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학교신문인 <동대신문>의 고정 칼럼인 '보리수'에 서명원 신부의 글 '불교의 가르침과 실연'이 실렸습니다. 원고가 청탁 분량보다 조금 넘쳐서 살짝 정리되어 게재되었습니다. 줄이기 전의 원고를 크남부여 카페에서 소개합니다.
<동대신문> 1605호에 실린 보리수 칼럼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해주세요~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1573
불교의 가르침과 실연
(기고 전문)
석가세존의 가르 침은 고집멸 도인 사성제 즉 네 가지 성스러운 (Śakya-muni, B.C.E 563?~B.C.E. 483?), 진리로 만날 수 있다. 늘 느끼듯 삶은 고통바다이지만(고제), 그 고통의 원인이 집착이며(집제), 집착은 근절될 수 있고(멸제), 그 집착을 끊는 방법이 있다(도제). 그 방법은 팔정도, 즉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에 있다. 이 가르침의 핵심을 한마디로 줄이면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려면 모든 집착을 끊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약관의 필자가 여자 친구에게 집착하다가 스스로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던 이야기를 이 지면을 빌려 솔직하게 나누려 한다.
아아아! 죽고 싶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나만의 당신'이 바람을 폈다니! 그토록 사랑스러운 여자 친구, 좋은 집안 출신의 착한 여자가, 그러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10개월간 의대 공부를 하면서 나만의 당신만을 생각하고 살다시피 한 나는 두 팔을 벌려 당신을 내 가슴에 안을 날만 학수고대했는데.... 많은 여자를 만나더라도 외도한 적이 없었고 충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 한 치도 일어나지 않았던 내가 가졌던 굳건한 믿음 - 당신도 이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다 - 이 크나큰 착각이었다니....
당신의 편지에서 페르디난도(Ferdinando)라는 남자가 언급될 때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바보 같은 당신이 그와 바람을 편다는 사실까지 깨닫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는 없어서 집중력이 한없이 떨어졌다. 중간고사도 기말고사도 모두 잘 치를 수 없어서 합격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의대를 포기하거나 1학년을 재수하거나 해야 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 모두가 받은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구나 바람을 폈던 당신이 캐나다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의과대학에 수월하게 입학하게 되었다니. 억울했다.
캐나다에 귀국하던 날 당신으로부터 철학을 가르치는 페르디난도라는 교사와 사귄다는 고백을 듣는 순간부터 나는 3개월간 생지옥에 빠진 양 살았다. 당신에게 받은 사진과 편지를 모두 찢어서 불살랐다. 그러나 여전히 자나 깨나 당신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지가 절단되는 것 같았다. 잊히지 않았다. 다른 여자와 사귀려 해봤으나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집에 전화가 울리거나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당신일까 싶었다.
그토록 고집했던 당신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끊어지기까지 5년 걸렸다. 5년간 필자는 팔정도의 정신대로 살았다. 집착으로부터 놓여나던 순간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의대를 졸업한 당신이 약을 복용하고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신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당신 덕에 배운 바가 크기에 당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당신도 당신의 당신을 원망 하지 않고 사후 세계에 들어가 온갖 집착이 끊겨 고통바다로부터 벗어난 피안에 도착하여 진정 평화롭고 행복한 길을 찾길 간절하게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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