 깃털이 사람이 짠 옷감처럼 생긴 새이다. 다리가 길고 부리가 긴 새인데, 두루미 정도의 크기이며 색은 하얗다. 이 동물의 옷감처럼 생긴 깃털을 뽑아 그 깃털로 사람의 눈 앞을 가리면 사람에게 한 순간에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광경이 보인다고 한다. 신라 자장법사 생전무렵에 공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한다.
-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점수" 중에서 "돈오" 쪽을 강조하는 우화적인 괴물입니다. 어떤 광경, 어떤 모습을 보게 되면, 그것을 보는 순간, 매우 쉽게 진리가 이해되면서, 세상만사의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워질만큼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된다는 류의 이야기입니다. 진리의 속성이나 깨달음에 대한 철학적인 추구에 대한 정교한 일화, 우화는 중세 철학서적에서 좀 더 많은 해설이 딸린 것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 괴물의 이야기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그런 부류의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61. 만어산녀
(신라 토우) 만어산에 살았다는 괴물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도 신화 속의 나찰녀와 동일시할 수 있다. 그 모습은 인간과 같으며 여자의 모습이고 다섯이 무리지어 다닌다. 그런데 그 외모가 매우 아주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특징이 있다. 또 여러 괴물과 마구잡이로 교접할 수 있는 기괴한 능력이 있다. 이때가 되면 신체부위의 모양이 상대방 동물에 맞게 형태가 변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이상한 기운을 내뿜어, 먹구름이 끼게 하고 번개를 치게 하는 등의 일을 일으킨다. 그렇게 햇빛을 가리게 되는데, 이것이 무척 오래가게 된다. 때문에, 자주 이런 일을 하게 되면, 근방에는 농사를 짓기 어려울 정도가 된다. 또,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듯 하늘을 날면서 기이한 음악소리를 들리게 하는 일도 많다. 죽고나면 몸이 분해되어 이상한 금속 같은 것이 되는데, 이것은 모양은 그냥 돌멩이 같으나 두드려보면, 맑은 금속성 소리가 나는 묘한 재질이다. 그래서 이를 종석(鐘石) 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가락국 수로왕 시절에 만어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가락국 시절 조정에서 퇴치하려다가 실패하자, 불교로써 설복시켰더니 비구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종석은 지금도 밀양 만어산에 가면 널려 있습니다. 돌 중에 그런 돌이 있는 것인데, 삼국유사의 이야기와 어울려 점점 신비로운 내용으로 화하였고, 조선때에는 조정에서 이 돌로 악기를 만드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삼국유사 자체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 이야기는 관불삼매경 에 나오는 인도 설화를 계승해서 변형시킨 것입니다. 이 만어산 지역이 예부터, 불교와 직결된 신비로운 지역으로 여러 소문이 돌았기에 설화도 그대로 정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62. 오만진신
(백제 벽돌) 산 봉우리와 구름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모습이 수백수천수만의 사람으로 마구 바뀔 수 있는 하늘에 있는 것이다. 실체는 알 수 없으나, 그 겉모습은 수만명의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신라 정신왕 때 보천암이 있는 산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 새벽 안개속에서 헛것을 보는 현상인데, 오랫동안 고행과 수도로 피로한 상황일 때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산에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자주 목격하는 전설로 흔히 나타납니다. 때문에 불교 계열로 보는 일이 많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일종의 신기루나, 그림자와 기상 반사현상에 의한 착각으로 볼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경우는 독일 브로켄 산에서 발견되는 경우입니다. 독일 브로켄 산을 포함하여, 세계 각지에서 비슷한 현상은 현재에도 매우 자주 목격되고 있습니다.
63. 지귀심화
(백제 벽돌) 사람과 비슷한 형상인데 온몸이 불덩어리로 되어 있어서 사방을 불태우고 다닌다. 특정한 사람에게 강렬한 짝사랑을 느끼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집착에 미쳐 세상을 불태우며 싸돌아니는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영묘사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한 청년이 어느날 변해서 그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64. 지엽부포
(고구려 무덤 벽화) 지리학적으로 묘사해야 할만큼 거대한 나무로, 높이는 수천킬로미터에 달한다. 그래서 그 나무가지가 바다와 대륙을 가로지르며 늘어뜨리는 것이다. 그 가지 속에는 봉황이나 다른 거대한 새들이 것들이 산다. 이 새들은 알인지 무엇인지 모를 빛나는 기이한 보석을 둥지에 보관하고 있는데, 빛이 매우 강해서 먼데까지 뻗친다. 그러므로 나무 이곳저곳에서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신라 의상법사 생전에 의상법사의 상징으로 이야기 된 적이 있다.
65. 대귀소귀
(신라 석굴암 조각) 사람과 비슷한 모양인데 얼굴이 흉악하게 생겼고 덩치가 큰 것과 덩치가 작은 것이 있어서 서로 쌍으로 돌아다닌다. 두 마리 한 쌍 중에서 큰 것이 두목 노릇을 한다. 작은 것은 철퇴를 휘두르며 싸우고, 큰 것은 사람의 몸을 서로 붙게 하는 괴기스런 술수를 부린다. 따라서 두 다리를 서로 붙게하여 걷지 못하게 한다거나, 두 입을 서로 붙게하여 말하지 못하게 해버릴 수 있다. 아마도 그 몸에서 나오는 이상한 액체 따위를 쓰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괴물이 죽고나면 사람의 몸을 붙이는 기운이 다해서 사라지게 된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발견된 적이 있다.
66. 김현감호
(고대 유물) 낮에는 호랑이, 밤에는 아리따운 사람의 모습인 종족이다. 낮이라도 햇빛이 안드는 으슥한 곳에서, 자신의 정체를 아는 사람만 있다면 사람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사람의 모습일 때, 인간에게 정이 들거나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 두 종족이 있는데,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자 뿐인 것으로 보인다. 혹은 일종의 반성유전으로 가계에 따라, 남자만 혹은 여자만 이런 능력을 지니는 경우로 나뉘는 듯 하다. 신라때 흥륜사에서 김현이 만나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67. 오래명운
(신라 에밀레종 조각) 사람처럼 말하는 새로 사람보다 월등한 지혜를 갖고 있는 깨달은 존재이다. 까만색의 까마귀 같은 새이다. 깊은 산속에서 살다가 가끔 사람에게 나타난다. 목소리나 신체특징등은 여성이며, 노래와 음악에도 능한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불교와 인도 신화에서 말하는 "음악의 여신" 격인 변재천녀와 동일시 된다. 600년대 중후반 무렵에 신라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부록1. 강과 바다에 사는 용 "용재총화", "어우야담"에서 몇차례 용의 형태를 하고 있는 동물들을 언급한 적이 있고, 또, 이상의 글에서도 흑룡, 황룡 등 용의 일종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이렇게 언급한 예들은 전형적인 용의 상례와는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들이라서, 여러 문헌에서 보이는 가장 전형적인 "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가장 분명하게 공통되는 사항은 용이 강이나 바다, 혹은 개울이나 연못 등과 같은 물에서 산다는 것이고, 그 모양은 다리가 있는 거대한 뱀의 모양을 기초로 한다는 것입니다. 크기는 경우에 따라 다른데, 보통 사람 한 명 정도를 태우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묘사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 숫자는 강이나 연못 마다 한 마리 정도의 꼴로 어떻게 보면 비교적 흔한 생물입니다. 다만 강이나 연못 밑바닥에서 살면서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보기 어렵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모습에서 뱀과다른 가장 중요한 특징은 머리부분이 뱀보다 크고, 도마뱀이나 악어류에 더 가깝다는 점, 그리고 다리가 보통 도마뱀 종류보다 좀 더 길게 묘사된다는 점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특징으로 언급되는 점은 사슴 뿔 모양의 뿔이 아름답게 나 있다는 것입니다.
용의 색깔은 뱀의 가죽 색깔과 직결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만, 음양오행 등에 근거하여 방위를 색상에 일치시는 근거 때문에 파란색이 많습니다. 또 신라말부터 광적으로 유행한 풍수지리설의 영향도 매우 커서, 용은 곧 청룡이 가장 우선적으로 언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습성과 위력에 대해서는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비바람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용이 물에 살기 때문에 이것은 물살을 거세게 하여 풍랑을 일으키는 힘으로 직결됩니다. 따라서, 강에 사는 용은 그 강을 배가 건너지 못할 정도로 풍랑이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사는 용 역시 사람들의 항해를 방해하고 배를 엎어 사람들을 몰살 시킬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런 일들은 비를 동반하기 때문에, 가뭄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용이 난동을 부려 비를 내려주기를 기원하기도 합니다. 보통 용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음식, 옷, 보물 같은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물에 빠뜨려서 바치면 즐거워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용의 습성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오랜시간 동안 굳게 내려왔습니다. 백제를 멸망시킬 때 사비하의 용이 난동을 부려서 백제로 다른 나라 군사가 들어가는 것을 막았는데, 백마를 미끼로 해서 용을 낚았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대표적입니다. 또 이후 거의 1천년 후인, 조선때에 나온 조선시대 해양문학 최고의 고전이라할 수 있는, "표해록"에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된 선원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풍랑이 벗어나길 빌면서 선원들이 앞다투어 바다의 용을 위해서 갖가지 물건을 물속으로 내던지는 모양이 잘 나타납니다. 한편, 조선 초기에는 조정에서 직접 용에게 비를 비는 기우제를 지내는 장면에 대한 기록이 "실록"에 자주 나오는데, 이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호랑이 머리로 나옵니다. 호랑이 머리를 물에 넣으면, 용이 좋아서 그러는지, 싫어서 그러는지, 비를 내리는데 효과가 매우 좋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기우제 풍습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이런저런 소문만 많은 미신처럼 생각되었지만, 또 그러면서도 상당히 자주 등장하기도 합니다. 조정의 기우제 외에도, 지방의 각종 풍습에서 비를 내려달라고 용을 달래며 비는 것은 상당히 깊숙히 자리잡은 풍습이었습니다.
용 그림에서는 자주 용 주변에 불꽃 그림을 그려 넣습니다. 보통 용은, 비늘 끝트머리나 등에 돋아난 지느러미-뼈처럼 생긴 끝트머리에서 불기운을 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팔다리 관절이나 손톱에서 용이 불을 뿜는 것처럼 나와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밖에 용의 새끼는 뭐냐, 용의 수명은 얼마냐, 변신, 하늘로 올라가는 조건, 등등에 대해서는 불교에서 전래된 인도 신화와 섞이면서 용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잡다한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편으로는, 중국의 여러 시, 소설 등의 묘사가 차용되어 융합되는 경우도 여러모로 허다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반면에 삼국시대부터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용에 대한 생동감있는 구체적인 기록들은 거의 전부가 바다에서 회오리 바람을 멀리에서 보고 용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보통 목격담 속의 용 빛깔은 흰색이고, 비바람이 심할 때 구름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목격되는 경우가 단연 많습니다.
용의 변신에 대해서는, 직접 용이 변신하는 경우보다는, 용과 사람 사이의 혼혈에 대한 기록이 주가 되는 편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은 몸에 비늘이 있다거나 비늘이 잘보이지 않는 어깨에 딱 하나 있다거나 했다는 류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런 기록들은 고려 태조 왕건이 용의 자손이라는 류의 전설이 유행하고 채록되면서 굳어지는 것이 가장 큰 중심을 이룹니다.
부록2. 움직이는 청동 불상, 강철 불상 "삼국유사"의 지중사방불이나, "어우야담"의 은불은 이상한 괴물같은 것을 보았는데, 알고보니 불상 비슷한 것이었다는 류의 이야기입니다. 이와 매우 비슷하지만, 정반대 방향의 이야기들이 또 한 종류가 있는데, 이것은 불상이 어느날 갑자기 신기하게도 움직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극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석불 보다는 보통 청동불상이나, 금동불상, 강철불상의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꼭 사람처럼 생긴 그 모양을 보고, 정교함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 전설의 피그말리온 이야기와 상통하는 점이 꽤 있습니다.
청동 불상이나 강철 불상이 사람처럼 저절로 움직이는 이야기는 여러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냥 불상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불상이 표현하고 있는 약사여래나 문수보살 그 자체였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불상이 잠시 동안 조금 움직여서 사람을 구한다거나, 경고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불상이 사람처럼 땀을 흘린다거나, 눈물을 흘린다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불상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완성도 높은 설화인 광포설화의 경우도 이러한 이야기의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신라 장륙존상 이야기처럼, 만든 재료 자체를 신비롭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장륙존상 이야기는 불상을 제조하기 위해서 옛날 인도의 어느 나라에서 재료와 부품을 준비했는데, 막상 불상을 만들려고 보니, 재료에 걸맞는 수준의 불상을 만들 기술이 없어서 포기했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 인도 사람들은 그냥 그 재료를 배에 실은 뒤 바다에 띄워 보내버립니다. 그것이 수백년간 바다를 떠돌다가 마침내 신라까지 왔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기술을 갖춘 사람이 이 재료를 입수한다면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불상을 만들어 달라는 편지가 같이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라 조정에서는 최고의 기술을 동원해서 그 재료로 불상을 만들었고, 그것이 불상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장륙존상 입니다. 무게가 10톤 이상이 되는 육중한 거대 불상이었고 금을 발라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상이 움직이고 힘을 쓰는 온갖 이야기거리의 단초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한편 불교를 단순한 주술이나 잡다한 미신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유행하는 조선 때에는 불상이 움직인다는 이런 류의 이야기가 헛된 괴소문으로 몰아 붙이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유관순 동상 이야기 정도로 멸시된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오늘 당장 내 눈앞에서 청동불상이 걸어다니며 춤을 춘다고 한들, 이상하고 신기한 사건일 뿐이지, 그런 괴상한 현상이 절이나 중에게 돈 바치고 쌀 바치며 주문처럼 불경 외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냐?" 등등의 표현이 회자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움직이는 불상이 어떤 초능력이나 신비주의에 대한 믿음을 상징하는 비판적인 표현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